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81
청풍표국 최강식객 081화
81화. 소주로 향하는 사람들(2)
신강(新疆) 천산산맥(天山山脈).
중원에서 서쪽으로 수천리 떨어진 곳에 있는 혹한의 대지.
엄청난 산맥을 만년설이 뒤덮어 그야말로 황홀할 정도의 장관이 펼쳐졌으나 사람이 살기에는 무척이나 척박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곳이기에 중원에서 가장 귀한 재료인 만년한철이 생성되는 천혜의 자연환경인 것이다.
휘익― 타닥!
그런데 그 척박한 산등성이를 누군가가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었다.
여인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한 중년의 남자였다.
수려한 외모에 검은 비단을 입은 그의 모습은 언뜻 보기엔 학사로 보일 정도로 청수했다.
하지만 그가 지나간 눈 위에는 발자국이 찍히지 않았으니, 강호의 무인들이 말하는 답설무흔의 경지였다.
겉은 문사 차림이었으나, 최소 초절정 이상에 해당하는 무인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한참을 올라가 도착한 곳에는 작은 공터를 품고 있는 동굴 앞이었다.
“궁주님. 현입니다.”
동굴 앞은 짙은 안개로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냥 평범한 안개라고 생각하여 아무 생각없이 들어갔다가는 한 줌 혈수가 되어 녹아내릴 것이다.
그곳에는 수라궁의 독문진법인 수라대혈진. 시전자가 풀어주지 않으면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진법이 쳐져 있었던 것이다.
쿠구구궁!
거대한 암벽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와 함께 천천히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대성을 할 때까지 찾아오지 말라 했거늘.]웅― 웅― 웅―
그의 말이 온 산천을 울리는 듯 퍼져나갔다.
실로 가공할 공력이 아닐 수 없었다.
“크읍.”
수라궁의 현 총군사인 사마현(司馬現)의 입에 핏물이 흘렀다.
내상을 입은 것이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중원에 혈강마검이 출현했다고 합니다.”
“뭣이! 그 빌어먹을 마검이!”
어느새 사마현의 코앞에 나타난 중년인.
그가 육십에 이른 수라궁주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냥 사십대 정도의 평범한 사내로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바로 현 수라궁의 궁주인 구양겸(歐陽鎌)이었다.
“자세히 말해보라.”
구양겸의 닦달에 사마현이 천천히 그간의 사정을 읊었다.
팔짱을 끼고 그의 설명을 듣던 구양겸의 눈에 귀화가 피어올랐다.
“그 미친 혈궁 놈들이 혈강마검을 취하는 날엔 다시 전쟁이 터질 거다. 그랬다간 이번엔 정말 우린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야.”
수라궁에 대대로 내려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이미 스스로를 천하제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이립의 나이에 화경을 돌파한 천재 중의 천재.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천하제일인이라는 별호 정도는 취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가 중원을 도모하지 않고, 이 척박한 곳에서 수련이나 하고 있던 것은 바로 변황대전 당시에 있었던 은거기인들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최소 현경의 고수 세 명 이상이 아니면 절대 중원을 도모하지 말라던 내용이다.
그만큼 중원에는 기인이사들이 모래알처럼 많았고, 특히 명리를 탐하지 않고 심신유곡에 숨어 있는 은거기인들을 얕보지 말라는 서책의 내용.
그들은 평상시에는 자신들의 선도 수련을 위해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중원에 위기가 닥치면 자리를 털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현경의 경지에 올라 흑도를 통합한 다음, 자신과 같은 현경의 고수를 길러 중원을 도모하기 위해 와신상담 중이었거늘.
“일단 그놈들이 마검을 취하는 건 막아야 된다. 내려가자.”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눈 덮인 산 길를 내달렸다.
* * *
소주의 어느 객잔에서 콧수염을 한 사내가 앞에 앉은 다른 이들에게 썰을 풀고 있었다.
“자네 그 말 들었나?”
“무슨 말?”
여느 객잔의 풍경과 비슷했지만, 그 내용은 깜짝 놀랄만한 것이었다.
“과거 변황대전에서 혈마가 사용했던 혈강마검이 호남성 영주(永州)에 잠들어 있다고 하는구먼!”
