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85
제 85화
32장. 유랑민 대이동 – 1화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워어, 워어, 워어!”
헤이스트와 텔레포트 마법을 이용해 현장에 빨리 도착한 자레드의 뒤를,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라키스와 아그레시오 친위대가 따라붙었다.
자레드의 뒤에서 차례대로 멈춰 선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똑같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것은…….”
“영주님이 거듭 말씀하셨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군요! 하지만 이것은 거의 망국(亡國)의 백성들이 피난을 오는 규모가 아닙니까?”
“그렇소. 그래서 나도 내 눈을 의심하는 중이었소.”
자레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난민의 발생은 어느 정도 예상을 했는데, 규모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다.
난민들의 복색을 보니, 신데르스 왕국에서 온 사람들은 전혀 없어 보였다.
지금 그쪽은 현장에 직접 지원을 나온 국왕 이즈엘과 공주 마이라가 피해 복구를 위해 한창 고군분투 중이었다.
국왕과 공주가 직접 나서서 수해 현장의 복구를 지도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도망갈 백성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전부 보누스 왕국과 말루스 왕국에서 온 난민들 같습니다.”
옆에서 지켜본 라키스의 예측은 정확했다.
일단 자레드는 어깨 위에 조용히 앉아 있던 데리를 지면에 내린 뒤,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데리, 저 인파들 사이에서 암흑의 기운을 탐지해 줘. 누군지까지 특정할 필요는 없고, 얼마나 되는지만 탐색하면 돼.”
-알았당. 약속한 츄르는 돌아오면 줘야 된당.
“후불로 받게? 선금으로 주지.”
-오호랏! 좋당!
데리에게 줄 츄르는 한 달 내내 마스터 포션을 만들면서, 함께 제작을 끝낸 자레드였다.
앞으로 일 년 치 이상의 츄르가 충분히 확보됐기에, 데리를 조련(?)하는 것은 문제없을 듯했다.
자레드는 분명히 난민들 사이에 움브라 교단의 추종자들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지 않는가?
자레드가 기억하는 에서의 클루제, 그리고 자신이 클루제였다면 어떻게 했을지에 대한 시뮬레이션.
이 두 가지로 교차 검증을 해 봐도 뻔히 나오는 결론이었다.
라키스가 물었다.
“영주님, 기존의 1안대로 확정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계획한 대로 이쪽 지역 전체에 사나레(Sanare) 지구라는 이름을 붙이고, 난민 거주 지구로 공표할 것이오.”
“넓은 황무지를 개간하고, 인근의 산간지대를 개발하는 이원 작업을 하시겠다는 말씀이군요.”
“지금까지 이쪽 지역은 우리 크리비아 영지에 편입되기는 했으나, 개발할 동력이 부족한 곳이었지. 이참에 영지의 재원을 모두 투자해서 사나레 지구를 개발할 것이오.”
“아……. 그렇다면 설마 마스터 포션의 판매도 오늘의 일을 생각한 안배이셨던 겁니까?”
라키스의 감탄 섞인 물음에 자레드가 대답이 아닌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난민의 규모가 생각보다 많기는 했지만, 어쨌든 예상했던 일은 이루어졌다.
다만 영지의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인구가 갑작스럽게 폭등하게 되면,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첫째, 치안이 나락까지 떨어질 수 있다.
자레드는 저들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영지 정보창에서 치안 수치가 폭락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간 정말 공들여 올린 수치지만,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래서 치안의 부재와 공백을 막기 위해, 라키스와 아그레시오 친위대 전원을 데려왔다.
이들만 있어도 초기의 치안 유지는 문제없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내로 바로 크리비아 영지군 일부도 차출하여 파견할 생각이었다.
굶주린 난민이 경우에 따라 범죄자로 돌변할 가능성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을 엄단하기 위해서는 공권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군대는 필수였다.
둘째, 난민의 정착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예산이 소진된다.
이 부분은 그래도 걱정이 없었다. 마스터 포션으로 정말 천문학적인 수익을 손에 넣었으니까.
