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81
제 281화
89장. 다시, 대미궁 – 3화
무한 부활이란.
코어가 살아 있는 한 분자 단위로 쪼개어 죽이더라도 계속 부활하는 특성을 말한다.
마치 시간을 되돌리듯이, 터지고 찢긴 육체의 잔해들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것을 최악의 형태로 기억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에서 수많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공략에 애를 먹게 만들고, 대학살의 장을 만든 일등 공신이었기 때문이다.
서열 3위 마족, 아카로프트.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이슈는 바로 의 아카로프트 레이드였다.
본격적인 성마 대전 콘텐츠의 시작으로, 플레이어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그전까지는 ‘리치 델루크의 분노’ 이벤트라든가, 암흑 교단과의 전쟁 등등.
상대적으로 ‘잔챙이’를 상대하는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카로프트와 그가 이끄는 마왕군이 나타났을 때, 플레이어들은 환호했고 신나서 도전했다.
특히 최상위 랭커들은 초호화 아티팩트로 구성된 사단을 꾸려 직접 실황 중계까지 나섰다.
당시 나는 참여하지 않았다.
약칭 딜찍누(딜로 찍어 누르기) 방식이 안 먹힐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개발진이 어떤 존재인데!
그 어떤 공략도 쉽게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도록 만드는 악질 중의 악질이었다.
물론 이따금 정줄 놓은 버그를 양산해서 욕을 바가지로 먹긴 하나, 출시된 모든 맵과 몬스터의 완성도는 꽤 높은 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레이드 실황 중계에서 플레이어들은 끊임없이 부활하는 아카로프트의 모습에 경악했다.
시간을 찢는 검, 공간을 가르는 창, 심장을 꿰뚫는 화살.
수많은 수식어를 가진 랭커들이 참여했음에도 어찌 된 영문인지 아카로프트는 죽지를 않았다.
그 대신, 시간이 지날 때마다 레이드에 구성된 랭커들이 하나씩 죽어 나갔다.
마치 달걀로 바위를 힘껏 치는 느낌이라고 할까? 바위는 끄떡도 없고, 그저 달걀만 열심히 깨져 나가는 형국이었다.
이후 인간의 모습을 빼닮은 아카로프트의 목숨 줄이 ‘심장’이 아닌 다른 코어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까지.
수많은 레이드 팀이 줄줄이 박살이 났다.
대패의 연속이었다.
답도 없는 대량의 경험치 드롭과 아티팩트 손실에 엄청난 게임 재화가 증발했던 기억이 선하다.
나 역시 신중하게 판단해 참여한답시고 뒤늦게 합류했다가 심하게 참교육을 받았다.
‘이게 81층에서 나올 줄이야. 마족과 비교도 안 되는 하위 호환인 어보미네이션이기는 하지만,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마냥 화력만 퍼부을 수는 없었다.
이 무한 부활 특성이라는 것은 내성이 존재해 같은 방식으로 죽으면 그 해당 방식의 특성을 그대로 학습해 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에 헬파이어로 녀석의 무한 부활 특성을 이끌어 냈다면, 다음에는 헬 파이어가 안 통한다.
죽음으로 이끈 마법이나 수단에 대해서 영원에 가까운 내성을 획득하는 셈이다.
“모두 일격필살에 준하는 확실한 화력을 준비하도록.”
나는 차분하게 명령을 내렸다.
매번 속도전을 강조하는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완벽한 속도전이 필요하다.
무한 부활의 악순환을 막으려면, 단기간에 여러 번 녀석을 죽여야 한다.
아니면 코어를 확실하게 찾아, 한 번에 분쇄하거나.
문제는 어보미네이션의 신체 구성 자체가 수많은 시체가 조합한 경악스러운 형태이기 때문에.
코어를 찾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위이잉! 지이잉!
우웅! 우웅!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각자가 저마다 최대 화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라키스, 레나, 엘라, 마이라 등 검술계는 오러 블레이드를 준비하는 모습이었고.
