Black-Haired U.S. Army Marshal RAW novel - Chapter (65)
65_백일 전투 (1)
1918년.
일본제국 경성.
강제적인 병합 이후 일본은 줄곧 새로운 식민지에 대해 폭압적인 정책을 유지해 왔다.
토지조사사업, 회사령 등으로 대표되는 철두철미한 수탈.
당연히 일본인을 왜놈으로 보던 당시 조선인들에게, 이러한 굴욕은 참기 힘든 일이었다.
굴욕은 곧 저항으로 표출되었고, 조선총독부는 재정의 3~4할을 헌병경찰에 꼬라박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이런 식의 식민지 정책이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버겁다는 것은 일본의 상층부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조선총독부는 천황 직속이었으며, 내각의 통제도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기관.
거기다 내각, 육군, 해군 등 온갖 파벌들의 개입까지 더해지니 뻔한 일이었다.
그런 조선에, 괴이한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미합중국 육군, 독일제국군을 완파!] [합중국 육군의 대표, 동양인!] [아시아의 깃발, 구라파에 우뚝 서다!]시작은 언론이었다.
이미 조선의 민족언론은 씨가 마른 지 오래.
‘대한매일신보’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로 편입되어 총독부의 확성기로 전락한 이래, 조선인들의 눈과 입이 되어줄 언론 따위 당연히 조선 땅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 기사의 시작은,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부산일보’와 ‘조선시보’였다.
[비천한 동양인에서 합중국의 장성으로!] [캉브레에서 아미앵까지. 불란서를 수호하는 위대한 황인!] [웨스트포인트에서의 운명적 만남, 바다의 수호신 도고와 지상의 수호신 김의 숙명적 일화!] [김유진, 미합중국의 태합(太閤)이 되는가?] [명예 백인, 세계를 거머쥐다! 황국의 깃발 밑에서 모두-]“대체 이 기사들은 무어냔 말이야!!”
제2대 조선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그의 앞에 놓인 신문을 쾅쾅 두들기며 광분했다.
“이미 조선놈들이 전부 떠들고 있어! 자기네들의 자랑거리로 삼고 있다고!”
“각하, 고정하십시오.”
“어차피 조센징 또한 제국의 일부입니다. 그 또한-”
“그런 포장지가 지금 중요한 게 아니잖아! 당장 조센징들이 이 이야기를 자기네 이야기처럼 여기고 있어!”
아무리 조선 거주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이라지만, 결국 식자층이라 하면 신문을 구독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일어를 아는 먹물 먹은 조선인에서부터 저 밑바닥 날품팔이들까지 죄다 약관의 나이에 미합중국 장성의 반열에 오른 저 위대한 청년 장군의 이야기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김유진 장군은 본디 지리산 출신으로, 축지와 도술에 도통해 코쟁이들도 어찌할 수 없었다더라.’
‘태황제께서 조선의 망국을 직감하시고 하늘이 내린 장군감을 미리견으로 보내시어 독립군을 육성케 하셨다더라.’
‘태평양 건너편에서 10만 철기를 다스리고 있고, 김유진 장군이 독일국 황제를 참하면 구라파 각국이 그 공로를 기려 조선 총리대신으로 임명해 나라를 돌려준다더라.’
대체 이 조선놈들은 무슨 행복회로를 돌리기에 저런 웃기지도 않는 발상을 한단 말인가?
구차한 희망을 붙든 놈들이 제멋대로 환상을 지어내서는 더더욱 총독부 시책에 불응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합중국과 황국은 공동의 적을 두고 싸우는 우방일진대 대체 무슨 논리에서 유럽 제국(諸國)들과 미합중국이 조선을 독립시켜 준다는 건지 눈곱만큼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아무튼 조선인 상당수는 저 망언에 부화뇌동하고 있는 게 바로 현실이었다.
“이제 와서 신문사를 조진다 한들-”
“이미 늦었지. 나도 아네.”
“그것도 그렇고, 이미 본국의 신문사들도 저마다 호외를 뿌려 가면서 이 김유진이란 놈을 보도하기에 여념이 없답니다. 결국 시간이 조금 앞당겨졌을 뿐, 조센징들은 어떤 식으로든 움직였을 겁니다.”
“후우. 돌아버리겠군 정말. 대관절 도고 그놈은 왜 이놈을 만나서 일을 더 키웠단 말인가?”
스물다섯.
