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96
제 196화
68장. 압도적인 힘으로! – 1화
나스 대륙력 1416년 9월 1일.
8월의 달력을 찢는 병사의 눈빛은 우수에 잠겨 있었다.
“벌써 9월이네. 이렇게 일 년의 삼분의 이가 지나가는구나.”
“그러게 말이다. 우리 내년에는 말년 초병(哨兵) 신세를 면할 수 있을까?”
“안 될 거야. 우리처럼 한 푼도 상납 안 하고 몸으로만 때우는 사람들은 애초에 보직에서부터 불이익을 주잖아.”
“빌어먹을 인생…….”
대화를 나누는 두 병사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부정부패와 돈에 찌든 것은 군인의 세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심했다.
군납 비리는 모든 군 장성이라면 기본으로 하는 것이라서, 언급하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였다.
“근데 뭐, 나름 꿀 보직이잖아? 크리비아 놈들은 여기에 관심 없는데, 그쪽 국경을 보고 있으니.”
“그러게. 매일 산을 바라보고 돌아다니는 짐승들만 열심히 봤더니 시력이 좋아진 느낌이다.”
호-. 호호-.
병사들이 제법 싸늘해진 밤공기에 차갑게 식은 손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때.
스르르륵.
전혀 눈치채지 못한 두 병사의 뒤편에서 인영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뜻 보기는 30대 남성으로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 안에 모습을 숨긴 사람은 바로 클로이였다. 위장을 한 것이다.
“춥다, 추워…….”
“그러게 말이다.”
두 병사는 여전히 불청객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푸욱. 푸욱.
단 두 번의 소리와 함께 두 병사가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클로이의 암습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한 것이다.
고요 속의 죽음.
그것은 최전방에 있던 초소에서부터 줄줄이 시작됐다.
모든 것이 평소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광경이었지만, 그곳을 지키는 병사들은 계속 죽어갔다.
하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자신의 죽음을 알릴 기회도 부여받지 못한 병사들은 누가 찔렀는지도 모르는 단검에 불귀의 객이 되었다.
그렇게 접경지대의 전방 초소들은 빠르게 무력화됐다.
무서운 것은 무력화되었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할 정도로 엉망인 국경수비대의 상태였다.
척척. 척척. 척.
이윽고 야음을 타며 국경을 넘은 병사들이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로 크리비아 왕국에서 파견된 최정예 군대였다.
오랜 평화.
그 달콤함에 취한 파우페르 왕국의 병사들에게 ‘전쟁’이라는 단어는 애초에 머릿속에 없었다.
그것은 지휘관들도 마찬가지.
크리비아 왕국의 군대가 순식간에 국경을 넘어 첫 번째 요새 앞까지 당도했지만.
그들을 막아서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위험을 알리는 그 어떤 경보 체계도 가동되지 않았다.
임무를 마친 클로이가 바로 라키스의 옆으로 복귀했다.
현재 본군을 지휘하고 있는 것은 라키스였기 때문이다.
물론 기사단장 엘라도 함께 있었고, 치유사 헤이즈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레나 역시, 헤이즈와 함께 호흡을 맞추기로 한 상태였다.
라키스가 클로이를 격려했다.
“고생했다.”
“별말씀을.”
“후우.”
라키스가 뜨거운 숨을 토해 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크리비아 왕국의 최정예로 선발하여 데려온 병사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자신의 진격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는 매우 중요한 세 사람이 없었다. 바로 자레드와 이자벨, 그리고 나오미였다.
하지만 라키스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세 사람의 부재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폐하, 부디 무탈하시기를.’
라키스가 목걸이에 진하게 입을 맞췄다. 늘 큰일을 앞두고 자신에게 하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의식과 함께 늘 1순위로 하는 기도를 했는데, 오늘도 전처럼 자레드의 무사 귀환을 빌었다.
스릉!
그가 검을 빼내어 들었다.
자레드가 자신에게 하사한 두 개의 검 중 하나인 ‘바스테레의 마검’이었다.
