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4
제 4화
2장. 꼼수는 나의 힘! – 2화
그리고 이내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대화 내용이 자신이 함부로 알아서는 안 될, 금단의 영역(?)에 관련된 얘기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냐, 영주님도 성인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신체 건강한 성인이잖아?’
헤이즈는 머릿속에서 수많은 상황을 떠올렸다.
그것은 하나같이 낯 뜨거운 그림이었지만, 성인이기에! 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분이 묘했다.
어렸을 적부터 해바라기 같은 마음으로 늘 자레드를 가슴에 담아 왔던 헤이즈는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사실은…… 화가 났다!
자레드를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광경은 보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간 쥐 죽은 듯이 침실에서만 지내다가 갑자기 나와 한다는 것이 외간 여자 – 남자는 절대 아닐 것이라 믿었다. – 와의 밀애라니!
용납할 수 없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린 느낌이었다.
“아, 진짜. 이러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할까? 영주인 내가 옷을 다 벗고 여기서 너와 이러고 있다는 것을 알면…….”
“아아아.”
헤이즈의 동공이 흔들렸다.
자레드는 한껏 자책하면서도 거사는 거사대로 치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옷을 다 벗고 둘이 지하실에 있는 것이라면 무슨 일인지는 불 보듯 뻔한 것이 아닌가?
‘싫어, 싫어!’
헤이즈가 고개를 휘저었다.
바로 그때.
“아아아아아!”
거친 신음이 들려왔다.
헤이즈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철컥!
그리고 머리가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지하실의 문을 열었다.
열쇠는 지하실에 자주 출입했던 헤이즈에게도 있었기 때문에 잠긴 문을 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안 돼요! 안 돼요, 영주님!”
헤이즈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움직임이 얼마나 빨랐는지!
자레드가 그녀의 등장을 인식한 시점에는 이미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고 있었을 정도였다.
“어…….”
“아……?”
그 순간.
적막이 흘렀다.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것처럼.
자레드도, 헤이즈도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기만 했다.
단, 문제가 있었다.
자레드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로 헤이즈를 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밀애의 현장을 포착했다고 생각한 헤이즈의 예상과는 달리 자레드는 혼자 있었다는 것.
그것이었다.
“무슨…… 일이야?”
자레드가 물었다.
순간 너무 당황해서 정신이 반쯤 나간 탓에 주섬주섬 옷을 입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방금 막 놓으려던 침이 하나 들려 있었고.
그의 뱃살 위에는 고슴도치처럼 촘촘하게 박힌 침들이 가득했다.
“저는 여, 여, 영주님이 사랑을 나누시는 줄 알고……. 아아.”
헤이즈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생각지도 않게 속마음을 드러내 버리고 만 것이다.
그것까진 좋았다.
문제는 완벽한 오해였다는 것.
“어떡할 거야? 책임져!”
“예?”
“내 알몸을 본 사람……. 헤이즈, 네가 처음이란 말이야.”
그 말은 진심이었다.
전생, 현생을 통틀어 누구에게도 보여 준 적 없었던 자신의 완벽한 알몸을 공개하는 순간이었다.
* * *
졸지에 알몸을 공개한 충격이 가라앉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
나는 헤이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침술에 대한 개념이 없는 그녀는 고개를 몇 번 갸웃거렸지만, 이내 고민하지 않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저는 영주님이 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옳다고 생각해요! 그것보다 너무 행복해요! 영주님께서 이렇게 의욕적으로 스스로를 관리하시는 모습이 너무 멋져요!”
“헤이즈, 눈 올려. 어딜 내려다보는 거야?”
“아앗! 죄송해요.”
“어쨌든 이렇게 배와 허벅지에 직접 침을 놓으려면 옷을 다 벗고 있을 수밖에 없어서 잠깐 지하실에 내려와 있었던 거야.”
“앞으로 제가 문단속을 철저히 할게요. 아니면 제가 입구를 지키고 서 있을까요? 혹시라도 누가 올지 모르니까요!”
헤이즈가 차렷 자세를 취하며, 경비병을 따라 하는 시늉을 했다.
저런 순진함이 헤이즈의 매력.
그래서 바보처럼 못났던 이 몸의 전 주인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지금도 좋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심안 내놔!
‘깜짝이야.’
그때, 옆에서 나를 노려보던 이자벨라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덕분에 집중이 환기되면서, 자연스럽게 심안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바로 헤이즈를 상대로 심안 스킬을 이용해 헤이즈의 스탯과 성향을 살폈다.
