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9
제 19화
7장. 제작의 맛 – 3화
덜덜덜. 덜덜덜.
“마차 안이 저 때문에 꽉 찬 느낌이에요. 영주님, 제가 마부 옆에 앉아서 갈까요?”
“아냐, 괜찮아. 그리고 꽉 차면 누구 때문에 꽉 차겠냐? 내 몸뚱어리 때문이지.”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영주님을 욕보이려고 말한 건 절대 아니었는데……!”
“하하, 괜찮아. 차라리 둘이 아니라 셋이니까 훨씬 나은 것 같다. 그나저나 아르케네스.”
“예, 영주님.”
“억지로 있어 달라고 하지는 않을게. 나와 헤이즈가 제작품을 파는 것을 보고, 네가 나와 함께하고 싶은지 결정하길 바란다.”
“감사합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을 갑자기 받은지라 아직도 얼떨떨하네요. 마치 영주님은 오래전부터 저를 알고 계셨던 것 같기도 하고…….”
“원래 인연이라는 게 그렇지.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연결되기도 하는 법이거든.”
“어쨌든 동행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로넬라 영지에는 제가 만들어 놓은 연줄이 꽤 있습니다. 맡겨 주시면 좋은 명당을 찾아 드릴 수 있습니다!”
“고마워.”
“그리고 아키…… 라고 불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워낙에 이름이 길기도 하니까요. 하핫.”
나를 보며 쭈뼛쭈뼛 몸을 배배 꼬는 아르케네스, 아니 아키의 모습에 흠칫 놀랐다.
뭐야, 같은 남자에게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움을 타는 모습은? 익숙하지 않다.
어쨌든 아키와 함께하게 됐다.
나는 재산을 모두 잃고 갈 곳이 사라진 아키에게 로넬라 영지로 향하는 상행에 동행하도록 제안했다.
무턱대고 내 사람이 되어 달라고 말하지는 않았고, 내 수완이나 판매 아이템을 먼저 봐 달라고 했다.
그리고 괜찮다고 판단되면, 이것에 관련해서 영지에 상단을 하나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상단의 상단주를 맡아 달라고 했던 것이다. 초면에 실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아키는 죽을 뻔했던 산적 소굴에서 구출되자마자, 갑자기 상단을 맡아 달라는 제안이 들어온 터라 그런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이해는 간다.
하지만 나도 여기서 아키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제안도 ‘급발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괜히 머뭇거리다가 아키가 떠나 버리면, 다시는 이런 좋은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인연이 닿은 것은 맞는지, 마음이 통했다.
그래서 나와 아키, 헤이즈는 마차를 타고 로넬라 영지로 이동 중이었다.
“아키, 지금까지 네 얘기를 들려줄 수 있어? 어차피 로넬라 영지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네 얘기를 들어 보자. 여기 누구보다 남의 얘기를 듣기 좋아하는 헤이즈도 있고 말이야.”
“아키! 어쩌다가 우리 영지로 방향을 잡게 됐던 거야?”
스물셋인 헤이즈였기에 그녀는 거침없이 스물의 아키에게 말을 놓았다.
둘은 나와 달리 평민 출신이니만큼, 서로의 친근한 대화는 보기 좋았다.
“사실 저는 오래전부터 장사꾼이 되고 싶었어요. 상인이 아니라, 꾼. 바로 장사꾼 말이에요.”
아키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로넬라 영지로 향하는 여정 동안, 우리는 쉬지 않고 이어지는 아키의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하나같이 재밌으면서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장사꾼 꿈나무의 좌충우돌 스토리였다.
* * *
로넬라 영지, 던전 인근에 위치한 상인의 거리.
우리는 이곳에 짐을 풀었다.
나는 아키가 미리 맡아 두었다는 자리를 보고는 놀라서 그에게 물었다.
“와, 자리가 좋네. 이런 자리를 어떻게 맡아 둔 거야?”
“사실 로넬라 영지가 아시다시피 던전 영지로 유명하잖아요? 그래서 향후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봐서, 오래전부터 상인의 거리를 관리하는 담당자에게 수시로 뇌물을 먹여 왔었죠.”
“뇌물을 썼다? 잘 먹혔어?”
“한 번도 안 먹은 놈은 있어도, 한 번만 먹는 놈은 없죠.”
“하하하.”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것이 아키의 성격이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세히 보면 나와 비슷한 구석이 많은 녀석이기도 했다.
“영주님이 저를 구해 주셨으니 그에 걸맞은 보답을 하는 겁니다. 사실 이것으로는 많이 모자라다고 생각하지만요.”
