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12
제 212화
72장. 치명적인 일격 – 2화
“클로이! 클로이!”
눈앞에서 오빠의 죽음을 지켜본 클로이의 충격은 상당했다.
내가 몇 번이나 클로이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는 제자리에 멈춰 선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급한 대로 나는 타넥스를 그녀에게 착용시킨 뒤, 억지로 전장을 이탈시켰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다른 마수의 손에 죽을 가능성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다른 곳도 아닌 여기서 아웃브레이크라니……. 그것도 몬스터가 아니라 마수들이 나온다고?’
쿠콰콰콰! 콰콰콰!
나는 차원문을 향해 계속 마법을 퍼부으며 생각했다.
트란퀼루스를 죽인 마수는 몇 번의 마법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강한 놈은 아니었다.
다만 정말 의외의 장소에서 나왔다 보니, 트란퀼루스가 손도 못 쓰고 당한 것이다.
시작은 수월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내가 퍼붓는 공격에 마수들이 족족 죽어가면서, 상황이 빠르게 수습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쿠웨에에에!
차원문 안에서 거친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후우우욱!
방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마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제법 두꺼운 외피로 감싸고 있어, 자레드의 마법 공격을 한두 번 정도는 버텨 낼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
왜애애애! 왜애애애!
그레이 엘프의 경보 체계가 발동되기 시작하며, 경보음이 크게 울렸다.
“…….”
단순 아웃브레이크의 차원을 넘어서, 지금은 마계의 어딘가에 통로를 대놓고 연결한 느낌이었다.
순식간에 불어난 마수들의 규모는 상당해서, 순식간에 회의장 절반을 메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외부로 향하는 출입구가 내가 지키고 선 방향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밖으로 나가려면 무조건 나를 지나가야 한다는 것. 그뿐이었다.
‘트랜센던스 체인 라이트닝.’
빠지지지직!
크웨! 크웨에에! 크웨!
나는 밀집된 공간에 뭉쳐 있는 적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전류 마법을 썼다.
마법에 신성력 축복이 섞여 있어서인지, 일반 체인 라이트닝보다 위력이 훨씬 더 강했다.
상대가 마수이다 보니, 체감 대미지가 훨씬 더 큰 부분도 분명히 존재했다.
제법 묵직한 몸뚱이를 가진 마수들이 혀를 빼물고 픽픽 쓰러져 갔다.
든든한 방패처럼 여겼던 동료 마수가 비명횡사하자, 다른 마수들도 겁을 집어먹는 눈치였다.
쿠웅! 쿠웅!
하지만 놈들에게는 믿는 구석이 더 있었다.
‘어보미네이션.’
소트라스의 전초기지에서 상대했었던 그 괴물이 또 나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비위가 상하고, 토악질을 하게 만드는 괴생물체 어보미네이션.
그때는 한 마리였는데, 이번에는 세 마리가 차원문의 틈을 비집고 나타났다.
“…….”
나는 일단 텔레키네시스 마법을 이용해 아직 온전하게 보존된 트란퀼루스의 시신을 출입구 밖으로 보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던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참담하기 그지없었지만.
지금은 눈앞의 ‘재앙’부터 차분하게 상대해야 했다.
여기서 밀리게 되면, 당장에 그레이 엘프 종족 전체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마족이 나타날 수도 있어.’
아직까지 보이지 않았으나, 나는 이 정도 규모의 군단이면 반드시 마족이 나타나리라고 생각했다.
긴장해야 했다.
마족은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니까.
철컹철컹!
그때, 출입구 쪽에서 거친 금속성이 들리며 다수의 인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레이 엘프였다.
“이런 참담한 일이…….”
참사를 접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여인이 먼저 보였다.
클로이 남매의 어머니인 이미르였다. 그녀의 옆에는 대장로의 수장인 오스테가도 있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뒤를 이어 도착한 것은 우리 쪽이었다. 연회장이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달려온 것이다.
