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5
제 25화
9장. 이자벨라, 이자벨 – 2화
“여기도 시체들이 엄청나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은 거야? 그것보다 자레드! 너무 추워. 바람이 정말 찬데? 아, 흐윽.”
델루크의 은신처에서 설산으로 나오자 이자벨은 칼바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날씨는 한겨울보다 추운데, 하의는 하나도 걸치지 않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죽은 델루크의 시체에서 신발이라도 벗겨 내어 신긴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나도 옷을 벗어 건네준 마당이라 춥기는 매한가지였지만, 그녀의 상태가 더 신경 쓰였다.
“일단 비싼 난방 수단을 좀 쓰자! 이자벨, 최대한 불길에 가까이 붙어. 추위가 스며들지 않게.”
“응. 알겠어.”
나는 파이어 월 마법을 전개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난방용 마법일 것이다.
그래도 제법 불길이 세게 타오르는 덕분에 순식간에 한기가 가셨다.
오히려 따뜻함을 넘어서 뜨거운 느낌이 들 정도로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일단 함정 앞에 섰다.
입구에서부터 정공법으로 올라왔다면, 마지막 함정이 되었을 위치였다.
나는 이자벨에게 함정의 위치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건 추락 함정이야. 언뜻 보기에는 그냥 정사각형의 벽돌들이 박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중에서 절반은 함정이거든.”
“떨어진다는 거야?”
“응, 밟는 순간 떨어지게 되어 있어. 함정 벽돌을 밟으면, 여기 있는 장치가 안에서 바로 레버를 당기면서 벽돌을 내려 버리거든.”
나는 벽의 일부를 어루만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자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겉으로는 살짝 튀어나온 벽면 정도로 보이는데, 내가 그곳을 유심히 만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함정 벽돌의 위치를 다 알고 있는 거야?”
“아니, 그렇진 않아. 어차피 우리는 함정의 위치를 알 필요가 없어. 거꾸로 나가는 건 생각보다 아주 쉽거든.”
나는 벽을 통해 마나를 밀어 넣은 뒤, 파이어볼을 캐스팅하여 마나를 순식간에 발화시켰다.
그러자 벽 안에서 무언가 일그러지고 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끄드득. 끄득. 끄드득.
그러더니 이윽고 모든 벽돌이 일제히 10cm쯤 위로 밀려 올라오며, 정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어떻게 된 거야?”
“함정이 무력화된 거지. 저 안에 기동 장치가 숨겨져 있거든. 마나가 흐르면서 내부의 시스템을 통제하는 건데, 그 권한을 상실하게 만든 거야.”
저벅. 저벅. 저벅.
나는 말을 끝내자마자, 바로 성큼성큼 벽돌 위를 걸어갔다. 이미 바보가 된 함정이기 때문에 거리낌은 전혀 없었다.
“위험해, 자레드!”
“괜찮아. 너는 내가 끝까지 가는 것을 보고, 안전하다 싶으면 따라오면 돼. 믿음을 가져 봐.”
이자벨의 외침이 무색하게 나는 순식간에 함정의 끝에 도착했다.
역시 함정은 발동되지 않았고, 주변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이자벨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자레드, 너는 어떻게 이런 것을 다 알고 있는 거야? 이곳은 처음이라면서? 처음인데 어떻게 와 본 것처럼 알 수 있는 거야?”
“뭐, 리치 델루크에 대한 나름대로의 오랜 연구가 있었다고 할까?”
나는 적당히 둘러댔다.
사실은 에서 경험했던 델루크의 함정들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기에 자신 있게 움직였던 것이다.
델루크가 만든 함정은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는데, 바로 모든 함정에 자동 제어 장치를 설치해 두었다는 점이었다.
제어 장치는 입구에서 올라올 때는 가장 먼 위치에 있지만, 반대로 아지트에서 내려올 때는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딱히 함정 구역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제어 장치를 컨트롤하는 것이 가능했다.
모든 제어 장치가 마정석을 이용한 마나 순환으로 움직이고 있기에 이것만 박살 내면 함정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거꾸로 내려가는 내내, 우리는 이것을 반복하면 됐다.
제어 장치를 망가뜨리고, 더 이상 가동되지 않는 멍청한 함정의 위를 유유히 지나갔다.
그렇게 나와 이자벨은 위기 없이 델루크의 아지트에서 설산 입구까지 단숨에 내려왔다.
중간중간에 이자벨이 극심한 추위를 호소한 탓에 그녀를 업고 내려온 것이 유일한 이슈였다.
