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84
제 84화
31장. 마스터 포션 – 4화
“엄마, 아빠를 살려 주세요! 제발요! 우리가 도대체 무슨 죄를 졌다고 이러시는 거예요?”
“이자벨……?”
처음에는 잠에서 깨어나 소리치는 것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꿈속에서 그녀는 누군가를 향해, 끊임없이 부모님을 살려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흑흑! 흑흑흑!”
이내 그녀가 잠결에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꿈속에서도 얼마나 서러웠는지 펑펑 눈물을 쏟는 모습이었다.
“…….”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러자 이내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뭘까.
꿈속에서 어떤 춥고 어두운 공간에라도 갇힌 것일까?
나는 화염 계열의 마법으로 그녀를 따뜻하게 만들어 줄까 하다가, 이곳이 공정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마음을 접었다.
조금은 뻔한 수단이지만, 그녀에게 즉각적인 온기를 전해 주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을 듯했다.
나는 공정실에 비치된 간이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이자벨에게 이불을 꼭 덮어 주고는 조심스럽게 껴안아 주었다.
슬픔과 추위를 동시에 느끼며 힘들어하는 그녀의 모습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내 그녀의 눈물이 잦아들고, 떨리던 몸도 잠잠해졌을 때.
“응? 너, 뭐야.”
“뭐긴 뭐야? 네가 추워하니까 이불도 덮어 주고, 그걸로도 모자란 것 같아서 이러고 있었지.”
“저리 가, 나쁜 놈아! 너……. 내가 자는 틈을 타서 설마?”
이자벨은 황급히 옷매무새를 살펴보았지만,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실오라기 하나 흐트러짐 없이 완벽히!
“이자벨, 고생해 줘서 고마워. 내가 너무 혹사시켰지? 미안하다.”
“아냐, 괜찮아. 그나저나 나도 모르게 잠을 깊게 잤나 봐. 우리, 아무 일도 없었던 거지?”
“놀라우리만치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걱정 마. 자, 손잡아.”
나는 손을 뻗어 이자벨을 힘껏 일으켜 주었다.
내게 향하는 이자벨의 시선이 왠지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아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자레드.”
“응?”
“너를 처음 봤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항상 들었던 생각인데.”
“무슨 생각? 또 변태니 뭐니 하는 얘기를 하려고?”
“아니, 그런 거 말고. 넌 진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아. 특히 너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는 지식을 말이야.”
“확실히 그렇긴 하지.”
“동방 대륙은 어떤 곳이야?”
“전에도 얘기했잖아. 그저 선대로부터 이어져 오는 얘기를 조금 들었을 뿐이야. 동방 대륙은 나도 몰라.”
“하지만 지난번 마군의 피난처 공략도 그렇고, 이번 마스터 포션 제작도 그렇고,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네 능력은 너무 대단해.”
“그렇게 말해 주니 정말 고맙다. 하지만 말이야. 동방 대륙은 정말로 나와는 관계없어.”
“왠지 그곳에서 왔지만 정체를 숨기고 있는 듯한 합리적 의심이 드는데……?”
흘겨보는 이자벨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심안을 얻었던 그때부터 해서, 내가 보인 기행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서 시스템이나 정보를 보는 것이 아닌 이상, 내 특별함은 이자벨이라도 알 길이 없을 터였다.
“일어났으면 제작에 집중하자. 주문이 엄청 몰려들 거야. 우리가 힘써 만든 포션이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테니까. 거기에 집중하자.”
“쳇……. 뭐, 알겠어. 프로는 프로답게 해야 하는 거니까.”
“그래야지. 그래야 이자벨이지!”
나는 이자벨과 다시, 묵묵히 마스터 포션의 제작에 들어갔다.
물이 들어왔을 때, 확실하게 노를 저어야 한다.
지금은 마스터 포션 한 병을 만들 때마다 돈방석에 앉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
* * *
자레드와 이자벨의 마스터 포션 제작은 꼬박 한 달 동안 계속됐다.
생산한 마스터 포션은 비상시를 대비한 10%의 재고를 남기고는 만드는 족족 외부로 팔려 나갔다.
