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6
제 16화
6장. 버그 수련 – 2화
들킨 건가?
나의 전생과 현생이 다르다는 것을 이자벨라가 알아차린 걸까?
사실 알아차려도 상관은 없지만, 나만 아는 비밀을 들킨 것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
하지만 이어진 이자벨라의 말은 나로 하여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했다.
-다른 대륙에서 온 건 아닌가 해서. 나도 듣기만 했는데 동방 대륙에서 온 인간은 마나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대단하다고 하더라.
“아, 그러고 보니 선대 조상님의 얘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런 신비로운 얘기가 있긴 하지.”
헛다리를 짚은 이자벨라의 추측에 나는 능청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동방 대륙이란 내가 있는 나스 대륙과는 다른, 동쪽 먼 곳에 있는 곳으로 알려진 대륙이다.
사실 개발진이 5년간 야심 차게 준비했다는 프로젝트의 일환이기도 했다.
내가 전생에 죽지 않았다면, 지금쯤 대규모 업데이트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이에 대비해서 포스팅 준비도 하고 있었고, 협조 받을 길드도 물색해 놓은 상태였는데…….
죽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어쨌든 이자벨라는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추측을 내놨다.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마냥 심안을 빼앗긴 게 분해서 따라다녔는데! 네 곁에 있다 보니까 호기심이 좀 생겼어. 왠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성장이 빠른 것 같다고 할까?
당연히 빠르겠지. 내가 사용하는 방법들이 얼마나 많은 지식과 꼼수가 집약된 노하우인데!
이 방법을 썼는데도 성장이 느리다면 몸뚱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래서?”
나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되물었다. 이자벨라가 썩 나쁜 악령이란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악령이라는 타이틀을 무시할 순 없지.
-그냥 이제는 좀 나긋나긋하게 얘기도 나눌까 해. 솔직히 심심하기도 하고. 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거든. 내 심안을 가져갔으니까.
으슥한 눈빛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이자벨라의 얼굴이 부풀어 올랐다.
이자벨라의 외형이 살찐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원판은 예쁠 것 같은 얼굴이기도 했다. 리즈 시절의 내가 그랬듯이.
내심 내가 다이어트를 하는 김에 이자벨라도 하면 어떨까 싶지만, 그녀는 악령이다. 영혼의 체중을 뺄 수는 없는 일.
“대화는 환영이야. 하지만 심안은 내 거야. 돌려주지 않을 거야. 내가 죽으면, 그때 가져가.”
-됐어, 심안 따위. 내 능력이 그것만 있는 건 아니거든. 까짓것 내 남편이 될 사람한테 결혼 선물로 준 셈 치지 뭐.
“뭐?”
갑자기 분위기가 웬 남편?
뜬금없이 나온 그녀의 폭탄선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에는 인간 돼지가 따로 없는 것 같고, 몸도 디룩디룩 쪄서 참 보기 싫었는데! 살을 빼면 뺄수록 보니까 제법 괜찮더라?
“설마 내가 잠잘 때마다 위에서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던 이유가?”
-뭐, 자꾸 보다 보니 정도 좀 들었고? 이 정도 남자면 처녀귀신으로 죽은 내 영혼의 배필로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
엄청 심각한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이자벨라의 배짱에 나는 한 번 더 놀랐다.
그녀는 말에 쐐기를 박았다.
-네 첫 키스를 내게 줬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내 첫 키스를 가져간 게 너야.
“아…….”
분명히 꼼수를 써서 심안을 얻을 때까지는 좋았는데, 뭔가 단단히 코가 꿰인 느낌이다!
-이제 심안 돌려 달라고 귀찮게는 하지 않을게. 내 사랑.
쪽!
이자벨라가 내 귓구멍에 바짝 입을 갖다 대고 힘주어 낸 입술 소리에 나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게 심안을 얻은 꼼수에 대한 업보라면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걸까?
“하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 *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일주일간의 수련을 통해 해당 수련법을 완벽하게 몸으로 체득하였습니다.] [가칭 ‘버그 수련법’의 공식 명칭을 정해 주십시오.]가부좌를 틀고 수련에 전념하고 있던 내게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초창기에 지을 만한 이름이 없어서 대충 버그 수련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공식 수련법으로 시스템에 등록되는 모양이었다.
‘이 수련법이 앞으로 내 존재의 근간이 될 수련법이니까 내 자신을 상징하는 이름이 좋겠지?’
곰곰이 생각을 한 끝에 떠오른 이름이 하나 있었다.
‘나 홀로 버그로 꿀빠는 플레이어.’
스스로를 상징하기에 이것보다 더 좋은 명칭은 없어 보였다.