“전군!”
척! 처척! 척!
라키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든 병사가 일제히 돌격 자세를 취했다.
특히 최전방에 배치된 아그레시오 기사단은 투구의 가리개를 내리고 전속으로 돌격할 준비를 마쳤다.
“진격하라! 목표는 파우페르 왕국의 왕도, 파센티아다!”
라키스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동안 짐승의 울음을 제외하면 조용하기 그지없던 파우페르 왕국의 국경에서 힘찬 함성이 들려오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생각지도 않았던 적을 갑자기 마주하게 된 국경수비대의 머릿속은 새하얀 백지처럼 변해 버렸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
“모두 대기.”
나는 어둠 속에 철저히 모습을 숨기고 있는 주술사와 마법사들을 향해 손을 뻗어 신호를 보냈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곳은 파우페르 마법사단이 있는 곳이었다.
파우페르 마법사단의 거점이 우리 왕국과의 접경지대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동은 은밀하게 이뤄졌다.
먼저 내가 사전 답사를 했고.
이후 전투에 동원할 주술단, 마법사단의 모든 구성원을 멀티 텔레포트로 데려왔다.
여기서 시간이 다소 지체되기는 했다. 인원이 늘어난 만큼 소모되는 마력도 늘어났으니까.
하지만 결국에는 해냈다!
기껏해야 일반 마법사는 멀티 텔레포트로 사람을 데려온다고 해도 최대 두세 명이 고작이다.
한 사람에 1,000이라는 다량의 마력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본 3만을 훌쩍 넘기는 마력 스탯과 다양한 보조 수단, 빠른 마력 회복력이 있는 내게는 불가능한 이동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나절에 걸쳐 미리 주술사와 마법사들을 은밀히 데려왔고, 현재 매복 중인 상태였다.
처음부터 파우페르 왕국과의 전쟁에서 내가 노림수로 삼은 대상은 마법사단이었다.
그들이 유일하게 파우페르 왕국에서 멀쩡한 집단이며, 동시에 핵심 전력이기도 했으니까.
정면 승부는 아군의 피해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었기에 나는 확실히 허를 찌를 기습의 계책을 세웠다.
그것이 지금이었다.
우리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국경수비대 쪽에서 지원 요청을 할 것이고, 그러면 반드시 마법사단이 출격할 테니까.
바로 그때.
“출격 준비! 크리비아 군의 공격이다! 북부에서 놈들의 대병력이 나타났다! 모두 출격 준비!”
황급히 소식을 알리는 마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통신석을 통해 소식이 전달된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금 주변을 살폈다.
일찌감치 주변에 매설해 둔 자레드 지뢰가 마력을 불어넣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그저 아무 역할을 할 수 없는 고철 덩어리일 뿐이지만.
내가 마력을 불어넣는 순간.
자레드 지뢰는 확실한 살상 능력을 갖춘 살인 무기로 변한다.
‘주변에 워낙에 숲이 우거져 있어서 시작부터 플라이 마법을 쓸 수는 없을 거야. 개활지까지 충분히 헤이스트로 빠져나온 다음, 북쪽으로 플라이 방향을 잡겠지.’
마법사로 뼈가 굵은 나이기에, 그들의 대응 체계와 심리도 충분히 예상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의 존재를 꿈에도 알지 못하는 파우페르 마법사단의 마법사들은 황급히 뛰쳐나오며, 서둘러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거점에 국경과 이어지는 대규모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겠지만…….
사전에 첩자를 보내어 조사했을 때, 나는 대응 체계가 허술하다는 점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즉, 오늘의 전략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계산된 안배였다.
“…….”
모두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전투의 시작은 지뢰 폭발을 기점으로 하도록 사전에 말을 맞춰 둔 상태였으니까.
인비저빌리티를 시전한 상태로 확실하게 모습을 숨기고 있던 나는 더 많은 마법사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앞서 나온 마법사는 지뢰 매설 구간을 지나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폭발이 일어나면, 그들은 갔던 길을 되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뒤에서 아군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 갈 길을 묵묵히 갈 멍청한 마법사는 없겠지.
