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54
제 154화
55장. 암흑 교단의 마수 – 2화
터업!
자레드의 손길이 거칠게 단원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그리고.
화르르륵!
엄청난 불길이 치솟았다.
그것은 마치 얼굴에다가 기름을 잔뜩 붓고, 불을 붙여 버린 것 같은 대폭발이었다.
“…….”
볼 것도 없이 그 단원은 즉사했다.
이윽고 자레드가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각자의 자리에서 은신하고 있던 단원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쉬이이이. 쉬이이이.
이어서 날아든 것은 독가루 혹은 독무로 보이는 것들이었다.
일전에 이들이 사용한 독침도 그렇고, 하나같이 위협적인 공격 수단이었다.
무엇보다 이를 활용하는 단원들 개개인의 능력이 매우 중요해서 다루기 까다로운 것이기도 하고.
‘제법 실력이 되는 녀석들을 보냈네.’
심안으로 쭉 스캔해 보니, 그들의 실력은 결코 낮지 않았다.
클로이의 하위 호환 정도로 30명을 편성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
자레드는 꿋꿋이 서 있었다.
독의 영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원들은 자레드가 금세 반응을 보일 것이라 생각했는지, 뚫어져라 그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제길.”
현실을 인지한 단원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몇몇 단원들은 말도 안 된다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당장 전투에 돌입할 수도 있었지만, 자레드는 저 단원들의 구심점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언뜻 봐도 리더로 보이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파앗!
벽을 타고 넘어온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는 것으로 봐서는 그가 리더임이 틀림없었다.
그 순간.
자레드는 익숙한 상대의 얼굴에 인상을 찌푸렸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의 상황이 벌어져서다.
“제스.”
“자레드, 이 개XX…….”
시작부터 걸쭉한 욕설이 날아들었다.
제스가 먼저 내려와서는 자레드와 거리를 둔 채 자리를 잡았고.
팍! 파팍! 팍! 팍!
이어서 내려온 단원들이 지면에 마정석을 박고는 정체불명의 주문과 함께 결계를 만들어 냈다.
그러자 드레자 타워를 중심으로 한 흑색의 두터운 결계가 만들어졌다.
한눈에 보기에도 내외부에서 함부로 뛰어넘어서는 안 될 것이 뻔히 보이는 결계였다.
자레드는 미리 대응하지는 않고, 조용히 상황을 살폈다.
타넥스는 단원들의 한가운데서 완벽히 기척을 숨긴 채, 투명화 된 상태로 때를 기다리고 있었고.
이자벨이 이끌고 온 주술단의 정예 전력도 타워의 뒤에 가려진 사각지대에 있었다.
이를 알 수 있었던 것은 이자벨이 자신에게 정신 금제 주술을 시전하여 그 부작용인 두통을 의도적으로 유발했기 때문이다.
거리는 멀어도, 무언의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었다.
자레드가 제스의 상태를 스캔했다.
예전에 데커드 9세의 탄신 경축 행사 때도 제스를 심안으로 살폈던 적이 있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제스는 3배 이상 가파르게 성장해 있었다!
이 정도로 비정상적인 성장을 거듭한 것은 아마도 제스가 소속된 카코 교단의 교주인 아그라트가 손을 썼기 때문임이 틀림없었다.
‘어?’
그때, 자레드는 심안으로 확인된 제스의 스탯창에서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대상에게 악신 퀴라티오의 가호가 내려져 있습니다.]‘신의 가호가 내렸는데 스캔이 된다고? 그럼 누군가가 임시로 자신의 힘 일부를 건넸다는 건데……. 그럼 악신 퀴라티오가 아그라트에게 붙어 있었단 말이야?’
합리적인 추론에 따라 결과가 도출됐다.
신의 가호를 받는 존재는 그 신이 악신이든 선신이든, 그만의 특별성을 신에게 인정받았다고 봐야 한다.
퀴라티오는 레드 퀸 나탈리에게 가호를 내린 악신 헤레시스보다도 더 악질인 신으로 ‘학살과 기생의 신’으로 불렸다.
가호를 받은 자로 하여금 학살에 특화된 능력을 물려주고, 그가 죽더라도 곧바로 다른 몸을 찾아 기생하기 때문이다.
‘무슨 렌터카도 아니고 신을 빌려주는 게 어딨냐?’
