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97
제 396화
124장. 최종전 – 2화
“크으으윽!”
순간적으로 주변의 자연환경을 구성하고 있던 섭리가 역전됐다. 덕분에 자레드의 몸도 하늘로 날아올랐다. 별도의 노력 없이.
리버스 그래비티로 뒤집힌 중력은 하늘을 땅처럼, 땅을 하늘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렇기에 자레드의 몸은 하늘로 ‘떨어졌고’ 아슬아슬하게 손바닥에 압사당하는 꼴을 피할 수 있었다.
처어어어업!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에 당했다면 아마 한여름 사람의 손바닥에 압사당하는 모기처럼 짓눌려 죽는 꼴을 피할 수 없었을 터.
이번만큼은 자레드도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릴 만큼 긴장했다.
하지만.
끼리리릭.
자레드를 향해 왼손을 뻗은 글래버가 손목을 살짝 비트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왼손에 착용한 건틀릿에서 연녹색의 빛이 흘러나오더니.
우웅!
이내 중력을 다시 뒤집었다. 역중력의 상태에서 정상 중력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진짜 아끼지 말아야겠군.’
자레드는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던 방법을 속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끼다가 똥 된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전력(全力)을 다해 싸우는 와중에도 일격필살의 개념으로 아껴 두었던 능력.
하지만 그 일격필살이라는 것도 결국은 목숨이 붙어 있어야 펼쳐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자신감을 갖고 전투에 임한 것은 좋지만, 글래버를 너무 얕봤다. 자레드는 그렇게 평가했다.
얕봤으니 일격필살의 수를 조기에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그것은 명백히 오만이었다.
쿠과과과!
자레드는 플라이 마법을 최대치로 펼치며, 글래버를 향해 전투적으로 달려들었다.
‘또 흡공이군.’
이번에도 아티팩트를 활용한 글래버의 대응이 있었다.
자레드의 앞에 붉은 점이 순식간에 맺혔지만, 예상했던 바이기에 어렵지 않게 피했다.
이번 일격을 정확하게 타격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가까이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힘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나?”
글래버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자레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빛을 반짝였다.
그러자 글래버의 이마 언저리에 머리띠처럼 위치해 있는 아티팩트가 반짝이며 능력을 구현했다.
구고고고!
그것은 주변의 지형지물을 그의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는 힘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미동조차 없이 우뚝 서 있던 나무와 암벽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미친.’
절로 그런 추임새가 입에서 나왔다.
공간을 비틀고 이것저것 재롱 잔치를 다 했으면 충분하지, 이제는 나무와 암벽까지 움직인다고?
아티팩트의 힘에 이끌려 움직이는 거대한 나무와 암벽의 모습은 흡사 나무 인간이나 거대한 스톤 골렘을 보는 듯했다.
후웅! 후웅!
아슬아슬하게 나뭇가지와 묵직한 바위가 자레드가 있던 자리를 훑고 지나갔다.
평범한 플라이 마법이었다면 진즉에 사로잡혀서 갈가리 찢겨져서 죽거나 깔려 죽었을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레드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적절한 기회가 만들어졌다.
[조력자의 보상 – 열화의 힘 : 25만의 마력을 소진하여 모든 것을 녹이는 불길을 만듭니다.]동방 대륙에서 무수히 많은 적들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얻었던 신비한 힘!
엄청난 양의 마력을 대거 소모하는 기술이지만, 자레드는 그 한 방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죽어!”
글래버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양손 위로 만들어 낸 ‘열화의 힘’ 구체를 날렸다.
“……훗.”
이를 본 글래버가 비소를 머금는 순간, 자레드는 공격의 성공을 확신했다.
때로는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지나친 확신이 크나큰 독이 될 때가 있으니까.
열화의 힘은 코웃음 따위로 버텨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글래버는 이것을 대응할 수 있다고 본 모양이다.
화아아악!
이내 얼굴 전체를 화끈하게 만들 정도의 열기를 머금은 공격이 글래버를 휘몰아쳤다.
“크하하!”
