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38
청풍표국 최강식객 138화
138화. 피할 수 없다면 장악한다(1)
“어딜 다녀오셨습니까?”
여산홍이었다.
잠시 사람 좀 만나고 오겠다고 한 주군이 오랜 시간 연락이 되지 않자 걱정한 그였다.
지금 무림맹에는 그와 임요성만이 머무르고 있었다.
홍석찬은 죽은 표사들과 쟁자수들을 염해 화장한 다음 수레에 싣고 일찌감치 소주로 향했다.
이제 비고 조사에 대한 보고 차 회의만 참석하면 되기에 홍석찬은 필요 없기도 했고, 시체가 썩기 전에 빨리 표국으로 가서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장례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여산홍은 요즘 임요성의 곁에서 자신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사실 자신이 하고자 하면 할 일은 많았다.
하지만 살수였던 자신을 거두어 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주군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각오를 하고 있었다.
두혜련만 보더라도 아들에게 얼마나 잘 대해주는지 알고 있다.
그런 주모(主母)라면 자신이 죽더라도 아들의 미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래서 미련 없이 한목숨 바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주군의 무위가 너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 자신이 따라잡기가 버거웠다.
오히려 자신의 존재가 주군에게 방해가 되는 건 아닌지 자괴감이 드는 것이다.
명색이 호법이라는 자가 말이다.
여산홍의 물음에 제갈연이 떠올랐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여인은 하나뿐.
‘미안하오. 내 가슴이 좁아 한 여인밖에 품을 수가 없소.’
임요성이 상념을 털어내고 여산홍을 쳐다봤다.
“음. 좀 일이 있었네.”
“휴우. 걱정했습니다.”
“하하. 별일이야 있겠나.”
“그건 그렇지만….”
“미안하네. 다음부턴 이런 일이 없도록 하지.”
임요성은 여산홍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는 황제를 호위하면서 자신이 호위로서 별 효용이 없다고 느꼈던 시기도 당연히 거쳐왔다.
하지만 그런 단계를 거쳐야 또 훌륭한 호위로 성장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여산홍의 마음을 달래줄 방법을 찾는 것도 주군의 역할이었다.
임요성은 환희궁의 대공녀를 만난 일, 그리고 우연히 살막주를 만나 그를 죽이고 얻어낸 정보를 공유했다.
“그럼 항산파의 장문인이 주군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말이군요? 문제가 되지는 않겠습니까?”
“아마 맹주님이 쾌차하시면 곧 열릴 전체 회의에서 날 성토하겠지. 하지만 어차피 단목세가와 나는 둘만의 은원이고, 딱히 다른 곳에는 피해를 준 적이 없으니 날 비난하지는 못할걸세. 항산파 장문인이야 자신의 속가제자가 단목세가의 가모니까 연관이 있다고 볼 순 있겠지만.”
“묵룡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과거 묵천과 척을 졌던 세력이나 그 외 이번에 단목세가와 연관된 강소표국, 양주상단, 그 뒤로 산서상인까지 상대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묵룡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내 무위는 공식적으로 검증이 되는 셈이지. 바로 상천십좌급으로.”
상천십좌. 중원 전체에 가장 강한 열 명의 무인.
그것이 상징하는 바는 크다.
황보웅과 스치듯 한 비무와는 다르다.
무려 생사결.
그리고 그 결투에서 단목인과 단목룡이 모두 죽었다.
처음엔 임요성을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갈 것이다.
‘임요성은 상천십좌다!’
함부로 도모할 수 있는 ‘급’이 아니다.
임요성이 미친 척하고 강호의 대마두가 될 걸 각오하고 패악을 부리기 시작한다면 그야말로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임요성은 오히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큰 걱정이 없었다.
그리고 따로 생각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산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이 다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것보다 난 가진표국에 대한 일을 좀 해결해봤으면 좋겠군. 그 일을 잘 해결하면 앞으로 청풍표국이 더 성장할 수 있는 길이 보일 것도 같군.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해줄 일이 있네.”
