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6
제 26화
10장. 미다스의 손 – 1화
“영주님, 이분은 누구……?”
저녁이 되어 영지로 돌아온 나는 이자벨과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당연한 결과지만, 헤이즈는 갑자기 나타난 이자벨의 정체를 매우 궁금해했다.
우리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한다기보다 영주인 내가 뜬금없이 저택에 외간 여자를 데려왔으니 당연히 이상했을 것이다.
“이름은 이자벨. 나이는 스물다섯으로 나와 똑같아. 12살에 데스먼드 제국의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때, 같이 수업을 들었던 친구야. 이번에 우연히 만나게 됐어.”
나는 그럴듯한 스토리를 섞어 둘러댔다. 실제로 13년 전에 나는 데스먼드 제국의 마법 아카데미에 입학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자벨이 장단을 맞췄다.
“안녕하세요, 이자벨이라고 해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집을 나오게 돼서 머무를 곳이 필요해졌어요. 신세를 좀 질까 해요.”
“아아, 개인적인 사정……. 죄송해요. 그런 부분까지 여쭤보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정말 죄송해요.”
“괜찮아요.”
살짝 슬픈 표정을 짓는 이자벨의 모습을 보자, 헤이즈가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
이자벨은 제법 연기를 잘했다.
누가 봐도 귀족가의 여인 같은, 그리고 마법 공부에 매진했을 것 같은 모범생의 분위기를 풍겼다.
단아하고 청순해 보이는 자태는 덤이었다. 물론 그것은 실제와 아주 다른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다만 새롭게 얻은 그녀의 외모가 무척이나 예뻤고, 하나부터 열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던 만큼 모든 행동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헤이즈, 내 저택 안에 비어 있는 방이 있지?”
“물론이죠! 비어 있는 방이긴 하지만, 청소는 매일 하고 있었어요!”
“가장 좋은 방으로 이자벨을 안내해 줘. 그리고 헤이즈가 옆에서 잘 좀 챙겨 주면 좋겠지 싶다.”
나는 헤이즈에게 이자벨을 전담시켰다.
왠지 두 사람을 붙여 놓는 것이 관리 차원에서도 수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네, 영주님. 영주님을 모시듯이 이자벨 님도 모실게요!”
헤이즈가 환한 미소를 보이며 기꺼이 답했다.
확실히 그녀는 천사다.
가끔 나에 대한 감정이 이성을 마비시킬 때도 있는 듯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매사에 꼼꼼하고 성실했다.
“그럼 안내를 부탁해. 이자벨, 저택의 생활에 대해서 궁금한 점은 헤이즈에게 물어보도록 하고.”
“응, 알겠어. 고마워, 자레드.”
기품을 한껏 풍겨 가며 대답하는 이자벨의 모습에 나는 그만 웃음이 터질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둘만 있었다면, ‘야! 그런 것 좀 네가 직접 알려 주면 덧나냐?’라고 따졌을 것 같은데!
헤이즈가 함께 있으니 양손을 앞으로 모은 채, 정말 조신하게 말을 받는 모습이었다.
“이자벨 님, 이쪽으로 오세요. 혹시 목욕을 하실 건가요? 따뜻한 물은 바로 준비가 가능해요!”
헤이즈의 물음에 이자벨의 눈빛이 흔들렸다.
목욕, 그 온기가 가져다주는 행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랜 시간 유령으로 살아왔을 테니,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그립기도 했을 것이다.
“부탁해요. 오랜만에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어요. 고마워요, 헤이즈.”
이자벨의 부드러운 말투가 이어졌다.
당분간은 과거 이자벨라의 본성과 새롭게 태어난 이자벨의 삶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걸릴 듯했다.
그녀가 어느 정도 저택에서의 삶에 적응하고 나면, 나는 그녀를 이용한 마법 방어력 수련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물리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은 지혜보다도 더 키우기 힘든 스탯이다.
그 스탯의 성장에 확실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자벨이 곁에 있는 만큼, 그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녀는 내게 좋은 성장의 촉매제가 될 것이다.
* * *
다음 날 새벽.
박명(薄明)이 찾아올 무렵에 잠에서 깬 나는 연병장을 달리고 있었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순간부터 새벽의 연병장 달리기는 일상이 됐던 터라 이제는 힘들지 않았다.
나는 새벽에 라키스를 통해 급히 전달받은 서신을 읽었다.
‘1239명이라……. 작정하고 우리 영지를 공격하면, 야반도주를 해도 모자란 상황이 될 수도 있겠군. 게다가 마법사 둘까지 새로이 영입했다면 더더욱.’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나는 일단 영지 정보창을 이용해 현재 우리 영지의 군사 총원을 확인했다.
[군사 – 총원 : 현재 298명]‘여기에 우리 영지의 마법사는 나 하나뿐이지. 철기병이나 기마대도 없고, 전부 보병이니까 전력 구성이 좋다고도 볼 수 없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 이웃 영지와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은 저들이 4클래스의 마법사인 나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내가 전쟁을 억지하는 말뚝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압도적인 강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안심할 수 없다.
만약 아크론이 나를 전담 마크하고, 양쪽 영지의 전력이 정면 승부를 하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궤멸하는 쪽은 우리다.
‘로넬라 영지에서 약초를 팔면서 예산을 대량 확보했으니, 모병(募兵) 자체는 어렵지 않아. 단체 군사 훈련도 라키스가 틀을 잡아 놨으니 괜찮고. 문제는 무기 제작과 무장인데…….’
양적 성장은 작정하면 어렵지 않으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질적 성장이었다.
우리 영지에서는 철과 같은 전략 자원이 전혀 생산되지 않는다.
이 망할 대륙 외곽의 영지는 신의 축복이 부족해서 – 사실상 신이 버린 곳과 같아서 – 자원마저도 풍족하지 않았다.