글래버는 광소를 터뜨리며 지금껏 날아드는 마법을 튕겨 냈던 아티팩트의 고유 능력을 구현시켰다.
하지만 바로 그때.
“아……?”
열화의 구체, 그 끝자락이 몸에 닿는 순간.
글래버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빠르게 알아차렸다.
아무리 끝자락이라고 한들 아티팩트의 힘에 응당 튕겨져 나가야만 하는 그 열기가.
화르르륵!
막히지 않고서 그대로 파고들고 있었다. 뚫렸다! 눈치 빠른 글래버는 문제를 바로 알아차렸다.
파팟!
거의 본능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글래버는 위치 전환 아티팩트를 활용해 자리를 이탈했다.
다른 존재였다면 애초에 대응조차 하지 못했을, 하지만 글래버였기에 해낼 수 있었던 환상적인 움직임이었다.
99.9%가 죽었을 공격을 100%의 생존으로 바꾼 것이다. 즉, 목숨은 확실하게 건졌다.
하지만.
“크아아아……!”
비명을 토해 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찰나의 시간’에 어쩔 수 없이 노출되어 버린 글래버의 왼팔이었다.
다른 곳은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왼팔은 자레드가 전개한 ‘열화의 힘’에 그만 노출되어 버렸다.
시간으로 따지면 0.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왼팔을 녹이기에는 충분했다.
“크어어어어!”
뚝. 뚝. 뚝.
왼팔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동시에 왼팔을 구성하고 있었던 모든 아티팩트가 화염에 휘말려서 순식간에 녹아 버렸다.
“아무 때나 웃지 마. 볼 때마다 역겨우니까. 물론 이젠 웃을 생각조차 사라졌겠지만. 크큭.”
이번에는 자레드가 글래버를 보며 비소를 머금었다. 확실하게 한 방을 먹인 후 보인 도발이었다.
“……어차피 내게는 재생 아티팩트도 있다.”
“누가 뭐래?”
최대한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글래버의 반응에 자레드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일단 글래버에게 확실하게 두려움을 심어 줬다. 자레드는 그것을 가장 큰 소득으로 보았다.
글래버와 같이 실력이 있는 녀석에게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오만함, 거만함이 적극적인 전투의 밑거름이 된다.
즉, 경계해야 할 감정들마저도 강점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공포가 한번 마음속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그것을 쉽게 떨쳐 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선명한 이미지로 남은 두려움의 기억은 더더욱.
이는 좋지 않은 기억을 갖고 있는 벌레나 동물에 대한 경험이 트라우마를 만들어 내는 것과 흡사했다.
학습된 공포감.
이것은 마치 조건반사처럼 무의식속에 내재돼 있다가 같은 경우를 당하게 되면 나타나게 된다.
[조력자의 보상 – 역가속] [조력자의 보상 – 빙염탄] [조력자의 보상 – 바람길] [조력자의 보상 – 예지]‘나머지 능력은 한 번에 묶음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어. 열화의 힘과 한 번 더 연계해도 좋고.’
생각은 끝내 뒀다.
“죽어라!”
하지만 글래버도 마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방금의 공격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불씨를 바람을 일으켜 자레드 쪽으로 밀어냈다.
그가 바로 재생 아티팩트를 사용하지 못한 이유는 하나였다. 즉시 구현이 되지 않아서다.
잃어버린 아티팩트는 되돌릴 길이 없지만, 팔은 시간만 주어지면 복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레드가 가까이서 귀찮게 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밀쳐낼 필요가 있었다.
쿠와아아!
이번에는 자레드도 지지 않고 맞섰다. 날아드는 불씨를 윈드 토네이도의 강력한 바람을 일으켜, 강풍으로 맞받아쳤다.
다음 순간.
꾸욱!
어느새 붉은 빛깔의 건틀릿으로 오른손의 아티팩트를 교체한 글래버가 주먹을 꽉 쥐었다.
퍼엉! 퍼엉! 퍼어어엉!
“크으윽……!”
그러자 대폭발이 일어났다.
