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
제 2화
1장. 내가 영주라니? – 2화
자레드는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물에 적신 수건으로 얼굴을 힘껏 닦았다.
수건의 감촉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출렁거리는 볼살이 느껴졌다.
대단히 기분이 나빴지만, 이젠 내 몸이 된 마당이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서 돼지 같은 몸이 갑자기 늘씬하고 슬림한 멋진 몸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
“크헉, 세수만 했는데도 숨이 차네. 사람 몸이 이럴 수가 있어?”
물 한 번 마시고.
얼굴 한 번 닦았더니.
자연스럽게 침대에 드러눕고 싶어졌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몸이 반쯤 기울어 침대로 향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자레드는 힘껏 몸을 일으켰다.
천근만근 무겁게 가라앉는 몸과 달리, 그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단, 생각해 보자.’
차근차근 짚어 보기로 했다.
우선 이 세계는 전생에 즐기던 게임 의 세계관 속이다.
전생의 자신에게 일상의 낙이라고는 게임밖에 없어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을 에 투자해 왔다.
쉽게 말해 고인물, 아니 고이다 못해 썩은 물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머릿속에는 오랜 시간 동안 겹겹이 쌓인 짬밥과 기억, 캐릭터 육성 및 영지 운영 계획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크고 작은 사건으로 이슈가 됐던 의 버그 리포트는 거의 완전 암기 수준이었다.
게임 를 포스팅 하는 파워 블로거 1위를 10년 가까이 차지했으니, 이론상으로는 거의 초고수의 반열에 들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물론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았다.
에서 자신은 눈에 띌 정도로 강력한 랭커도 아니었고, 그저 그런 중위권 유저 중의 한 명이었다.
파워 블로거라는 이론가의 타이틀을 빼면, 게임을 오래 한 고인물 아재 정도. 딱 그 느낌이었다.
‘대륙 내전으로 불리는 나스 대전쟁은 지금으로부터 5년 후의 이야기. 즉, 5년의 여유가 있다는 얘기야.’
자레드는 대전제를 깔았다.
전 대륙이 전쟁에 휘말리는 시기까지는 아직 5년이 남아 있다.
그 말은 즉, 앞으로 5년 동안은 자신과 영지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리고 다음 전제를 깔았다.
‘에 대한 지식이 이렇게 머릿속에 무궁무진한데,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는 건 낭비야. 내게는 남들에게는 없는 강점이 있는 거야. 아무도 모르게 이 세계에서 빨 수 있는 꿀이 정말 많다고. 꼼수, 버그. 많잖아?’
압도적인 지식의 이점!
이것을 이용하면 남들보다 유리한 미래를 선점할 수도 있고, 그들이 알지 못하는 혜택을 마음껏 누릴 수도 있다.
물론 변수도 고려해야겠지만, 어쨌든 달콤한 꿀맛을 먼저 볼 수 있는 것이다!
‘전생에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지만, 이렇게 환생한 마당에 제대로 성공해 보자! 사실 로망이었잖아? 나스 대륙 최강의 용사이자 천하 통일을 하는 명군주가 되는 것.’
이어 목표 의식을 확고히 했다.
항상 동기 부여를 위해, 크고 작은 목표를 세우는 것은 전생의 자신이 즐겨 하던 일이었다.
비록 현실은 말단 사원일지 몰라도, 늘 꿈은 크게 가졌었다.
동료들이 허무맹랑한 꿈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언젠가는 대기업의 CEO가 되겠다며 호언장담했던 자신이었다.
하물며 현생이라고 다를 것이 무엇일까?
오히려 전생에는 알지 못했던 미래를 알고 있으니, 목표를 이룰 가능성도 훨씬 더 높아졌다.
‘그렇다면 살아야 해. 반드시 살아남아야 해! 내가 누군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남을 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주어지는 거다.’
자레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축 처지는 뱃살이 솟구쳐 오르던 의욕을 끌어내릴 만큼 묵직하게 가라앉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움직였다.
현생의 기억을 이어받아, 또렷이 기억이 남아 있는 집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었다.
* * *
집무실에 오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심안 스킬을 선점하는 것이었다.
남들과 공유될 수 없는 유일한 스킬이기 때문이다.
‘심안 스킬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에서 꼼수를 이용해 얻을 수 있었던 스킬! 이게 있어야 영지 경영이 매우 수월해져. 유망주 탐색에서도 압도적인 장점이 되고.’
