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82
제 282화
89장. 다시, 대미궁 – 4화
81층부터 89층까지.
80층대에 해당하는 구간에서 우리는 정말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마치 누군가를 지정하고 축복을 내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고비를 넘길 때마다 성장이 이뤄졌다.
81층에선 헤이즈가 디바인 에이트, 이자벨이 8성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고.
85층의 보스 몬스터를 잡고 난 직후에는 검사 계열의 동료들이 대거 성장을 경험했다.
깨달음을 얻기라도 한 듯이 오러 블레이드의 구현에 현저한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덕분에 라키스는 소드 마스터에 준하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본인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한미한 영지의 치안대장에 불과했던 한 남자가…….
이제는 대륙을 검으로 호령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게 된 것이다.
라키스는 자신이 또 한 번의 벽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에 감격했는지, 한참 동안 무릎을 꿇은 채로 울기만 했다.
옆에서 미아가 자신의 아빠를 힘껏 달래 주지 않았다면, 아마 하루 종일 울었을 것이다.
변화는 당연히 마법사 동료들에게도 일어났고, 나오미는 8클래스가 되었다. 대사건이었다.
미아는 클래스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바람 마법의 속성이 강화되는 신묘한 경험을 했다.
아울러 아슈르도 이제 7클래스에 준하는 마법을 공격에 연동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애초에 마궁수는 물리, 마법 딜링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메리트가 엄청 큰데.
마법의 위력도 상승했으니, 그의 전투력은 최소 2배 이상은 오른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거, 이거, 10클래스가 없는 게 아쉬운데? 나만 제자리에 있는 듯한데, 더욱 분발해야지 않겠소?”
나는 우스갯소리로 계속된 성장에 기뻐하고 있는 동료들을 향해, 기분 좋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물론 나도 성장했다.
클래스가 오르지는 않았어도, 레벨이 쭉쭉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81층부터 89층 구간에서 얻은 경험치의 총량은 1층에서 80층까지 얻은 것보다 세 배 더 많았다.
경험치 풍년이었다.
그만큼 공략 난이도도 높았고, 몬스터 개개인의 맷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지만.
보상은 확실했다.
마정석은 안 나오면 허전할 정도로 계속 나왔고, 아티팩트를 일반 몬스터가 드롭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모든 것이 폐하의 탁월한 리더십 때문이 아닐까요. 단언할 수 있습니다. 폐하가 없었다면 저희는 50층도 도달하지 못했을 겁니다.”
엘라가 힘주어 말했다.
다들 공을 내게 돌린다.
물론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마다 내가 묘안이나 꼼수, 버그를 응용해 난관을 돌파해 온 것은 맞았다.
하지만 공략법을 안다고 해도,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실력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동료들은 나와 함께 있어서 그런지, 늘 스스로를 과소평가한다.
분명 자신들의 실력도 충분히 높은 경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현재 우리 일행 중에서 레벨이 가장 낮은 것은 마이라였고, 레벨이 799였다. 곧 800대라는 얘기다.
에서 레벨 800의 플레이어면 전체 0.01%에 해당하는 최상위 랭커다.
10,000명 중에 1명, 100만 명으로 따지면 100위권 내의 위치인 것이다.
그리고 레벨 850을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네임드가 된다.
한데 우리 일행 중 마이라를 제외하면, 모두 레벨 850 이상을 넘긴 상태였다.
즉, 이 넓고 넓은 나스 대륙의 수많은 능력 있는 인재들 중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존재라는 얘기다.
하지만 다들 겸손해서 자신의 위치를 잘 모르고 있으니, 종종 그게 답답할 따름이었다.
왜 자꾸 나를 비교의 연장선에 두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의 고인물이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동료들은 순수하게 자신들의 노력과 투지로 이 자리까지 오른 것이니 더더욱 값진 성장이었다.
“이제 90층계인가. 확실히 공기가 더 탁해지고, 마기는 더욱 짙어졌군.”
나는 90층의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코끝을 강하게 찌르는 탁기에 인상을 찌푸렸다.
