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49
제 348화
108장. 초토화 – 3화
“개입합니까?”
“아니, 일단은 지켜본다. 시련은 총 10단계. 그간의 침입자들 중에서 2단계도 제대로 넘은 놈이 없었지.”
“그렇습니다.”
“놈이 첨탑 주변을 쓸어버린 것은 매우 충격적인 사실이지만……. 시련까지 도전한 것은 선을 넘었어. 매우 오만한 짓이다.”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는 걸까요?”
“그건 그놈만이 알겠지. 어쨌든 들어온 이상, 이제 놈은 마음대로 나갈 수 없다.”
“개입할 일이 있다면 제가 먼저 개입하겠습니다.”
“너라면 믿음직하지.”
증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상황만 놓고 봐서는 자레드가 자신의 죽을 자리를 찾아서 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시련은 집 앞의 대문처럼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첨탑 주변 혹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본인의 위력을 충분히 선보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레드는 증강우 자신을 향해서 정직하게 들이받았다. 정말 시련을 극복할 자신이 있는 걸까?
물론 100% 안심할 수는 없었다. 시련을 모두 극복하면 첨탑의 꼭대기에 도달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니까.
만약 그렇게 되면 자레드가 꼭대기에 위치한 로케발의 원석을 부수게 될 수도 있었다.
혹은 로케발의 원석을 손에 넣어 그의 새로운 대리자가 되거나.
“어디 한번 지켜보자고. 죽음의 늪을 벗어날 수 있는지.”
증강우는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자신의 집무실 정중앙에 놓여 있는 홀로그램 영상으로 시선을 옮겼다.
현재는 푸른빛으로 칠해져 있는 각 층계의 모습들.
한 층이 공략될 때마다, 층계의 색깔은 붉게 물들게 될 것이다.
개입 시점은 자레드가 몇 층까지 왔느냐에 따라서 조절할 생각이었다.
꽈아아악.
말없이 힘껏 움켜쥔 두 주먹은 증강우의 분노를 가득 담아내고 있었다.
* * *
“…….”
시련.
분명히 이곳을 상징하는 단어를 진선평은 ‘시련’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주변의 환경은 시련이라기보다는 평온한 시골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드넓은 평원, 하늘하늘한 바람.
물씬 풍기는 꽃향기까지.
예전에 레크나트를 죽이고 1년간 격리되어 있었던 그 차원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방심은 금물이지.”
나는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유사한 사례들을 이미 나스 대륙에서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나스 대미궁이다.
총 100층계로 이뤄진 나스 대미궁은 정말 수많은 시련과 고난, 도전의 연속인 던전이었다.
오죽했으면 의 유저들이 나스 대미궁이라는 본래의 이름보다 ‘시련의 탑’, 약칭 시탑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썼을까.
과거 의 개발진이 그 안에서 죽고 부활한 플레이어들의 수를 전부 카운팅하면 지구의 인구보다도 더 많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 말이 거짓이 아닐 정도로 공략하기 힘들고 어려웠던 것이 바로 나스 대미궁이었다.
100층계인 나스 대미궁을 생각하면, 10층계라고 하는 시련은 차라리 낫겠지 싶었다.
물론 좋게 생각해서 그런 것이고, 바꿔 말하면 나스 대미궁 10층의 압축본이 시련 1층일 수도 있었다.
바로 그때.
우웅! 우웅! 우웅!
저 멀리서부터 조명이 꺼져 나가듯이, 밝았던 하늘에 일순간 짙은 어둠이 드리워졌다.
마치 온 하늘을 구역별로 나눠 둔 다음, 구역마다 불을 꺼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드디어 올 게 오는군.’
마냥 주변 경치와 경관에 취해 있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완벽한 암흑이군.’
더 이상 세상의 아무것도 두 눈에 담을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것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
어둠 속에서 가장 익숙하게 만들어 낸 것은 역시 범용성이 높은 라이트 마법이었다.
