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27
125. 재결투 (2)
───!
형태를 맺지 못한 괴성이 일대를 울리며 소리가 명멸하기를 반복한다.
나는 괴성을 타고 흐르는 살의에 소름을 느끼며 그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설마 했는데 목소리에도 마력을 담을 수 있었나…….’
이제 아예 대놓고 살의가 번들거리는 눈빛을 뿜어내며 내게 달려오는 남궁혁을 볼 수 있었다.
흡사 전차와도 같은 기세를 내뿜는 남궁혁은 반드시 나를 따라잡겠다는 듯 거침없이 돌진해 오고 있었다.
그게 어느 정도로 강하냐면 호수 외곽의 숲 자체에 손상을 줄 정도로 강력한 힘을 흩뿌리는 수준이었다.
콰콰콰콰콰쾅─!
걸음마다 나무들이 그대로 쫙쫙 부서지고 땅의 겉면까지 부드럽게 뒤집히고 있는 상황.
진짜 미친 광경이 따로 없었다.
‘미친놈.’
나는 재빠르게 괴성을 내지르는 남궁혁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방금의 도발이 이렇게까지 잘 먹힐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바였다.
흡사 사자처럼 울부짖는 남궁혁은 미친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완전히 충혈된 눈에 이제 이성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분노로 물든 동공까지…….
‘생각보다 더 과한 것 같긴 한데……. 이제 이쯤이면 되겠지.’
당초의 계획처럼 남궁혁을 크게 흥분시킨 것도 성공했으니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였다.
「권능 ‘철혈의 검’이 비활성화됩니다.」
「스킬 ‘반격의 방패’가 활성화됩니다.」
왼손에 쥔 철혈의 검이 사라지고 붉은색의 투박한 몽둥이 같은 검이 생긴 순간.
콰아앙!
아래에서 참격이 날아왔고 나는 바로 그것을 반격의 방패를 휘둘러서 막아 냈다.
팔이 저릿저릿한 걸 보니 꽤 힘을 담아서 내보낸 참격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더 도발할 필요성은 없겠네.’
이제 확실히 남궁혁이 힘의 소모도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게 확실해졌다.
참격의 난사를 통해서 나를 하늘에서 추락시킬 심산인 듯한데 생각이 짧았다.
원래 참격은 마력의 소모가 크기도 하고 같은 수준의 적에겐 큰 피해를 입힐 수 없다.
견제 기술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성을 잃었다고 한들 남궁혁도 그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테지만.
아마도 이렇게 힘의 소모도를 고려하지 않고 나를 견제하는 건 비행하는 나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일 터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행동하지는 못하지.’
어쩌면 지구력에 자신이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남궁혁은 어릴 적부터 자기 자신을 단련해 온 다른 차원의 무인이었고.
그러니 체력이든 마력이든 단련에 따른 강함을 품고 있으리라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지 남궁혁은 현재 그릇된 판단을 내린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왜냐하면…….
「스킬 ‘반격의 방패’가 받는 피해를 누적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에도 ‘반격의 방패’에는 서서히 피해량이 누적되고 있으니까.
나는 서서히 반격의 방패에 쌓이는 충격량을 느끼며 짙은 웃음을 지었다.
‘이대로 나를 견제해서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 내리겠다고?’
남궁혁은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를 지치게 할 수 있다면 상공에서 더 머물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는.
정말로 이게 내가 진심으로 날고 있는지 아닌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주제에.
놈은 도쿄에서처럼 내가 다른 이들이랑 힘을 합치지 않으면 자신을 당해 낼 수 없다고 생각하듯 용맹하게 돌진해 왔다.
‘정말로 하나도 성장하지 않았구나.’
그날, 도쿄에서 내가 남궁혁을 죽이지 못하고 살려서 보낸 이후.
나는 잠깐도 멈추지 않고 탑을 오르며 나 자신의 성장을 도모했다.
고작 몇 층을 오르지 않았음에도 그 탓인지 나는 무인으로서도 도전자로서도 크게 성장했다.