그때.
“모두 서둘러라! 크리비아 왕국 놈들이 우리를 기습했다! 국경이 위험하다!”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바로 마법사단 단장이자 7클래스 마법사인 레이진의 목소리였다.
다음 순간.
“공격!”
개전을 알리는 짧은 외침과 함께, 나는 발밑에서 시작되는 지뢰의 도화선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샤아아아!
마치 휘발유로 만든 기름띠에 불을 붙인 것처럼, 도화선을 따라 푸른 마력이 쫙 번져 나갔다.
그렇게 1초? 아니, 1초도 채 되지 않는 순간에 모든 자레드 지뢰가 활성화됐다.
그리고.
퍼엉! 퍼엉! 퍼퍼퍼퍼펑!
“끄아아!”
“크아악! 내 다리가!”
“커헉! 내 눈! 앞이! 앞이 보이지 않아!”
대폭발이 일어났다.
주변의 숲 전체가 뒤흔들리고, 버섯구름이 사방에서 피어오를 정도의 대폭발이었다.
좀처럼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첫 전투에 모든 것을 끝낸다.’
나는 다짐했다.
이 전투로 확실하게 파우페르 왕국의 모든 기대와 희망, 의지를 꺾어 버리겠다고.
그러기 위해서 내게 필요한 것은 어쭙잖은 승리가 아니었다.
레이진이 이끄는 파우페르 마법사단의 몰살(沒殺)! 그뿐이었다.
* * *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초유의 사태.
레이진은 머릿속이 온통 백지가 된 것처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빠르고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했지만, 이것은 예상을 한참 벗어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마법사단과 인접한 위치에 적의 마법 전력이 매복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장에는 크리비아 왕국의 국왕인 자레드가 직접 마법사와 주술사들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끄아아아! 내 다리가!”
“아악! 제발 살려 주십시오!”
“죽고 싶지 않아……!”
마법사들의 절규는 참혹했다.
실드 한 번, 블링크 한 번 사용할 틈도 없이 당해 버린 지뢰 기습은 치명적이었다.
그나마 레이진은 동물적인 직감으로 현장을 바로 벗어나서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단 0.1초라도 망설였더라면?
지금쯤 팔이든 다리든 주인을 잃고 날아가고 있었을 터였다.
국경을 대놓고 넘어왔다고 하기에는 마법사와 주술사의 수가 너무 많았다.
멀티 텔레포트?
이것도 대안은 될 수 없었다.
한 번에 기껏해야 자신을 포함해서 하나에서 둘을 데려오는 것이 고작이다.
한데 전장에서 눈대중으로 보이는 적의 수는 무조건 최소 300명이 넘었다.
우우우웅!
레이진이 당황한 마음을 채 수습하기도 전에.
그는 하늘에서 펼쳐지고 있는, 지금보다 훨씬 더 비현실적인 광경에 혀를 내둘러야 했다.
그것은 바로.
푸슈슈슈!
자레드를 중심으로 공중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수천 개의 매직 미사일 다발의 향연이었다.
데큐플 트랜센던스 매직 미사일을 알지 못하는 레이진으로서는 그저 아연실색할 따름이었다.
이 엄청난 수의 마법 구체는 정확한 경로로 떨어지고 있었다.
예리하게, 파우페르 왕국의 마법사들이 있는 위치로만 말이다.
“아아아!”
레이진이 탄식을 터뜨렸다.
저렇게 많은 마법 구체를 모두 막아 낼 수 있는 만능의 마법은 없었다.
최악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흐르. 브그르. 꾸르쁘느. 프르이으.”
“으아! 몸이 떠오르고 있어!”
“몸이 굳었어! 움직이지 않아!”
회색 로브를 뒤집어쓴 주술사들이 주문을 외우자, 마법사들이 대책 없이 하늘로 붕 떠올랐다.
“지옥…….”
레이진이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였다.
생지옥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