심안 스킬은 패시브 스킬이기 때문에 별도로 발동하는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
게다가 마력 소모도 없다. 일종의 영구 버프가 걸려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므로.
[헤이즈 – Lv. 8] [근력 : 3][체력 : 11] [마력 : 0][지혜 : 13] [민첩 : 13][매력 : 25] [물리 방어력 : 5] [마법 방어력 : 0] [특수 성향 : 헌신 S / 외사랑 A / 응원 A / 요리의 달인 A / 과민 B] [일반 성향 : 안정, 평안]‘와, 헌신이 S야? 그것보다 특수 성향이 엄청 많잖아?’
나는 그녀의 특수 성향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만약 그녀가 하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의 유저가 그녀의 성향을 봤다면?
무조건 그녀에게 힐러 직업을 권했을 것이다.
신성한 기운을 치유에 써야 하는 힐러에게 헌신과 응원은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두 성향이 없으면 힐러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 시간 낭비니까.
한데 헤이즈는 그 두 가지 요소가 각각 S랭크와 A랭크로 판정이 매우 좋았다.
‘외사랑 A라는 건 지독한 짝사랑이 오랫동안 계속됐다는 얘기고. 이 정도면 10년을 넘게 짝사랑을 했다는 얘기인데…….’
그 대상이 누군지 알기에 새삼스럽진 않았으나, 마음이 짠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영주로서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속 편하게 연애나 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건 내가 현생을 자각하면서 세운 목표와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기에 어기고 싶지 않았다.
정말 마음의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요리의 달인도 A였구나. 그래서 헤이즈가 직접 조리하는 음식마다 맛이 좋은 거였어.’
예전의 나는 무척이나 헤이즈의 음식을 좋아하고, 즐겼었다.
늘 그녀의 요리 솜씨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는데, 이제 심안으로 확인하니 수긍이 갔다.
‘나중에 헤이즈를 반드시 힐러로 양성해야겠어. 그럼 영지에 큰 보탬이 될 거야!’
나는 아직 당사자가 알지 못하는 미래 계획을 세웠다.
헤이즈 힐러 육성 계획!
힐러 또는 치유사로 불리는 직업은 대륙 전체에서도 그 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귀한 직업군이다.
전문 힐러의 치유량은 대사제, 대신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 비교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그녀를 잘 육성한다면, 영지의 엄청난 자산이 될 것이다.
“영주님? 무슨 생각 하세요? 근심 걱정이라도 있으신 거예요?”
“아, 미안. 잠깐 이것저것 생각 좀 하느라. 어디까지 얘기했지?”
“경비병 대신 영주님을 위해, 제가 지하실 입구를 지킬까 하고 있었어요!”
“됐어. 어차피 지하실 열쇠 관리는 네가 하잖아. 나머지 열쇠 하나는 나한테 있고.”
“그렇죠!”
“너만 안 들어오면 돼, 헤이즈.”
“헤……. 그런가요?”
헤이즈가 뒷머리를 긁적이자, 나는 그녀의 머리에 살짝 꿀밤을 먹여 주며 말했다.
“고개 돌려. 지금부터 좀 민망한 작업을 해야 해.”
“네! 저는 그럼 저쪽에 가서 청소 도구 정리를 하고 있을게요.”
“부르지 않으면 이쪽으로 오지 마. 뭐, 볼 것은 없지만 말이야.”
“네! 명심할게요! 아, 오지 말라고 하신 것을 명심하겠다는 뜻이었어요! 그 뒷말이 아니라요!”
그냥 갔으면 될 걸, 굳이 확인사살까지 하는 헤이즈. 확실히 순수하고 순진한 건 맞는 것 같다.
“……뭐, 괜찮아.”
“흐윽, 죄송해요!”
“괜찮다니까. 가 봐.”
“네에.”
헤이즈가 지하실의 구석 통로를 지나 안으로 쭉 들어갔다.
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배에 박혀 있는 침 위로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래도 예전의 자레드 녀석이 마법 연성을 좀 해 놔서 다행이다. 아무것도 없는 몸이었으면, 진짜 절망적이었을 거야. 4클래스 경지까지 끌어올려 놓은 것만으로도 감사할 정도야.’
이 몸은 마력 스탯 자체는 낮지만, 다행히도 마나를 느끼고 운용할 줄은 아는 몸이었다.
아버지가 마법사였기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마법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현재 마법사로서의 상태는 클래스로 따지면 4클래스.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꽤 되지만, 문제는 그릇이 작다는 것.
