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50
제 349화
109장. 시련 혹은 성장 – 1화
[첫 번째 시련, 흑암(黑暗)]시스템창은 어둠 속에서 나타난 존재의 이름을 ‘흑암’이라고 지칭했다.
어찌 보면 그것보다 더 딱 맞아떨어지는 이름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직 전투는 시작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온몸을 옥죄어 오는 무거운 암흑 기가 느껴졌다.
‘속성은 그와 정반대 속성으로 카운터를 치는 것이 늘 정석이었지.’
나름의 계산을 했다.
속성에 대한 정공법은 어떤 속성에 그에 반대되는 속성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화염이면 빙결, 빙결이면 화염. 이런 식으로.
그렇다면 첫 번째 시련 층계의 보스 몬스터로 보이는 ‘흑암’을 상대로는 ‘광휘(光輝)’가 필요하다.
문제는 정직하게 빛의 마법을 써서는 이 공간에서는 영락없이 어둠에 잡아먹히고 만다는 것이다.
‘포장의 묘리를 발휘할 때인가?’
앞서 잔챙이(?)들을 상대하면서 실험은 충분히 했다. 빛의 마법을 암흑 마법처럼 쓰는 방법을.
-그 어떤 것도 흑암의 앞에서는 무기력할 뿐이다!
후우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뭔가 묵직한 기운의 일렁임이 횡선을 그었다.
이 상황이 기가 막힌 것은 분명히 상대는 존재하는데 그 존재를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나는 첫 번째 시련 층계의 보스 몬스터인 흑암이 신장 3m가량의 검사형 몬스터라고 ‘판단’했다.
어둠 속에서 공간을 가른 것은 분명 검이 머금은 살기였기 때문이다.
사아악.
만약을 위해서 미러 이미지를 이용해 배치해 두었던 내 분신이 깔끔하게 잘려 없어졌다.
상대는 검사다.
다만 나와 달리 어둠이 익숙한, 어둠을 집요하게 이용할 줄 아는 적이라는 것이 차이일 뿐이다.
‘적에게 익숙한 홈그라운드라면 장기전은 불리해. 단기에 고화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침착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내가 기감 감지를 통해 적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고 해도, 이곳은 어색한 전장이다.
장기전으로 간다고 해서 딱히 이 공간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것은 뭍에서 사는 생물이 바다로 갔을 때 적응하기 힘든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 약점이나 문제를 노출할 공산이 더 컸다.
‘그렇다면.’
파아앗!
나는 결심을 하기 무섭게 헤이스트를 시전하며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랜센던스까지 곁들이며 가속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리자, 흑암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생각 이상으로 빠른 내 움직임을 쫓아오는 데 애를 먹고 있는 듯했다.
아마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잔상의 꼬리만이 열심히 보이는 형국일 것이다.
“…….”
그 와중에 눈을 감았다.
애초에 뜨고 있어도 안 보이는 만큼, 차라리 눈을 감고 주변의 흐름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았다.
바로 그때.
프슷.
‘온다!’
느껴졌다.
내 심장을 노리고 빠르게 날아드는 흑암의 매서운 검끝을!
‘블링크.’
검격에 대응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검끝이 노리는 자리에 있지 않으면 된다.
쉽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실전에 돌입하면 생각보다 쉽지 않은 방법이기도 하다.
블링크는 순간적인 집중을 잘못하면 회피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파츠츠츠!
방금까지 내가 있던 자리에 흑암이 펼친 검격이 부채꼴 모양으로 붉은 선을 뿜어내며 퍼졌다.
단순 검격이 아니라 변형된 오러 블레이드 형태의 공격이었다.
아마 내가 헤이스트로 피하려 했다면, 분명 저 오러에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마법이지만 대미지를 꾸준히 누적시킬 수 있는 것은 역시 매직 미사일.’
나는 암흑 기를 활용해 암흑 마법화를 시킨 매직 미사일로 흑암을 상대하기로 했다.
암흑 기라는 제한적인 특수 스탯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마냥 난사를 펼치는 공격은 불가능했다.