예전에 토실토실했던 악령 때와 달리, 지금의 몸은 매우 날씬해서 업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입구에 도착한 뒤.
나는 양손 가득 들려 있는 마정석을 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내게 기증할 생각으로 박아 둔 것은 아니겠지만, 덕분에 귀한 마정석도 꽤 챙겨 가네.”
내가 델루크의 함정과 그 방에서 뜯어낸 것은 제법 값어치가 나가는 마정석들이었다.
등급으로 따지면 ‘상급 마정석’ 정도는 됐는데, 골드로 환산하면 100골드쯤 됐다. 전생의 가치로 따지면 1억 원 정도 되는 셈이다.
이렇게 확보한 상급 마정석은 서른 개였다.
마정석은 마법 수련을 위한 장치에도 폭넓게 쓰이는 만큼, 여러 가지 용도로 활용할 수 있었다.
“이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마법사에게서 얻은 아티팩트고.”
나는 반지 하나를 들어 올렸다.
옆에 있던 이자벨이 은근한 욕심의 눈빛을 내게 보냈지만, 아직은 내 코가 석 자다.
스탯을 만족할 만큼 끌어올리기 전까지는 첫째도, 둘째도 내가 우선이었다.
[성인(聖人) 그라시아의 반지] [분류 등급 : 4성] [옵션 1 : 마력 100 증가] [옵션 2 : 모든 정신 계열의 디버프 마법에 면역 효과를 갖습니다. 그라시아의 가호가 내린 당신의 영혼은 그 누구에게도 절대 더럽혀지지 않습니다.]아티팩트의 옵션 자체는 2개로 많지 않았지만, 2번 옵션이 그 아쉬움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았다.
그래서 아티팩트의 등급 판정도 4성이었다. 정신 계열의 디버프에 대해서 모두 면역이라는 것은 정말 압도적인 특전이기 때문이다.
스탯 옵션까지 좀 더 풍부하게 붙었다면 최소 7성 아티팩트 취급은 받았을 텐데, 살짝 아쉬웠다.
성인 그라시아의 반지.
그것은 에서 평생을 종교에 귀의한 삶을 산 그라시아가 남긴 유물 중의 하나였다.
그라시아의 반지, 안경, 목걸이, 허리띠, 백색 로브.
이렇게 다섯 개의 아티팩트가 ‘그라시아 세트’로 불렸는데, 현실에서의 거래 가격이 현금 10억 원을 호가했던 물품이었다.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었고, 당연히 이 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닐 터였다.
‘반지로도 충분히 사기적이지만, 남은 아티팩트까지 손에 넣으면 정말 엄청난 힘을 갖게 되지.’
나머지 네 개가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그것을 손에 넣은 유저들이 끝까지 출처를 숨겼기 때문이다.
포스팅을 위해 고액의 인터뷰 비용을 약속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끝끝내 알려 주지 않았다.
어쨌든 반지를 여기서 얻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우연이 기연을 만들어 낸 셈이다.
‘감사히 쓰겠습니다.’
나는 긴 시간의 변화를 겪으며 백골이 되어 버린 아티팩트의 원주인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이렇게 마력은 716이 됐다.
아티팩트 사냥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마력 300을 겨우 넘길 정도였는데, 2배 이상 오른 것이다.
이 정도면 4클래스의 마법사가 갖출 스탯이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을 만한 정도가 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네. 지금 스탯이면 슬슬 던전 공략을 욕심내도 되겠어. 마력이 충분해졌으니까.’
벌써부터 몸이 근질거렸다.
나는 에서 영지 운영만큼이나 던전 공략을 광적으로 즐겼던 유저였다.
던전은 수많은 몬스터의 터전이자, 진귀한 아티팩트의 보고다.
안정적으로 공략만 할 수 있다면 성장은 물론이고, 고가의 아티팩트를 손에 넣을 수 있는 던전을 포기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믿기지 않아. 10개가 넘는 함정들 위에서 눈으로 본 것만 해도 1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잖아.”
“그랬지.”
“그런 함정을 네가 아무렇지 않게 거꾸로 무력화시키면서 나왔다는 게 신기해. 꼭 무슨 신을 보는 것 같아. 다 알고 움직이는?”
“신이라! 듣기 좋은 비유네. 아는 게 많아서 도움이 된 걸지도?”
“수상해, 뭔가 수상해…….”
이자벨이 눈을 흘겼다.
그녀는 내가 심안을 얻은 직후부터 사용하는 수많은 꼼수를 봤으니, 의심을 할 여지가 더 많기는 했다.