“아냐, 충분해. 최고의 자리야. 던전으로 향하는 길목의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잖아? 여기만큼 유동 인구가 많은 장소도 없을 거야.”
나는 대만족이었다.
사실 좋은 자리는 이미 다 임자가 있다 해서, 거리 외곽에서 장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키의 수완 덕분에 가장 좋은 장소를 얻었다. 벌써부터 그의 능력 발휘가 시작된 것이다.
“헤이즈 누나, 뭐 해? 뒤돌아 있어야지.”
“응?”
“영주님께서 약초를 제작하려고 하고 계시잖아. 이 레시피는 우리가 봐서는 안 되는 거야.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절대 알아서는 안 돼.”
“아, 맞다! 그렇지! 맞아, 네 말이 맞아. 영주님, 죄송해요!”
“아냐. 내가 말하려고 했는데, 아키가 먼저 말해 줬네.”
“로넬라 병의 치료제라면 정말 획기적인 상품이 될 겁니다! 영주님께서 맛보기로 판매하시려는 거잖습니까? 딱, 첫 번째 상품만 싸게 파시면 됩니다.”
“다음부터는 가격을 올린다?”
“예. 어차피 입소문은 병이 치료된 헌터가 알아서 퍼뜨릴 겁니다. 싼값에 치료제를 구했다는 사실은 헌터들에게 무용담만큼이나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니까요.”
“내 생각도 일치해. 아키, 너 정말 예리하구나?”
“과찬이십니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이 많을 뿐이죠. ……하하하.”
다시 아키가 얼굴을 붉혔다.
얘, 왜 그러는 걸까.
자꾸 내 말을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칭찬에 약한 스타일일까?
어쨌든 첫 번째 치료제 제작이 완료됐다.
확실히 제작 스킬이 있으니, 내가 집중하지 않아도 알아서 몸이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약초 제작이 이어졌다.
[약초 제작을 완료하였습니다!] [약초 제작의 숙련도가 크게 올라 숙련 레벨 2가 되었습니다!] [하루 상승 최대치를 달성하였습니다. 24시간 동안 숙련도의 추가 상승이 불가능합니다.]‘역시 바로 한계 발동이네. 이것 때문에 버그를 몰랐던 초창기에는 숙련도 작업에 몇 달이 걸렸지. 지금 생각해도 토 나오네.’
이제는 숙련도 제한의 파훼법을 알고 있으니 상관없다.
“치료제의 제작이 끝났다. 마력 포션은 일찌감치 만들어 왔고.”
나는 두 개의 병을 흔들어 보였다. 하나는 로넬라 병 치료제고, 하나는 마력 포션이었다.
마력을 10 회복하는 포션으로, 헌터들 사이에서는 ‘최하급 마력 포션’으로 불리는 수준이었다.
“영주님, 준비되셨습니까? 헤이즈 누나, 준비됐죠?”
“됐다.”
“응응! 열심히 홍보할 준비 됐어!”
“그럼 바로 판매자를 물어 오겠습니다. 어? 잠시만요!”
다음 순간.
아키가 갑자기 인파 사이로 달려가더니, 두 개의 검을 허리춤에 차고 있는 헌터에게 말을 걸었다.
“톨른 아저씨! 잘 지내셨어요?”
“어? 아키, 아니냐?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크리비아 영지로 간다면서? 그 망한 영지에는 왜 가나 했드만?”
어디선가 팩트로 뼈를 묵직하게 때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사실 저게 대외적으로 내 영지를 보는 타인의 평가가 맞으니까. 개선이 시급하다.
“아저씨, 로넬라 병 치료는요?”
“뭐, 아직까진 얕게 기침하는 정도라서 버티고 있다. 원체 치료제가 비싸야 말이지. 니미럴, 재수 없게 병에나 걸리고. 망할.”
“치료제 비싸잖아요? 부르는 게 값이고, 대신관에게 받는 축복은 값을 치러도 대기가 반년이고요.”
“후아, 그러게나 말이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냐?”
“아저씨, 이거 아저씨에게만 알려 드리는 비밀인데…… 크리비아 영지에서 로넬라 병의 획기적인 치료제가 발견된 것 같아요!”
“헐? 그게 정말이냐? 처음 듣는 소식인데?”
“당연하죠! 개발된 지 이틀밖에 안 됐거든요. 이미 한 분이 치료제를 마시고 완치되셨어요!”
“어디냐? 어디로 가야 살 수 있는데?”
톨른의 물음에 아키가 내 쪽을 가리키며, 살짝 윙크를 보냈다.
나와 헤이즈는 단정하게 자리를 잡은 자세로 톨른을 향해 환한 미소를 보였다.