일반적인 마법의 공격은 줄줄이 어둠에 먹히는 만큼, 신중하게 ‘코스트’를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놈의 움직임이 빠르진 않아. 어둠을 활용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평범한 보스 몬스터다.’
우선 이것이 방금의 탐색전을 통해 알아낸 흑암에 대한 총평이었다.
부채꼴의 오러 블레이드가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필살까진 아니었다.
‘대미지 누적으로 가는 듯하다가 단번에 화력을 퍼부을 기회를 노린다.’
전투의 콘셉트를 확실히 했다.
단기전을 지향하되.
처음부터 화력을 쏟아붓는 일은 자제하고 흑암이 노출할 빈틈을 노리기로.
그리고.
-어둠을 이길 수는 없다.
“너만 어둠과 친한 건 아니거든? 덤벼, 이 XX야.”
흑암과 도발 섞인 말을 주고받은 후 치열한 전투가 시작됐다.
* * *
‘점점 무너져 내리는 느낌. 나는 왜 이 불청객에게 고전하고 있는가?’
시간이 흐를수록.
흑암은 자신을 집요하게 괴롭히며, 약점을 노리는 자레드의 공격에 당황하고 있었다.
분명 여긴 암흑만이 가득한 세상. 외부에서 온 ‘인간’은 절대 적응할 수 없는 곳이다.
지금껏 원대한 꿈을 품고 들어왔던 불청객들은 모두 흑암 자신의 손에 죽었다.
그들은 어둠을 두려워했다.
보이지 않는 것에 공포를 느꼈고, 공포에 울부짖다가 결국 처절하게 죽어 갔다.
하지만 자레드는 달랐다.
분명 다른 인간들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게 확실할 텐데도 정확하게 자신의 빈틈을 노렸다.
‘놈도 암흑의 힘을 부린다.’
더 큰 문제는 자레드가 활용하는 힘이었다.
암흑 기는 자신 고유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아니었다.
기존의 마법에 암흑 기를 가공하여 만든 자레드의 암흑 마법은 흑암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빛의 마법은 이곳에서 구현조차 되지 않아 무서울 것이 없었지만, 암흑 마법은 고통스러웠다.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보는 상태에서 분명히 맹인(盲人)이나 다름없는 상태인 자레드를 노렸건만.
“…….”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일격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자레드의 블링크나 단거리 텔레포트, 그리고 현란한 헤이스트를 활용한 회피 앞에서.
흑암은 정말 무기력할 정도로 열심히 허공만을 갈랐다.
자레드의 옷자락 하나 스치지 못했던 것이다.
반면에 흑암은 자레드가 공격할 때마다 백발백중으로 타격을 입는 자신의 몸 상태에 당황하고 말았다.
‘정말 보이지 않는 게 맞는가?’
자레드의 대응은 안 보이는 사람의 대응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다가는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결국 자신이 쓰러질 판이었다.
흑암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불청객을 이곳에서 절대 통과시키지 않아야 신이 부여한 영생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소멸되고 싶지 않았다.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영원히 이 시련의 층계에서 패왕으로 군림하고 싶었다!
-크아아아!
흑암이 괴성을 지르며 자레드에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어설픈 검격으로는 자레드가 도통 당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아예 근접 승부를 볼 작정이었다.
화아악!
흑암이 역장을 펼쳤다.
공간 역장.
넓게 쓸 수 있는 층계의 거대한 무대를 아주 좁은 반원형의 공간으로 한정하는 능력이었다.
장기간 유지할 수는 없지만, 맹공을 가할 몇 분의 시간을 확보하기에는 충분했다.
다음 순간.
외곽으로 쭉 빠져나가려던 자레드가 역장에 부딪히며 앞으로 튕겨져 나왔다.
“제길!”
-당황했나, 인간. 후후.
흑암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동 범위가 한정된 먹잇감을 노리는 것은 검을 다루는 흑암에게는 쉬운 일이었기에.
“으으으!”