하지만.
스르르륵!
백색의 불빛을 만들어 내기가 무섭게 공간은 그 불빛마저 잡아먹어 버렸다. 마치 포식자처럼.
‘상당히 껄끄럽게 됐네.’
시련의 콘셉트를 알 것 같았다.
암흑(暗黑).
뭔가를 보고 싶어도 절대 볼 수 없는 지금의 이 모습이 내가 처음으로 도전할 시련이 될 듯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이런 시련을 직접적으로 도전해 본 적은 없었다.
즉, 빛과 어둠은 늘 내 곁에 있었기에 빛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마치 시력을 박탈한 듯한 상황이 벌어지자, 비로소 빛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사람이 얼마만큼 눈에 의존하는 동물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건 시련이지만, 동시에 나를 자극하게 만드는 성장의 계기다.’
충분히 긍정적으로 해석해 볼 수 있었기에 나는 전혀 다른 의미로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주변으로 마력을 있는 힘껏, 최대한 넓게 흩뿌렸다.
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기와 감의 의존도를 높인다.
이것은 예전에 내가 몇 번이나 시도했고, 까다로운 적을 상대로 사용했던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주 쓸 일이 없어 사장되다시피 했던 대응법인데, 비로소 다시 한번 그 방법을 곱씹을 수 있었다.
바로 그때.
‘느껴진다.’
일정하게 흩뿌려 둔 마력의 기감을 어지럽히며 접근하는 총 세 개의 기운이 있었다.
살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 그래서 더 어둠에 스며들었다고 느껴지는 ‘불청객’이었다.
화르르륵!
시험 삼아 가장 손에 익은 파이어 볼의 구체를 만들어 냈지만.
스르륵.
생성되기가 무섭게 모든 기운이 흩어지며 마법이 무력화됐다.
키히익! 히익!
이윽고 어둠을 벗 삼아 나타난 적이 공간을 가르며 내게 위협을 가하려 했다.
파팟!
블링크로 회피했다.
그리고 아슬아슬한 간발의 차이로 원래 내가 있던 자리에 붉은 선이 맺혔다.
가만히 있었더라면 그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내 몸이 종잇장처럼 찢겨졌을 매서운 일격이었다.
‘이럴 때 쓰라고 암흑 기가 있는 거겠지.’
[암흑의 관찰자 : 마기, 암흑 기를 사용하는 존재의 흔적을 좇을 수 있습니다.]우선 심안을 이용해, 다른 형태의 ‘눈’을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외형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암흑 기를 보유한 적이 움직이는 경로가 보였다.
깜깜한 어둠 속이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볼 수 있는’ 적의 이동 경로였다.
그리고 일전에 이자벨과 관련된 퀘스트를 연계하면서 델루크에게 얻은 암흑 기를 마력과 결합했다.
현재 내가 보유한 암흑 기의 총량은 500.
사용하는 마법 클래스에 곱하기 100에 해당하는 암흑 기를 소모하여 암흑 마법을 구현할 수 있었다.
즉, 현재 암흑 기로는 5클래스까지 커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꼼수를 좀 써 볼까?’
변주를 주기로 했다.
1클래스의 암흑 마법을 쓰는 데 암흑 기 100이 필요하다면.
데큐플 트랜센던스로 강화한 1클래스 암흑 마법에도 같은 양을 사용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전적으로 ‘툴팁’의 설명을 충실하게 따르는 의 콘셉트에 맞춰 떠오른 꼼수였다.
그리고.
구아아아아!
예상은 적중했다.
데큐플 트랜센던스 매직 미사일로 만들어 낸 수천 개의 바람 구체들이 모두 암흑 마법이 됐다.
소모된 암흑 기의 양은 500 중에 100에 불과했을 뿐이었고.
401, 403, 406…….
암흑을 벗 삼고 있는 상황 덕분인지 회복도 빠르게 됐다. 매우 유의미한 꼼수였다.