속으로 볼멘소리를 했다.
교단에서 인체를 개조한 데다가 한술 더 떠서 악신까지 붙었다면, 상식을 초월한 초인적인 힘을 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자레드는 체내의 모든 마력의 순환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뒤, 제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제스, 최악의 선택을 했군. 신데르스 왕국의 왕자가 선택한 것이 암흑 교단으로의 투항이라니…….”
“개소리 집어치워! 네놈의 개수작에 나는 왕이 될 기회를 잃었고, 이역만리 차가운 외지로 쫓겨났다. 너는 내게서 꿈과 희망을 모두 뺏어갔다!”
“내가 없어도 너는 왕좌에 걸맞은 재목이 아니었어. 차라리 네 형이었던 프탈린이라면 모를까.”
“뭐? 이 X 같은 XX가!”
필터링이 많이 필요한 욕설을 들으니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사실 신데르스 왕국의 내전에 개입할 때, 자레드가 각오했던 일이기도 했다.
언젠가 제스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형태가 될 줄이야.
이즈엘과 마이라에게 미안한 일이 되겠지만, 자레드는 자신의 손으로 제스를 확실히 처단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살려 둬선 안 된다.
후환을 남겨 둬서도 안 된다.
오늘 이곳을 침입한 이들을 모두 죽이고 효수하여, 함부로 왕의 목숨을 노린 자들의 최후가 어찌 되는지 반드시 보여 줘야 한다.
“다 필요 없다. 덤벼라. 날 죽이려고 온 것일 테니, 뛰어놀 시간은 줘야겠지. 모두 덤빌 테냐? 아니면 네놈이 대표로 올 테냐?”
자레드가 제스를 도발했다.
단체전이든 일대일이든 상관없었다. 준비는 다 되어 있으니까.
“내 손으로 네 목숨을 끊어 주겠다.”
화아악!
제스가 가감 없이 살기를 뿜어내며, 저벅저벅 걸어왔다.
등과 목 뒤를 따라 치솟아 오르는 검은 빛깔의 아우라가 그의 분노를 오롯이 드러내는 듯했다.
“덤벼라. 첫 수는 양보하지.”
자레드가 팔짱을 낀 채, 다시금 제스를 도발했다.
“보자 보자 하니까 이 XX가!”
“여전하군.”
제스의 실력은 향상됐지만, 성격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파앗!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스의 몸이 자레드를 향해 날아들었다.
전광석화와도 같은 빠른 움직임.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미터의 거리를 좁힐 만큼, 제스의 신체 능력은 극대화되어 있었다.
‘광폭화가 탑재된 교단의 일원과의 싸움이라……. 내게 좋은 데이터가 되겠어.’
깡!
자레드가 바람의 장벽으로 제스의 검격을 일차로 받아 내며,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탐색전.
제스의 화력을 측정하기 위해, 다섯 수 정도는 오로지 방어로 일관할 생각이다.
제스가 자레드를 조롱했다.
“겁쟁이 같은 놈.”
“아무리 겁쟁이어도 왕국을 냅다 버리고 튄 너보다야 낫지.”
“크아아, 이 자식!”
하지만 제스의 머리 꼭대기 위에는 자레드가 있었다.
이내 도발에 넘어간 제스의 맹공이 시작됐다.
폭주 상태에 들어갈 때면, 일전의 포르미도가 떠오를 정도로 폭발적인 화력을 가진 맹공이었다.
* * *
자레드와 제스의 난타전이 계속되는 동안, 양 진영은 숨을 죽이고 전투를 지켜보았다.
카코 교단의 단원이 은근슬쩍 움직이려는 기색을 보였기에, 드레자 주술단의 주술사도 이에 대응하여 모습을 드러냈다.
양측의 주술사와 단원들 사이의 거리는 약 50m.
마음만 먹으면 난전으로 바로 돌입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어.’
이자벨은 숨을 죽이고, 자레드의 전투를 하나하나 눈에 담고 있었다.
자레드의 마법은 가히 파괴적이었다.
디미오스 마법사단의 전술 연계를 위해서 나오미와 함께 훈련을 했을 때도 이 정도로 감탄을 하지는 않았다.
분명 자레드와 나오미는 똑같은 6클래스의 마법사지만…… 체감은 완전히 달랐다.
