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26
124. 재결투 (1)
어인(魚人).
지구에서는 대략 C급 정도의 게이트에서 나오는 수중 던전의 대표 괴수 중 하나였다.
생선 같은 머리통을 단 전신에 뾰족한 비늘이 달린 아인(亞人)의 일종이라 해야 하나?
해당 괴수는 물이 있는 곳에서는 B급까지 그 위험 등급이 상승될 정도로 강력했고.
하물며 물 안에서 싸운다면 A급 헌터라 해도 좀 애를 먹는 수준의 꽤 강한 괴수였다.
본래의 14층 시련은 그러한 어인을 남기지 않고 다 학살해야 하는 꽤 번거로운 시련이라 할 수 있었겠지만…….
‘전부 다 죽었어.’
나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붉게 물든 호수를 바라보며 어인이 다 죽었음을 깨달았다.
심지어 수중전이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단 시련이라 A급 괴수라 해도 좋을 수준이었을 터인데.
남궁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물 한 방울도 안 묻은 채로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흡사 이 정도야 당연하다는 듯이.
“…….”
그에 나는 잠깐 가만히 서서 남궁혁을 바라보다 이내 결론을 내렸다.
「스킬 ‘순간 가속’이 활성화됩니다.」
「스킬 ‘전투 집중’이 활성화됩니다.」
「스킬 ‘바람의 은총’이 활성화됩니다.」
「모든 속도가 70% 상승합니다.」
「현재 스킬 중첩 진행도 – 7/7」
이 괴물을 상대로 여유를 부릴 틈은 조금도 없다고.
「신속의 장화(C+) 전용 효과로 순간 속력이 상승합니다.」
나는 몸에 감도는 신속함을 이용해서 호수의 외곽을 돌며 한 스킬을 활성화했다.
「스킬 ‘선혈의 구도자’가 활성화됩니다.」
이전 층에서 굉장히 유용하게 쓴 선혈의 구도자였다.
본래는 피가 없으면 쓸 수 없는 기술이며 내 피라도 사용해야 할 판국이었겠지만…….
대량의 어인이 참격에 의해서 비린내 나는 피를 한가득 쏟아낸 탓에 내 피를 쓸 필요는 없었다.
‘널린 게 어인의 피니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촤아아아……!
선혈의 구도자에 의해서 호수를 물들인 선혈이 손짓을 따라서 쏜살처럼 흘렀고.
이어서 마치 하나의 새장처럼 펼쳐진 피의 갈퀴들이 남궁혁이 있는 지점으로 쇄도하며 호수 중앙을 집어삼켰다.
콰아아앙!
흡혈 백작이 사용한 피의 해일처럼 엄청나게 큰 기술은 아니어도 그에 준하는 기술이었고.
잠깐이나마 남궁혁의 발목을 붙잡고 내가 전투의 흐름을 손에 쥘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오랜만에 봤는데도 네놈은 여전히 무례하구나.”
그런 예상을 철저히 무시하듯 태평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며 피의 새장이 터져 나갔다.
퍼어엉!
귀에 대고 폭죽을 터뜨린 것 같은 굉음에 놀라는 것도 잠시.
솟구치는 피 섞인 물결 사이로 검을 쥔 채 불길한 웃음을 짓는 남궁혁을 볼 수 있었다.
더불어서 그의 손에 들린 검에서 흘러나오는 푸른색의 검염(劍炎)도.
‘젠장……!’
나는 재빠르게 쓰지 않고 있던 능력을 모조리 활성화했다.
「권능 ‘혈천심공’이 활성화됩니다.」
「권능 ‘철혈의 검’이 활성화됩니다.」
「권능 ‘검염지경劍炎之境’이 활성화됩니다.」
곧장 전신에서 붉은 증기가 뿜어지며 시야가 붉게 물들고 양손에 쥔 검에 검염이 씌워졌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스킬 ‘섬전검기閃電劍氣’가 활성화됩니다.」
파지짓……!
그렇지 않아도 혈천심공의 권능으로 뇌전 속성이 부여된 칼날에 섬전검기까지 더해졌고.
「스킬 ‘삼절三絶’이 활성화됩니다.」
「세 번의 공격이 스킬 효과로 강화됩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쓰지 않은 삼절 스킬까지 활성화되며 칼날에 씌워진 붉은 기운이 한 층 더 난폭하게 일렁였다.