심안(心眼), 패시브 스킬.
그럴 듯한 이름이 붙어 있는 스킬로, 쉽게 말하면 상대의 스탯과 성향을 스캔할 수 있는 스킬이다.
그리고 심안 스킬 사용자의 능력과 레벨에 따라 좀 더 세분화된 정보를 알 수 있기도 했다.
그래서 고레벨일수록 특전이 많아진다.
이를테면 이성의 호감도나 은밀한 성감대…… 라든가 하는. 또한 충성심을 엿볼 수도 있다.
‘영지를 경영하든, 가신을 부리든, 정복 전쟁을 하든 어떤 루트를 탄다고 해도 심안 스킬은 무조건 필요해. 영지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심안부터 먼저 얻자. 혹시라도 누가 먼저 악령 이자벨라를 만나기라도 하면 선점할 기회를 빼앗길지도 몰라. 일분일초가 급해!’
나는 서둘렀다.
심안은 악령 이자벨라가 가지고 있는 고유 능력이다.
그녀와의 계약을 통해서 얻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으며, 중복해서 다른 누군가가 또 얻을 수도 없다.
즉, 나스 대륙 전체에서 계약으로 심안을 획득할 수 있는 인간은 단 한 명뿐이라는 얘기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특전이다.
‘마침 오늘이 이자벨라를 매월 유일하게 소환할 수 있는 시기인 1일이기도 하고.’
오늘은 1월 1일.
일이 잘 풀리려는지 몰라도, 날짜도 딱 맞는다.
‘지금은 이것밖에는 소환에 쓸 수 있는 아티팩트가 없겠지?’
기억을 되짚는 가운데, 나는 이자벨라의 소환에 쓸 수 있는 아티팩트를 떠올렸다.
고위급의 악령을 불러내는 의식을 치러야 하기에 엄청난 양의 마나가 필요했다.
하지만 현재의 마력 수치 75로는 의식을 치르기에 터무니없이 스탯이 모자라고, 유일하게 가능한 물건도 하나밖에 없다.
바로 아버지 바렛 자작 – 현생의 기억을 모두 각성하면서 이제 그분은 나의 아버지다. – 님이 유언과 함께 물려주신 아티팩트.
‘아들아, 이 아티팩트를 꼭 네 성장을 위한 의미 있는 곳에 쓰거라!’
아버지가 남긴 유언이 머릿속에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도 마법 연성 과정에서 의미 있게 보조 수단으로 사용되길 바라셨던 것 같지만…….
나는 이것을 이자벨라를 소환하는 의식에 쓸 생각이었다.
잠시 고민했던 이유는 하나.
의식에 사용된 아티팩트는 생명력을 잃고 분해되어, 한 줌의 재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악령을 소환하는 저주를 직접 감당해 내기에 더 이상 아티팩트로 기능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즉 아버지의 유품이 사라지는 셈.
하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영지 사정으로는 정교하게 세공된 고가의 아티팩트를 살 돈이 없었다.
이 녀석이 유일한 수단이었다.
‘어쨌든 성장을 위한 의미 있는 수단인 건 맞으니까요.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시킨 뒤.
나는 집무실 구석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제 의식을 거행할 차례다.
저주받은 악령을 내 앞으로 소환하기 위한 의식!
그녀에게서 계약으로 심안을 얻어 내기 위한 꼼수의 시작이었다.
“레베르르, 오르리느거스, 저르마, 히므드리오.”
아티팩트에 손을 얹은 채, 이자벨라를 소환하기 위한 시동 주문을 외웠다.
드르륵! 드르륵! 쿠쿵쿵!
치이이익!
그러자 아티팩트가 격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하며, 검붉은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어둠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악령의 소환 의식이었다.
-꺄하하하! 꺄하하하하!
그러자 연기의 틈새에서 손톱을 긁는 듯한 하이 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며, 이내 한 덩치 하는 여성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악령 이자벨라였다.
과연 에서 보았던 것처럼 그녀는 거대한 몸을 가진 푸짐한 몸매의 악령이었다.
덩치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내 몸도 그녀 앞에서는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었다.
이자벨라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내게 한 걸음 다가와 물었다.
-호오, 네가 날 불렀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자벨라가 내게 다시 물었다.
-어리석은 인간, 무엇이 그리 갖고 싶어 나를 불렀어?
“심안을 갖고 싶습니다.”
-심안? 정말 탐욕스러운 욕망을 가지고 있구나! 다른 사람의 속이 들여다보고 싶은 거야?