수련법이라고 꼭 수련법이니 심법이니 하는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어차피 남에게 공개되는 것도 아니고, 나만이 가진 고유의 시스템 창에 보이는 수련법일 뿐이다.
그렇게 이름을 정했다.
나 홀로 버그로 꿀빠는 플레이어!
내 아이덴티티가 될 이름이다.
* * *
“하앗! 하아앗! 하앗!”
꽤 먼 거리에서도 자레드의 귓전을 때리는 레나의 기합 소리가 들렸다.
자레드는 라키스로부터 지도를 받는 레나가 있는 훈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수련법을 위해서 걸어가는 동안 계속 배를 문지르고 있었던 자레드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스윽. 스윽. 스윽.
그러자 무리를 지어 하녀장의 지시를 따라 이동 중인 하녀들이 하나같이 양손으로 배를 문지르고 있었다.
그중에는 갑자기 얼굴이 빨개져서 손을 들고는 하녀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화장실로 급하게 뛰어가는 하녀도 있었다.
자레드가 보기에 십중팔구 급똥인 듯했다.
‘아니, 왜 내 수련법이 졸지에 변비 탈출 넘버원이 된 거야?’
자레드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저택에서 수시로 보는 광경이라 이상하지도 않았다.
영주가 솔선수범을 보이며 매일 배를 문질러 대고 있으니, 하녀와 하인들도 이에 질세라 따라 하는 모습이었다.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것이 입소문을 타 영지 전체로도 퍼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영주님이 이걸로 변도 시원하게 보시고 – 여성들 사이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라고 한다. – 살도 엄청 빼셨다는 그럴 듯한 내용으로까지 포장되어서 말이다!
‘뭐, 이런 것으로라도 영지민들이 하나 될 수 있는 리액션이 생기면 다행인 건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자레드는 웃었다.
그러는 사이, 훈련장 안으로 조용히 들어섰다.
라키스는 항상 그렇듯이 근엄한 표정으로 레나를 지도하고 있었고, 레나는 민소매로 된 면 티셔츠를 하나 걸친 채로 수련에 전념하고 있었다.
‘영주님이 오셨어!’
자레드의 모습을 본 레나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을 노예로 팔려 갈 뻔한 위기에서 구해 준 사람. 그리고 고아의 삶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검술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
레나는 자레드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녀가 지금 검술을 피나게 수련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을 믿고 좋은 스승을 붙여 준 자레드의 기대에 꼭 부응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레나, 집중해야지!”
딱!
“아앗!”
잠시 집중이 흐트러진 사이, 손목을 톡 하고 내려친 라키스의 목검에 레나는 들고 있던 목검을 떨구고 말았다.
그 순간, 지그시 웃고 있는 자레드와 레나의 눈빛이 서로 마주쳤다.
“라키스 경, 지도에 고생이 많소. 레나, 스승님 밑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지?”
“죄송합니다, 영주님. 제가 아직 부족해서…….”
레나가 땀을 닦아 내며, 아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저기 가서 목각을 치는 연습을 더해라. 너는 지금 마음만 앞서지 몸은 하나도 못 따라간다.”
“예, 스승님.”
“1시간이다. 실시.”
“실시!”
라키스의 지시에 레나가 일절 군말 없이 바로 목각 앞으로 달려가서는 열심히 검술을 수련했다.
그러자 라키스가 조용히 자레드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영주님, 제가 감히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편하게 말해 보시오.”
“레나의 성취가 생각보다 빠릅니다. 정말 빠릅니다. 영주님께서 어떻게 저 아이의 재능을 한눈에 보셨는지 신기할 정도로…… 엄청난 재능을 가졌습니다.”
라키스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지금껏 누군가에게 검술을 가르친 적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녀와 같은 빠른 성취를 보인 제자들은 한 명도 없었다.
이제 레나에게 검술과 방어술을 가르친 지 겨우 일주일.
하지만 그녀는 다른 이들이 반년은 족히 걸려서 이뤄 낼 성취를 그 시간에 모두 이뤄 냈다.
깨달음은 빨랐고, 몸의 반응 속도는 훨씬 더 빨랐다.
방금 전에도 라키스가 온힘을 다해서 집중한 덕분에 겨우 빈틈을 노릴 수 있었던 것이다.
조금만 라키스가 느슨하게 마음을 먹었더라면, 그녀가 반사적으로 올린 검에 막혔을 공격이었다.
“그 정도로 대단하오?”
“이 흐름대로라면, 한 달 내로는 제가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미 실전 훈련에서 제가 빈틈을 공략당한 지가 꽤 되었습니다.”
