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56
제 156화
55장. 암흑 교단의 마수 – 4화
“표현 한번 더럽네.”
자레드가 진심을 담아 경멸 어린 시선을 퀴라티오에게 보냈다.
-왜 신들이 제법 네게 관심을 갖는지 이번 전투를 통해서 알았다. 나도 네게 탑승하고 싶은데, 어떠냐. 나를 받아들일 생각은?
“꺼져.”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답했다. 너무 단호한 나머지, 퀴라티오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네게 주겠다. 그렇다면 인간 세계를 장악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럼 네가 직접 해. 왜 사람 몸을 빌려서 하려고 해?”
-신의 몸으로 인간 세계에 현신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지.
“그래서 대리자를 내세우시겠다? 이미 내세웠잖아? 아그라트의 뒤에 줄을 선 것 같던데?”
-호오, 아는 게 많은 놈이로군?
“개수작 부리지 말고, 꺼져. 신이지만 신으로 취급해 주고 싶지도 않아. 악신은 그래. 개과천선하고 살아. 그게 당신이 갈 길이야.”
-후회 안 할 것 같아?
퀴라티오의 물음에 자레드가 대답 대신, 먼저 중지를 치켜들어 보였다. 손가락 욕이었다.
퀴라티오가 피식 웃었다.
인간의 치기 어린 반항이라 하기에는 자신감이 가득해 보였다.
“마왕 불러다가 헛짓거리나 하지 마. 악신, 너희들은 마왕 좋아하잖아? 악으로 독기로 똘똘 뭉친 존재라서.”
-오늘 내 제안을 뿌리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자레드.
“그래. 나도 네가 누구의 몸에 깃들었는지는 알았으니까, 나중에 같이 처리해 줄게. 기다려.”
-그 패기는 인정해 주지…….
그렇게 퀴라티오의 모습이 연기와 함께 흩어지며 사라졌다.
신을 직접 본 것은 자레드도 처음이었다. 이런 제안을 받은 것도 처음이고.
한편으로는 인간들의 빈틈을 노리길 좋아하는 악신이 얼마나 이런 식으로 인간사에 개입했을지 짐작도 됐다.
나탈리도 헤레시스와 연결된 과정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만남에서 본 나탈리의 모습은 딱히 악인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말해 줄 수는 없으니까.
* * *
다음 날.
제스의 시신은 신데르스 왕국으로 보내졌고, 카코 교단의 단원 전원은 대광장에 효수됐다.
사람들은 암흑 교단의 단원들이 국왕을 시해하려 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했다.
특히나 자신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자레드 국왕을 죽이려 했으므로 분노가 엄청났다.
효수된 단원들의 시체에 셀 수 없는 돌팔매질이 이어졌다.
어찌나 돌을 많이 던졌는지, 다져진 고기처럼 원래의 형태를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변했다.
“움브라 교단만 있는 줄 알았는데, 카코 교단이라는 암흑 교단이 있었군!”
“그놈들은 나스 대륙 남쪽에 있는 놈들이라는데, 왜 여기까지 왔을까?”
“왜겠어! 국왕 폐하께서 대성지를 세우시고, 암흑 교단 척결에 힘쓰고 계시니 눈엣가시처럼 보인 거겠지!”
“놈들의 발악을 보니, 국왕 폐하께서 정말 잘하고 계신다는 것이 느껴지는구먼!”
“우린 축복받은 게야! 이런 왕국에서 밤에 눈을 감고,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이냔 말이야!”
“맞네, 맞아! 큰 축복이지!”
백성들은 앞다투어 자레드를 칭송했다.
왕국의 범죄율은 과거 다른 국가 혹은 영지였을 때보다 1할 수준까지 급감해 있었다.
두 다리를 뻗고 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두가 체감하고 있었다. 태평성대라는 말이 멀리 있지 않았던 것이다.
광장에 나온 백성들 대부분이 자레드와 왕국을 찬양하며, 암살 미수를 놓고 입을 모아 카코 교단을 욕하고 있었지만.
유독 두 사람만큼은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클루제를 잃은 이후, 자레드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 온.
움브라 교단의 교주 린크스나와 흑사단의 단주 흑사마귀였다.