이대로는 모병을 하고, 추가 징병까지 하더라도 병사들에게 지급할 무기가 모자랄 판이었다.
영지의 무기고가 텅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가용 가능한 모든 무기를 사용 중이고, 그래서 여분조차도 없는 상태였다.
‘바로 가신 회의를 소집해야겠군. 여유가 없어. 지금 당장 레드 고블린 부족을 만나야겠다. 전략 자원을 모아야 해.’
나는 내친김에 레드 고블린과의 거래를 하루라도 빨리 시도하기로 했다.
라키스가 보낸 마요르카 영지의 정보에 대한 서신을 본 터라, 마음이 좀 더 급해졌다.
이미 우리를 깔보고 있는 마요르카 영지이기 때문에, 그들과의 화친이나 우호는 무의미하다.
만약 관계를 개선하려고 한다면 내가 한참은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것이고, 이는 당연히 굴욕적인 관계가 될 터였다.
그런 치욕을 자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 *
동이 튼 아침.
새벽부터 라키스를 비롯한 치안대를 소집한 자레드는 악몽의 숲 근처에 널려 있는 많은 양의 돌을 수집하여 담아 오도록 명령했다.
사람들은 악몽의 숲 부근에서 얻을 수 있는 오색영롱한 색깔의 돌을 ‘나이트메어 스톤(Nightmare Stone)’이라고 불렀다.
의미가 있는 돌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사람들이 해수욕장에서 조약돌을 하나 챙기듯, 악몽의 숲을 찾아온 헌터들이 기념품 정도의 개념으로 가져가는 것이 전부였다.
당연히 현물로서의 가치는 전혀 없었다. 말 그대로 영지에서 흔한 돌멩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드 고블린에게는 아니었다!
자레드가 이번에 가지고 있는 노림수는 바로 이 돌을 이용해서 그들로부터 전략 자원을 얻어 내려는 꼼수였다.
자레드는 늦을세라 아침부터 부리나케 영주 저택 앞에 모인 가신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들 왔구려. 아침부터 고생 많았소. 갑작스러운 연락이라 미안하게 생각하오.”
“영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영주님의 충성스러운 신하로서 오로지 영주님의 명령에 복종할 뿐입니다.”
라키스가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강하게 의사 표현을 하는지 고개가 돌아가는 소리가 휙휙 하고 들릴 정도였다.
“신의 생각도 같습니다. 영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는 응당 저희가 힘을 보태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모든 가신들이 하나 된 마음으로 자레드에게 같은 말을 전했다.
진심이었다.
자레드가 탐관오리 글라가스를 엄벌에 처하고, 영지의 기강을 바로잡은 이후.
영지 내의 인사이동이나 자신에게 주어진 보직에 대해 불만을 가진 가신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했다.
비록 먼 길을 돌아온 형국이 되기는 했어도, 영지의 톱니바퀴가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에 감격했던 것이다.
특히 가장 많은 변화를 체감한 것은 상업 내정을 담당하고 있는 아빌라였다.
그가 감격에 젖은 눈빛으로 말을 꺼냈다.
“영주님, 최근 영지를 방문하는 몬스터 헌터들의 수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늘어나 실로 걷잡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소? 어느 정도의 변화가 있었소?”
“아르케네스 상단의 약초는 물론이고, 이에 연계한 크리비아 마정석도 불티나게 팔리는 중입니다. 지난달 총 매출을 하루 만에 갱신할 기세입니다! 정말 영주님의 혜안은…… 존경스럽습니다!”
아빌라가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악몽의 숲 근처는 몰려들기 시작한 몬스터 헌터들 덕에 지역 상권이 빠르게 활성화되고 있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유령 도시 같았던 마을이 하루아침에 번화가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 때문에 아빌라는 자신에게 위임된 영지 예산을 총동원하면서, 번화가의 건물을 깔끔하게 보수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아빌라, 이것으로 놀라기는 이르오. 앞으로 아르케네스 상단과 연계하여 더 많은 상품을 개발해 보시오. 우리의 주요 고객이 될 타깃은 몬스터 헌터들이니, 그것을 항상 명심하도록 하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영주님!”
그에게서 얘기를 직접 듣고 나니, 자레드도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확실히 영지가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자, 오늘 그대들을 모두 모이라 한 것은 이웃 세력과의 활발한 교류를 시작하기 위함이오. 공식 외교 관계를 맺을 생각이기 때문에 나뿐만이 아니라 주요 가신들을 모두 참석하게 한 것이오.”
“어느 영지입니까? 현재 이웃 영지인 마요르카 영지와 로넬라 영지는 대대로 우리 영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만.”
가신 하나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의 말대로 크리비아 영지 근처에는 우군이 없었다.
전부 잠재적인 적이었고, 심지어 그들은 크리비아 영지를 코딱지만 한 영지라며 깔보고 있었다.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 산적 왕까지 협박성으로 공물을 보내라는 서신을 보냈을 정도였다.
“우리가 앞으로 관계를 맺게 될 곳은 영지가 아니오. 부족이지.”
“예? 부족이라 하시면…….”
가신들의 표정에 물음표가 잔뜩 찍혔다.
크리비아 영지는 대륙의 최북단에 있다. 이 위로는 더 가 봤자 사람이 살지 않는다. 그저 대양과 차가운 바닷물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웃에 인접해 있는 두 영지는 전부터 관계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바닷길로 이어져 있는 다른 영지와의 수교를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당연히 생각했던 것이다.
“레드 고블린이오. 나는 우리 영지의 첫 공식 교류의 대상으로 레드 고블린 부족을 선택하겠소.”
“예에? 인간이 아니라 개만도 못한 짐승들과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