“물론입니다.”
나는 침착하게 답했다.
여기서 겁을 먹거나,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이면 이자벨라는 흥미를 잃고 떠나 버리고 만다.
그녀를 소환할 수 있는 것은 인생에 단 한 번뿐이다. 다음은 없다.
게다가 다른 존재들의 호출도 잦은 악령이기 때문에 바쁘다.
이번 기회를 잡지 못하면, 영영 심안을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흐으음.
내 대답에 이자벨라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내게로 향해 숙이며, 채근하듯 빠른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네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뭐지? 당장 떠올려 봐! 지금 바로 말이야!
‘좋아. 히든 스킬을 얻을 기회!’
이자벨라는 모를 것이다.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내가 준비한 꼼수에 걸려든 것이다!
를 하던 당시, 유저들은 이자벨라와 계약하는 과정에서 값비싼 아티팩트나 대량의 금화를 허무하게 잃곤 했었다.
왜냐하면 이자벨라로부터 ‘네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보통 값비싼 것들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영지의 안전이라든가 아버지의 아티팩트 따위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면 그 순간!
내가 떠올린 그것을 이자벨라에게 빼앗기고 만다.
영지를 떠올렸다면, 영지 전체에 악령의 저주가 드리우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멸망이다.
하지만 나는 준비한 대로 ‘그것’을 떠올렸다.
그러자 다음 순간!
썰면 세 접시는 나올 것 같은 이자벨라의 두꺼운 입술이 양옆으로 찢어지며 그녀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꺄하하하! 이번에는 또 어떤 아티팩트를! 아니면 얼마나 많은 돈을 갖게 될까! 네가 떠올린 그것을 취해 주겠어! 예쁜 여자? 그것도 좋아. 잡아먹고 그 미모를 흡수하면 그만이니까!
혼자 김칫국을 실컷 마시고 있다.
예전에 에서도 봤던 리액션이라 새삼스럽진 않다.
이제 곧 저 득의양양한 표정은 똥 씹은 얼굴로 변하겠지!
“신이시여, 저를 굽어 살피소서.”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도를 올리고 해탈한 듯, 눈을 감았다.
이자벨라에게서 심안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정도’쯤은 희생할 각오를 하고 만든 자리니까.
[이자벨라와의 영원한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자벨라의 심안을 획득합니다! 지금부터 당신은 심안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계약의 대가로 당신의 ‘순수한 첫키스’가 이자벨라에게 영원히 귀속됩니다.]-어어?
이자벨라의 놀란 목소리와 함께 내 몸이 붕 떠올랐다.
그러자 형체만 존재하던 이자벨라의 몸이 선명해지더니, 이내 실재하는 형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마치 자석에 이끌린 것처럼 내 몸과 내 얼굴이 이자벨라에게로 향했다.
계약의 과정이기에 강제되는 것이었고,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일방통행의 고속도로와도 같았다!
-너! 너, 왜 나랑 점점 가까워지는 거야! 저리 가, 오지 마!
이자벨라가 나를 밀어내려 했지만, 그녀도 계약에 묶인 탓에 피할 수 없었다.
예전 같으면 아티팩트나 금화 따위가 회오리바람과 함께 날아와 그녀의 손에 쥐어졌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녀가 취하게 될 것은 바로 내 첫키스였다. 입술, 그 자체!
왜냐하면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떠올린 것은 ‘신태풍의 몸으로 34년을 지켜온 모태솔로로서의 첫키스’였기 때문이다.
“이자벨라, 계약은 이미 이행됐어. 너도 나처럼 받아들여.”
나는 부드럽게 두 눈을 감았다.
-안 돼! 싫어! 싫단 말이야!
절규하는 이자벨라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고 애국가를 불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그러자 마음이 경건해지며 정신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쪽. 쪽. 쪽.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치 신의 꼭두각시가 된 것처럼, 이자벨라와 진한 키스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저 사람과 사람의, 고깃덩어리 일부가 만나는 감촉만이 느껴진다. ……그렇게 생각했다.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된다고! 크으으읍!
그녀는 절규했고, 난 침묵했다.
까짓것 심안을 얻기 위해서라면 나의 입술쯤이야. 아주 싸게 먹히는 장사였다.
내 첫 키스를 악령에게 뺏겼다는 사실만 잊어버린다면 말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우리’는 충실히, 그리고 아주 찐-하게 계약을 이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