하지만 결국 심증뿐이다.
내 전생의 시절로 갔다 오지 않는 한, 현생에서의 비밀은 절대 풀지 못할 것이다.
“이자벨,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나 잠깐 올라갔다 올게.”
“갑자기 왜? 이미 다 끝났잖아? 괜히 올라갔다가 다시 함정이라도 발동되면 어떻게 해?”
“걱정 마. 이제 영원히 이곳의 함정은 발동될 일 없을 거야. 금방 다녀올게!”
“자레드!”
“조금만 기다려!”
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헤이스트 마법을 이용해, 최대 속도로 산을 다시 올랐다.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칭호를 얻기 위해서였다.
[함정을 꿰뚫어 보는 자] [다섯 개 이상으로 구축된 그룹 형태의 함정을 단 한 번의 시행착오도 없이 돌파한 존재에게 주어지는 칭호입니다.모든 스탯을 일괄적으로 5 상승시키는 특전을 얻습니다.]
내게는 중요한 칭호였다.
영구적인 올 스탯 버프가 주어지는 칭호는 흔치 않다. 받을 수 있으면 반드시 챙겨 둬야 했다.
이 칭호를 얻는 법은 간단했다.
함정에 빠지지 않고, 공략을 완료하면 되는 것이다.
정공법으로 정상적인 함정을 공략한다면야 실수를 한두 번은 하겠지만, 나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쿵! 쿵!
나는 함정의 위를 성큼성큼 빠르게 지나갔고, 얼마 후에 마지막 함정을 가볍게 지나칠 수 있었다.
그러자 바로 칭호가 주어졌고, 모든 스탯이 일괄적으로 5가 올랐다.
잔여 스탯으로 있는 10포인트까지 전부 마력에 분배한 뒤, 스탯창을 확인했다. 마력에 계속 투자를 이어가는 것은 훗날 더 위력적인, 그리고 더 소모적인 마력 사용에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안배였다.
지혜 스탯은 나만의 특별한 지식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아티팩트로 대체할 생각이었다. 워낙에 5대 1로 투자 효율이 떨어지는 극악의 스탯이기도 했고.
[자레드 – Lv. 7] [근력 : 10][체력 : 10] [마력 : 731][지혜 : 120] [민첩 : 10][매력 : 130] [물리 방어력 : 10] [마법 방어력 : 20] [잔여 스탯 : 0]‘이 정도면 마요르카 영지의 수석 마법사로 있는 아크론과도 정면으로 붙어 볼 만하겠어.’
나는 이웃 영지이자 적대 관계이기도 한 마요르카 영지의 소속 마법사 아크론을 떠올렸다.
그는 타락한 마법사였다.
동시에 나와 같은 4클래스 마법사이기도 했다.
아크론은 돈과 여자를 광적으로 밝히고, 떠돌이 신세의 어린아이나 노인을 납치해서 실험체로 쓰는 악명이 높은 미친X이었다.
그동안 마요르카 영지의 영주 호르구스가 나를 공개 비난해 왔음에도, 내가 맞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아크론 때문이었다.
마요르카 영지와 전쟁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를 ‘확실하게’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생겼다.
아니, 충분히 압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영지를 공격적으로 운영하자. 자신감이 붙었으니까.’
이제 숨겨 둔 발톱을 살짝 드러내도 될 것 같았다.
이웃 영지의 핵심 전력과 상대할 계산이 섰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
‘하지만 돈이 더 필요해. 전쟁은 열정이나 투혼이 아닌, 재력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니까. 특히 소영지 사이의 전쟁이라면 더더욱.’
나는 설산을 내려오며, 재차 생각을 다듬었다.
영지민들은 한가로운 나날들을 보낼지 몰라도, 영주인 나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일차적으로 나 자신의 스펙업을 이번에 크게 이뤄 냈으니, 이제는 영지의 스펙업을 꾀할 차례였다.
‘레드 고블린 로드, 이바니바.’
나는 대외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영지 인근의 레드 고블린 부족을 떠올렸다. 이바니바는 그들의 왕이었다.
영지 발전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결심한 내게 이바니바만큼 좋은 ‘호구’가 될 거래처는 없었다.
물론 이바니바는 나를 만나도 자신이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을 절대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아낌없이 주는 고블린 로드, 이바니바.’
입가에 은은하면서도 매우 음흉한 미소가 걸렸다.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막힘없이 착착 진행되는 상황에 대한 깊은 만족감의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