그런데 남궁혁은 아직도 탑을 오르지 않은 채 나를 여전히 먹잇감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럼 나야 다행이지.’
이제는 알려 줘야 할 것이다.
‘덕분에 편하게 성장할 수 있겠어.’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는 진작에 역전되었음을.
그리고 남궁혁은 그저 내 성장의 발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
남궁혁 또한 한 명의 무인(武人)이다.
본격적으로 무공을 배웠고 전투 경험도 내게 뒤처지지 않는 동격의 상대이고.
방금 내 도발이 잘 먹혔다고는 해도 어설프게 행동해서는 그의 방심을 불러올 수 없었다.
그러니 나도 수세에 몰리는 것처럼 서서히 가진 패를 그에게 보여 줄 필요성이 있었다.
‘백검접공(白劍摺空).’
바로 이렇게 말이다.
쿠구구구……!
혈천마검에 강력한 의념과 마력이 부여되며 칼날 부근의 공간이 뒤틀린다.
하얀 검이 공간을 접는다는 초식의 명칭처럼 백검접공은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기술이다.
설명하자면 칼과 칼을 맞대서 흘리는 검술의 이치를 좀 더 폭력적으로 바꾸었다고 해야 하나?
상대방이 내뻗은 검을 미끄러뜨리는 게 검술의 흘리기라고 한다면…….
이 초식은 그냥 공간 자체를 접어서 공격을 비껴 가게 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콰아앙!
어느새 공간이 뒤틀리며 빗나간 남궁혁의 참격이 애꿎은 지점에 도달해 터졌다.
반격의 방패로 피해량을 누적하는 것도 중요하다지만 이런 조절 또한 필수였다.
남궁혁에게 내가 밀리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것도 그렇지만…….
‘반격의 방패가 예상보다 더 빠르게 완성되는 것도 좋지는 않지.’
어느 정도는 시간을 끌어서 남궁혁의 힘을 빼 둘 필요가 있었다.
‘완전히 놈이 무방비한 타이밍에 광검을 완성해야 해.’
놈에게 광검을 막을 여력이 충분하면 그건 그것대로 또 곤란할 테니.
“이 개 같은 놈이! 또 어디에서 무공을 훔쳐 온 것이냐!”
백검접공을 본 남궁혁이 노발대발하며 내게 말을 쏟아냈지만…….
나는 제대로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좀 더 빠르게 비행 속도를 올렸다.
이제 대꾸할 여력도 없다는 듯 어딘지 모르게 다급함이 담긴 느낌으로.
본래라면 남궁혁도 생각이란 것이 있으니 걸려들지 않을 연기였다.
그러나.
“어디까지고 그 날갯짓이 이어질 수 있을 거 같으냐! 그 천한 날개를 부러뜨려 주마!”
현재 남궁혁은 눈이 돌아가서 아예 나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듯 쫓아오고 있었고.
내 모든 행동이 철저히 짜여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리석게도.’
물론 그 생각을 외부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기껏 남궁혁에게서 획득한 전투의 주도권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는 탓.
그 대신에 나는 적당히 남궁혁의 힘을 빼놓기 위해서 호수 근방에서 가지고 온 선혈을 통해서 요격을 가했다.
물론 선혈로 이루어진 화살들은 남궁혁을 꿰뚫지 못한 채 그대로 으스러졌으나 그것만으로도 제 역할은 톡톡히 한 셈.
‘어차피 내 목적은 유효타가 아니야.’
단순히 남궁혁의 내공을 조금이라도 소모하게 만든다면 충분했다.
실제로 분노 탓에 남궁혁의 대응에는 힘이 과하게 실려져 있었다.
검염의 출력 자체도 상황에 맞지 않게 상당히 높아진 상태였고.
다만, 남궁혁도 아예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닌지라 나름대로 강하게 나를 밀어붙였다.
“창천관뢰(蒼天貫雷)!”
스킬도 아닌 주제에 초식의 명칭까지 외치며 여태껏 보지 못한 기술을 펼친 것이다.