그의 말에 앞에 있던 외꾸눈의 사내가 헛웃음을 지었다.
“예끼 이 사람아. 호남성 영주면 그야말로 척박한 땅으로 소문난 곳인데다가, 주로 큰 죄를 지은 죄인들이 유배를 가는 곳인데 거기에 무슨 혈강마검이 잠들어 있단 말인가! 나 원 참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지.”
“그야 나도 알지. 그런데 거기에 천안신투의 비고가 어딘가에 묻혀 있고, 그 안에 혈강마검이 잠들어 있다는 구체적인 소문이 떠돌던데?”
천안신투라는 말이 나오자 그제야 사내가 반응을 보였다.
“처, 천안신투라면 100년 전 변황대전이 끝나자마자 갑작스레 사라졌던 희대의 도둑 아닌가?”
사내가 뭔가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굉장히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듯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렇지. 그때 변황대전에서 사라진 보검이나 무기들을 천안신투가 챙겼다는 소문이 있거든.”
앞의 사내가 술을 입에 털어 넣고는 거칠게 입가를 닦았다.
“쳇. 남들은 목숨을 걸고 강호를 지켰는데 그놈은 자기 뱃속만 채웠군.”
“그래서 이후에 신분을 감추고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호의호식하면 살았다는 소문이 있네.”
“도대체 그런 정보는 어디서 나오는 건가?”
외꾸눈 사내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으나 콧수염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건 나도 모르지. 알면 당장 찾아갔겠지. 아무튼 그 소문이 퍼지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주 주위에 하릴없는 무사들이 조금씩 몰리고 있다지 않은가.”
“허어. 거참. 믿자니 바보같고, 안믿자니 혹시나 진짜로 밝혀졌을 때 배가 아플 것 같군.”
“그러니 다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아직까지는 뜬소문이라 그리 많지는 않은 모양이야. 게다가 지금은 신성대연 기간이기도 하고. 아무튼 그 혈강마검은 못가지더라도, 천안신투의 비고니 얼마나 많은 보물들과 신병이기들이 있겠냐는 거지.”
그때 갑자기 말을 듣고 있던 사내가 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 보물들 중에서 한 보따리 정도만 자신의 것이 되어도 외꾸눈이 전혀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살 수 있을 것이다.
“크흠흠. 다 먹었으면 일어나세. 먹은 건 내가 내지. 아니 술 한병 더 시켜줄테니 더 먹고 가게나.”
“아, 아니 잠깐만 이 사람아, 어? 어어?”
맞은 편의 사내가 급히 객잔문을 나섰고, 황당해하던 사내의 얼굴이 점점 의미심장한 눈으로 변해갔다.
그는 몇 달 전 한 이상한 사람으로부터 부탁을 하나 받는다.
금방 언급한 내용으로 주위에 퍼뜨려주면 매달 금 한 냥을 준다는 것이다.
입만 좀 털면 매달 금 한 냥이 생기니 어찌 아니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일하는 곳의 월봉보다 훨씬 많은 돈이었기에 그는 당장 일을 때려치우고 하릴없이 주점이나 반점을 기웃거리며 소문을 퍼나르고 있었다.
“흠흠~ 이번엔 어느 놈한테 썰을 풀어볼까~”
점소이에게 철전 몇 개를 던져준 사내는 가벼운 걸음으로 객잔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일이 소주와 같은 강호의 큰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모두들 안면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들은 거라 아무 의심도 없었다.
그러나 그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소주 하오문의 하급문도들이었다.
그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 점소이로 보이는 사내와 포목점 주인, 행상처럼 생긴 이들이 한데 모였다.
“저 놈인가?”
행상의 물음에 포목점 주인이 눈을 빛냈다.
“예. 꽤 오래 전부터 이 일대를 배회하며 비슷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죠. 워낙 뜨문뜨문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조장님 말 듣고 다시 보니 좀 이상하긴 합디다.”
행상은 이번에 새로 바뀐 하오문의 조장이었으나, 실제로는 묵천의 천도였다.