수많은 불씨를 매개체로 일으킨 거대한 화염 폭발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작은 불씨를 대폭발로 연계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한 한 방이었다.
물론 당황하는 건 잠시였다.
[조력자의 보상 – 역가속]역가속의 능력을 썼다.
그러자 아주 짧은 순간이기는 하지만 폭발을 포함한 일련의 모든 과정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밖에 없는 ‘지연’에 걸맞게 엄청난 양의 마력이 소모됐다.
‘헬 – 마그마 스톰.’
자레드는 지체할 것 없이 9클래스 마법인 헬 – 마그마 스톰을 사용했다.
헬파이어와 유사한 계열에서 분화된 마법으로, 강력한 마그마 폭풍우를 소환하는 마법이었다.
구현 형태만 놓고 보면 우박과 눈을 쏟아지게 만드는 블리자드와 비슷했다.
매개체가 빙결된 눈이냐 부글부글 끓는 마그마냐의 차이만 있는 셈이다. 물론 위력의 차이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크다.
“……!”
글래버의 두 눈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또다시 느꼈다.
다른 존재였다면 어디서 잘못됐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상황을 맞이했겠지만.
글래버는 알아차렸다.
자레드가 아주 잠깐의 순간이지만, 시간의 흐름을 급격하게 느리게 만들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글래버의 눈에 보이는 자레드의 움직임이 말도 안 된다 싶을 정도로 빨라졌기 때문이다.
가속이라는 표현을 빌리기에는 너무 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쿠구구구구구!
서로 한 수의 교환이 이뤄졌다.
막간의 틈을 노려 헬 – 마그마 스톰으로 반격한 자레드는 이내 대폭발의 열기를 피하기 위해 뒤로 쭉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글래버는 자신의 공격의 빈틈, 그 사이를 쪼개어서 들어온 자레드의 헬 – 마그마 스톰에 대응해야 했다.
후두두두둑!
티잉! 티잉! 티이잉!
“……제길.”
아티팩트의 방어 능력을 최대치로 활용해 쏟아지는 마그마의 향연을 받아 냈다.
그것까지는 좋았지만, 글래버의 반응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
그 순간에 대폭발의 열기와 연기 사이를 뚫고 들어온 자레드의 ‘빙염탄’이 보였기 때문이다.
막지 않으면 안 되는 공격.
무조건 막아야 하는 공격.
한데 빙염탄 뒤에서 자레드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따라붙고 있었다.
‘바람길’을 이용한 것이었다.
블링크나 텔레포트는 마력 간섭으로 틀어막고 있었지만.
바람길과 같이 자연의 힘을 이용해서 가속 이동을 유도하는 현상은 방해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전투 흐름은 최소한 반, 혹은 반의반 박자 정도는 자신이 앞서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바뀐 것 같았다.
야금야금 넘어가기 시작한 주도권이 팔을 잃은 시점부터 자레드에게로 완전히 넘어간 듯했다.
그리고 바로 지금!
글래버는 자레드가 반 박자 이상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고 몸이 반응할 수 있는 것보다 자레드의 ‘수’가 훨씬 더 빨랐다.
이에 따르는 결과는 바로 하나.
이제부터는 글래버 자신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동시에 대응이 늦을 경우, 되레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단 얘기도 됐다.
‘막아야 한다.’
글래버는 입술을 깨물었다.
쫓기듯 싸울 수밖에 없는 이 감정은 매우 불쾌했다. 지금껏 ‘주도권’이라는 단어는 항상 자신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레드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그 소유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실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오오오!
파공음을 내며 접근하는 자레드의 모습을 확인한 글래버가 아티팩트 하나를 탈착했다.
그리고.
‘자폭(自爆).’
일거에 마력을 폭발시킬 명령을 내렸다.
귀찮게 달라붙으려고 하는 자레드를 떼어 내는 것은 물론이고, 그에게 넘어간 시간의 흐름을 기습적으로 되찾아 올 좋은 기회였다.
우웅! 우우웅! 우웅!
콰콰콰쾅!
이윽고 대폭발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