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55
제 155화
55장. 암흑 교단의 마수 – 3화
“…….”
대폭발이 만들어 낸 결과물에 제스의 표정은 흙빛으로 변했다.
가장 먼저 자신이 큰 피해를 입었다. 폭발과 함께 왼쪽 팔이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나마 제스 본인은 목숨이라도 건졌지만, 문제는 다른 단원들이었다.
투욱. 투욱. 투두둑.
시간차를 두고 살덩어리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 살아 숨 쉬던 단원들의 ‘흔적’이었다.
연쇄 발화.
자레드가 펼친 마법의 정체를 제스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것은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생전 처음 보는 마법이었다.
신데르스 왕국의 왕자였던 시절에도 이런 말도 안 되는 마법은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불씨 하나만으로 어떻게 이런 대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거지? 불씨가 있는 모든 공간에서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제스가 파악하고 있는 자레드의 마법 경지는 5클래스였다.
하지만 지금 본 것은 5클래스 마법사라고 하기에는 압도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몹시 위력적이었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능히 자레드에게 깊은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것이라던 아그라트의 예상도 완전히 빗나갔다.
자레드는 철벽이었다.
직전의 공격에 당한 것은 빈틈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원들을 끌어내기 위한 그의 노림수였다.
이윽고 덤덤한 목소리로 자레드가 명령을 내렸다.
“드레자 주술단, 패악스러운 암살자들을 모두 처단하라.”
“망할.”
“제스, 덤벼라. 아직 팔 한 짝도 남아 있고 목숨도 남아 있잖아?”
자레드가 자신을 향해 손끝을 까딱이자, 제스는 복잡했던 생각이 일시에 사라지고 다시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몇 차례의 광폭화로 육체 개변을 했지만, 아직도 기회는 몇 번이나 남아 있었다.
“반드시 죽인다!”
“입만 털지 말고 덤벼, XX야!”
자레드의 걸쭉한 욕지거리와 함께 다시 교전이 시작됐다.
* * *
‘확실히 직관화가 좋네.’
전투를 하는 내내, 나는 심안의 편의성에 감탄하고 있었다.
심안으로 스캔이 되는 모든 사람의 체력과 마력이 보이기 때문에 계획을 짜기가 훨씬 수월했다.
나와 제스, 드레자 주술단과 카코 교단의 단원들.
이렇게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구도 속에서 나는 직관화를 이용해 단원들의 체력을 살폈다.
개중에는 제법 체력이 떨어진 단원들이 보였다.
직관화를 통해 보이는 체력의 구(求)가 줄어들면, 안에서 보이는 붉은색이 줄기 때문이다.
나는 중간중간 트랜센던스 매직 미사일을 이용해, 단원들의 빈틈을 노렸다.
그리고 노림수는 성공적이었다.
“끄헉!”
“커허억!”
외팔이가 되어서도 맹공을 퍼붓는 제스는 여전히 위협적이었지만, 내 마법 공격을 막진 못했다.
그의 공격에 잠시라도 공백이 생길 때마다, 단원들은 하나씩 죽어 갔다.
드레자 주술단의 단원들과 함께 지난 닷새를 꼬박 강훈련을 해 온 효과도 있었다.
마침 실전 경험이 필요하던 차에 본의 아니게 ‘가장 까다로운’ 적과 실전을 치르게 된 것이다.
‘사기도 많이 떨어졌다.’
[가호 3 : 아소스의 눈 – 사기가 30% 미만의 수치로 크게 하락한 적군은 몸 전체에 푸른색 빛이 덧입혀집니다.]아소스의 눈으로 본 단원들의 모습은 전부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게다가 아소스의 가호 덕분에 아군에게는 고무, 적군에게는 위압의 효과가 들어가고 있었다.
드레자 주술단은 갈수록 더 용맹하게 싸웠고, 카코 교단은 점점 전의를 잃어 갔다.
그래서일까?
“X발……!”
체력이 20% 미만의 수준으로 떨어진 제스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마지막 개변을 끌어냈다.
순간 체력이 10%나 빠졌다.
남은 생명력의 절반을 갖다 썼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날 죽이고 싶다는…… 결연한 의지가 묻어나는 것이었다.