호상희로부터 얻은 정보를 통해 묵천의 천도들은 소주의 하오문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그렇게 하오문을 장악한 천도들은 지금까지는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이번엔 제대로 털어보라는 지령이 상부로부터 내려왔기에 하급 하오문도들의 보고를 종합해 소주 인근에서 이렇게 소문을 퍼뜨리는 이들을 추적하고 있었다.
사내의 뒤를 은밀히 따르는 행상을 보며 옆에 있던 포목점 주인이 말했다.
“이번에 저 사람처럼 우리 하오문의 수뇌부들이 대폭 물갈이가 되었다며?”
점소이가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우리 같은 하급문도들이야 윗놈들이 바뀌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우리야 원래 하던 일 하면서 들은 정보를 물어다 주기만 하면 되지.”
“그건 그렇지.”
“이름이 묵천이라며?”
“나도 들었어.”
“하오문보다는 왠지 있어 보이는데?”
“크흐흐. 우리랑은 별 상관없지 않나. 뭐 정보료가 오르는 것도 아니고.”
“쩝.”
그렇게 두 사람은 주위를 슬쩍 둘러보고는 다시 자기들의 구역으로 어슬렁어슬렁 향했다.
현재 소주 하오문의 분위기는 대강 이러했다.
어차피 그들은 강호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
위에 관리자가 누가 되든 딱히 자신들에게 피해만 오지 않으면 상관없다는 주의였다.
이는 구용식과 나윤천의 활약이 컸다.
호상희로보터 얻은 정보에 나윤천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정보들, 그리고 구용식이 따로 추린 내용을 토대로 신속하게 하오문을 장악해 문도들의 동요를 잠재운 까닭이다.
* * *
그렇게 묵천이 소주 전체를 장악해나가고 있던 어느 날 일검이 찾아왔다.
“이번에 우리 묵풍조가 있었던 항주의 근거지를 정리하면서 따로 키우던 무인들을 모두 데려왔습니다.”
“따로 키운 무인들이 있었다는 말입니까?”
생각지도 않은 말에 임요성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예. 저희들은 이런 날이 올 때를 대비해서 따로 무인들을 양성하고 있었고 이번에 그들을 모두 데려왔습니다.”
묵풍조의 장로들은 혹여 이런 날이 올 때를 대비해서 묵천의 동량이 될 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제자라고 할 수는 없었고, 일종의 훈련교관이 되어 천도들을 육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묵천군이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들을 그대로 묵천에 흡수시키거나 따로 살 길을 마련해 내보낼 생각도 하고 있었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임요성이 나타나주었고, 이들은 자신들이 키우던 이들을 모두 아무런 아쉬움 없이 임요성을 위해 바치기로 한 것이다.
“칠검을 제외한 저희 아홉 장로들이 양성한 무인들의 수가 대략 이백 정도 되더군요. 이들은 모두 주군을 위해 안배한 이들이니 주군께서 알아서 써 주십시오.”
“허어….”
임요성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묵천군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이들은 오랜 세월 후일을 도모하고 있었던 것이었고, 그 결실을 자신이 받고 있는 것이다.
문득 이런 혜택을 자신이 누려도 될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임요성의 마음을 눈치챘을까, 일검이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이 모든 건 묵천을 위해서입니다. 저희들 뿐만 아니라, 묵천의 모든 천도들을 깊이 헤아려 잘 써주시기만 한다면 우리들은 오히려 더 감사할 것입니다.”
일검의 배려가 깃든 말에 임요성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실로 사부님께서 무공뿐만 아니라 모든 걸 안배해두신 셈이군요.”
묵천군이 자신에게 가르쳐준 무공, 그리고 강호에서 이렇게 자신의 힘이 되어줄 묵천이라는 조직, 스승은 어찌보면 그의 인생 최대의 기연인 셈이었다.
“아닙니다. 저희들로서는 오히려 묵천군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준비해온 모든 게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이렇게 훌륭하신 새 주군을 내려보내 주셨으니까요.”
“일검 장로….”
눈시울이 젖어가는 일검을 보자 임요성 눈빛 또한 무겁게 가라앉았다.
“부디 못다 이룬 묵천군의 꿈을 이뤄주시길.”
깊게 고개를 숙인 일검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는 동안 임요성의 눈은 오래도록 그의 뒷모습에서 떨어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