그리고…….
「진(眞) 혈천마검의 를 활성화합니다.」
화룡정점으로 내 주위를 맴돌던 선혈이 칼날을 강화하듯 감싸며 요사스럽게 빛났다.
‘이게 내 최선이야.’
이론상 스킬과 권능의 역량 선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고 해도 좋을 수준.
실제로 내 검을 본 남궁혁의 반응 또한 심상치 않았다.
“검염(劍炎)이라고……? 어떻게 네놈이 검염을 다루는 것이냐……!”
물론 무림인답게 스킬 및 권능의 조화보다는 검염을 쓴다는 점에서 더 놀란 것 같지만…….
‘그럼 더 놀라게 해 줄 수 있지.’
검염 같은 것은 진작에 11층 시련에서 깨닫고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든 지 오래였다.
‘진짜로 놀랄 건 이제부터지.’
여태까지 남궁혁이 나를 거짓되었다고 하며 멸시했던 이유는 무공을 배우지 못해서였다.
제대로 된 기술도 없이 스킬 및 권능에 의존하니 무림인의 관점에서는 내가 허접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남궁혁은 나를 허접하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스킬 ‘혼원마검混元魔劍’이 활성화됩니다.」
「스킬 ‘혼원마검混元魔劍’의 전용 효과 ‘쌍연격(雙連擊)’이 활성화됩니다.」
그렇게 찬양한 무공을 이제부터 내가 쓸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도쿄에서 선보인 남궁혁의 무공을 내가 따라 하는 형태로.
‘창천윤검.’
바로 두 손에 쥔 쌍검이 난폭하게 회전하며 울음을 토해 냈다.
쩌어어어엉─!
그것도 일대를 마비시키는 강력하기 짝이 없는 울음을.
***
결과부터 말하자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힘을 짜낸 찌르기는 실패했다.
그럴 만도 했다.
본래는 반격의 방패로 형성해야 했을 광검(光劍)이 격하된 채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스킬을 통해서 출력 자체를 끌어올렸다고 한들 한 방의 부족함은 어쩔 수 없었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세 번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지.’
그리고 남궁혁도 순수히 한 방 공격이 강하다고 해서 손쉽게 승리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고.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적어도 정신적인 충격 정도는 줬다는 거겠지.’
물의 표면을 밟고 서 있는 남궁혁의 얼굴은 상당히 일그러져 있었다.
“감히……! 감히……! 여태까지 본 공자를 잘도 우롱했구나! 놈!”
흡사 나한테 속았다는 것 같은 말투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무공을 쓸 수 있는 주제에 나를 그 거짓된 검기로 상대했었다는 것이냐!”
놈이 어쩐지 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아, 내가 무공을 이제 막 배웠다는 걸 추측하지 못했구나…….’
현재 남궁혁은 내가 무공을 쓸 수 있는데 안 쓰고 봐줬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아니, 신주쿠에서 그렇게 죽자 살자 싸웠는데 이렇게 오해할 수 있나……?’
살짝 어이없는 오해였지만 그에 대해서 해명할 생각도 없었을뿐더러 그럴 시간도 없었다.
바로 남궁혁이 일그러진 얼굴을 얼음장처럼 굳히며 차가운 살의가 흐르는 눈빛을 빛냈기 때문이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남궁세가의 검을 훔치다니…….”
이전처럼 크게 화를 내지도 않았고 목소리가 크지도 않았지만…….
“그 죄는 가볍지 않다. 그 추잡한 손가락을 하나하나 잘라서 죗값을 물도록 하겠다.”
적어도 남궁혁이 이례적일 정도로 분노했음은 이해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생각은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놈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대로 싸워 주는 건 손해일 뿐이야.’
남궁혁의 고유 특성이라 할 수 있는 ‘강제 결투’는 일대일 결투를 강제한다.
10분 동안 형성된 결투 영역에서 절대로 나가지 못하며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만약에 놈이 이판사판 들이대면 그대로 피하지도 못한 채 다 맞아줘야 한다는 뜻.
‘결투 영역 내에서 싸우면 내가 불리해.’
이대로 당장 싸울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전투 자체의 주도권을 내게 가져와야 했다.
남궁혁의 강제 결투에 빠진다고 해도 지지 않을 환경을 마련하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그러니…….
“죄라니?”