“츠구르 파레르…….”
이자벨은 7성의 주술 중 죽음의 꽃이라고 불리는 ‘사화(死火)’를 준비했다.
암흑 기가 꾸준히 공급되는 한, 영원히 꺼지지 않는 죽음의 불길이자.
9클래스 마법인 ‘헬파이어’의 소형화 버전이기도 했다.
“후우우.”
아슈르는 심호흡과 함께 안정된 자세로 활시위를 끝까지 당겼다.
우우웅!
엄청난 마력이 한 대의 화살에 실린 것이 느껴질 정도로 격정적인 마력의 일렁임이 있었다.
신궁의 한 수, 혹은 신의 한 수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아슈르의 필살기였다.
마법으로 따지면 8클래스의 썬더 스트로크 마법의 화력에 준할 것이다.
타격과 동시에 마력을 매개체로 해서 폭발적 전류의 파장이 피격된 대상을 감싸기 때문이다.
‘다들 물이 많이 올랐어.’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각자 필살기로 꺼내는 옵션들의 형태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오러 블레이드는 물론, 이자벨의 주술이나 아슈르의 궁마법도 실력이 많이 올라왔다.
예전에 나스 대미궁을 오르기 전의 화력이 10이었다면, 지금은 20은 충분히 뛰어넘는 느낌?
그것은 뒤에서 공격을 준비 중인 나오미와 미아, 헤이즈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부 다 최소 2배, 많게는 3배 이상의 실력 및 전투력의 향상을 이룬 모습이었다.
다양한 공략을 활용하며 각 층을 공략하고, 전리품을 분배하고, 전투에서의 깨달음을 얻게 만든 것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듯했다.
“모두 준비됐소?”
“예!”
이글거리는 힘의 위용이 여실히 느껴진다.
이 정도면 나를 제외한 모두가 힘을 합친다는 가정하에 서열 10위권 안팎의 마족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듯하다.
한 자릿수 서열에 들어가는 녀석들에 대해서는 판단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내가 어보미네이션의 몸을 분쇄할 때마다, 녀석이 다시 재조합할 것이오. 몸이 최종적으로 뭉치는 그 시점에 차례대로 공격을 가하시오. 한 명씩 순차적으로.”
“예!”
“그사이에 나는 코어를 찾아낼 테니, 모두 집중하도록!”
“예, 폐하!”
우렁찬 답이 돌아왔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무적이라는 단어도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 이길 수 없어 보이는 적이라도…… 반드시 빈틈은 존재하는 법.
나는 항상 우리가 그래 왔듯, 이번에도 한 점으로 힘을 집중하여 돌파하기로 했다.
‘반드시 찾는다, 코어를.’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얼마 후.
퍼서서석!
슈륵. 슈르륵. 스르르르륵.
“클클클.”
어보미네이션은 특유의 악취 가득한 웃음을 질질 흘리며, 앞에서 맹공을 퍼붓는 자레드를 멸시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박살을 내도 다시 재조합을 반복하며 부활하는 자신에게.
덧없이 고화력의 마법만을 퍼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어보미네이션은 다양한 내성을 획득하며, 자레드의 마법 선택지를 좁혀 가고 있었다.
지옥의 불이라고도 불리는 헬파이어도 한 번 피격을 당하고 나니, 완전 내성이 획득됐다.
이대로라면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어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래서일까?
자신감이 한껏 묻어나는 어보미네이션의 모습에 동료들의 표정에도 짙은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보미네이션이 발산하는 특유의 시독이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만독불침지체라서 딱히 독의 영향은 받지 않았지만, 문제는 타넥스 기체의 외피가 슬슬 부식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정석을 이용한 코팅과 세공도 어보미네이션 특유의 독 앞에서는 저항력이 낮은 듯했다.
“집중하죠.”
클로이가 분위기를 환기했다.