여산홍이 등을 곧추세웠다.
지금까지 큰 도움이 되지 못해 심란하던 참이었다.
임요성의 명령은 가뭄 속 단비와도 같이 느껴졌다.
“하명하십시오.”
“천하전장의 장주가 날 찾아올 수 있게끔 소문을 좀 내주게. 천하전장주는 이번에 얼굴 한번 보고 안면을 터 두는 것도 좋겠어. 그리고 근처 하오문 지부가 있는지도.”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할 일을 부여받자 눈이 초롱초롱해진 여산홍이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임요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의아한 표정을 짓던 여산홍의 눈이 가늘어졌다.
인기척을 느낀 것이다.
“임 공자님, 잠시 뵐 수 있겠습니까?”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긴 무림맹의 경비대원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런데 전각 안까지 누가 들어온다는 것은 신분이 검증된 사람이라는 것.
여산홍이 밖으로 나갔고, 잠시 후 그와 함께 들어온 사내는 낯이 익은 자였다.
“내성 수비대주 신창문입니다.”
황보웅과 비무를 나누고 말을 걸어왔던 그 무인이었다.
“아, 반갑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절 찾아오셨는지…?”
전혀 뜻밖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어진 말은 더 뜻밖이었다.
“잠시 둘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임요성의 눈짓에 여산홍이 밖을 나갔다.
“혹시 기막을 펼치실 수 있으신지요? 저도 펼칠 수는 있지만 혹시나 해서….”
기막은 초인의 경계라는 초절정 이상의 무인이어야 가능하다.
그 말은 신창문도 초절정의 경지라는 말.
잠시 신창문을 쳐다본 임요성이 말했다.
“기막은 펼쳤으니 편하게 말씀하시지요.”
신창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빨리 기막을 치다니?
하지만 이내 표정을 굳히 신창문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묵천의 하남지부장 신창문이 당대 묵천군을 뵙습니다!”
신창문의 행동에 임요성도 적잖이 당황했다.
“묵천 하남지부장이라니…. 그런 대주께서 묵천 소속이었다는 말입니까?”
“받잡기 송구합니다. 말씀을 낮추어주십시오.”
“허어….”
잠시 헛웃음을 지은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용식에게 들은 적은 있다.
비록 적잖은 이들이 묵천을 떠나갔지만, 남아 있는 이들은 모두 일당백의 용사들이라고.
그리고 각 지역의 중추에 자리 잡고 있기에 향후 큰 쓸모가 있을 거라고 했다.
“저번 묵천군을 대변하는 회동에는 중요한 일이 있어 미처 가질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네. 그건 이미 들어 알고 있네.”
당시에도 중요한 요직에 있는 이들은 오지 못했다는 말은 들었었다.
“대단하군. 다른 곳도 아니고 무림맹, 그것도 수비대주를 하고 있다니.”
“과찬이십니다. 묵천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겠지요.”
묵천군이 사라지고 나서도 각 지역에서 인재들을 선별해 지원해온 묵천은 각지의 주요 단체의 요직에 그 세작을 심어둘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림맹, 그것도 수비대주는 엄청 명예로운 자리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묵천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건 대단한 충성심이었다.
“혹시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전대 묵천군께서 고아로 거지처럼 살던 저를 거두어 주셨지요. 묵천군께서 안 계셨다면 지금의 저도 없습니다.”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곳곳에 스승의 그림자가 있었고, 그 그림자는 지금 자신의 그림자가 되어 도움을 주고 있었다.
신창문은 처음 임요성을 봤을 때부터 자신의 주군인 묵룡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주군의 무위를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권웅 가주와의 비무에 과거 묵천군을 처음 봤을 때보다 더한 전율이 일었다.
“맹 내에 다른 천도들이 있는가?”
“예. 저처럼 요직은 아니지만 세 명 정도가 낮은 직급으로 포진되어 있습니다. 사실 묵룡께서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서로 알고만 있을 뿐 별다른 활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언제 해체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으니까요.”
