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17
제 117화
44장. 전격전 – 1화
나스 대륙력 1416년 1월 31일.
신데르스 왕국의 왕성에 선전포고문이 도착했다.
이는 크리비아 영지의 영주 자레드가 작성한 것으로, 인접 국가에 일괄적으로 보낸 서신이었다.
서신을 받은 이즈엘은 여동생 마이라와 함께 내용을 꼼꼼히 읽어 나가고 있었다.
“역시 자레드의 타깃은 보누스, 말루스 왕국이었군.”
“네, 오라버니. 드디어 자레드 공작님이 칼을 빼 들었네요.”
“난민 이야기는 이미 놈들의 유명한 악행이 되어 버려서……. 아마 대부분이 크리비아 영지의 손을 들어 줄 거다. 우리도 그렇고.”
“그나저나 자레드 공작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 영지민의 숫자에 해당하는 만큼의 난민을 받아들이고도, 성공적으로 모두를 정착시켰으니.”
“사나레 지구가 성지가 되고, 거기에 천문학적인 재원과 병력이 동원되면서 치안 유지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진 효과가 크다.”
“오라버니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침묵?”
“그럴 리가. 적극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혀야지. 이 전쟁은 누가 봐도 크리비아 영지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는 전쟁이야. 생각해 보거라.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백성을 저버린 국왕을 어찌 국왕이라 할 수 있겠느냐?”
“전혀요. 그럴 수 없지요.”
“이미 자신의 소중한 백성을 쓰레기처럼 버린 시점부터 두 왕국의 미래는 결정됐었던 거다.”
이즈엘이 선전포고문을 조심스럽게 접어서는 앞에 두었다.
지금 즈음이면 자레드는 이미 국경을 넘어 진군하고 있을 것이다.
시간차는 다소 있겠지만, 두 왕국에도 선전포고는 도착했겠지.
‘짬 처리’로 악명이 높은 두 왕국의 난민 버리기는 이미 다른 국가들의 비난을 거세게 받았다.
아마 별도의 선전포고문을 받지 못했더라도, 이웃 국가들은 크리비아 영지가 일으킨 전쟁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두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렌투스 제국과 신데르스 왕국은 더더욱 지지 의사를 밝힐 필요가 있었다.
두 왕국의 세가 약해지면, 그만큼의 반사이익을 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름만 대영지지 사실은…….”
이즈엘의 시선이 정면에 놓인 나스 대륙 북부 지도로 향했다.
현재도 크리비아 대영지의 규모는 다른 왕국에 준할 만큼 컸다.
여기에 이번 전쟁으로 일부 도시를 장악한다면, 충분히 왕국이라고 선포해도 될 정도의 영토를 갖추게 된다.
“흠……. 우리 왕국도 입장 표명을 확실히 할 준비를 해야겠지.”
이즈엘이 침음성을 내며, 북부 지도 위에 하나의 선을 그었다.
지금은 두 왕국의 영토로 되어 있지만, 이곳이 자레드에게 점령됐을 때의 영토 규모를 그린 지도였다.
이내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새로운 왕의 등장을 진심으로 축하할 때가 된 것 같다.”
* * *
2월 1일, 자정이 되는 순간.
모든 병력을 소집한 우리는 바로 국경을 넘어 진군을 시작했다.
첫 번째 목표는 바로 보누스 왕국의 해안 도시, 리라키였다.
펑! 펑!
바로 그때.
전방에 멀찍이 탐색 기동을 시켜 놨던 인공지능 올라가 소량의 마력탄을 방출하며 신호를 보냈다.
정찰병을 발견했다는 신호다.
나는 신호를 받기가 무섭게 바로 올라가 있는 위치로 텔레포트를 했고, 정찰병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보누스 왕국에서 온 정찰병이었다. 거리로 봐서는 해안 도시 리라키의 지휘를 총괄하고 있는 게니츠 제독이 보낸 정찰병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피도 눈물도 없이 정찰병의 몸을 짓밟고 결박시킨 올라의 행동 덕에 그는 크게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히이익……. 제발 목숨만은!”
“게니츠 제독이 보냈느냐?”
“예! 예에! 그렇습니다!”
“정찰병이 네놈 말고도 여러 놈이 왔다 갔다. 그때마다 전부 발각되어 내 손에 처리되긴 했다만…… 이번에는 왜 온 거지?”
“제독께서 별다른 동향이 보이지 않더라도 수시로 크리비아 영지군의 동태를 살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국경을 넘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정찰병은 내가 손 위에 마법 구체를 만들어 내며 슬쩍 겁을 주자, 술술 모든 내용을 불었다.
“앞서의 보고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모양이군.”
나는 앞서 이자벨과 함께 몇 가지 공작을 벌였었다.
이번처럼 사로잡힌 정찰병의 정신을 이자벨의 주술을 통해 세뇌한 뒤.
크리비아 영지는 평화로우며 아무런 전쟁 조짐도 없다는 거짓 정보를 역으로 흘렸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게니츠 제독의 방어는 허술했다.
전쟁 준비를 하기보다는 평소보다 살짝 주변 경계를 강화하는 수준에 그쳤고, 우리 영지군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다.
다만 군인 특유의 직감이 있어 정찰병을 한 번 더 보낸 듯한데, 이번에도 내게 딱 걸리고 말았다.
내가 없어도 알아서 기동하며 경계를 칼같이 하는 올라는 나의 또 다른 심복이자 하수인이었다.
“저를 다시 돌려보내 주시면! 시키시는 대로 거짓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정찰병의 안쓰러운 외침을 뒤로한 채.
나는 패럴라이즈 마법으로 녀석을 마비시켰다.