에서도 90층부터는 사실상 성마 대전의 축소판이라도 해도 될 정도의 환경이 구축되어 있었다.
그래서 진정한 공략은 90층부터라는 얘기도 있었고,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했다.
아니나 다를까.
“흡!”
아슈르가 거칠게 숨을 한 번 들이쉰 뒤, 재빨리 화살을 날려 무언가를 저격했다.
“케헥!”
이윽고 뭔가가 나무 위에서 혀를 빼물며 툭 하고 떨어졌다.
비명이 들리기가 무섭게 앞으로 달려 나간 것은 클로이였다.
민첩 스탯의 극한을 달리는 클로이답게 움직이는 속도는 내 눈으로도 좇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한데 바로 그때.
“……!”
떨어진 몬스터에게 접근했던 클로이가 빠르게 백덤블링을 하며, 즉각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1초 후.
퍼어어엉!
폭음과 함께 연기구름이 피어올랐다. 몬스터를 매개체로 일어난 폭발이었다.
“자폭 코볼트?”
순식간에 내 옆으로 복귀한 클로이에게 물었다.
자폭 코볼트.
마왕군이 즐겨 쓰는 하수인 중 한 부류로 말 그대로 자살 특공대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게 되면, 체내의 모든 마력을 융합시켜 폭발을 일으키도록 설계된 전투 병기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마왕군의 작품이었는데…… 이것 때문에 성마 대전 중에 많은 플레이어가 죽었다.
폭발 반경이 마법으로 비유하면 8클래스 마법인 마나 익스플로전에 준할 정도로 넓었기 때문이다.
마왕군 입장에서는 잘 설계한 자폭 병기 하나를 이용해서 다수의 인원을 제거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가성비가 좋은 녀석들인 셈이었다.
“알고 계셨군요. 여왕님.”
“폐하께서 알려 주신 마왕군에 대한 모든 지식은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어요.”
내 말에 클로이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마왕군의 마족, 마수, 하수인들에 대해서 브리핑을 할 때면.
항상 맨 앞자리에서 하나하나 내용을 적어 가며, 유심히 챙겨 듣던 클로이였다.
만약 내가 말해 준 내용을 잊고 침입자가 누군지 밝혀 내려 더 가까이 접근했다면?
지금쯤 클로이는 내 곁이 아닌 저승의 어딘가를 걷고 있을 것이다.
제아무리 클로이라고 해도, 눈앞에서 터지는 대폭발을 몸으로 받아 낼 재간은 없기 때문이다.
“모두 집중.”
나는 다시금 주의를 환기했다.
이제는 실수가 바로 죽음으로 직결될 수 있는 구간에 접어들었다.
마의 구간이라 불리는 90층부터 100층까지의 브리핑은 정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다.
이제 와서 후퇴나 멈추는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전진할 뿐.
“그르르르! 그르르!”
이윽고 저 멀리, 지평선에서 거대한 검은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저마다의 괴성은 덤.
“대규모 전투가 되겠어요!”
퉁! 퉁!
레나가 방패를 힘껏 두들기며, 전의를 불태웠다.
“무슨 메뚜기 떼 같아…….”
미아가 끝없이 펼쳐진 몬스터들의 향연을 보고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겁을 먹었다기보다, 수를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몬스터의 인해전술에 놀란 모습이었다.
성마 대전에서는 이런 인해전술이 일상이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거세된 마수들에게는 오로지 전진만이 있을 뿐이니까.
“전투 준비.”
내 손짓과 함께 모두가 준비 태세에 들어갔다.
동시에 각각의 뒤에 2기의 타넥스가 호위로 붙었다.
모든 타넥스는 동력이 다하고, 몸체가 산산이 부서질 때까지 눈앞의 대상을 보호할 것이다.
그와아아! 그와아아!
이윽고 지평선을 넘어, 언덕을 따라 밀물처럼 들이닥치는 몬스터들의 무리가 보였다.
