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99
제 99화
37장. 야금의 아버지, 아세로 – 2화
“휘유우우우…….”
“거, 숨소리 참 거치네.”
내가 안정적으로 고도를 유지하며 잘 비행했기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아키는 잠에 푹 빠졌다.
아직 플레누스 광산까지는 거리가 제법 남아 있었다.
‘어디 보자…….’
나는 착용하고 있는 타트라 넥스, 타넥스의 여기저기를 살폈다.
에서 다크 엘프가 타넥스의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갔을 때, 전쟁 중에 탈취해서 타넥스를 써 본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내부 관리 시스템이나 기동 구조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타넥스만큼 블로그 포스팅 하기에 좋은 콘텐츠도 없었기 때문에 정말 미친 듯이 탔던 것이다.
한데 바로 그때.
‘아?’
가져온 거울을 이용해 타넥스의 여기저기를 꼼꼼하게 살피던 나는 한 가지 특이점을 발견했다.
정확히 이마 부분 쪽에 박혀 있는 작은 마정석 아래로 미세하게 뚫린 구멍 하나가 보였던 것이다.
사실 스치듯 보면, 생산 과정에서 만들어진 작은 구멍처럼 보일 정도지만.
‘데이터 수집 중이다, 이건가?’
나는 저것의 용도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일종의 화면 공유다.
타넥스가 내 시선을 따라 머리 쪽이 움직이기에, 내가 보는 것은 타넥스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나와 파일럿이 동일 인물이니 문제 될 게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핵심은 이 초월체의 비밀 코드와 같은 기밀이 여전히 사비오의 손아귀에 있다는 점이다.
반짝. 반짝.
아주 미세한 불빛이기는 해도 분명 무언가가 안에서 가동되고 있었다.
‘뭐, 좋아. 어차피 녀석은 초월체에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자료라면 언제든 환영할 테니까. 그리고 내가 잘 활용해 주면, 그만큼 호기심도 높아지겠지. 어쩌면 직접 날 찾아올 수도 있고.’
나는 개의치 않기로 했다.
어차피 중요한 대화를 하거나 장소에 있을 때는 타넥스를 아공간에 격리해서 보관한다.
그 안으로는 외부의 어떤 것도 새어 들어가지 않으니, 보안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아음…….”
그때, 잠에 취해 있던 아키가 잘 잡혀 있던 타넥스의 손아귀 속에서 몸을 빙그르르 돌렸다.
이 자식, 너무 잠에 푹 빠진 나머지 여기가 자기 집 침대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야, 야!”
나는 몸을 돌린 아키를 다시 원상태로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위쪽의 상체를 잡아끌었다.
그런데.
“응?”
뭔가 이상했다.
아무 생각 없이 어깨와 배, 그 언저리로 손끝이 닿으며 지나갔는데…… 묘한 굴곡이 느껴졌다.
운동하는 건 본 적이 없는 녀석이니 탄탄한 근육은 당연히 아닐 테고, 그럼 삐져나온 살인가?
생각해 보니 최근 음식 유행을 만들기 위해서, 온갖 맛집을 찾아다니는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너무 내가 상단 일만 하게 시켰나? 앞으로는 강제로 운동하는 시간도 넣게 해야지.”
괜히 미안해졌다.
하긴 요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일에 시달리는 아키다.
그래서 나와 함께 잠시나마 격무(激務)에서 벗어나, 여행 아닌 여행을 떠나는 것에 무척 기뻐했던 것 같았다.
“녀석.”
나는 아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잠도 자지 않고 열일 하는 독한 영주를 만나서 고생이 많다.
그렇게 시간은 제법 흘러갔다.
타넥스에 저장된 마력이 슬슬 바닥을 드러낼 즈음.
“보인다.”
마침 산 능선 하나를 넘고 나자, 저 멀리 보이는 수많은 횃불의 향연이 보였다. 목적지였다.
플레누스 광산.
저기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인재가 숨어 있다.
야금의 아버지, 아세로.
그는 성마 대전 발발 이후, 3년이 지난 뒤에 우연히 광석을 조사하다가 켈디아를 발견하게 된다.
메인 퀘스트에서 플레이어가 ‘대반격의 시작!’ 챕터를 진행하게 될 무렵의 시점이다.
이때부터 모든 신성 연합군에 켈디아로 제작한 무기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철 무기로 무장한 마왕군에게 비교 우위를 점하게 된다.
그리고 신데르스 공방전 – 스토리에서는 신데르스 왕국이 마왕군의 거점이 되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 에서 마왕군을 격퇴하며!
퀘스트 이름 그대로, 대반격의 서막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금은 내 가신으로 있는, 하지만 퀘스트에서는 마왕군의 선전관으로 있는 발데스가 죽는다.