준장.
캉브레의 영웅.
아미앵의 수호자.
웃기지도 않는다. 이놈은 미나모토 요시츠네의 환생이라도 된단 말인가?
단순한 신문 기삿감이 아니라 대사관이나 주재무관 등을 통해 들어오는 보고서를 보고 있자면 자신도 모르게 요시츠네 환생설을 진지하게 느낄 정도였으니, 저 조센징들이나 본토의 신민들이 광희난무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이 철과 화약의 시대에 혜성처럼 나타난 사무라이라니.
“아무튼! 당분간 조센징들이 준동하지 않게 더욱 만전을 기하시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터졌다간 나도 끝장이지만 당신들도 전부 끝장이야!”
정치라고는 모르고 살아왔던 군인인 하세가와로서는, 이렇게 을러대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을 따름이었다.
***
같은 시각, 도쿄.
“기사 한번 기깔나게 나왔습니다그려.”
“허허. 다음 기사도 미리 보시지요. ‘김유진의 본적은 쓰시마 가네이시(金石), 사무라이의 혈통 미주에서 빛나다’라고 잡았는데-”
지금 낄낄대는 이들은 모두 일본제국을 떠받치는 최고의 기둥이라고 자평하는 제국 해군의 장성들이었다.
“이것 참 훌륭한 책략입니다.”
“육군 놈들, 어디 가서 화풀이도 못 하고 끙끙 앓을 걸 생각하노라면 밤에 잠도 솔솔 오고 밥도 술술 넘어갑니다!”
“대관절 조선 총독 자리는 그러게 왜 꾸역꾸역 붙들고 있겠습니까. 다 그게 역심으로 가득 찬 놈들이라 그렇지요.”
“그놈들이 조선을 붙들려는 이유야 뻔합니다. 언제든지 목줄 풀린 미친개처럼 만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시베리아 출병.
육군에 침투시킨 스파이가 물어온 정보는 해군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전임 조선 총독이자 육군의 핵심인 데라우치는 주제 파악도 못 하고 총리가 되어서는, 이런 국가의 중대사를 감히 위대한 해군에 알리지도 않고 육군의 이득만을 탐해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제놈이 죽어라 닦아놓은 조선총독부가 개판이 되면 데라우치도 무척 좋아하겠지?”
“그런데··· 겨우 이 어린 친구 하나를 알았다고 해서 조센징들이 폭동을 일으키겠습니까?”
“그야 모르지. 하지만 원래 물을 넘치게 하는 건 마지막 한 방울인 법일세. 우리는 넘칠 때까지 좀 더 콸콸 부어주자고.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든 뭐든 상관없이-”
“도고 제독님 들어오십니다!”
한 병사의 외침에 장내에 있던 모든 인물들이 일제히 기립하여 자세를 바로 했다.
비록 퇴역한 지 한세월이지만, 감히 누가 쓰시마 해전의 영웅 앞에서 건방지게 굴 수 있으랴.
“이 친구 이야기 중이었나?”
“예, 옙. 그렇습니다.”
“강단 있는 친구였지. 내 언젠가 이 친구가 사고 한번 거하게 칠 줄 알았어. 허허.”
이렇게 빨리 칠 줄은 몰랐지만 말야.
도고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 김유진이란 조센징에 대해 어찌 보십니까? 만약 황국의 앞길을 막을 놈이라면-”
“막을 놈이라면? 미국 장성을 암살이라도 하겠단 겐가? 이 친구, 나라 말아먹을 일 있나?!”
“그, 그것이 아니오라-”
“헛소리 집어치우게. 우리는 그냥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서로의 무운을 빌어주기만 하면 될 일이야. 애초에 그는 미군, 우리는 황군. 그는 육군, 우리는 해군. 엮일 일이라곤 없어.”
도고는 공 욕심에 살짝 나사가 빠진 이들을 향해 천천히 달래듯 이야기했다.
“대관절 미합중국과 황국이 전쟁이라도 벌이지 않고서야 뭐가 문제가 되겠나. 추후에 내 명의로 축전이나 하나 보내놓게.”
“알겠습니다!”
***
독일군의 마지막 공세, 역사서에 제2차 마른 전투라고 불릴 전투는 독일의 완패로 끝났다.
단순히 공세가 멈춘 정도가 아니었다.