‘이것을 업보라고 하는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에게는 분명 내전 개입이 선(善)이었지만, 제스에게는 악(惡)이었을 테니까.
“내가 죽는다면, 너도 죽는다!”
악에 받친 제스가 달려들었다.
지금까지의 움직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속도가 빨랐고, 아차 하는 사이에 그가 나를 덮쳤다.
“…….”
나는 침착하게 세컨드 플랜을 가동했다.
마법사의 약점이라고 불리는 근접전은 모든 상대가 노리는 노림수이기도 하다.
나라고 예외일 리 없었고, 그래서 늘 이런 상황에 대비를 해야 했다.
그래서 내가 꺼내 든 것은.
[고대 마법서 – 마력 치환술] [체력 1이 하락할 대미지를 20의 마력 소모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단, 마력 치환술이 적용되는 동안에는 마력 회복이 멈춥니다.]바로 마력 치환술이었다.
현생의 초창기에 얻은 것으로 이베나르 마법서 5종 중 하나인 마력 치환에 대한 내용이었다.
‘전개.’
미련 없이 치환술을 펼쳤다.
그러자 마력이 빠르게 소모되기 시작하며, 몸 전체를 감싸는 에메랄드빛의 역장이 생겨났다.
그것은 피부를 아주 얇게 감싸고 있었지만, 제법 든든함이 느껴지는 역장이었다.
“죽어! 죽으라고! 죽어 버려, 이 X자식아!”
솨악! 솨악! 쇄애액!
독기를 머금은 제스의 공격이 이어졌다.
하지만.
투웅! 투웅! 투웅!
마력 치환술이 만들어 낸 표면의 역장은 무리 없이 제스의 공격을 받아 냈다.
물론 마력 소모가 엄청났다.
제스의 일격이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만큼 강력했기에, 한 번 공격을 당할 때마다 마력이 1천 단위로 쭉쭉 빠졌다.
하지만 핵심은 하나.
나 역시 두 눈 뜨고 멀뚱멀뚱 맞고만 있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디멘션 도어.’
나는 아주 조용하고 은밀하게 제스의 등 뒤에 디멘션 도어의 차원문을 만들어 냈다.
제스는 복수를 위해 나를 공격하는 것에만 집중했고, 뒤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직 마력의 여유는 충분했다.
나는 두 번 정도 제스의 공격을 더 받아 주었다.
상처는 하나도 없었다.
마력 치환술의 신묘함이었다.
그리고 제스가 세 번째 공격을 이어 가려던 바로 그 순간.
‘트랜센던스 텔레키네시스!’
남은 마력을 짜냈다.
5천의 마력이 소모됐고.
“크악!”
나를 내려찍으려던 제스의 몸이 마치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이 뒤로 이동했다.
순식간에 제스의 몸이 반쯤 차원문을 통과했다.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는 것이 디멘션 도어이기 때문에, 이대로 두면 반대쪽 출구로 나오고 끝날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 안배는 따로 있었다.
스윽.
그 전에 문을 닫아 버린 것이다.
“컥!”
단말마의 비명이 들렸다.
최후의 일격을 위한 설계는 한 번이면 충분했다.
제스의 머릿속에 디멘션 도어를 이용한 차도살인지계는 그려져 있지 않았는지, 놈은 허무하게 당해 버렸다.
투욱. 투욱.
입구와 출구에서 양쪽으로 나뉜 제스의 시신이 떨어졌다.
한쪽은 허리 아래, 한쪽은 허리 위로 나뉜 살덩어리의 분리였다.
“아아……!”
단원들이 탄식을 터뜨렸다.
앞서 이그니스에게서 전수 받은 연쇄 발화 마법으로 호되게 혼쭐이 난 단원들은 제스가 죽자, 아예 사기를 잃어버렸다.
도대체 아그라트가 이곳으로 제스와 단원들을 보내며, 어떤 얘기를 해 줬던 것일까?
놈들은 나를 너무 쉽게 봤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순차적인 죽음뿐이었다.
“한 놈도 살려서 보내지 마라.”
나는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적들에게 덤덤히 사망 선고를 내렸다.