오늘만큼은 나는 영주가 아니라, 크리비아 영지에서 온 약초와 포션 제작자이니 말이다.
내가 영주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공식 통보 없이 이웃 영지를 방문한 것이 된다.
그러면 로넬라 영지 영주의 공개 항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런 머리 아픈 일은 사양하고 싶다.
“저분이 바로 치료제를 개발하신 분이에요. 가격은 제가 특별히 손을 써놨으니, 아저씨한테만 1골드에 팔게요.”
“헐, 겨우 1골드에?”
“아저씨만요. 아저씨가 워낙에 사람도 좋으시고, 아는 분도 많으시니까! 제가 챙겨 드리는 특전이에요!”
“어서 안내를! 치료제를 사고 싶구나. 돈은 얼마든지 있어! 근데…… 사기는 아니지?”
“아저씨, 제가 언제 거짓말하는 것 보셨어요?”
“없지. 네 말이라면 항상 믿는다만, 너무 얼떨떨해서.”
톨른이 아키의 손에 이끌려 내 앞으로 왔다.
“어서 오세요! 크리비아 영지에서 온 상단이에요! 영지에서만 독점 판매되는 치료제의 처음이자 마지막 외부 판매랍니다!”
헤이즈가 반갑게 안내 멘트를 날렸다. 유려하게 말하면서도 막힘없는 것을 보니, 꽤 오랜 시간 속으로 연습한 듯하다.
나는 말을 덧붙였다.
“치료제는 지금 바로 제작을 완료한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약초를 찧은 흔적이 있는 도구들을 보이자, 톨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가 내게 물었다.
“치료약을 개발했다고요? 정말 로넬라 병에 효과 있는 겁니까? 확실해요?”
“효과가 없으면 지불한 금액의 10배를 돌려드리죠. 아니, 1000배도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나는 힘주어 소리 높여 말하며, 동시에 톨른의 상태를 스캔했다.
[*경고 : 로넬라 병에 걸린 상태입니다. 치료가 필요합니다.] [*경고 : 병세가 곧 악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상 기대 수명은 1개월입니다.]‘기침이 심해지기 직전이군. 약효는 거의 즉시 나타나겠어.’
메리와 달리 그래도 상태는 양호해 보였다.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는 하지 않고 있으니, 크고 작은 기침이 수시로 반복될 것이다.
“제가 사겠습니다. 어차피 민간요법도 돈 주고 해 보고 있는 판국에 1골드쯤은 아깝지 않습니다.”
톨른이 금화 하나를 건넸다.
그의 말대로 많은 몬스터 헌터들은 목숨을 담보로 던전에서 싸우는 만큼 큰돈을 번다.
그래서 그들은 씀씀이에 거리낌이 없었다.
이들을 주요 고객으로 우리 영지에 들일 수 있다면, 단언컨대 악몽의 숲 근처의 마을들이 번영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다.
“구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조금 특별한 절차가 있습니다. 여기 서명을 남겨 주시면 됩니다!”
나는 소유권 이전 계약서 하나를 내밀었다. 에서 했던 그대로 따라 한 소유권 리셋 버그 작업이었다.
“이건 좀 특이하네요. 치료제 구매하는데 계약서라니. 뭐, 내용은 딱히 특별한 건 없군요. 이 약물의 소유권을 ‘톨른’에게 이전한다. 기분이 좀 묘한데?”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웃으며 쓱쓱 서명을 했다.
백지 계약서도 아니고, 소유권을 이전한다는 한 줄의 내용만 적힌 문서라 부담 없는 내용이었다.
‘좋아. 이제 다른 곳에 자리를 펴고, 바로 제작하면 숙련도를 또 올릴 수 있겠어.’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톨른에게 치료제를 건넸다.
이윽고 그가 병을 열어서는 벌컥벌컥 내용물을 삼켰다.
역시 많은 포션을 마시는 것이 일상인 헌터라 그런지, 비린 맛이 날 텐데도 거침없이 들이켜는 모습이었다.
“약효가 체감할 정도로 나타나기까지 30분 정도 걸립니다. 가장 빠른 효과는 기침이 멎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다음 엉망으로 흩어진 체내의 기운이 질서를 찾을 겁니다. 저는 계속 여기 있으니, 잠시 쉬었다가 오시죠.”
“마침 여관에 자리를 맡아 둔 터라. 그럼 약효가 있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만약 거짓이면…….”
“말씀드렸잖아요? 1000골드를 보상해 드리죠. 아니, 거기에 제 손모가지도 걸겠습니다.”
나는 자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