* * *
드레자 타워에서 벌어진 암살 미수 사건으로 어전회의에서는 왕궁의 조속한 건설을 촉구하는 의견이 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서두를 것 없다고 말했겠지만, 이번만큼은 신하들의 의견이 일견 타당하다고 받아들여 수용했다.
내가 암살에 대한 대응 능력이 있고 없고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앞으로 이 같은 암살 시도가 또 있을 때, 내가 아닌 다른 신하나 구성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번이야 내가 잘 대응해서 주술단원을 한 명도 잃지 않고 피해 없이 상황을 잘 마무리 짓기는 했다.
하지만 다음번에도 같은 행운이 따를 것이라곤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일을 매듭지은 뒤.
나는 왕국 북부의 끝자락에 위치한 사비오의 연구실로 향했다.
사비오를 만나 그간 누적된 연구 성과에 대한 보고를 꼼꼼하게 받고, 타넥스를 업그레이드할 예정이었다.
“폐하!”
“됐어. 편하게 불러.”
“폐하! 밥 먹었어?”
“그건 웬 끔찍한 조합이냐? 예전처럼 불러. 폐하, 이런 단어 넣지 말고. 무엇보다 난 너를 다스리는 국왕이 아니잖아.”
“자레드, 마침 잘 왔다! 얼굴 보기 참 힘드네?”
“할 일이 좀 많아야 말이지.”
“이거 한번 마셔 볼래? 얼마 전에 내가 개발한 음료수인데, 톡 쏘는 맛이 일품이야.”
나는 사비오가 건넨 음료수를 마셨다. 쭉 들이켜 보니 전생에 마셨던 탄산수의 느낌이 났다.
“괜찮은데?”
“괜찮지?”
“여기에 향을 좀 첨가하면 좋을 것 같은데.”
내가 떠올린 것은 사이다였다.
라임이나 시트러스 향기를 더하면, 사이다와 유사한 느낌을 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떤 향?”
“그것보다 이 음료수,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어?”
“그건 아직…….”
“아쉽네. 하지만 일단 만들어 내는 부분은 성공한 거잖아?”
“그렇지. 기반은 마련됐어.”
“그럼 예산을 좀 더 당겨서 지원해 줄 테니까, 대량생산 공정을 만들 수 있는지 계산해 봐.”
“돈만 많으면 나야 좋지!”
생각지도 않게 사비오에게 탄산음료 생산을 의뢰하게 됐다.
꼭 고가의 마도 공학 병장기나 약물을 만드는 것만이 제작의 묘미는 아니다.
돈이 될 수 있다면, 왕국의 재원 확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뭐든지 가리는 것 없이 하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일단 타넥스부터 좀 봐줘. 그동안 녀석이 많이 상했다.”
나는 입고 있던 타넥스를 벗어서는 사비오에게 넘겼다.
꽤 신경을 쓴다고 썼는데, 때도 많이 묻고, 수리의 흔적이 남아 보기가 흉했다.
“어쩐지 데이터가 미친 듯이 쌓인다 싶었다. 그러니 이 녀석이 죽는소리를 내지.”
“데이터는 만족스러워?”
“만족스럽고말고! 특히 전투에서 활용이 궁금했는데, 그동안 엄청 대단한 사람들과 싸우는 것 같던데?”
“다 봤어?”
“자고 일어나서 하는 게 타넥스 연구밖에 없어. 네 전투 기록을 확인하는 것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얘기지.”
“오늘 할 업그레이드는 뭐야?”
“성격도 참 급하군. 잠시만 얘 좀 수리 공정에 얹혀 놓고.”
사비오가 일찌감치 구축해 놓은 수리 공정에 타넥스를 얹어 두었다.
그러자 마정석이 심어진 몇 개의 기계 장치가 부지런히 움직이며, 타넥스의 몸체에 있는 자잘한 스크래치부터 메우기 시작했다.
마치 붓으로 살살 흰 도화지의 빈틈을 메우듯, 부드럽고 조용한 움직임이었다.
작은 원탁에 자리를 잡고 마주 앉은 사비오는 금빛 가죽 포장으로 정성 들여 매듭지은 서신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일단 이거 받아.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서신이다.”
“이게 뭔데?”
“로드께서 보내신 친서.”
“다크 엘프 로드?”
“그럼 내 로드가 누구겠어?”
의외의 친서에 놀랐다.