여기에 있는 인원 중에서 유일하게 무조건 근접전을 펼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클로이였다.
그녀가 가장 위험한 구간을 넘나들며 필살기를 퍼붓고 있었기에 그만큼 말에 무게감이 있었다.
“…….”
다만 클로이를 비롯한 모두가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눈앞의 어보미네이션처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무척 많다는 것이었다.
늘 자레드가 입버릇처럼 말해 왔던, 마왕과 마족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는 말이 더욱 실감이 났다.
“네가 죽나, 우리가 죽나 한번 해 보자. 이 돼지 새끼!”
아슈르가 이를 까득 갈며, 전력을 다한 또 한 번의 일격을 준비했다.
그것은 방금 날렸던 화살보다 두 배 이상은 더 강화된, 정말 극한까지 힘을 끌어올린 정수였다.
다음 순간!
휘리리릭, 퍼석!
쏜살같이 날아간 아슈르의 화살이 어보미네이션의 복부 중앙을 뚫고, 녀석을 또 한 번 허물어뜨렸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자레드가 눈치껏 퍼펙트 실드를 펼치지 않았다면, 폭발의 위력에 휘말렸을 정도였다.
“킬킬킬.”
분해된 어보미네이션의 얼굴이 비릿한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조합될 자신의 몸을 기다렸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느낌.
녀석은 여유 만만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터업!
“끄윽……?”
어보미네이션은 전혀 예상치 않은 부분에서 불쑥 밀고 들어온 자레드의 손에 깜짝 놀랐다.
흩어졌던 신체들이 다시 재조합되며 원래의 자리를 찾아가려던 찰나.
이글거리는 신성력으로 무장한 자레드의 주먹이 어보미네이션의 사타구니 사이를 파고든 것이다.
“여기였구나, 네 코어가?”
“히익?”
아래를 내려보니, 자레드의 오른쪽 주먹은 정확히 어보미네이션의 사타구니 사이에 들어와 있었다.
굳이 인체에 비유를 하자면, 바로 ‘그곳’이었다.
자레드는 그동안 계속 무위로 돌아가는 듯했던 공격을 동료들과 함께 퍼부으며 필사적으로 코어를 찾았다.
코어 부위는 외력에 의해서 쉽게 분해되지 않지만, 마치 터져 나간 신체의 일부인 것처럼 위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위장’ 때문에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아카로프트 레이드에서 고전했었다.
아카로프트의 코어는 다름 아닌 새끼발가락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 부위가 심장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발가락이 생명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었고, 이것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 어보미네이션은 우습게도 그곳이 바로 녀석의 심장이었다.
“이래도 다시 낄낄대며 부활할 수 있을까?”
치이이이익!
“꾸아아아악!”
이내 사타구니 사이에 박힌 자레드의 오른손이 활활 불길에 타오르기 시작하자 어보미네이션이 비명을 질렀다.
지금까지는 그저 깃털로 몸을 간질이듯 별것 아닌 느낌으로 다가왔던 고통이.
이제는 온몸으로 여실히 실감하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신음과 비명이 그 증거였다.
“와…….”
지켜보던 동료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어디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죽일지 막막했던 어보미네이션.
녀석이 무너지고 있었다.
“모두 일발 장전!”
자레드의 외침에 모두가 바로 힘을 끌어올리며 일격을 준비했다.
“나는 괜찮으니 전원 화력을 퍼붓도록 하시오!”
그리고 실드로 전신을 감싸며, 동료들로 하여금 아낌없이 화력을 퍼붓게 했다.
얼마 후.
퍼펑! 펑! 펑! 펑!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81층 전역으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후드드드득.
이번만큼은 어보미네이션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았던 녀석의 아성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어?”
“아?”
헤이즈와 이자벨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변화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그간 단단하게 두 사람을 짓누르고 있던 디바인 에이트, 8성의 벽도 어보미네이션과 동시에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