“올라, 이 녀석을 가장 가까운 감옥으로.”
-네, 알겠어요.
정찰병이 두 눈을 깜빡이며 애타게 눈빛을 보냈지만, 나는 칼같이 녀석을 감옥으로 보내 버렸다.
이번 전쟁이 마무리되고 나면, 그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때는 고향의 주인이 바뀌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일단 준비는 끝났고…….”
나는 플라이 마법을 시전하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영지군이 빠르게 북진 중이었다.
이번 전투에는 다수의 가신이 참여했다.
아그레시오 기사단의 단장 엘라, 총사령관 라키스, 드레자 주술단의 이자벨, 그리고 헤이즈다.
반면에 미아와 레나는 전쟁에는 적합하지 않다 싶어 부르지 않았고, 클로이는 참여하겠다는 것을 내가 말렸다.
그녀는 그레이 엘프다.
아무 생각 없이 전쟁에 참여했다가는 보누스, 말루스 왕국이 그레이 엘프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이런 나비효과는 원치 않는다.
클로이가 있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녀가 없다고 해서 전쟁에 지는 것도 아니고.
슈아아아!
다시 빠르게 하강했다.
전쟁 전부터 구상해 온 전격전(電擊戰)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내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그다음으로는 호흡을 맞춰 빠르게 적의 외곽 경계를 뚫고 들어올 중군의 움직임이 중요했다.
나는 홀로 적의 거점을 타격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후방을 교란하는 동안, 중군이 밖에서부터 밀물처럼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나는 나란히 함께 움직이고 있는 엘라와 라키스에게 먼저 당부를 건넸다.
“정찰병의 처리가 끝났으니, 나는 즉시 게니츠 제독과 본대가 있는 거점을 교란할 것이오.”
엘라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었다.
“공작님 혼자 괜찮으시겠어요?”
“거점에 주둔 중인 마법사의 수도 적은 데다가 그것도 기껏해야 4클래스밖에 되지 않으니까 나 혼자서도 충분할 것이오.”
“알겠어요. 계획대로 저희는 외곽의 병력부터 차례대로 무너뜨리죠. 신속하게.”
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안경이 달빛에 빛났다.
플레이트 메일로 중무장을 한 안경 낀 기사라니! 그녀도 캐릭터 하나는 확실하게 잡은 것 같다.
“라키스, 엘라가 전열을 흩트리며 돌파하고 나면, 빠르게 후방을 수습하며 들어오시오. 이번 전쟁은 속도가 생명이오. 후방에서 소요(騷擾)가 발생해선 안 되오.”
“예, 영주님. 반드시 명심하겠습니다. 군의 모든 지휘관이 명령을 하달 받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좋소. 엘라에게는 마법사단과 기사단을, 그대에게는 영지군 전체의 통솔을 위임할 테니 거점, 리라키에서 봅시다.”
“옛!”
“알겠어요.”
“그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다시금 날아올라, 영지군보다 더 빠르게 북쪽으로 향했다.
아래를 살짝 내려다보니, 나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드는 헤이즈와 이자벨이 보였다.
헤이즈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어가면서 내게 손인사를 건네고 있었고.
이자벨은 자신이 이끄는 드레자 주술단과 함께, 나를 향해 목례를 했다.
그리고 끝없이 대열을 유지하며 진군하고 있는 크리비아 영지군 2만 명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전쟁을 위해 맹훈련을 소화하며, 추려 내고 추려 낸 영지의 최정예 병력이었다.
‘반드시 승리한다.’
나는 벅차오르는 가슴으로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후우.”
그리고 한 줄기 뜨거운 숨결을 길게 토해 낸 뒤.
파앗!
텔레포트 마법과 함께 북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보누스 왕국의 해안 도시 리라키에 마련된 해군의 육지 거점.
게니츠 제독은 복귀한 정찰병을 다시 불러서는 일전에 보고한 내용을 되묻고 있었다.
앞서 보낸 정찰병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
게니츠는 정찰병이 좀 더 깊이 잠입해서 정보를 수집하느라, 복귀가 늦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정말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이제 곧 봄을 앞두고, 다수의 영지군은 영지민의 농사를 대비한 대민(對民) 지원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본 것도 같습니다!”
정찰병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같은 내용의 말만을 반복했다.
그들의 눈빛은 아주 살짝 초점이 안 맞는 듯했고 흐릿한 구석이 있었지만…….
주술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니츠는 그 사소한 변화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을 했나?”
게니츠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일전에 크리비아 영지에서 자신을 포섭하려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어느 정도 마음이 혹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스스로를 납득시킬 명분이 없어 끝내 거절했고, 오히려 그 일을 통해 영주 자레드의 본심을 파악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몇 번이고 정찰병을 보냈지만, 이상하리만치 크리비아 영지는 조용했다.
그저 의심만으로 경계를 강화하고 병력 재배치를 하기에 리라키의 군량 사정은 너무 안 좋았다.
그래서 열심히 정찰병만 보냈던 것인데, 결론은 한결같았다.
그때.
“침입자다! 상공에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마법사가 있다!”
“마법사가 접근한다!”
“집중 사격! 전부 공격해!”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게니츠는 한달음에 막사 밖으로 달려 나왔고, 과연 상공에 마법사 한 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피잉! 피잉! 피잉!
여기저기서 궁병들이 활시위를 당겼고, 제법 명궁으로 소문난 보누스 궁(弓)이 일제히 화살을 쏟아 냈다.
순식간에 밤하늘이 온통 화살로 가득 메워졌다.
그만큼 침입자에 대한 반응은 신속했고, 대응은 날카로웠다.
한데.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어서 펼쳐진 상황에 게니츠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