하지만 임요성이 나타나고 이름을 알리고 나서부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임요성이 다른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자체 선별작업을 통해 배신자를 색출해 죽이고, 믿을만한 이들로 하남지부를 재편한 것이다.
“묵룡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하남 지역의 묵천들이 모두 개봉에 모여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음. 일단 보는 건 나중에 하지. 인원은 어떻게 되나?”
“보통은 총 98명의 인원이 하남성을 구성하는 여덟 개 부(府)에 나뉘어 있습니다.”
“음. 각 부에 대략 열 명이 좀 넘는 숫자군.”
“예. 처음 제가 들어올 때만 해도 더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습니다. 인원을 더 받아서 세를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하지만 서둘 필요는 없네. 양적으로 늘리는 것보다는 충성심 높은 이들로 꾸려서 질을 높이는 게 나아. 정보를 구해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 이제 묵천은 직접 뛰어다니며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원이 아닌, 정보원들을 관리하는 관리자 역할을 맡게 될걸세.”
“아… 그렇군요. 알아들었습니다.”
“오히려 무력을 높이는 쪽으로 집중하게. 이제 힘을 써야 할 일이 많을걸세. 참 구 각주에게 단뢰신공은 받았나?”
“예. 실로 엄청난 무공이었습니다. 이런 무공을 이렇게 풀어도 될지….”
이런 무공은 직계에게만 푸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주군은 묵천의 천도들 모두에게 풀어버린 것이다.
“개의치 말고 충실히 익히게.”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사실 임요성 딱히 직급의 고하에 따라 무공에 차등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단뢰신공을 만들자 곧바로 풀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천뢰신공이라는 새로운 무공을 만들었다.
이는 너무 높은 경지를 요구하는 것이라 아무에게나 풀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잘됐군. 우선 별도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평상시처럼 행동하고 있게.”
“알겠습니다. 그럼 연락책으로 쓸만한 친구를 한 명 주군의 곁에 두도록 하겠습니다. 풍귀.”
신창문의 부름에 한 인영이 스르륵 땅에서 솟아났다.
여인인지 남자인지 모를 곱상하고 하얀 얼굴에 여인처럼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여인인가?”
“아닙니다. 남자인데, 그….”
신창문이 잠시 망설이자 풍귀라 불렸던 이가 대신 답했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절 환관으로 넣으시려고 제 남성을 거세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묵천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주군.”
풍귀의 말에 신창문이 덧붙였다.
“동자공을 기반으로 한 은신술을 익힌 덕택에 적어도 은신술에 있어서 만큼은 천하에서 손꼽힌다고 보셔도 됩니다.”
신창문의 설명에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어렴풋이 누가 있다는 것 정도만 겨우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이 친구를 통해 명령을 내리도록 하지.”
“존명.”
그렇게 신창문이 나가고 풍귀가 남았다.
“은신하고 있으면 불편하지 않겠느냐?”
임요성은 풍귀가 불편하다고 하면 따로 역할을 주어 옆에 두려고 했다.
종복이나 호법 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풍귀가 고개를 저었다.
“철이 들 때부터 은신술을 익혀왔습니다. 오히려 이처럼 밖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더 심력을 소모하는 일입니다.”
“그렇군. 무기는 뭘 쓰지?”
“12자루 유엽비도를 조금 다룰 줄 압니다.”
“좋군. 알겠다. 그럼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적당히 은신하고 있도록.”
“존명!”
풍귀까지 사라지고 나자 임요성의 눈이 깊어졌다.
강호에 나올 땐 뭔가 다른 게 있을 줄 알았다.
어릴 적부터 수련만을 받으면 살아온 임요성에게 강호는 꿈과 낭만이 있는 곳.
하지만 치열한 정쟁이 벌어지는 황궁이나 각자의 목표와 삶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강호나 매한가지였다.
그리고 자기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피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내가 그 상황을 장악하겠다.’
빛을 잃었던 두 눈에 빛이 맴돌았고, 사그라들었던 의지의 불꽃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상처 입고 산에서 내려왔던 호랑이가 다시 산의 정상으로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