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18
제 118화
44장. 전격전 – 2화
상공의 마법사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세상 그 누구보다 여유롭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활시위를 떠난 수많은 화살은 응당 마법사의 어디든 꿰뚫고 지나갔어야 옳았지만.
투툭. 툭. 툭.
그에게 닿기도 전에 모든 화살이 추진력을 상실하고는 생기를 잃은 채, 힘없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그렇게 수백 대의 화살은 단숨에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이어서 몇 번이고 화살을 재차 날려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설마 저놈이…… 자레드?”
소문으로만 들었던 마법사!
자레드 정도의 실력쯤은 되어야 저런 광경이 연출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상한 것은 자레드가 별도로 실드 같은 마법을 펼치지 않았음에도 화살 공격이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가노프! 가노프는 어디에 있느냐?”
게니츠가 수하 마법사인 가노프를 찾았다.
가노프는 4클래스 마법사로 자레드보다는 클래스가 한 단계 낮으나, 얼마 전에 왕국에서 있었던 마법 대련에서 5클래스 마법사를 쓰러뜨린 적이 있는 인재였다.
“후방 순회를 나가 계십니다!”
“제길!”
게니츠 같은 기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공중에 있는 적을 상대하는 일이다.
애석하게도 플라이 마법 등을 사용할 수가 없으므로, 손가락이나 빨아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다면, 별도의 검기를 이용해 공중을 노려볼 수도 있겠으나.
게니츠는 그만한 실력을 가진 기사는 아니었다. 이제 막 얕은 검기를 짧게 부리는 정도였다.
다음 순간.
“제독, 도착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가노프가 도착했다. 그가 왔다는 것은 휘하의 마법사 부대도 함께 왔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곧이어 게니츠가 명령했다.
“저 마법사를 요격하라. 크리비아의 영주, 자레드 공작이다.”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갔군요. 아무리 겁이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혼자…….”
자레드의 당당한 등장을 객기로 폄하하며, 가노프가 플라이 마법으로 날아오르려던 바로 그때.
콰아아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자레드의 손끝을 떠난 마법 구체가 급격히 분열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아……?”
“이런 미친…….”
그 순간, 게니츠와 가노프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가 싶었다.
자레드가 펼친 마법의 시작은 가장 기본적이고 평범한 마법 중 하나인 매직 미사일이었다.
분명 자레드가 처음 시전을 할 때만 해도 구체의 수는 다섯 개에 불과했다.
설령 병사의 급소를 직접 타격한다고 해도, 다섯의 목숨을 거두는 것이 고작일 공격이었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매직 미사일 구체가 엄청난 분화를 거듭한 것이다.
“도대체 저게 몇백…….”
“모두 실드를 펼쳐! 전부 회피! 회피해!”
가노프가 소리쳤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매직 미사일 구체의 수는 단시간에 눈으로 그 수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눈대중으로도 최소 1천 개는 넘어 보였다.
지잉! 지잉! 지잉!
마법사들이 일제히 실드를 펼치며, 게니츠 제독을 포함한 핵심 전력을 보호했다.
하지만 가노프의 외침을 듣지 못했거나, 기껏해야 작은 방패를 올려 드는 것이 고작인 일반 병사들은…….
빠악! 우드드득! 퍼억!
“크어어억!”
“끄아아아! 내 다리가!”
“쿨럭!”
여기저기서 비명을 토하며 쓰러져 갔다.
매직 미사일도 보통 매직 미사일이 아니었다.
방패가 반으로 쪼개져 버렸다.
방패의 단단함을 굳건히 믿었던 병사들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다음은 없었다.
쪼개진 방패를 뚫고 들어온 마법 구체는 병사들의 투구와 머리를 거칠게 후려쳤다.
최소 뇌진탕.
그 정도면 차라리 가벼운 수준에 속했다.
여기저기서 머리뼈가 으스러지며, 피를 토하고 즉사하는 병사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재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나마 방패도 없던 병사들은 혼비백산한 채 도망치다가, 마법 구체에 팔다리와 갈비뼈가 으스러져 죽었다.
숫제 이것은 ‘바람 마법’이 아니라 바람의 탈을 쓴 ‘철퇴’에 가까웠다. 체감하는 위력이 그러했다.