마왕군이 모두 도망치고 자신만 홀로 남은 연단 위에서.
발데스는 연합군에게 잔인하게 난도질당하며, 숨이 끊어질 때까지 피를 토하며 연설을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처절하고 잔인했는지, 해당 영상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경고 문구 확인과 함께 성인 인증을 해야 했을 정도였다.
‘기존의 역사를 12년이나 앞당기게 되는 건가?’
계산대로면 그렇다.
12년 뒤의 아세로는 당연히 네임드 대장장이가 된다.
하지만 지금은 광산의 흔해 빠진 대장장이 중 하나일 뿐이다.
아무도 그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기에, 광산 가장 깊은 곳에서 고된 일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
‘에서는 마음껏 하지 못했던 금속 연구, 현생에서는 원 없이 하도록 해 주지.’
웃으며 더욱 속력을 높였다.
에서 아세로는 광산에서 금속을 이용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다가, 상관으로부터 금속 횡령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죄를 뒤집어쓰고 태형 100대를 맞는다.
그 뒤로 ‘반불구’가 되어, 몇 년을 앓아누워 지낸다.
절대 현생에서는 그와 같은 비극을 반복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키, 다 왔어.”
“네? 어헛! 벌써 다 왔다고요?”
“뭐가 벌써야, 인마. 네가 꼬박 잠잔 시간이 8시간이 넘어. 어떻게 한 번을 안 깨고, 그리 자냐?”
“헤! 영주님의 온기가 느껴져서 그런 걸지도요.”
“아 참, 아키.”
“네?”
“살 좀 빼. 아까 자다가 몸을 뒤척이길래 다시 원위치시켰는데, 돌리다가 만져진 네 두툼한 속살에 깜짝 놀랐다.”
“에? 뭐라고요? 제 속살, 속살을 만졌다고요?”
“뭘 놀라고 그래? 그냥 지방 덩어리인 살인데.”
“아, 영주님! 그래도요! 그건, 그건 아니죠! 허락을 받고, 아니 속살은 만지면 안 되는 거죠!”
“그럼 내게 안겨서 타고 가면서, 내가 허리를 잡는 건 되고?”
“그건! 이거랑은 좀 다르죠?”
갑자기 아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뭘 이리 유난을 떠는지 원.
친하면 남자든 여자든 동성끼리면 목욕탕에 가서 서로 알몸도 보는 판인데 말이다.
“시끄럽고, 내릴 준비 해. 이제 문지기부터 차례대로 뒷돈 먹일 시간이다.”
“아…….”
분위기를 환기해 봤지만, 아키는 뭔가 후폭풍이 심하게 온 모양이었다.
그래서 기다려 주기로 했다.
어차피 마력 대부분을 소진한 타넥스에 마력을 충전할 시간도 마침 필요하긴 했으니까.
* * *
깡! 깡! 깡!
자신에게 할당된 작은 대장간.
모두가 지옥과 같은 광산의 하루 일과에 나가떨어져, 저녁을 먹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아세로는 얼굴이 숯검정으로 까맣게 된 채로 연신 모루 위에서 망치질을 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시설이 열악해서 엄청난 열기와 매캐한 연기가 뒤섞인 공간이지만, 아세로는 그래도 여기가 좋았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대장간에서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금속과 함께 뛰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광산의 다른 동료는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갔으나, 아세로는 여전히 모루질에 푹 빠져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
“아세로!”
걸쭉한 목소리와 함께 육중한 덩치의 남자가 대장간 안으로 대뜸 들어섰다.
아세로의 상관인 동시에, 플레누스 광산의 23구역을 담당하고 있는 총감독관 부쿠였다.
부쿠의 위세와 악명은 다른 구역의 감독관이 감히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기에 아세로는 바로 하던 모루질을 멈추고 부복했다.
“부쿠 총감독관님!”
“이 새끼! 내가 사적으로는 절대 철 갖다 쓰지 말라고 했지! 네놈이 뭔데 왕국의 재산을 이렇게 함부로 낭비하는 거냐!”
퍼억! 퍼억! 퍼억!
“크억! 어억! 아아아악!”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쿠가 아세로를 인정사정없이 짓밟았다.
100kg가 훌쩍 넘는 체중이 실리는 발길질이었기에, 호리호리한 체형의 아세로는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전부터 경고한 횟수만 세어도 우리 어머니 나이만큼은 나올 거다, 이 자식아! 감독관의 말을 개똥으로 듣고 무시를 하니까, 다른 놈들도 나랑 맞먹으려고 하지! 아주 이참에 본보기를 보여 주겠어!”
촤악! 촤아아악! 촤악!
“크아아아악!”
발길질에 채찍질까지 이어지자, 아세로의 비명이 더 커졌다.
