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40
제 339화
105장. 인류 통합 연맹 – 3화
‘술술 털어놓는군.’
고통의 효과는 확실했다.
차라리 증강화라는 녀석이 연맹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비밀을 엄수했을 터다.
하지만 조사를 해 보니, 생각보다 위치가 높은 녀석은 아니었다.
단, 증강우가 자신의 사촌 형이라는 것이 커다란 뒷배가 된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모든 리더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춘추전국시대를 겪어 본 나스 대륙에서 검증이 됐지.’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증강화를 통해 들은 증강우의 이미지는 분명 강인하고 힘 있는 능력자의 모습은 맞았다.
하지만 혈연에 무척 얽매이는 모습을 보였다. 정확히는 피를 나눈 혈족을 믿는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 보니 증강화가 알 필요가 없는 기밀까지 알려 준 것들이 문제였다.
증강화는 내게 목숨 값을 지불하기 위해, 연맹의 탑에 관련된 정보들을 남김없이 토해 냈다.
고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진선평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녀석의 ‘거짓 정보’를 판별하기도 했다.
물론 그때마다 차라리 죽어서 지옥에 가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선사해 주었더니.
다시는 내 앞에서 거짓을 나불거리지 않았다.
정말 죽기 전까지 고문을 하다가 살려 주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으니까.
“연맹의 탑에 불청객이 침입하면, 즉시 수호 시스템을 가동해서 10단계의 시련을 만든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이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면 절대 형님을 뵐 수 없습니다. 많은 암살자가 시련을 통과하는 도중에 목숨을 잃었습죠.”
“시련을 발동할 수 있다면, 발동시켜 두고 도망가면 될 문제가 아닌가?”
“그럴 수가 없는 것이 강우 형님의 존재는 곧 탑의 생명과 같아서…….”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아니면 확실히 생각나게 내가 도와줄 수도 있고.”
내가 손끝에 파이어볼의 화염 구체를 은근하게 만들어 내자, 증강화의 표정이 금세 굳어졌다.
앞서 저 불길에 사타구니 사이를 두어 번 정도 ‘지짐’을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내 모습을 헤이즈나 동료들이 봤다면 경악을 했을 터. 하지만 그들은 여기에 없다.
그러므로 나는 내면에 숨어 있던 악마의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중이었다.
“강우 형님이 탑에 계셔야만 수호 시스템을 발동시킬 수가 있습니다. 아니면 모든 역장이 사라집니다!”
“강제였군?”
“그렇습니다! 그렇습죠.”
무척 중요한 정보를 전달했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끝마친 증강화가 미소를 지었다.
일단 탑 내부의 구조와 증강화가 언급한 10개의 시련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확인했다.
진선평의 말에 따르면, 증강우는 지금까지 외부 활동을 한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신과 탑이 그야말로 일심동체이기에 함부로 나설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강해 보이는 탑이 역설적으로 증강우의 아킬레스건일지도 모른다.
‘무모하지만, 동시에 가장 빠른 지름길은 탑에 들어가는 거네.’
확실한 결론이 나왔다.
“이제 만족하십니까?”
“물론. 대만족이지.”
“헤헤, 그러면…….”
증강화가 눈짓으로 자신을 꽁꽁 묶은 포승줄을 가리켰다.
“아, 그렇지. 이 매듭을 풀어 줘야 일어날 수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휴, 살려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화르르륵!
나는 증강화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양손에 만들어 낸 화염구를 녀석의 입에 밀어 넣었다.
아까부터 입 안에 쑤셔 넣어 주고 싶었던 녀석이었다.
“살려 준다고는 안 했다. 살아서 돌아가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을 뿐.”
“커헉……!”
증강화가 나를 원망 섞인 눈빛으로 노려보았지만, 나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죽을 놈은 죽어야 한다.
그것은 불변의 진리였다.
악인을 동정이나 연민의 감정 따위로 살려 두면, 거의 100% 끝이 좋지 않다.
쿠웅!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필요한 정보는 남김없이 수집했다.
내가 수집하지 못한 정보가 있다면, 그것은 증강화가 몰랐던 부분일 것이다.
즉, 녀석을 다그치고 고문한다고 해도 알 수 없었던 부분일 터.
“하아아앗!”
이윽고 내 옆을 스치고 들어간 진선평이 단숨에 검을 휘둘러, 증강화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의 한풀이인 듯했다.
수많은 동료의 목숨을 함부로 해치고, 최후를 욕보인 녀석이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EX랭크라……. 동방 대륙에서 제가 어느 정도의 실력일지 전투력 측정이 필요해졌군요.”
“이해는 확실히 했느냐?”
“예. 이 세계는 F, E, D, C, B, A, S, SS, SSS, EX. 이렇게 열 단계로 경지가 나뉘어 있는 듯합니다.”
“저 녀석이 A랭키……. 아니, 랭크라고 했었지.”
“맞습니다. 그리고 연맹의 리더인 증강우가 EX랭크라고 합니다. 그것은 즉, 맞서 싸우려면 비슷한 판정은 받아야 한다는 얘기죠.”
“계속 강조했던 전투력 측정이군.”
“그렇습니다. 베르하드 님,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 봤지만 가장 최선의 방법은…….”
“바로 직접 부딪쳐 보겠다?”
“그렇습니다.”
베르하드는 내가 운을 떼기도 전에 이미 내 속마음을 눈치채고는 웃으며 말했다.
진선평이 이끄는 자유의 날개야 그들이 가진 힘이 미약하니, 지금처럼 게릴라전을 해 온 것이 맞았다.