콰르릉!
흡사 먹구름 속을 누비는 번개처럼 남궁혁의 검에 푸른 기운이 맺히고.
이어서 잠깐의 틈도 없이 나를 꿰뚫겠다는 듯이 재빠르게 쏘아졌다.
쐐애액!
단순 속도로 따지자면 내가 본 찌르기 중에서는 상당히 빠른 축에 속했다.
하지만 무공을 배우며 의념을 감지하는 능력 또한 상승된지라 나는 저것이 그냥 평범한 찌르기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저것은…….
‘막을 수 없어.’
절대로 반격의 방패에 닿게 해서는 안 되는 일격이었다.
방어 관통.
저것은 반격의 방패를 단숨에 파괴될 지경까지 몰 수 있는 이치를 품고 있었다.
물론 아예 막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도 비슷한 수준의 방어를 펼치면 막을 수야 있을 테니까.
그게 스킬이든 무공이든 막으려 한다면 막을 방법이야 여럿 존재했다.
이 기술 자체의 수준이 높다고 한들 나도 그에 뒤처지지 않는 실력이 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막자니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럼 결국에는 남는 수는 또 하나밖에 없다.
‘흘려 버리자.’
쿠구구구!
다시 백검접공이 펼쳐지며 칼날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접혔고.
쏜살처럼 날아든 섬격은 공간의 일렁임에 가로막힌 채 느려지더니 바로 경로가 뒤틀렸다.
그리고…….
콰아아앙!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남궁혁의 기술은 애꿎은 자리에 부딪혀 소멸했다.
“대체 그 무공은 뭐길래 공간을……!?”
그걸 본 남궁혁이 당황한 듯 소리쳤으나 그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왜냐하면…….
‘창천관뢰라고 했었나. 마력 소모 효율이 좋은 기술은 아니네.’
파츠츳!
어느새 오른손에 쥐어진 혈천마검에도 창천관뢰의 초식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번개가 맺히는 느낌만 들었던 남궁혁의 것과는 다르게 진짜로 붉은 번개가 맺히게 된 개량품이었지만…….
“어찌……! 어찌 이런 것이……! 창천관뢰를 개량했다고……?”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남궁혁에게는 그게 더 충격적인 모양새였다.
「스킬 ‘질풍검’이 활성화됩니다.」
「스킬 ‘질풍검(C+)’에 의하여 칼날에 바람 속성이 부여됩니다.」
나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혈천마검을 가볍게 찌르며 창천관뢰를 내쏘았다.
‘오.’
마력 소모 효율은 상당히 구리다는 느낌이었는데 속도 자체는 발군이다.
심지어 찌르기의 판정으로 질풍검의 효과까지 섞이니 남궁혁의 기술보다 더 뛰어난 듯했다.
‘이건 좀 쓸 만할지도 모르겠네.’
물론 백학검선이 가르쳐준 기술에도 비슷한 게 있어서 자주 쓸 거 같지는 않다만…….
그렇더라 해도 나름대로 이 기술에는 이 기술만의 장점도 있어서 나쁘지는 않았다.
쩌어엉!
“감히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이딴 짓을 하다니!”
다만, 개량된 창천관뢰는 남궁혁에게 큰 피해를 주지 못하고 바로 쩍 갈라지며 소멸했다.
물론 남궁혁의 내공을 소모하게 만들겠다는 목적은 달성했으니 별로 아쉬움은 없었다.
“인정할 수 없다! 네놈 같은 가짜보다 남궁의 검이 더 강하다!”
바로 눈앞에서 기술을 빼앗긴 게 퍽 충격적이었던 것일까?
남궁혁은 이제 정신줄을 아예 놓고 내게 온갖 기술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그 탓에 좀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긴 했으나 나로서는 이 상황이 달가웠다.
‘이것들도 다 기억해 두고 나중에 써먹어야지.’
이건 그냥 공짜로 과외받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아낌없이 기술도 참 많이 나눠 주네.’