본래의 스타일과는 좀 다르게 나갈 필요성이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할 만큼 흥분시켜야 해.’
남궁혁의 이성 자체를 아예 마비시킬 수 있어야 했고.
“허접한 검법 좀 가져갔을 뿐인데 과민 반응하는 거 아닌가?”
그의 말을 들으며 취합한 정보를 토대로 나는 그에게 씩 웃으며 이죽거렸다.
“세 살 먹은 애도 베낄 수 있을 거 같은 검법에 무슨 가치가 있다고.”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남궁혁의 얼굴이 냉정함을 바로 잃고 다시 악귀처럼 일그러진다.
“이 개 같은 새끼가─!”
콰아아아앙─!
이제는 아예 품위까지 잃은 채 물을 박차며 내게 달려드는 남궁혁을 보며 웃었다.
‘이게 바로 되네.’
도발 성공이었다.
「권능 ‘강철의 날개’가 활성화됩니다.」
나는 바로 강철의 날개를 펼쳐서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14층 스테이지는 호수를 중심으로 펼쳐진 숲이니 내게 유리한 전장이었다.
심지어 하늘도 자유롭게 날 수 있으니 도주 또한 쉬운 건 덤이었고.
나는 재빨리 남궁혁이 따라붙지 못할 만큼만 적당히 거리를 벌리며 머리를 굴렸다.
‘시간이 없어. 남궁혁을 처리할 좋은 방법을 떠올려야 해.’
어느새 도망치는 모양새가 되었다고 한들 이대로 시간을 끌어 봐야 좋을 게 없는 건 나였다.
강화 물약의 지속 시간이 떨어지면 내게 있는 승산이 더 떨어질 테니.
남궁혁이 이성을 잃고 날뛰는 것도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니 더 그러했다.
하지만 깊게 고민할 것도 없이 나는 바로 답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광검(光劍).’
남궁혁의 창천윤검에 반격의 방패라는 스킬을 더하는 콤보 같은 기술.
놈이 가장 무방비할 시점에 그 미친 기술을 날리면 남궁혁도 수세에 몰릴 터다.
그럼 적어도 내가 광검을 쓸 수 있을 때까지는 남궁혁이 이성을 잃고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과연 남궁혁이 그때까지 이렇게 분노하고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답을 낼 수 있었다.
왜냐하면…….
“무공 같은 허접한 기술에 매달리니 공중으로도 따라오지 못하는 거 아닌가?”
놈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란 매우 쉽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개 차원의 폐품 주제에 무공에 대해서 무엇을 그리 잘 안다고 떠드는 것이냐!”
우스웠다.
무공은 그저 또 다른 형태의 스킬일 뿐이다.
스킬과 권능에 뒤지지 않는 가치가 있다고 해도 그 이상의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파일럿의 기량에 따라서 무공의 수준이 달라지듯 스킬과 권능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그저 시스템에 의해서 가동된다는 까닭으로 무공의 밑에 있다고 하다니?
‘머저리 같은 짓이지.’
그렇게 따지면 무공도 심법을 통해서 대자연의 마력을 체내에 쌓지 못하고.
의념과 내공을 통해서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가치가 있긴 할까?
스킬은 스킬이고 권능은 권능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걸 쓰는 나 자신인데 남궁혁은 그걸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미친 사람처럼 무공 자체에 자의까지 담고 있을 지경이었다.
물론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니 내가 이렇게 쉽게 도발할 수 있는 거겠지만.
‘이성을 되찾을 것 같다면 다시 찾을 틈을 주지 않는 게 정석이지.’
나는 바로 생각을 흐리며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달리는 남궁혁을 바라보았다.
이대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성과이긴 한데 어쩐지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였다.
촤아앙!
남궁혁의 검법을 흉내 내며 푸른 검기를 그대로 사출한 것은.
“뭣……!”
물론 남궁혁은 바로 그 참격을 반으로 쩍 갈라서 막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그의 검법을 흉내 내며 동시에 그 검기까지 모방했다는 점에 있었다.
이는 창천검형이라는 남궁혁의 검법 자체를 내가 완전히 베껴서 사용했다는 뜻이다.
이어서 나는 가소롭다는 듯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비릿함을 머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접 같은 검법이라도, 그럭저럭 쓸 만하더라고. 뭐, 재미는 있었어.”
그것도…….
“수준은 낮았지만.”
최대한 재수 없는 말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