워낙에 힘이 좋은 부쿠였기에 맞는 매 하나하나가 정말 뼈가 으스러질 정도의 고통이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싶었다.
함부로 허가 없이 순철(純鐵)을 갖다 쓴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다른 대장간에서 얻은 불순물을 이용해서 이런저런 연구를 해 보고 있는 것뿐.
하지만 그 불순물마저도 자신의 사유재산으로 여기는 부쿠에게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무슨 네 연구 자원 대주는 놈도 아니고, 자꾸 내 말을 무시하고 이런 짓을 해? 오늘 아주 죽여 버리겠어. 어차피 너 같은 대장장이 하나 죽어 나가도 대충 사유 써서 제출하면 그만이야! 알아?”
부쿠가 씩씩거리며, 살기가 가득 찬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그러자 마침 광산의 역부가 놓고 간 쇠도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세로에게 보수를 맡긴 손도끼였다.
이미 눈이 돌아갈 대로 돌아간 부쿠는 바로 도끼를 집어 들어서, 폭주를 거둘 틈도 없이 그대로 아세로의 머리를 내리쳤다.
“아아아악!”
아세로가 절규했다.
하지만 그때.
“잠깐!”
힘껏 내리치려던 도끼의 움직임이 멈췄다. 누군가에 의해 부쿠의 어깨와 팔이 잡혀 버렸기 때문이다.
“뭐야?”
성난 부쿠의 눈이 뒤를 훑었다.
그러자 평복 차림을 한 남자가 자신의 팔을 꽉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이 보였다.
“뭐냐고? 너는 뭔데 내 팔을 붙잡고 있는 거냐? 보아하니 새로 온 신입인가 본데. 정줄 놨어?”
부쿠가 왼손을 뻗어, 남자를 뒤로 밀쳐내려 했다.
꽤 힘을 실어 그를 밀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벽처럼 제자리에 있었다.
부쿠는 순간 당황했지만, 기세는 잃지 않았다.
“뭐냐고 묻잖아, 새꺄.”
“아세로의 친척입니다. 잠깐 대화를 하고 싶어서 찾아왔으니, 자리를 좀 비켜 주시죠.”
남자의 말은 차분했다.
뒤에는 수행원처럼 보이는 남자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는 매우 흥미로운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것처럼.
부쿠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도 악마 감독관이라는 별명을 얻고, 플레누스 광산의 왕이라고도 불리는 자신이었다.
“친척이고 나발이고 여긴 내 구역이고, 아세로는 내 감독하에 있는 대장장이다. 친척이 아니라, 아세로의 에미 애비가 와도 마음대로는 못 해. 알아?”
바로 그때.
남자가 뒤에 있는 수행원으로부터 가죽 주머니 하나를 건네받아서는 부쿠에게 던졌다.
쩔렁!
“이건 아세로와 마음 편하게 대화를 하기 위해서, 네게 주는 선물이다. 열어 봐라.”
남자의 말이 순간 반말로 변했다. 너무 당당히 하대(下待)를 해서 인지 당황할 겨를도 없었다.
부쿠는 일단 건네받은 주머니부터 열어 보기로 했다. 쩔렁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 왠지 ‘그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자식이 어디서 장난질을……. 헐?”
가죽 주머니를 열어 본 부쿠의 표정이 경악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세상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는 금화의 향연이었다.
혹시나 은화나 동전이 섞여 있나 싶어서 구석구석 뒤져 봤지만, 100% 금화였다.
어림짐작으로도 100골드는 족히 넘어 보이는 돈.
봉급으로 따지면 감독관인 자신의 3년 치 연봉이었다!
“주머니는 아직 더 있는데.”
“아, 아니 이게 갑자기 어떻게 된……. 저기, 실례지만 누구신지?”
부쿠의 말투가 갑자기 공손해졌다.
방금 전까지 아세로의 목숨을 빼앗아 가려던 미치광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알 거 없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할 자신이 있으면, 금화가 이만큼 담긴 주머니를 세 개는 더 주지.”
“여기!”
뒤에 있던 수행원이 부쿠를 향해 가죽 주머니 세 개를 힘껏 흔들어 보였다.
금화!
돈에 살고 돈에 죽는 부쿠에게 절대로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부쿠가 고분고분한 양이 됐다.
그러자 남자가 살이 통통하게 붙은 부쿠의 귀를 잡아당기며, 귓가에 대고 차갑게 속삭였다.
“아세로를 플레누스 광산에서 확실하게 해고했다는 증명서를 만들어 오도록 해. 총관리자의 직인(職印)까지 찍어서 말이야.”
“……!”
“그러면 9년 치 연봉을 더 얹어 주지.”
“옛.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부쿠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자리에서 자존심을 내던지고, 남자의 돈에 자신의 영혼을 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