연합군은 첩보를 통해 독일이 어디로 올지, 목적이 무엇인지를 훤히 예상할 수 있었고, 독일군의 공세는 허무하게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지도를 본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
‘마른강 돌출부 일대의 독일군··· 다 짤라먹을 수 있지 않을까?’
포슈, 페탱, 헤이그, 퍼싱의 4인은 군인이라면 당연히 할 법한 발상에 도달했고, 마침내 연합군의 대반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반격의 한가운데엔 어김없이 미합중국 육군 최고의 기린아가 있었다.
“진격 속도가 거북이보다도 느리군.”
“적의 반격이 너무 격렬합니다.”
“이게 한계인가.”
새롭게 제정된 은성무공훈장 한 다발을 수여받은 최고의 엘리트, 더글라스 맥아더 ‘준장’은 영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전황에 골머리를 썩여야 했다.
독일놈들이 한 번 점령하기만 하면 그 땅은 사탄도 울고 갈 지옥의 성채가 되었다.
쉴 새 없이 공기를 찢으며 날아드는 항공기, 조금 풀어질라 치면 떨어지는 독가스, 곳곳에서 용솟음치는 포탄 세례, 악착같이 기관총과 박격포를 쏴대며 고지를 내주지 않으려 격렬하게 항전하는 병사들까지.
어째서 독일인들은 저토록 침략 전쟁에서 용감히 싸울 수 있단 말인가?
자유와 민주정의 수호라는 기치를 위해 싸우는 미군조차 이 험난한 전쟁에서는 좌절하는 이들이 수두룩하건만, 저들은 태어나기를 이미 빼앗고 파괴하는 데 익숙한 인종으로 만들어졌는지 승산 없는 전쟁 속에서도 자식 잃은 사자처럼 날뛰고 있었다.
이미 26사단이 너무 소모된 탓에 새롭게 투입된 42사단이었으나, 그 42사단조차 피해를 수습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이 끔찍한 환경에서 뒹굴던 병사들이 병원으로 후송되면, 그 병원에서 도리어 병을 얻어 세상을 하직하기 일쑤였다.
17년 봄부터 합중국의 병사들을 괴롭히던 독감은, 수그러들기는커녕 새로운 무기를 장착했다.
폐수종.
폐에 물이 들이차기 시작하면, 방도가 없었다.
그저 병상에 누운 채, 죽는 그 순간까지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며 익사하는 그 순간만을 기다려야 했다.
이제 참모장에서 제84여단장으로 발돋움한 그였지만, 이 격전 속 소모는 그의 예상을 훌쩍 웃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할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어떻게 잡은 천금 같은 기회인가.
여기서 독일군의 숨통을 끊어놓지 못한다면, 더 많은 병사들을 참호 바닥에서 잃을 게 뻔했다.
“이보게, 여단장. 조금만 물리는 게 어떻겠나? 당장 우리 부대 중 일부는 포병 화력의 지원조차 못 받고 있어. 포병대가 전열을 가다듬고 있으니-”
“지금이야말로 승기를 잡을 때입니다. 한 명의 희생을 겁내 뒤로 물러났다가는, 저 저주받을 고지를 뺏기 위해 열 명이 더 죽어야 합니다.”
“그러면 숨 고르기 정도는 어떻겠나? 벌써 한 고지의 주인이 11번이나 바뀌었어! 이래서야 그냥 사람 갈아넣기 싸움 아닌가?”
“소관의 판단으로는 우리보다 적이 더 지쳤습니다. 결코 공세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답답하다.
물론 그도 잘 알고 있다. 상식선에서는 여기서 물러나는 게 옳은 판단일 수도 있다는 걸.
하지만 그의 본능이,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육감이 지금이야말로 이 전쟁의 터닝 포인트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역시 그놈이 필요했다.
“못 해먹겠군.”
“여단장님, 바로 가십니까?”
“바로 부대로 복귀하··· 아니야, 잠깐 들렀다 바로 최전방으로 가지. 주전부리라도 좀 싸가면 다들 좋아하겠지?”
“아니, 얼마 전에 가스 한번 빠셨는데 또 가신다구요?”
“명심하게. 아직 이 맥아더를 죽일 총알은 제조되지 않았단 사실을.”
부관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는 당당했다.
전쟁은 곧 끝난다.
아직 일부 원숭이들은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나 다른 일부 현명한 이들은 이미 진작부터 알아차렸을 터.
이제 누가 얼마나 더 전공을 세우느냐의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