라키스의 말에 자레드의 눈빛도 달라졌다.
물론 유망주라면 그 정도로 성장이 빠른 것이 맞기는 했다.
정말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흡수해 버리니까.
그래도 실력이 C급 무장 정도는 되는 라키스가 자신의 유통기한으로 한 달을 말할 정도라니.
자레드가 호기심에 레나의 스탯을 심안으로 확인했다.
[레나 – Lv. 5] [근력 : 13][체력 : 13] [마력 : 0][지혜 : 5] [민첩 : 10][매력 : 5] [물리 방어력 : 2] [마법 방어력 : 0] [특수 성향 : 끈질긴 인내 S / 투지 극한 E / 약점 분석 F] [일반 성향 : 수련, 끈기, 집중]‘그새 레벨이 3이나 올랐어. 근력과 체력, 그리고 민첩도 그에 걸맞게 올랐고. 투지 극한은 평가가 한 단계 올랐고. 어? 약점 분석이라는 특수 성향이 생겼잖아?’
불과 일주일 사이에 레벨이 3이 오른 것도 모자라, 특수 성향 하나가 만들어졌다.
평생을 살아도 특수 성향 하나를 못 가지고 죽어가던 NPC들이 많던 를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변화였다!
‘라키스에게 어떻게든 배우겠다는 투지와 열망이 잠자고 있던 성향을 깨운 거야. 정말 타고난 검사야. 여기에 방어술까지 탑재하면, 정말 유능한 탱커가 되겠어!’
자레드의 얼굴이 한껏 밝아졌다. 그녀에게로 이어진 인연이 고마웠고, 자신이 가진 심안이라는 능력이 이리 감사할 수 없었다.
그런 자레드의 뿌듯한 마음을 읽었는지, 라키스가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당장은 제 실력으로 가르침을 줄 수 있겠지만, 이후에는 좋은 스승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 선에서 키우기에는 그릇이 큰 아이입니다. 영주님께서 좋은 스승을 구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자신의 실력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인정하는 라키스도 분명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자레드는 라키스의 솔직한 이야기가 무척 고마웠다.
“알겠소. 내 좋은 스승을 찾아보도록 하지. 괜찮은 후보군은 머릿속에 있으니, 곧 실천에 옮길 것이오. 그때까지 라키스 경이 가진 모든 노하우와 지식을 레나에게 전수해 주길 바라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영주님의 명령이라면 저는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것입니다. 지옥도 두렵지 않습니다.”
“고맙소. 그럼 레나를 잘 부탁하오.”
“예, 영주님.”
그렇게 자레드가 돌아서려던 그때.
“영주님! 영주님!”
목각 훈련을 하던 레나가 다급히 자레드에게 달려왔다.
라키스는 그녀가 꼭 자레드에게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있음을 느끼고는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레나, 방해가 될까 싶어서 조용히 돌아가려 했어.”
“영주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레나의 이마에서는 구슬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가득했다.
모두가 훈련 과정에서 생긴 영광의 상처였지만, 그만큼 혹독함을 견뎌 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말해 봐. 네가 어떤 말을 할지 기대되는구나.”
자레드의 말은 진심이었다.
게임에서는 그저 유망주라 불리는 NPC가 프로그래밍 된 말을 영혼 없이 주절거리는 것에 불과했지만.
이곳은 현실이었다.
레나도 살아 숨 쉬며 뜨겁게 심장이 뛰는 존재였다. 자레드의 마음이 격하게 두근거렸다.
“꼭! 증명하겠어요! 영주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으로서, 반드시 멋진 검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어요! 그때까지 저를 지켜봐 주시고 기대해 주세요. 제가 느슨해지지 않도록 채찍질해 주세요!”
레나의 의욕은 높다 못해,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라키스가 허허, 하고 웃음을 터뜨릴 정도로.
그 순간, 자레드는 무언가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로부터 이토록 투지와 의욕이 넘치는 말을 들어 보는 것도 실로 오랜만이었던 것이다.
자레드가 레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의 품에 안긴 레나 역시 허리를 꼭 움켜쥔 채, 한참을 떨어지지 않았다.
“증명해 줘.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믿는다, 레나.”
“네! 최선을 다할 거예요!”
-이것들 봐라, 이것들 봐.
눈꼴 시리다는 이자벨라의 반응을 뒤로한 채, 자레드는 그렇게 레나의 투지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최대한 빨리 좋은 스승이 될 사람을 찾자. 내가 먼저 유능한 스승이 될 인재도 선점하는 거야.’
목표도, 목적도 확실해졌다.
남은 것은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