게다가 인원이 많은 것도 아니고 소중하게 지켜야 할 인명이 아주 많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스 대륙과 동방 대륙 사이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발발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양쪽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오랜 시간 전쟁을 준비해 온 이들의 문명이라면, 작정하고 방어선을 구축한 우리도 쉽게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대전쟁.
그 안에서 흩뿌려지는 것은 전화의 구렁텅이에 휘말린 수많은 병사들이 될 것은 자명한 일.
여기서 나에게, 동료에게, 혹은 아끼고 사랑하는 백성과 병사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터.
이런 비극을 내 선에서 막아 낼 수 있다면 그것보다 효율 좋은 교환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증강우를 상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아직 서지 않는다.
“단장님.”
“예?”
“혹시 제 전투 능력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장비가 있습니까?”
“장비는 없지만…… 방법은 확실하게 존재합니다.”
내 물음에 진선평은 생각보다 빨리 답했다.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을 통해서 내 경지를 진단하고, 증강우와의 일전을 준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연맹의 탑 자체는 여기서 멀지 않다.
물론 이동 경로에 수많은 각성자들과 방어 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내게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나름 상위권으로 불리는 A랭크의 증강화도 한 방에 끝낸 마당에 어지간한 놈은 신경도 안 쓴다.
“어떤 방법입니까?”
“던전을 공략하면 됩니다. 마침 저희 자유의 날개가 은밀히 보유하고 있는 SSS, EX랭크의 던전이 있습니다.”
“그 말은, 해당 던전을 공략할 줄 안다면 적어도 그 랭크를 증명하는 실력은 된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을 기준으로 한 계산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럼 안내해 주시죠. 하루라도 빨리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만.”
“자레드, 나는 이들의 병력 배치나 전략 전술, 마정석으로 구축할 수 있는 방어 시설을 고민해 보겠다.”
“아, 그래 주시겠습니까?”
“내 역할은 전장에서의 중심이 아니라 후방에서의 확실한 지원이라고 생각한다.”
베르하드는 껄끄러울 수도 있는 부분에 자신이 앞서서 나서겠다고 흔쾌히 말을 해 주었다.
분명히 내가 베르하드보다 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십 년 간 마법사로서 잔뼈가 굵은 베르하드의 입장에서는 그 차이를 인정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터.
하지만 그는 차분하게 이를 받아들였고, 자신의 역할을 확실하게 고정해 주었다.
고마웠다.
베르하드가 없었더라면?
지금 내 곁에서 그의 포지션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라키스를 위시한 동료들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베르하드만큼의 연륜이나 위기 대처 능력, 임기응변 능력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까이서 늘 그들을 보아 온 내가 가장 잘 안다.
베르하드라면 믿을 수 있다.
내가 연맹의 탑에 들어가서 혹여 시련에 도전을 하게 되어 공백이 생기더라도.
그 빈틈을 잘 메워 줄 것이다.
혹은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나에 준하는 역할을 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계산은 끝났어. 동방 대륙에 있는 모두를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어. 원흉. 장수의 목을 베면, 병사들은 무릎을 꿇기 마련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진선평에게 다시금 말을 이어 갔다.
“던전이 어디입니까? 지금 당장 가 봅시다. 정확한 제 실력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도전이 시작됐다.
* * *
한 시간 후.
“SSS와 EX 사이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걸 홀로 해결하실 줄은.”
“일단 SSS랭크를 상회하는 경지로서는 합격인 모양이지요?”
“저는 그저 보기만 하지 않았습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는 확실한 인증입니다.”
진선평은 딱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조차 못 했다.
자레드는 너무 쉽게 SSS랭크의 보스 몬스터를 죽여 버렸다.
그 어떤 무기의 힘도 빌리지 않았고, 심지어 진선평에게 손을 벌리지도 않았다.
자력으로, 그것도 5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거대한 괴수를 저승으로 보내 버렸다.
그나마 지금까지 1시간이 걸렸던 것은 전부 이동에 소요된 시간이었다.
SSS랭크 던전의 보스 몬스터는 말할 것도 없고, 던전 내부를 지키던 수많은 몬스터들은 자레드의 손짓 몇 번에 전부 가루가 됐다.
SSS랭크인 진선평.
그는 예전에 증강우와 목숨을 건 혈전을 한 번 치렀던 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자유의 날개가 제법 군세가 있어, 진선평의 자신감이 충만하던 때였다.
하지만 혈전에서 진선평이 느낀 것은 결코 넘을 수 없는 힘의 격차가 가져다준 좌절감이었다.
자유의 날개가 전방위적인 투쟁을 하다가 게릴라로 전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다시 증강우를 만난다면 진선평은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죽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던전도 진선평에게는 홀로 공략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가능은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렸고, 그것은 너무 ‘당연’한 결괏값이었다.
하지만 자레드에게 있어 이 던전은 마치 애피타이저처럼 가벼운 통과의례로 끝나고 말았다.
전력을 다해서 퍼부은 자레드의 초월 마법과 정령의 힘 앞에서.
SSS랭크의 보스 몬스터는 그저 타깃팅 할 부분이 넓은 표적에 불과했다.
‘어느 한쪽이 끝을 보지 않으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악연의 시작점이 이제 끊기려는가?’
진선평의 눈빛이 깊어졌다.
아직 전쟁은 시작되지 않았다.
피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자레드가 증강우의 폭주를 막아 줄 수만 있다면…….
나스 대륙, 자신의 대륙, 그 어느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자, 바로 다음으로 안내해 주시지요. EX랭크 점검도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컨디션은 최상입니다. 갑시다.”
자레드는 너무나도 해맑은 얼굴로 다음 목적지를 불렀다.
진선평도 제대로 공략해 본 적 없는 EX랭크 던전에 대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