슈아아아!
이윽고 내 손끝을 떠난 수천 개의 매직 미사일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암흑 기를 부여받고 태초의 어둠의 힘을 잔뜩 머금은 새로운 형태의 매직 미사일이었다.
크웨! 크웨에에!
키엑! 크엑!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빠르게 꺼져 가는 생명의 불씨가 여실히 느껴졌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주변에 몬스터들이 많았는지, 비명이 쉴 새 없이 들렸다.
“어둠으론 날 막을 수 없어.”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알기에 시련처럼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 대신, 시각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기감에 대한 인지를 높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꼈다.
지금껏 내가 이 세계에서 환생해 살아오면서 얻은 깨달음이 ‘무의미’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언젠가 오늘의 경험이 유의미하게 쓰일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처음부터 매우 강력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북쪽의 어딘가를 향해 계속 전진했다.
중간에 방금처럼 앞을 가로막는 어둠의 무리가 있었지만, 같은 방식으로 어렵지 않게 처리했다.
나스 대미궁으로 따지면, 약 20층계 정도에서 볼 수 있는 몬스터의 느낌이랄까?
강하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녀석들이라 목숨을 빼앗는 것은 생각보다 손쉬웠다.
[암흑 기에 대한 이해도가 증가하며, 신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암흑 기의 순응도가 급증합니다!] [축하합니다! 암흑 기 200을 추가로 획득하였습니다!]“이런 성장은 너무 좋지.”
나는 500에서 700으로 최대 한계치가 오른 암흑 기를 보면서,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암흑 기는 이런 류의 몬스터를 상대할 때 반드시 필요한 스탯이기 때문에 내게는 소중했다.
언제까지 빛의 힘에 기반을 둔 몬스터 혹은 적을 상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장에 증강우도 내가 직접 파악하지 못한 만큼, 그가 암흑 기를 활용하는 각성자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대응법이 없을 경우, 크게 고전을 하거나 더 나아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이제는.
세상의 빛을 모두 잠식한 어둠 속이지만, 확실하게 보인다.
마력의 흐트러짐을 따라 활성화되는 적의 실루엣을 명확하게 판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뭐랄까.
눈으로 볼 수 있을 때와 비교하자면, 지금은 어두운 천을 두르고 있는 상대를 보는 느낌이다.
디테일한 형체는 없지만 외형은 충분히 특정할 수 있는.
딱 그 상태가 지금의 내가 암흑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적의 모습이다.
“……아직 개입할 때는 아니라고 판단한 건가?”
전투 내내 사실 나는 주변의 상황에 최대한 집중하고 있었다.
시련이 첨탑 내부에 있는 각성자들로 하여금 ‘개입’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입할 경우, 해당 각성자도 쉽게 되돌아 나갈 수는 없었다.
즉, 나를 죽이고 난 이후에 탈출할 수 있지만……. 어쨌든 변수가 될 여지는 충분했다.
시련에 도전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때, 갑자기 내 등 뒤에서 나타나 내게 비수를 찌를 수 있어서다.
아직까지 개입은 없었다.
아마도 첫 시련이니 좀 더 지켜보고, 극복 여부를 보며 들어올 수도 있을 터.
이게 시련일까?
하는 생각은 공략 내내 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새로운 도전, 혹은 성장의 발판 같은 느낌이었다.
‘분명히 이런 첨탑에 이런 형태의 시련이 있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을 거다. 지금껏 이유 없는 고난은 없었어.’
나는 확신했다.
나스 대미궁이든 지하 던전이든 혹은 정체불명의 던전이든.
모든 존재에는 늘 그에 따른 이유가 있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차차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열 개의 시련도 분명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것이 신의 뜻이든, 무엇이든.
그리고.
-누가 내 안식을 방해하는가…….
“왔군.”
드디어 첫 번째 시련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