게다가 앞으로 다른 국가, 혹은 종족과 맺게 될 마스터 포션 계약을 생각하면, 재원 걱정은 안 해도 됐다.
‘어쨌든 우리 영지에서 희망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지. 바로 영지민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우선 정착하게 한 뒤 단계적으로 편입시키면 된다.’
자레드는 생각을 갈무리했다.
난민 정착에 가장 중요한 셋.
땅, 지원 자금, 치안 유지.
이 세 가지 조건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
인구는 힘이다.
인구가 늘어나면 그만큼 영지의 규모가 커지고, 상비군으로 징병 또는 모병하여 활용할 수 있는 젊은 가용 전력이 늘어난다.
아울러 안정적으로 정착만 해 준다면, 장기적으로 세수(稅收)가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사나레 지구를 어떤 지역으로 개발하느냐인데…….’
아직 이 부분에 대한 결론을 명확히 내리지 못했다. 아직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 지구로 하기엔 황무지 개간부터 시작해야 하는 지역이라 갈 길이 구만리다.
당장은 땅을 갈아엎고, 그 위에 구황작물인 레트리아를 심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했다.
여기서 안정적인 벼농사를 하면서, 영지의 곡창지대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고 악몽의 숲이나 마군의 피난처 같은 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수 자원인 켈디아가 묻힌 광산이 있는 것도 아니니.’
상업적으로나 자원 개발 쪽으로도 영 꽝이었다.
이런 이유로 일전에 이곳을 다스렸던 다른 영주들도 일체 손대지 않고 내버려 둔 것일 터다.
‘방법은 하나. 이곳을 성지(聖地)로 만들면 돼.’
성스러운 땅, 성지.
자레드가 떠올린 가장 확실한 치트키는 바로 그것이었다.
성스러운 땅.
모든 라디우스 교단의 신앙인이라면 절대 방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대성지를 만드는 것이다!
* * *
나는 ‘사나레 지구 성지 만들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전에 확실한 사전 작업을 진행했다.
먼저 총행정관인 율리안을 제외한 우리 대영지 내의 베테랑 가신들을 모두 여기로 소환했다.
난민의 정착과 함께 내정 안정화를 빠르게 꾀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영지군을 대거 소집하여, 사나레 지구의 내외곽 전체를 물 샐 틈 없이 관리하도록 했다.
전권은 라키스에게 맡겼다.
그에게 딱 두 가지 키워드만 강조했다.
당근과 채찍.
어떻게든 새로운 땅에 정착해서 새 삶을 꾸려 보려고 노력하는 난민들은 힘껏 도와주는 당근.
그리고 혼란을 틈타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을 엄단할 채찍.
필요하다면 재량에 따라 즉결 처분도 가능하게 했다.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자행하고, 새 터전에서 텃세를 부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공식적인 지원 정책을 난민들에게 빠짐없이 안내했다.
첫째, 사나레 지구에 거주용 자택을 짓는 과정에 필요한 금액 전액 대출. 장기 20년 상환.
둘째, 황무지 개간으로 얻은 소출에 대해 향후 4년 세금 100%, 이후 2년 50% 면제.
셋째, 향후 사나레 지구에서 진행할 대규모 토목공사에 참여할 경우, 역부로서의 징집이 아닌 보수를 받는 노동자로서 대우.
이렇게 세 가지를 골자로 한 정책이었다.
거주용 자택은 어차피 대저택의 개념이 아니기에 비용 발생이 크지 않았고,
황무지 개간의 경우에는 식량 생산이 가능한 땅으로 만든다는 그 자체의 의미가 컸다.
면제 기간을 더 늘려 줄 수도 있었지만, 지나친 선심 행정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기간을 줄였다.
그리고 토목공사는 ‘성지 만들기 프로젝트’를 염두에 둔 것으로 난민들의 빠른 정착을 돕기 위한 디딤돌이었다.
무보수로 징집되는 역부라면 반감이 컸겠지만, 보수를 받는 노동자라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이렇게 난민 정착 및 지원을 위한 베이스는 마련됐다.