남궁혁은 알고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남궁혁이 칭송한 남궁세가의 검법을…….
이제 내가 완전히 배운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
콰아앙!
「충전 완료.」
「스킬 ‘반격의 방패’가 누적된 피해량을 반사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어느새 남궁혁의 참격을 받아 내다 보니 반격의 방패에 피해량이 충분히 누적되었다.
‘이제 더 시간을 끌 필요는 없지.’
나는 바로 비행 속도를 올려서 남궁혁에게서 빠르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남궁혁의 입장에서 관찰하자면 최후의 도주 같은 느낌이겠지만…….
진짜 의미는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는 것이다.
광검을 쓸 수 있는 상태도 되었으니 남궁혁이 방어하지 못하도록 할 심산이었다.
‘인벤토리.’
나는 바로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인벤토리에서 잿빛의 왕관을 꺼냈다.
「고대 황제의 잿빛 왕관」
「등급 : A-」
「카리스마 +30%」
「어둠의 신을 섬기던 고대 황제가 제사용으로 사용했던 잿빛 왕관.」
「착용할 시 정신이 불안정해지며 해당 아이템의 내구도가 1분마다 하락한다.」
「그 대신에 왕관에 내장된 을 자유자재로 활성화할 수 있다.」
「아이템이 파괴되지 않는 한 착용이 해제된 상태에서는 내구도가 서서히 차오른다.」
12층 시련에서 돌파 보상으로 습득하고 여태까지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아이템.
별로 쓰고 싶은 생각도 없었으나 이번만큼은 경우가 아예 달랐다.
‘쓸 수 있는 건 다 써야 해.’
나는 바로 머리에 왕관을 썼고 이내 몸에 잿빛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고대 황제의 잿빛 왕관(A-)을 착용하여 정신이 서서히 오염되기 시작합니다.」
사령 마법에 관한 사용법이 머릿속을 번개처럼 지나가며 각인되었다.
흡사 몸을 움직이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일 수 있는 이치라 해야 하나?
어떤 방식으로 을 쓸 수 있고 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한순간에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대가인 아이템 페널티로 정신이 오염된다는 문구가 떠올랐지만…….
「권능 ‘명경지수’가 강하게 활성화됩니다.」
「고대 황제의 잿빛 왕관(A-)의 정신 오염이 해제됩니다.」
사실상 명경지수의 권능 덕에 나는 정신 간섭 계열에는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이어서 내가 의 발동을 위해서 지상에 내려간 순간이었다.
“쥐새끼처럼 도망칠 여력도 이제 남지 않은 모양이구나.”
어느새 다가온 남궁혁이 이글거리는 눈빛을 번뜩이며 그렇게 말했고.
“생각도 참 한결같네.”
그에 나는 차갑게 미소를 지으며 남궁혁에게 이죽거리듯 대답했다.
“머리라는 걸 좀 쓸 수 있다면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정말로 한심하다는 식으로.
“궁지에 몰린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
나는 몸에 흐르는 잿빛 기운을 크게 활성화했다.
“남궁혁.”
그리고…….
「고대 황제의 잿빛 왕관(A-) 전용 효과 이 활성화됩니다.」
끼에에에엑─!
어인의 사체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의 인도를 따라서 부활한다.
그 광경을 본 남궁혁이 흠칫하더니 이내 소리쳤다.
“또 사술을 쓰는 것이냐! 이따위의 사술로는 나를……!”
“이길 수 없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유감인데.”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당신은 이제 이런 사술에 대항할 수 있는 마력도 남지 않았잖아.”
방금의 추격전으로 남궁혁은 이제 내게 대항할 내공이 얼마 남지 않았다.
“…….”
남궁혁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입을 꾹 다물었고.
나는 한심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짓눌러라.
을 통해서 발현된 간단하기 짝이 없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끼에에에에엑─!
마치 종말에나 어울릴 법한 망자의 군단이…….
짐승처럼 뭉치며 남궁혁을 몰아세우는 것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