그간 내 쪽에서 다크 엘프 로드에게 서신을 보낸 적은 세 번 정도 있었다.
하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읽기는 했다는데, 별다른 리액션이 없었던 것이다.
워낙 인간에 대한 반감이 큰 다크 엘프이기에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사비오가 전하기로 여론이 좋지 않다고도 들었고.
일전에 하오스 아일랜드에서 네메시스를 내가 처치해 준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인간이기에 ‘의도가 짙게 깔린’ 선의라고 생각하며 의심하는 엘프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최근에 아키가 다크 엘프와의 정식 무역 교류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해서, 나름의 기대를 조금 갖고 있던 차였다.
“진지하게 읽어 봐야겠네.”
“꽤 많은 고민을 하면서 쓰셨다고 하더라. 로드는 아무에게나 친서를 보내시는 분이 아냐. 그 무게를 꼭 알아줬으면 한다.”
“고맙다, 고생했어.”
“내가 무슨 고생을 했냐? 너희 그 아르케네스 상단인가? 거기 상단주가 엄청 고생했지.”
“내가 모르는 일이 있나?”
“타타르 아일랜드에 와서 로드를 한 번만 뵙게 해 달라고 고개를 조아리면서 몇날 며칠 밤을 새다가 간 것이 열 번은 넘을 걸?”
“정말이야?”
“여기서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이건 나도 몰랐던 얘기다.
깜짝 놀랐다.
아키는 내게 다크 엘프와의 교류를 위해서 적당히 물밑 접촉 중이라는 얘기만 했을 뿐이었다.
한데 내가 모르는 사이 마그눔 해협을 넘어, 목숨을 걸고 다크 엘프의 터전을 오갔던 모양이었다.
“하여간 좋은 신하들을 두셨어. 나중에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 몇몇 질 나쁜 놈들이 죽인다고 협박을 했는데도 있었다고 하더라.”
“…….”
마음이 울컥했다.
그 정도로 아키가 노력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특히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를 위해 목숨을 건 베팅을 했을 줄은 더더욱 꿈에도 몰랐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
나는 한참을 말없이, 다크 엘프 로드의 서신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타넥스의 개조가 끝난 것은 그로부터 2시간이 지난 후였다.
나는 개조가 끝난 타넥스를 바로 착용했고, 바뀐 옵션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타트라 넥스(Tatra Nex)] [분류 등급 : 8성] [옵션 1부터 7까지는 사용자 요청으로 내용이 생략됩니다.] [옵션 8 : 마정석 탑재 확장 – 타넥스의 몸체 내부에 다섯 개의 마정석을 탑재할 수 있습니다.마력 충전이 없어도, 마정석을 이용해 임시 기동이 가능합니다.
마정석을 탑재하면, 해당 마정석으로 기동 가능한 시간이 표시됩니다.] [옵션 9 : 마력의 샘 – 마력 15,000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단, 저장할 수 있는 마력은 파일럿의 마력뿐이며, 다른 마력은 인식되지 않습니다.]
‘이젠 꼬박꼬박 마력으로 충전을 하지 않아도, 마정석으로 언제든 대체가 가능하군.’
8번 옵션이 꽤 마음에 들었다.
최상급 마정석 하나를 탑재해 보니, 출력 100%로 하루를 기동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시대를 앞서는 마도 공학 병장기를 하루 동안 최상급 마정석 하나로 이용할 수 있다면 큰 이득이다.
아쉬움은 없었다.
‘마력 1만 5천이면! 유사시에 최대 가용 마력이 늘어나니, 트랜센던스의 수준이 훨씬 더 높아져.’
내가 직접 마력을 충전해야 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어쨌든 보조 개념으로 마력이 있다는 것은 어드밴티지가 컸다.
무디두스의 기도에 이그노어 건틀릿의 마력 저장, 그리고 타넥스의 마력의 샘 효과까지 합치면?
단번에 40,000 이상의 마력 사용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좋아. 공략을 떠날 준비는 확실하게 끝났어!’
사비오의 개조는 완벽했다.
이제 다시.
나만이 알고 있는 미래 지식과 버그, 그리고 꼼수로 새로운 시련에 도전할 때가 왔다!
이 세계의 북쪽 끝인 북극점에 위치한 로스트 아일랜드.
그곳으로 떠날 시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