흙빛으로 변한 자레드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주변을 어지러이 오가며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마치 겁에 질린 먹잇감을 보는 것처럼 공격하는 이로 하여금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아아압!
이윽고 흑암이 자레드에게 대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으며, 완벽하게 동선을 억제했다.
어디로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검격에 당할 수밖에 없도록 궁지에 몰아넣고 가하는 일격이었다.
혹여 블링크나 텔레포트를 이용할 것을 대비해서 암흑 기를 대폭 방출해 두었다.
의도적인 간섭을 일으키기 위해서였다. 흑암으로서도 아주 확실한 승부수를 던진 셈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
흑암은 볼 수 있었다.
분명 궁지에 몰린 자레드가 흙빛이 된 얼굴인 채로 아주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있음을.
처한 상황이나 당황한 낯빛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뭔가 의미가 담긴 듯한 회심의 미소였다.
그 순간.
파아아앗!
자레드의 몸이 용수철처럼 앞으로 튕겨져 나가며, 그대로 흑암을 향해 돌진했다.
망설임이나 물러섬 없이 마치 폭주 기관차처럼 안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이었다.
-이게 무슨……?
영문을 모르는 흑암이 잠시 멈칫하는 사이.
쿠웅!
-크윽!
충돌이 이뤄졌다.
온몸을 퍼펙트 실드로 휘감은 자레드가 부딪히자, 거대한 쇠공에 맞은 것처럼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미처 예측 못 한 대응이었다.
인간 검사도 아닌 마법사가 육탄전으로 자신에게 대응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 바람에 흑암의 검격은 갈피를 잃고 흐트러졌고, 무너진 몸의 중심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때.
파아아앗!
자레드의 양 손끝에서 한 줄기 섬광이 번쩍였다.
데큐플 트랜센던스 라이트닝 스피어였다. 7클래스의 뇌전 마법으로 고압 전류가 그 상징이었다.
응당 이 뇌전 마법도 암흑이라는 시련의 특수한 공간에 먹혀 사라졌어야 옳았지만…….
-왜 사라지지 않는 거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자레드가 암흑 기를 이용해 라이트닝 스피어를 처음부터 완벽하게 ‘포장’한 덕분이었다.
여전히 암흑의 공간은 라이트닝 스피어 마법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깔끔하게 암흑 기로 포장된 외관만을 인식하는 이 공간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흑암은 당연히 알지 못하는 공간의 또 다른 ‘버그’인 셈이었다. 자레드는 그 빈틈을 알아낸 것이고.
-…….
흑암의 머릿속으로 지난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회심의 미소와 함께 자레드의 손끝을 출발한 라이트닝 스피어의 기운이 순식간에.
퍼서석!
흑암의 왼쪽 가슴의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 피할 겨를도 없이 단숨에 당한 일격이었다.
푸화아아악!
뚫려 버린 왼쪽 가슴의 뒤, 그러니까 등 쪽으로 수많은 피와 살점이 튀었다.
뭔가, 대단히, 아주 크게 잘못되었다고 느끼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파팟. 팟. 팟.
그것은 1층의 시련을 상징하는 암흑이 흑암의 눈앞에서 빠르게 걷혀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힘의 근원이자 그 자체나 다름없는 자신의 생명에 중대한 문제가 생겼다는 증거였다.
“암흑 기를 활용해서 빛의 마법을 암흑 마법처럼 포장하는 법을 익혔지. 아주 좋은 배움이야.”
-내가…… 당했단 말인가?
“덕분에 아주 좋은 배움을 얻었어, 흑암. 때로는 본질을 숨기는 묘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지.”
-이럴 수는 없다.
“왜 이곳을 시련이라 부르는지 알겠어! 시련이란, 극복하는 순간 엄청난 자양분이 되거든!”
-크윽.
흑암은 무릎을 꿇었다.
절반 이상이 흔적도 없이 터져 나간 심장은 빠르게 생명의 불씨를 잃어 갔다.
첫 번째 시련, 흑암.
그가 무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