처음에는 신데르스 왕국을 위시한 이웃 국가에서만 판매 요청이 들어왔었다.
우기로 인한 직접 수해와 전염병이 발생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구매 가능 여부를 묻는 문의가 여기저기에서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기의 시기만 북부와 다를 뿐, 나스 대륙에 있는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의는 매우 다양하게 들어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레드는 아르케네스를 급히 호출했다.
대화 창구를 중구난방으로 열어서는 답이 없기에, 아르케네스로 하여금 교통정리를 하도록 한 것이다.
심지어 타타르 아일랜드의 다크 엘프와 레드 고블린 로드 이바니바에게서도 구매 요청이 왔다.
불과 한 달 전이었다면 이 모든 요청에 응할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제작 초기였기에.
하지만 지금은 가능했다!
이제 모든 생산공정이 완벽하게 자동으로 구축됐기 때문이다.
[마스터 포션 제작 – Lv. 100] [최대 레벨 달성] [최종 비용 5만 골드와 최상급 마정석 10개를 투자하여, 초고속 생산공정을 완비하였습니다.] [어둠의 마정석이 포션 제작에 연동되고 있습니다. 폭주를 막기 위한 주기적인 어둠의 마정석 정화 작업이 필요합니다.남은 기간 180일 23시간 34초]
‘진짜 인간 승리다.’
이자벨은 잠들어도 자신은 단 한 번도 잠든 적 없는 자레드였다.
자레드는 영지 대부분의 일은 가신들에게 맡기고, 오직 포션 제작에만 집중해 왔다.
그 덕분에 마스터 포션 제작 레벨 100을 한 달 만에 찍었다!
의 네임드 제작 유저도 6개월은 걸렸던 이 작업을 말이다.
만렙인 100레벨까지 자레드가 쉬지 않고 달렸던 것은 수동으로 부여하는 이자벨의 저주술을 어둠의 마정석을 이용해 자동 공정으로 대체할 수 있어서였다.
어둠의 마정석은 일반적인 마정석(빛)과 달리 성질이 매우 고약하고 난폭하여, 6개월에 한 번씩은 반드시 정화를 해 줘야 했다.
그것만 빼면, 이자벨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아도 되니 완벽한 대체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덕분에 크리비아 대영지의 국고는 한 달 전에 비해, 거의 5배에 가까운 수치로 크게 불어났다.
마스터 포션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면서, 자연스럽게 가격이 상승한 영향이 매우 컸다.
자레드는 마스터 포션 판매로 확보한 재정을 어디에도 집행하지 않고 우선 가지고 있기로 했다.
포션 판매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기는 했지만.
그만큼의 지출이 생길 조짐이 확실히 보이고 있었기에.
한편.
수익금의 9%를 분배받기로 한 이자벨은 자레드를 찾아온 자리에서 전부터 신중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 왔던 얘기를 하나 꺼냈다.
“자레드, 요청이 있어.”
“갑자기? 어떤 요청? 들어 보자.”
“이번에 포션 판매로 얻은 수익금은 내게 나눠 주지 않아도 돼. 그것은 영지의 수입이고, 네가 써야 할 곳에 쓰길 바라.”
“왜? 나는 네게 합당한 대가로 수익을 약속한 거야. 무료 봉사를 요청한 것도 아니고, 그럴 의무가 네게는 없어.”
“알아. 그러니까 수익 분배 대신 내 요청을 들어 달라는 거야.”
“음, 좀 더 얘기해 볼까?”
“주술사 길드를 만들고 싶어. 대륙 전역에 흩어져 있는 주술사들이 모일 수 있는 그런 길드 말이야.”
“괜찮은 생각이네. 주술사는 흑마법사와 사용 메커니즘이 다르기도 하고.”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술사는 전문 디버퍼로서 던전 공략이든 전쟁이든 다방면에 쓸모가 있는 존재들이었다.
한 가지 위험 요소가 있다면.
적절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 그들이 폭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레드의 그런 걱정을 일찌감치 예상하고 있었던 이자벨은 설명을 덧붙였다.
“일단 질이 나쁜 주술사는 받지 않을 거야. 무슨 말인가 하면,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주술사는 길드에서 거절할 거야.”