‘특히 화염 계열의 마법이 달라졌어. 예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해. 제스가 아예 손도 못 쓰고 당하고 있잖아.’
이자벨은 자신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레드는 집요하게 화염 마법만 이용해서 제스를 괴롭혔다.
가장 기본적인 화염 마법으로 불리는 파이어볼만 조준해서 시전해도 막아 내는 제스는 한참을 뒤로 물러서야 했다.
나름대로 마나를 끌어올려 방어를 위한 역장을 펼치기도 했지만, 어린애 장난 수준이었다.
자레드의 파이어볼은 그 역장을 산산조각 내고 들어와서는 제스의 몸을 그대로 들이받아 버렸다.
“커헉, 허억, 커헉.”
시종일관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자레드와 달리, 제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지만 자레드가 제스를 압도하면서도 확실하게 끝을 맺지 못하는 이유가 딱 하나 있었다.
“크으으으음!”
그것은 바로 제스가 기합을 토해 낼 때마다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 때문이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몸 전체의 상처가 회복되고, 근육이 터질 듯 팽창하며, 움직임이 2배 이상 급격히 빨라졌다.
“저 사람, 벌써 다섯 번이나 몸이 변했어요, 단장님. 남은 수명을 모두 갉아먹는 건 아닐까요?”
“애초에 뒤를 생각하지 않았던 거겠지. 폐하를 죽이는 것이 목적인 사람이야. 남은 목숨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거지.”
“움직임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빠른데, 이에 모두 대응하시는 폐하는…….”
“우리의 상식적인 선에서 폐하의 경지를 이해하려 해서는 안 돼, 유리나.”
“네……. 그래야겠어요.”
이자벨의 말에 유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나는 이자벨이 가장 아끼는 심복이자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되는 주술사 유망주 중 하나였다.
나이도 열여섯으로 매우 어린 편에 속했지만, 성취는 3성으로 무척 빨랐다.
마법사였다면 영재(穎才) 소리를 들었을 만큼의 뛰어난 인재였다.
쇄액! 쇄애액! 쇄액!
소름 끼칠 정도의 날카로운 검격이 펼쳐질 때마다 허공에 거친 검선이 그어졌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시공간을 베어 버릴 듯한 예리하고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자세히 보니, 오러 블레이드의 변형태인 것 같은 느낌도 났다.
검기가 자레드의 마법에 닿을 때마다,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며 크고 작은 폭발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자레드, 죽여 버리겠다!”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채로 뒤 없이 자레드에게 달려드는 제스의 모습은 흡사 악마를 보는 듯했다.
왼쪽 어깨에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지만, 제스는 자신의 어깨에 신경 쓰기보다는 자레드의 빈틈을 더 집요하게 노렸다.
푸욱!
“크윽, 망할.”
기어이 제스의 집념이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자레드의 왼쪽 허벅지 대퇴부 쪽을 예리하게 찌르고 나온 것이다.
자레드의 몸이 휘청거렸다.
통증과 함께 다리의 힘이 쭉 빠지면서 몸의 균형이 무너진 탓이었다.
“크아아압!”
제스가 때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자레드에게 달려들어 몸으로 밀쳐 버렸다.
애초에 근접전을 펼치던 제스에게 이런 육탄전은 환영할 만한 선택지였다.
“지금이다!”
다음 순간.
기습적으로 이 상황에 단원들이 개입했다.
난공불락과도 같았던 자레드가 빈틈을 보이자, 모든 화력을 집중해 죽일 계획을 세운 것이다.
정면에 주술사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자신들의 공격이 더 빠를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설계야.”
지켜보던 이자벨이 고개를 저으며, 상황을 냉정하게 유추해 냈다. 자레드의 설계라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다음 순간.
주변을 밝히던 횃불들.
제스에게 달라붙어 있던 불길.
그리고 전투 내내 사방으로 비산한 크고 작은 불씨 사이에서.
순식간에 하나의 붉은 선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화염지옥의 저주를 느껴 봐.”
차갑고, 건조하게 깔리는 자레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콰아아앙!
대폭발이 일어났다.
드레자 타워 밖에서 경비를 서던 경비병들은 물론이고, 길을 지나던 행인도 모두 볼 수 있을.
지옥불의 현신과 버섯구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