그때, 나와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던 마수들과 어보미네이션을 확인한 헤이즈가 소리쳤다.
“폐하! 이놈들도 마족과 마물들인 거죠?”
그녀의 말에 곁에 있던 모두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마족과 마물.
그것은 과거의 역사서에서나 두루뭉술한 얘기로만 듣던 존재였다.
이미 상황이 벌어진 마당이다. 숨길 이유는 없었다.
트란퀼루스의 죽음으로 시작된 상황이라 시기는 좋지 않았지만, 어쨌든 동료들에게는 확실히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들에게 성마 대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된 듯싶다. 물론 지금은 아니고, 이 사태부터 수습하고 난 뒤겠지만.
나는 힘껏 소리쳤다.
“자초지종은 나중에 설명할 테니, 지금은 모두가 전력을 다해 마수들을 막아 낸다! 마족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해!”
모두가 잔뜩 긴장한 듯했다.
마족이라는 단어는 살면서 듣지 않을 일이 더 많았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모두에게 현실이 됐다.
그오아아아아아!
때를 맞춰 어보미네이션이 괴성을 지르며, 체내 모든 악취를 한 번에 뿜어냈다.
“우웩…….”
헛구역질을 불러일으키는 악취를 참지 못한 몇몇 엘프들이 속을 비웠다.
“모두 공격! 이놈들이 한 놈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아야 그레이 엘프의 터전도 지킨다!”
모두에게 명령을 내렸다.
마수들의 전멸(全滅).
그것 외에 다른 목표는 없었다.
* * *
마수들과의 전투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난타전이었다.
차원문을 통해 나오는 마수의 수는 그 후로도 줄지 않았고, 결국 내궁을 내주고 외궁까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전투에 패해서가 아니라, 꾸역꾸역 쏟아져 나오는 마수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종국에는 마수들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인 탓에 내궁에는 제대로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다.
자레드는 일전에 소트라스의 전초기지에서 채취해 왔던 장액을 이용해 마수들을 요리했다.
그리고 어보미네이션은 모양이 잔뜩 빠지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때와 같은 방법으로 제거했다.
이것만큼 확실하게 어보미네이션을 무찌르면서, 놈의 장액을 채취할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전투 내내, 자레드는 다수의 동료를 사절단에 동행시킨 사실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화력이 자신이 놓친 부분을 완벽하게 메워 줬기 때문이다.
전장 전역을 누비고 다니며 마수들을 베어 넘기는 동료들의 모습은 든든함 그 자체였다.
물론 일이 계속 잘 풀리지만은 않았다.
전사자가 그레이 엘프 쪽에서 발생했다.
클로이 남매 중에 트란퀼루스를 제외하고 유일한 남자 엘프였던 아드리안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는 형의 복수를 하겠다며 어보미네이션 무리 사이로 달려들었다가 안타깝게도 압사로 죽었다.
클로이의 충격은 상당했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난 기쁨의 자리는 하루아침에 생이별을 맞이하는 지옥의 자리가 되어 버렸다.
“으아아아!”
폭주한 그녀는 강제로 타넥스를 탈착하고, 마수들 무리 사이로 달려들었다.
정말 미친 듯이 베어 넘겼다.
어찌나 그 살기가 대단했던지, 좀처럼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마수들도 멈칫할 정도였다.
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는 공격이었기에, 빈틈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헤이즈가 직접 붙었다.
자레드가 따로 지시하진 않았지만, 자신이 클로이를 돌봐주지 않으면 그녀가 위험해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꾸엑! 꾸엑! 꾸에에엑!
어느 정도 질서가 잡히면서 체계적인 반격이 이루어지자, 마수의 수가 급격히 줄어갔다.
내벽에 연신 몸을 부딪치며, 새로운 통로를 확보하려던 어보미네이션도 모두 죽었다.
자레드는 녀석들로부터 앞으로 한참을 쓰고도 넉넉하게 남을 장액을 채취했다.