현재 마력 75로는 마력 40을 소모하는 4클래스 마법 두 번도 시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래도 클래스 자체는 올려놓은 만큼, 일단 마법사의 기본 구색은 갖춘 셈이었다.
마나의 흐름도 안정적이고.
‘다이어트 꼼수와 병행해서 마력 증가 꼼수 작업에 돌입해야겠다. 지금은 던전 같은 곳에 바로 뛰어들기보다는 마력의 풀 자체를 넓히는 게 가장 중요해.’
그렇게 생각을 매듭지었다.
이 육중한 몸뚱이로 날랜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던전에 지금 가는 것은 절대 무리다.
안전한 방법으로 마력 스탯을 늘리고, 살을 빼는 것이 우선이다. 그 어떤 것도 이것보다 앞 순위에 위치할 수는 없다.
“후우, 후우.”
침을 통해서 마력이 지닌 4원소의 기운이 주입될 때마다.
몸이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졌다가, 단단해졌다가, 느슨해지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땀이 정말 폭포수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미리 수건을 넉넉하게 준비해 왔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지하실 바닥에 흥건하게 물이 흘렀을 정도의 땀이었다.
[신체가 ‘지방 분해 활성화’ 상태가 됩니다.] [침의 효과가 기존에 비해 3배 이상의 수치로 상승합니다.] [강렬한 자극이 대량으로 활성화됩니다. 지방 900g이 즉각 분해되어 배출되었습니다!]‘좋아! 이거야.’
확실히 침을 깊게 꽂아 넣고 마나를 순환시키니, 몸이 더 적극적으로 반응을 해 왔다.
순간 뱃살이 손톱만큼 쑥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와!”
아슬아슬하게 발끝이 보였다.
숨을 내쉬면 보이지 않지만, 숨을 들이쉬니 엄지발톱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가 사라진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방금 전에는 아예 발톱을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으니까.
신이 났다.
나는 여기저기 박혀 있는 침들을 손으로 만져 가며, 계속해서 마력을 불어넣었다.
“하, 내 몸에서 삼겹살 굽는 냄새를 맡아 보기는 처음이네.”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불의 힘을 활성화시킬 때마다, 뱃살 위로 노릇노릇한 고기 냄새가 풍겼기 때문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는 묵묵히, 뻘뻘 땀을 흘리며 지방 분해에 전념했다.
* * *
지하실에서 한참 땀을 빼고 난 뒤.
시원하게 목욕까지 마치고 돌아온 내가 집무실의 의자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이 헤이즈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 위로는 작은 쟁반이 들려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요청한 저녁 식사였다.
“영주님, 말씀하신 메뉴만 식사로 준비해 왔어요.”
“고마워. 놓고 가도 돼.”
“너무 가혹한 것 같아요.”
“응?”
“전부 다 야채, 채소잖아요? 혹시라도 이런 것만 드시다가 영주님이 쓰러지시면 어떡하나 걱정돼요. 예전에 영주님이 드시던 푸짐한 식사에서 내용물이 하루아침에 너무 달라져서…….”
푸짐한 식사라는 말이 뭔가 뜨끔하게 들린다.
확실히 많이 먹긴 했다.
아니, 정말 많이 처먹었다! 그렇게 먹고도 죽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로.
말이 좋아 초고도비만이지, 시스템에 ‘초초고도비만’이라는 분류가 있었다면 그것으로 분류됐을 것 같은 식사량이었다.
나는 오늘부터 단호하게 식단을 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야 지방 분해침과의 시너지가 매우 좋아진다. 이는 에서도 검증된 연관 관계다.
“침술에 식단 조절은 필수야. 그래야 효과가 배가되거든.”
“아, 정말요?”
“응. 반드시 지켜야 해.”
나는 착실히 침술 꼼수의 단계를 이행할 생각이었다.
이미 에서 검증된 방법이기에 의심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면 콩고기라도 만들어 볼까요? 예전에 요리사님에게 배운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영주님이 싫어하셔서 물리셨지만, 지금은 괜찮을 것 같은데요?”
“콩고기? 그것도 괜찮겠네. 어쨌든 콩으로 만든 거라, 진짜 고기는 아니고 말이야.”
“네에! 그렇죠!”
“그럼 한번 헤이즈 솜씨를 좀 볼까? 지금 만들어 주겠어?”
“물론이죠! 영주님께서 분부하신다면 전 무엇이든 할 거예요!”
“무엇이든? 그 어떤 것도 상관없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