라키스와 아그레시오 친위대, 그리고 영지군은 사나레 지구 전역을 뛰어다니며 난민들의 질서를 유지하기에 힘썼다.
그 이후로도 보누스, 말루스 왕국 방면에서는 끝없는 난민들의 진입 행렬이 이어졌다.
공식 추산으로만 따져도, 크리비아 영지의 인구에 해당하는 난민이 그대로 유입됐다.
즉, 졸지에 대영지의 인구가 2배로 늘어난 것이다.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난민들이 영지의 백성으로 연착륙한다면, 우리 크리비아 영지는 주변의 왕국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그때부터는 지옥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컸다.
‘보누스 왕국, 말루스 왕국은 나중에 기필코…… 이번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지.’
나는 대홍수와 전염병을 빌미 삼아, 소중하게 여겨도 모자랄 자신들의 백성을 내쳐 버린 두 왕국의 국왕을 경멸했다.
이런 놈들은 왕관을 쓰고 있을 자격이 없다.
그저 왕인 아버지를 잘 만나 왕위를 물려받았을 뿐, 하는 짓은 양아치만도 못한 것이었으니까.
그때.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내게 데리가 찾아왔다.
데리에게는 계속해서 암흑 교단의 추종자들을 탐색하고 감시하도록 지시해 둔 상태였다.
이미 몇몇 추종자들은 아그레시오 친위대에게 체포된 후, 지하 감옥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는 중이었다.
-자레드, 가장 눈여겨보고 있던 녀석의 수상한 움직임이 보여서 얼른 왔당.
“그래, 그놈은 어떻게 됐어?”
-산을 넘어 자신의 아지트로 향했당. 그 녀석이 말하기를 ‘자레드 놈, 제법이군!’이라고 했당.
“백발에 두 눈을 가린 붉은 가면을 쓴 놈, 맞지?”
-맞당. 그놈이 부하들과 함께 빠져나갔당.
“미꾸라지 같은 놈. 좀 더 깊게 들어올 것이지, 기어이 간만 보다가 빠져나가는군!”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신데르스 왕국의 내전에 개입한 시점부터 움브라 교단과 적이 될 것은 이미 각오했던 일이었다.
아울러 움브라 교단에서 가장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클루제와 마주칠 것도 당연히 예상했다.
나는 녀석이 좀 더 영지 깊숙한 곳으로 들어와서 꼬리가 밟히길 기다렸는데.
그는 용의주도하게 국경 지대 근처에서 계속 사태를 관망만 하다가 빠져나가 버렸다.
-안내해 줄깡?
데리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마 대전 발발 당시, 클루제는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강력한 네임드였다.
마왕군의 선봉으로 악명이 높았던 통곡의 벽 레나도 클루제 앞에서는 한 끼 식사거리밖에 안 된다는 얘기가 돌 정도.
그렇다면 지금도 충분히 강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9년 후보다는 분명 지금이 약하겠지.
반면에 나는 얼마 전에 트랜센던스 마법을 얻으면서, 자신감이 크게 올라 있었다.
‘탐색전 정도는 얼마든지!’
나는 클루제를 쫓기로 했다.
녀석의 지금 수준을 알고 싶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반드시 승리할 수 있기에.
클루제와의 악연은 이미 시작됐고,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는 사라지지 않을 원한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0분 후.
나는 데리와 함께 클루제의 임시 아지트였던 지하 동굴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
현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방금 전까지 분명 사람이 머물다 간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명확하게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동굴의 내벽에 크게 붙어 있는 나의 초상화와 이마 한가운데에 박힌 단검.
심지어 단검에는 묻힌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 틀림없는 사람의 피도 묻어 있었다.
“하……. 남자 스토커는 질색인데, 정말.”
나는 텅 비어 있는 어두운 동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까진 내 생각이지만.
앞으로 꽤 집요하게 내 꽁무니를 쫓아다닐, 질이 매우 나쁜 스토커가 하나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