화살 공격의 일방적인 무력화.
그리고 엄청난 위력의 마법 공격에 병사들은 순식간에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모두가 앞을 다투어 도망쳤고, 서로 뒤엉켜 넘어지는 바람에 압사(壓死)하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아아아…….”
게니츠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이것은 일방적인 학살 현장이었다.
세상에 이토록 많은 마법 구체를 단번에 흩뿌릴 수 있는 마법사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전부 눈속임이었다. 복사된 이미지와 같은 허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 두 눈으로 본 것은 현실이었다.
수천 개의 마법 구체는 모두가 가짜가 아닌 실제였고, 순식간에 수백 명의 병사가 산화했다.
부상이나 중상 따위가 아닌 사망이었다. 전사 말이다!
“빌어먹을 자레드 놈! 모두 뭣들 하고 있어? 자레드를 공격한다! 놈은 혼자야! 놈을 잡고, 확실하게 공을 세우는 거다!”
그래도 차세대 기대주로 불리는 가노프다웠다.
그는 휘하의 마법사들을 독려하며, 빠르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바로 그때.
투타타타! 타타타타!
소규모의 마력탄 연사 형태로 공격 모드를 조정한 올라가 마법사들을 견제했다.
그사이, 자레드는 텔레포트를 이용해 가노프에게 붙었다.
“자레드, 죽을 자리를 직접 찾아오는군!”
여기까지는 가노프의 확실한 예측 범위 안이었다.
5클래스의 마법사면, 텔레포트를 전투에 적극적으로 쓰는 일이 많았으니까.
“그래? 나는 너를 묏자리로 데려가려고 온 건데.”
“음?”
하지만 그다음에 벌어지는 상황은 완전 예상 밖이었다.
처억! 위이이잉!
순간적으로 자신의 로브 앞섶을 움켜쥔 자레드가 이어서 펼친 마법은.
“……멀티 텔레포트?”
6클래스의 마법, 멀티 텔레포트였다.
순식간에 주위가 바뀌었다.
방금 전에 자리를 잡고 있던 위치가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의 더 높은 상공으로!
어느새 자신과 자레드의 몸이 이동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개수작에 이 가노프 님이 놀아날 것 같으냐!”
하지만 가노프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맞섰다.
파앗!
우선 블링크를 이용해 자레드와의 거리를 20m 이상 벌렸다.
안전거리를 확보한 후, 즉각적인 대응을 하기 위함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자레드는 바로 자신에게 따라붙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자신의 발끝을 슬쩍 내려다봤을 뿐.
자만인 걸까?
아무래도 좋았다.
가노프는 자레드의 콧대를 이번에 확실히 꺾어 줄 작정이었다.
그래서 주특기인 4클래스의 빙결 마법, 아이스 스톰을 자레드를 향해 시전했다.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2월의 날씨에 걸맞게, 거칠게 몰아붙이는 얼음의 숨결이었다.
하지만.
“이건 또 뭐야…….”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
스아아아.
빠르게 자레드에게 날아가야 할 얼음의 숨결이 거센 역풍을 맞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느려졌다.
8할에 가까운 추진력을 순식간에 잃고 만 것이다.
그것도 시전과 동시에.
그 순간.
조용히 자신을 지켜보던 자레드가 싸늘한 미소와 함께 말문을 열었다.
“항복해. 넌 날 이길 수 없어.”
투웅!
“……!”
가노프는 보았다.
거북이처럼 느려진 속도로 자레드에게 향하던 아이스 스톰 구체가 실드를 두른 그의 손짓에 허망하게 튕겨져 버리는 것을.
“망할.”
태어나서 처음으로 4클래스 마법이 세상에서 가장 하찮게 느껴지는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 * *
[옵션 1 : 반경 20m 밖에서 날아드는 마법의 속도를 20% 수준으로 크게 낮춥니다.]공간 왜곡의 시계는 확실히 일대일 전투에서 큰 위력을 발휘했다.
내가 적 마법사단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가노프를 멀티 텔레포트로 격리시킨 것은 이 때문이었다.
