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Snake Finds the Wolf Who Played With the Snake RAW novel - Chapter 8
7. 각인이 해제되지 않았다 (2)
여덟 시간 전.
“빌어먹을 일족들 같으니라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알렉이 쓰고 있던 안대를 집어 던지면서 소리쳤다. 알렉이 어젯밤 바닥에 던져둔 궐련을 몰래 챙기던 사샤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자는 거 아니었어, 알렉?”
“고약한 늙은이들이 받아먹을 건 다 처먹어 놓고서 각인을 제대로 해제하지 않은 게 분명해.”
사샤의 물음에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알렉은 시커먼 눈가를 꾸욱 누르면서 오늘도 각인이 해제되지 않았다고 헛소리를 반복했다.
“하지만 알렉, 의원도 분명 각인이 해제되었다고 확인했잖아.”
“그 의원 놈도 잘라야겠어. 형편없는 돌팔이야.”
알렉은 침대에서 비틀비틀 내려왔다.
각인을 해제한 후 잠이 들면 로렌이 꿈에 나왔다. 그녀는 속살 하나 드러나지 않은 보수적인 옷차림을 하고서 설탕에 절인 체리 같은 입술을 우물대며 ‘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저 그뿐인 꿈이었다. 그런데 온몸이 달아올라서 곧 잠에서 깨어나야 했다. 그럴 때마다 잔뜩 흥분한 하반신이 저를 반겼고 그 후엔 제대로 잠을 청할 수 없었다.
하루 이틀까진 버틸 만했으나 사흘이 지나자 해소되지 않은 욕구와 피로감이 겹쳐 몸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졌다. 어제부터는 수면제도 처방받았으나 소용없었다.
“이 빌어먹을 왕국엔 왜 돌팔이밖에 없는 거야.”
그러면서 알렉은 외국의 유명한 의원들을 주르륵 떠올렸다. 역시 외국으로 나가서 진료를 다시 받아야 할까. 그는 쓸데없는 고민을 반복하며 이불을 치웠다. 근육으로 다져진 몸은 피로를 호소하며 침대를 밍기적밍기적 벗어났다. 벌어진 가운 사이로 드러난 두툼한 가슴팍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고 해소되지 못한 욕구는 실크 가운 아래에서 흉흉하게 실루엣을 드러냈다.
“어―휴, 저 정도면 발정기 아냐?”
사샤가 주운 궐련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면서 무슨 발정기가 갱년기보다 버티기 힘드냐며 중얼거렸다.
“용에겐 발정기가 없어, 사샤.”
알렉이 사샤를 향해 햇살같이 웃었다. 평소라면 그 미소를 보자마자 새하얗게 질렸을 사샤였으나 그도 며칠간 알렉의 히스테리를 받아 내느라 악에 받친 상태였다. 사샤는 입술을 앞으로 쭈욱 내밀면서 알렉에게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맨날 자기는 용이 아니라 뱀이라고 했으면서 이제 와서 용이라고 우기는 건 무슨 경우야?”
“뭐? 지금 죽고 싶다고?”
알렉이 눈을 희번덕 뜨면서 사샤에게 다가갔다.
“히익!”
기겁한 사샤가 출입문 쪽으로 후다닥 도망쳤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렇게 발딱 세우고 가까이 오지 말아 줘. 넌 내 취향이 아니라고!”
사샤는 문을 쾅 닫으며 주방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찬장에 있는 최고급 꿀을 꺼내 스푼으로 한가득 퍼서 입에 넣었다. 꿀단지에는 ‘상단주님 전용. 사샤 베어 접근 금지’라고 쓰여 있었지만 그런 문구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막 주방으로 들어온 하인 하나가 커다란 바구니를 내려다 놓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하녀장에게 혼나요, 사샤 님.”
하인의 눈 밑도 알렉처럼 시커멨다. 요 며칠 주인님의 수발을 드는 일이 너무도 힘들었던 탓이다.
“할 수 없어. 이거라도 먹어야 사표 안 내고 버틸 수 있다고.”
“주인님은 오늘도 상태 안 좋으세요?”
하인은 바구니를 덮고 있던 천을 치우고 담아 온 커피와 스콘, 잼 바른 빵을 접시에 올린 뒤 오븐에 데웠다. 루즈벡 찻집에서 사 온 주인님의 아침 식사였다.
“안 좋긴 한데… 저거 먹으면 다시 기분이 좋아질 거야.”
사샤가 오븐을 턱짓했다. 이 여자 저 여자 만날 때는 고민도 안 하던 놈이 로렌에게만 예민을 떨고 주변을 들들 볶으니 느긋한 곰돌이의 속도 저 오븐처럼 활활 타오르는 중이다.
“앞으로도 저 지랄 맞은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 어쩌죠?”
하인은 저도 모르게 거친 단어로 속마음을 내비치며 피로를 호소했다.
“어쩌긴… 제 명에 살고 싶으면 억만금을 준대도 도망쳐야지.”
“정말요?”
“그―럼. 나도 300년 전부터 내려온 우리 집 가훈을 어기고서라도 배 쨀 거라고.”
‘날개 없는 검은 용이 잠에서 깨어나면 목숨을 바쳐 섬기라.’ 사샤는 오래된 가훈을 떠올리면서 진득하게 늘어진 꿀을 입 안에 넣었다. 뱉은 말과 다르게 그의 얼굴엔 평온한 미소가 피어났다.
“맛― 있― 다.”
“사샤 님?”
“너도 먹을래? 마음이 편해져.”
사샤가 스푼으로 꿀을 듬뿍 떠서 하인에게 내밀었다. 턱을 바짝 당긴 하인은 오만상을 쓰며 꿀을 거부했다.
“가훈까지 어기신다는 분이 고작 그거 한 스푼에 걱정을 잊으십니까.”
“걱정? 내가 무슨 걱정을 했었나?”
사샤가 헤헤 웃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조금 전까지 그를 괴롭혔던 근심은 꿀과 함께 입 안에서 녹아 버린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