* * *
“모두 끌고 가. 포박술 풀지 말고 입은 막아 버려. 내일 대광장에서 모두 공개 처형을 할 테니까.”
“예, 명 받들겠습니다. 폐하.”
“혹시 잔당이 남아 있는지 주술진을 이용해서 점검하도록 하고.”
“예. 폐하.”
이자벨에게 명령을 내린 뒤.
자레드는 점점 숨이 얕아져 가고 있는 제스의 몸뚱이, 상체 앞으로 다가갔다.
제스는 여전히 독기가 가득 찬 눈빛으로 자레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남은 죗값을 치르게 해 주마.”
“……귀신이 되어서도 널 반드시 죽일 것이다.”
“살아서도 날 어쩌지 못했는데, 죽어서 뭘 어떻게 하려고?”
자레드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답했다.
제스에게 일말의 미안함이라든가 안타까움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지 않았다.
제스가 신데르스 왕국의 왕자가 되었다면, 성마 대전은 더욱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현생에 환생한 시점부터 성마 대전을 대비하며, 암흑 교단을 경멸해 왔던 자레드에게 제스는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자레드가 물었다.
“죽기 전에 할 말은?”
“악마 같은 네놈이라면 나중에 우리 왕국도 집어삼키려고 하겠지. 그렇지 않나……?”
“그건 저승에 가서 확인해 봐.”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
자레드가 미련 없이 옆에 떨어져 있던 검으로 제스의 심장을 찔러 버렸다.
‘이 검은 레나에게 주면 좋아하겠군.’
마침 획득한 제스의 검은 아티팩트였다.
4성급으로 아주 높지는 않지만, 경량화 세공이 되어 있어 방패술과 연계해야 하는 레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였다.
‘마침 충성도 13을 올릴 방법이 없나 고민하던 차였는데, 이걸 선물하면서 올려 주면 좋겠네.’
일석이조가 될 듯싶었다.
충성심을 자극해서 2차 각성도 유도하고, 그녀의 스펙도 올려 줄 수 있으니까.
한데 바로 그때.
샤아아아.
숨이 끊어져 차갑게 식어 가던 제스의 시체에서 묵빛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레드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교단의 사악한 술법 중에는 죽은 자를 매개로 해서 폭발을 일으키거나, 이를 제물로 삼아 주변인에게 악령을 빙의시키는 것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악령은 매우 많다.
자레드와 함께했던 이자벨 – 옛 이름 이자벨라 – 은 천성이 착했던 것일 뿐이다.
“…….”
자레드가 제스에게서 피어오른 연기를 보며, 침묵을 지켰다.
연기가 점점 형체를 갖추며 사람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해 가더니, 이내 본모습을 드러냈다.
깔끔할 정도로 터럭 하나 없는 머리, 당장에라도 터져 버릴 것 같은 두 눈, 입가에 잔뜩 잡혀 있는 자글거리는 주름.
그는 흡사 외계인이 생각날 정도로 못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퀴라티오.”
자레드가 정체를 알아봤다.
악신 퀴라티오.
아그라트에게 붙어 있다가 잠시 제스에게로 위치를 옮겼을 신.
보통 신은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신은 신이고, 인간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태생부터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호는 내릴지언정 인간사(史)에는 크게 개입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악신은 다르다.
적극적으로 인간 세계의 일에 개입하며, 지금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잦았다.
-클클클. 전투는 아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제법이더군. 아소스와 네프리아가 왜 네게 관심을 갖는지 알 수 있었다.
“칭찬은 고맙지만 악신과는 상종도 하기 싫은데, 꼭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야 하나? 아까 먹은 음식이 올라올 지경이야.”
-크하하하! 당돌한 녀석이군! 마음에 들어. 내 얼굴만 봐도 고개를 조아리고 목숨을 구걸하는 인간들이 널렸거늘!
날 선 자레드의 반응이 무색하게 퀴라티오는 할 말을 열심히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자레드에게 다가왔다.
자레드는 물러서지 않았다.
현신한 것이 아니라, 연기의 형태를 빌려 외형만 드러낸 것이기에 위협이 되진 않았기 때문이다.
퀴라티오는 한참을 자레드의 주변을 휘감고 돌며,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자레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보통 인간이 아니로군……. 네게서 강자의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