만약을 위해서 많은 포션 병을 아공간에 보관해 둔 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
치열한 공방전 끝에 전선이 고착화된 것을 확인한 자레드는 홀연히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과아아아-.
그리고 즉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마수 무리의 중심점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데큐플 트랜센던스 체인 라이트닝! 전에 레이진과 그의 마법사단을 일격에 몰살시켰던 필살기를 다시금 꺼내 든 것이다.
구르르릉! 빠지지지직!
대자연의 천둥 번개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전류가 수직 낙하했다.
그리고.
께엑! 꿰에엑! 크에엑!
여기저기서 마수들이 풍선처럼 펑펑 터져 나갔다.
제아무리 덩치 좋고 외피가 단단한 마수들이라고 한들, 고압의 전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들 역시 결국은 생체(生體)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 마법사, 아니 황제의 힘인가? 이것이 정녕 마법이란 말인가?”
대장로 오스테가의 떡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단 한 번의 마법에 차원문 밖에서 날뛰던 모든 마수가 즉사했다.
마치 모든 것을 리셋이라도 한 듯이 마수의 난동이 뚝, 끊긴 것이다.
…….
순간 적막이 흘렀다.
마수들이 모두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것은 라키스를 위시한 자레드의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현장에서 직접 그 광경을 목격했던 나오미나 이자벨은 놀라지 않았지만, 라키스와 엘라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끝난 건가.”
자레드가 천천히 강하했다.
차원문이 조용한 것으로 봐서는 걱정한 것과 달리, 이 정도의 아웃브레이크로 끝이 난 듯했다.
다행이었다.
여기서 더 까다로운 적이 나타났다가는 그레이 엘프의 희생자가 늘어날 테니까.
주변을 살피니, 목숨을 잃은 그레이 엘프의 시체가 적지 않았다.
한데 바로 그때.
쿠와아아아!
차원문 안에서 굉음이 들렸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은 자레드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차원문을 향해 윈드 스피어를 전개했다.
투타타타! 타타타타!
아울러 타넥스의 마력탄도 차원문을 향해 집중포화를 쏟아 냈다.
“클클클!”
이윽고 음흉한 웃음소리와 함께 새로운 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직전까지 자레드와 타넥스의 집중 공격을 받았지만, 상대에게서는 작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외에는 아무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망할…….”
이윽고 새로 모습을 드러낸 존재의 정체를 파악한 자레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케즈만] [경고! 서열 100위 내의 진정한 마족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현재 91위 마족입니다.]마족이었다.
일전에 상대했던 소트라스보다 10단계는 위에 있는 서열의 마족이었다.
“이거나 먹어, 이 나쁜 놈아!”
이윽고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든 미아의 바람 망치가 케즈만의 얼굴을 정통으로 노렸다.
자레드는 그의 대응을 지켜보기로 했다.
어떤 능력을 썼기에 방금 전 공격을 손쉽게 막았는지 궁금했다.
다음 순간.
쿠웅!
자레드는 답을 바로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케즈만의 왼팔 전체에서만 비대칭적으로 활성화되어 있는 방어 역장이었다.
그것은 케즈만의 육체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생체 방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
자레드의 머릿속, 기억의 회로가 부지런히 돌아갔다.
메인 스토리에서 케즈만이라는 마족과 직접 싸워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케즈만과 유사한 육체 형태를 지닌 녀석들은 꽤 많이 상대해 봤었다.
대표적인 것이 서열 55위의 마족이자 던전 ‘제9군의 병영’의 보스 몬스터로 나왔던 악툼이었다.
‘그래, 케즈만 공략의 키워드는 신성력이야.’
새로운 버그 선택지에 대한 계산이 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레드의 시선이 헤이즈에게로 향했다.
때가 되었음을 직감해서일까?
시선의 의미를 깨달은 헤이즈가 굳게 다문 입술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