올라는 효율적으로 타넥스를 이용해 회피 기동을 하면서, 마법사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1천의 절대 체력을 가지고 있는 타넥스는 몇 번의 마법 시전으로 대파가 된다거나, 기동 불능 상태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전투의 시작은 아주 완벽했다.
무디두스의 기도 옵션으로 마력을 끌어다 쓰면서, 데큐플 트랜센던스 매직 미사일로 포문을 열었다.
순식간에 수백의 목숨이 사라졌고, 보누스 왕국군은 일격에 전의를 상실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초월 마법의 위력을 맛봤으니, 정신이 혼비백산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가노프처럼 투지를 가진 마법사들이 있어 긴장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그가 나섰다.
‘결국 마법사도 대장전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장들의 일기토든, 마법사의 일대일 전투든 일대일 승부가 매우 중요하다.
대장이 죽는다는 것은 곧 그가 관리하는 모든 체계의 붕괴를 뜻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에는 보이지 않는 스탯의 개념으로 병사들의 사기가 있었다.
일반 병사, 십부장, 백부장, 천부장. 이런 식으로 죽는 군인의 위치마다 사기 하락폭이 다르다.
그중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역시 대장 격인 군인.
그리고 가노프는 바로 마법사들의 대장이었다.
그를 죽이면, 가뜩이나 바닥을 친 병사의 사기는 아예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뒈져 버려라!”
빠지지지직!
거친 말과 함께 가노프의 라이트닝 볼트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3클래스의 전격 계열 마법.
분명 가노프에게는 나름대로 힘을 실은 회심의 일격이겠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나는 아주 얇게 실드를 펼쳤고.
치직. 치직. 치직.
가볍게 라이트닝 볼트를 몸으로 받아 냈다.
일반 병사였다면 온몸을 들썩거리며 고압 전류에 신음하다 쓰러졌을 공격.
하지만 내게는 따끔거리는 수준도 안 되는 간지럼에 불과했다.
“도대체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가노프의 얼굴이 어두워지다 못해, 아예 흙빛으로 변했다.
믿을 수 없어하는 표정이었다.
다들 초월 마법을 보면 그런 반응을 보인다.
빠르게 인정하고 대응할 준비를 하는 게 중요하지만, 대부분이 결론을 ‘현실 부정’으로 낼 때가 많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드래곤의 레어에서 몰래 아티팩트라도 훔친 건가! 그렇다면 반드시 네놈의 것을 빼앗아 주지!”
애석하게도 가노프도 최종 결론을 후자로 선택하고 말았다.
내가 가노프라면, 지금 이 시점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그래야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과감히 도전을 선택했다.
‘보인다.’
그 순간, 나는 가노프가 블링크를 시전하려고 하는 사전 동작을 캐치했다.
모든 마법사는 특정 마법을 사용하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보이는 습관이 있다.
나도 당연히 있다.
화염 마법을 사용하기 전에 집중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캐스팅 과정에서 약지에 힘을 잔뜩 준다.
그래서 비정상적일 정도로 약지가 밀려 올라오게 되는데, 이 습관을 감추기 위해 애초에 캐스팅을 몸 뒤로 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까 가노프가 블링크를 시전할 때, 그는 허공에 가볍게 발길질을 했다. 분명 튀는 움직임이었다.
그것이 습관인 것이다.
‘그렇다면.’
블링크로 내게서 도망칠 생각이 아니라면, 어차피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바로 접근.
‘트랜센던스 윈드 커터.’
마력 5천을 일거에 소모하여 만들어 낸 트랜센던스 윈드 커터의 위력은 엄청났다.
이 정도면 외피가 단단하고 튼튼하기로 소문난 트롤이라도 바로 몸이 반 토막 나고 말 것이다.
마법 중심부의 절삭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후.”
짧게 심호흡을 한 뒤.
나는 가노프의 예상 등장 지점을 향해 윈드 커터를 날려 보낼 준비를 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파아앗.
내가 예측한 대로, 가노프는 정직하게 블링크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이래서…….
예리한 수 싸움을 할 줄 모르는 멍청한 마법사는 죽기 딱 좋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물론 예전에 내가 들었단 얘기는 아니다. 전해 들은 얘기다. 지인을 통해 전해 들은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