스켈레톤 군단, 코볼트 군단, 변이된 고블린 군단, 탁기에 잠식된 오크 군단.
다양한 몬스터 집단이 하나의 군세가 되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어림짐작으로 봐도 최소 1만 이상이었다.
“다 죽여 버리자!”
파아앗!
난 상공으로 힘껏 날아올랐다.
힘 대 힘이라면 자신 있지.
놈들이 인해전술이라면.
우리는 가공할 만한 위력의 화력을 보여 주면 될 뿐이다.
목숨은 하나지만, 검술과 마법은 살아 있는 한 영원하다.
“데큐플 트랜센던스 썬더 스트로크!”
내가 첫 번째로 꺼내 든 선택지는 폭풍과 낙뢰의 소환 마법인 썬더 스트로크였다.
구르릉. 구릉. 구릉.
일거에 몰려든 먹구름이 순식간에 하늘을 감싸고, 낙뢰를 지면에 흩뿌릴 준비를 했다.
그와아아!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몬스터 군단의 진격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뒈져라!”
빠지지지직! 빠직! 빠직!
하늘의 진노가 대지에 인정사정없이 빗발쳤다.
퍼석! 파삭! 퍼서서석!
낙뢰 하나가 지면을 때릴 때마다, 최소 수십의 몬스터가 제자리에서 산화했다.
피하거나 비명을 지를 새도 없는 완벽한 즉사였다.
대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 * *
그날 이후.
3주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한 층을 공략하기 위해서 최소 이틀에서 사흘의 시간이 필요할 정도로 스케일이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미궁 안에 별도의 통로가 존재했고, 들어가면 새로운 이면 세계로 연결되는 루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미궁 안에 또 다른 던전이 존재하는 셈이었는데, 이것 때문에 체감하는 미궁의 크기가 훨씬 커졌다.
문제는 이면 세계로 들어가 공략을 마무리 짓지 않으면, 보스 몬스터가 있는 보스 방의 결계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것만큼은 버그나 꼼수가 없어서, 정공법으로 일일이 통로들을 찾아내어 전부 분쇄해야만 했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공략의 연속이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어쨌든 경험치 풍년이었다.
우리는 층수가 올라갈수록 더 신중하게 움직였고, 자만하거나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다.
물론 진행이 순탄하게만 이뤄지지는 않았다.
부상자가 속출했다.
95층은 등장하는 몬스터 하나하나가 거의 하급 마족 수준이라 무척 고난도였기 때문이다.
피로가 누적된 탓일까.
딱 한 번 흐트러진 집중력의 빈틈을 노린 몬스터의 공격에 아슈르와 마이라가 부상을 입었다.
헤이즈가 없었다면 즉시 미궁을 이탈해서 치료를 위해 돌아갔어야 할 정도로 깊은 부상이었다.
다행히 헤이즈의 치유술이 빛을 발했다.
디바인 에이트 경지의 치유술은 그야말로 ‘죽은 사람’만 제외하고는 모두 치유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옆구리에 깊은 상처를 입었던 마이라도, 넓적다리가 움푹 파일 정도의 중상이었던 아슈르도.
다행히 하루 남짓한 집중 치료 속에 빠르게 회복하여 원기를 되찾았다.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수준의 치유술이라 모두가 헤이즈에게 찬사를 보냈다.
본인도 자신의 치유술이 이 정도로 재생력이 있을지는 몰랐다며, 놀랄 정도였으니까.
“하아.”
“이제…….”
“드디어 100층인가.”
우리가 선 자리는 바로 99층에서 100층으로 향하는 나선형 계단 앞이었다.
고된 여정이었다.
말 몇 마디, 글 몇 줄을 가지고 절대 요약할 수 없을 정도로 시련과 고난,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해냈다. 최종 층계의 코앞까지 도착한 것이다.
그나마 얕은 지식이라도 있었던 99층까지의 내 기억과 달리.
100층은 내게도 처음 도전하는 새로운 세계였다.
여기서만큼은 나도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다. 무엇이 나올지조차 알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