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25
네 번째 층계의 주인이 광포하게 불꽃을 내뿜는다. 시레나는 양반이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쟤가 우리 집에 있었으면 벽지고 카드고 다 타고 있었을 거다. TV에 물 뿜는 정도면 귀엽지 뭐.
나는 「불사의 화염, 라르」를 보며 감상에 젖었다. 오랜만이네. 이 녀석도.
[탑에서 지내 온 시간이 엄청나게 길지는 않지만… 벽을 뚫고 들어오는 인간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귀찮으니까 따지려면 개발진한테 따져.”
[「라르」의 불꽃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다행인 점은 라르의 듀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불 쑈가 있다는 점이다.
그 동안 「?」카드나 변환시켜 놔야지. 나는 가져온 덱에 「?」카드를 변환한 카드를 집어넣고 덱 메이킹을 완료했다.
그 사이에 공중에서는 현란하기 그지없는 불쑈가 펼쳐지고 있었다.
자주 이야기하지만 카드에서 중요한 것은 성능이지 저런 화려한 이펙트따위가 아니다.
“언제 끝나냐?”
[이 위대한 불꽃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건가?]“딴 생각 할 테니까 끝나면 이야기해.”
내가 「라르」를 처음으로 테스팅했을 때는 탑을 오를 필요가 없었다. 그냥 ‘이런 탑주가 있으면 할만한가요?’ 라는 질문에 ‘또 되도 않는 난이도로 탑주를 만들었네요.’ 라고 대답했을 뿐.
서윤하였다면 나에게 옆차기라도 날렸을 테지만 이 때의 피드백을 받는 사람은 서윤하가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그때까지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진짜 문제는 라르에 대한 피드백이 성황리에 끝난 다음, 라르가 「탑」에 나타났을 때였지.
30층을 돌파하고, 세 번째 플로워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커다란 난관에 봉착했다.
네 번째 플로워는 「불의 신당」이라는 장소다. 신당은 신단 하나가 있고, 열 개의 횃불이 타오르는 장소.
그리고…
[이 불꽃들을 끄는 자들에게 저주 있을지니.]라는 의미 불명의 문구가 있는 장소.
나는 처음 신당에 도착하자마자 불꽃을 꺼트리려고 시도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이 빌어먹을 불꽃들은 하나를 꺼트리면 하나가 살아나고, 하나를 꺼트리면 하나가 살아나는 짓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소화기로 불을 한번에 끄는 짓과 밀폐 공간을 만들어서 산소를 차단하는 짓까지 해 봤지만 허사였다.
명백하기 그지없는 버그였다. 나는 분노의 5700자를 세 번이나 소울 사에 보냈지만 이번에도 무참하게 무시당했다.
빌어먹을 자식들. 진짜 트럭 몰고 간다. 딱 기다려라.
피드백을 주던 게임사 직원이 「정말로 근본적으로, 본질적으로 놓치는 게 없는 겁니까.」라며 애원하는 척 나를 쳐다봤지만. 죄다 거짓부렁이다.
다시 말하건데, 카드 게임에서 내가 놓치는 부분 따위는 있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은 공략 속도가 빠른 나를 막아서기 위한 소울 사의 계략이었다.
“그때 절망했지. 이 빌어먹을 게임사 녀석들에게. 「궁극의 역병」같은 카드를 만들었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궁극의 역병」. 좋은 카드이기는 하지. 그보다… 너는 혹시, 「창조자」님들과 아는 사이인 건가.]“몰라 그런 녀석들. 알 바 없어.”
네 번째 플로워에 막힌 나는 미친 듯이 다른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 끝에 내가 찾아낸 것은 서윤하가 있는 「이스터 에그 룸」이 라르가 있는 40층과 매우, 매우 인접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서윤하가 있는 장소와 40층 「라르」가 있는 곳이 매우 가깝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벽을 돌파해서 「라르」에게 도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결과가 바로 지금이지.”
[듀얼이 곧 시작됩니다. 덱을 세팅하십시오.]나는 카드를 덱 슬롯에 밀어넣었다. 내 두번째 ‘우승 특전 카드’가 있는 덱이다.
[불꽃이 타오릅니다!] [라르의 특이성이 발현됩니다!]화르르르륵! 거대한 불꽃이 내 덱 안으로 스며들었다.
+
【라르의 춤】
【개전 : 양측 모두의 덱에 「라르의 불꽃」열 장씩을 집어넣습니다.】
+
나는 조용히 패를 뽑아들었다. 기분 좋은 시작이다. 내 패에 「라르의 불꽃」이 세 장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뭐, 덱을 한 번 싸이클을 돌리면 자연스럽게 한 번씩 사용되는 카드이기는 하지만.
「순혈」이랑 같이 잡혔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은 것이다.
“턴 엔드.”
[이번에도 놀라지 않는군. 「창조자」님들과 아는 사이라면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그 자식들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마라.”
화나니까.
[라르의 턴입니다.]라르의 거대한 불꽃이 사람의 형상으로 화했다. 온 몸에 불꽃이 타오르는 미남자다.
짜증나게 하네.
“내 턴, 드로우하지.”
화르륵! 불꽃이 튀어오르며 카드가 라르의 패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튀어오르는 라르의 패에 들어간 카드.
+
【라르의 불꽃】
【0 mana】
【상대 듀얼리스트에게 피해를 0 줍니다.】
【덱에 섞여 들어갈 때마다 강화됩니다.】
+
미약한 불꽃이 튀어올랐다 사라졌다.
“턴을 종료하지.”