“진정한 의미의 주술사를 찾는다, 그런 개념인 건가?”
“맞아. 트란실리아 대학살 이후로 대륙 전체에 뿔뿔이 흩어진 주술사들을 모으고 싶어. 그리고 그 세력을…… 오롯이 자레드, 네게 도움이 될 세력으로 만들까 해!”
이것만큼은 자레드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이자벨의 제안이었다.
단언컨대 자레드는 한 명의 잘 훈련된 주술사가 동급의 셋, 아니 넷 이상의 백마법사를 능가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의 데이터가 입증한 팩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주술사를 양성하고 관리하는 것이 힘들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역할을 이자벨 본인이 직접 나서서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충동적으로 얘기하는 거 아니야. 새로운 육신을 얻은 그 시점부터 해 온 오래된 생각이야.”
“이자벨, 오늘 네가 한 말은 정말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자레드, 네가 무엇을 걱정할지 알아. 내 명예와 과거를 걸고, 주술사들을 확실히 통제할게. 약속할게. 네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없게 하겠다고.”
“많이 외로웠겠다. 예전에 너와 함께했던 주술사들이 생각나서.”
자레드가 이자벨을 위로했다.
하지만 이자벨은 입술을 질끈 깨문 채, 고개를 저으며 애써 아픔을 털어 냈다.
“괜찮아. 그저 네 영지에 좀 더 보탬이 되고 싶을 뿐이야. 네게 내가 충분한 존재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좋아. 주술사 길드의 설립 및 초기 지원은 내가 아낌없이 해 줄게. 단, 책임지고 잘 관리해야 할 거야. 주술사들이 금지된 흑마법에 손대거나, 혹은 암흑 교단과 손잡고 변질되는 순간…….”
“변질되는 순간?”
뒷말을 되묻는 이자벨의 눈빛이 차갑게 반짝였다.
“내가 앞장서서 전력을 다해 그들을 부숴 버릴 테니까. 암흑 교단과의 공존은 없어.”
“걱정 마. 너 이상으로 나 역시 그들을 혐오해.”
이자벨이 자레드의 걱정을 일축했다.
“좋아! 그럼 빤스 벗고 시원하게 밀어 주지!”
“뭐? 뭘 벗는다고?”
그렇게 주술사 길드의 설립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아직 나스 대륙의 다른 국가들은 학살 이후에 수가 크게 줄어든 주술사의 잠재력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에서 주술사가 가진 특유의 파괴력에 집중했던 자레드는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을 잘 양성해 두면, 앞으로 벌어질 수많은 전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음을 말이다.
자신이 생각하기 전에 이자벨이 먼저 움직여 줬다는 사실은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영지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 자신 혼자만은 아닌 것 같아, 자레드는 그것이 든든하고 행복했다.
* * *
나스 대륙력 1415년 8월 19일.
영지 외곽 시찰을 나갔던 나는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전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떡 벌어진 입은 덤이고, 이게 현실인가 싶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광경이었다.
덜컹덜컹. 터벅터벅.
저 멀리 영지 외곽 국경을 따라 보이는 산 능선 위로, 끝없는 인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기와 대홍수, 전염병으로 발생한 주변국의 난민이 대거 우리 영지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었다.
한데!
예상했던 규모보다 3배, 아니 4배는 족히 넘을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
“백성들을 이렇게 버린다고? 도대체 뭐하는 짓거리냐.”
나는 지끈거려 오는 이마를 부여잡고, 밀물처럼 몰려드는 난민의 파도를 바라보았다.
이들은 분명 난민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소속 국가에서 의도적이고 전략적으로 내다 버린 것이다. 쓰레기도 아니고 사람을 말이다.
생계와 터전을 모두 잃고, 언제든 도로 변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 난민들은 그들의 통치를 위협하는 위험 요소였을 터.
그러니 내 영지로 쫓아내 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얼빠진 국왕 두 놈, 이 머저리 같은 XX들이…….”
절로 터져 나오는 욕을 참을 수가 없었다.
보누스 왕국, 말루스 왕국.
그날 이후로.
나는 두 왕국의 이름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나만의 데스노트(Death Note)에 적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