네 번째 탑주인 「라르」의 덱은 이 전 「신앙거석」과 완전히 반대의 덱 테마를 사용해야 하는 시련이다.
「신앙거석」이 커다란 덱 두께로 상대를 밀어붙여야 한다면 이번의 듀얼은 그것과 정 반대. 덱을 얼마나 압축하느냐의 싸움인 것이다.
덱을 압축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역시 「희생」이라는 테마를 통해서 카드를 덱에서 소멸시키는 것.
[당신의 턴입니다.]나는 패를 확인했다. 보통 카드를 소멸시키는 「희생」테마는 살을 주고 뼈를 깎는 어둠 속성의 덱이 가장 짜기가 쉽다.
나도 보통 라르를 공략할 때에는 어둠 속성을 사용하기도 했었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패에서 「순혈+」을 발동.”
+
【순혈+】
【0 mana】
【패에서 최대 다섯 장의 카드를 희생합니다.】
+
나는 빠르게 패에서 카드들을 지워나갔다.
내가 지운 카드는 네 장. 그 중에는 「라르의 불꽃」도 포함되어 있었다.
“망설임없이 카드들을 지우는군. 뚫려 있는 필드가 두렵지 않은 건가?”
“네 덱에는 덱 압축 카드들밖에 없잖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플레이해 봤으니 아는 거지.
라르의 공격 패턴은 단순하다. 자신의 덱에서 카드를 최대한 소멸해서 덱을 압축하고, 덱을 최대한 많이 리사이클해 강화된 「라르의 불꽃」을 계속 사용해 상대에게 데미지를 밀어넣는다.
플레이어에 비해 압도적인 체력량을 가지고 있는 「탑주」라서 가능한 덱 메이킹이다.
도전하는 듀얼리스트는 덱 압축 사이클의 속도가 웬만치 빠르더라도 체력의 차이 때문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매커니즘인 것이다.
물론 이건 완전한 일반론이다. 덱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특수한 카드를 넣지 않은 전용 덱으로도 충분히 라르를 때려잡을 수 있다. 물론 가능성은 조금 낮다.
“내 덱에 대해서도 알 정도다면 홀로 나에게 대적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도 알 텐데.”
“그러게. 끽해봐야 70%대의 승률을 가진 채로 도전하는 게 미친 짓이기는 하지.”
“…70%?”
“아. 미안하지만 지금 내 덱 이야기는 아니야. 지금 내가 들고 있는 덱의 승률은 그것보다 훨씬 높으니까.”
“허세 한 번 대단하군.”
허세를 부리는 건 내 주특기다. 그러나 지금 내 이야기는 허세가 아니다.
내 두 번째 「우승 특전 카드」는 그 정도의 성능을 가진 카드다.
나는 여유롭게 카드를 뽑아나갔다. 「무뢰역병」이 덱에 있는 이상, 이 듀얼은 내 승리가 확정되어 있으니까.
* * *
“시레나는 「용왕님」으로 직접 공격!”
촤아악! 용왕의 기다란 트라이던트가 뛰쳐나오던 몬스터의 몸체를 그대로 꿰뚫었다.
[마지막 몬스터가 처치되었습니다!] [게이트 웨이브의 진동이 줄어듭니다.] [게이트가 닫힙니다.]“시레나! 이겼어!”
청룡탕 옆 멀찍이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하품을 하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핑크스! 할 일 다 안 끝내고 도망쳤어! 놈팽이 고양이!”
[다 했어. 게이트를 닫았으니까 이리 돌아온 게지. 생선 대가리 같으니라고.]시레나는 콧김을 씩씩댔지만 확실히 북쪽에서 웨이브의 힘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스핑크스는 자신보다 아주 살짝 먼저 게이트를 막아낸 것이다.
[머저리 생선. 모습을 원래대로 돌려라.]“이게 시레나 원래 모습이야!”
[뭐가 됐건. 그 얼빵한 생선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다.]시레나가 입을 비죽이며 열대어의 모습으로 다시 변화했다. 변신한 시간이 오래 되지 않는데도 소모된 힘의 양이 막대하다.
[전익현. 힘 돌려달라면 돌려줄까?] [주겠냐? 그냥 놈의 듀얼을 옆에서 구경할 수 있는 걸로 만족해.]스핑크스는 시레나의 몸을 자신이 들고온 어항에 집어넣었다.
어항 밑바닥에는 조그마한 바퀴들이 달려서 스핑크스의 힘으로도 끌고 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돌돌돌.
스핑크스가 마뜩찮은 표정으로 수레를 끌기 시작했다.
도대체 자신들을 얼마나 부려먹을 생각인지 모르겠다. 전익현은 그녀들을 자신처럼 매일같이 노는 인간과 같다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시레나. 할 일 많아. 제자리에서 예쁘게 도는 거 연습해야 해.] [나도 눈만으로 TV채널 돌리는 방법 연습해야 하는데.]보그르. 하고 시레나가 뱉은 한숨이 어항 위로 보글거리며 솟아올랐다. 전익현은 자신들이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란 본래부터 그토록 이기적인 것이다.
[전익현. 지금 뭐 하고 있어?] [모르겠군. 어디 가서 또 미친 짓 하고 있겠지.]너무나 당연한 대답에 시레나는 스핑크스를 쏘아붙이려고 했지만 주변이 전부 뭍, 공기, 뭍, 공기, 뭍이었다.
공기는 피부미용의 적. 최소한 이번 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스핑크스에게 친한척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시레나는 최대한 따스한 어투로 말했다.
[스핑크스. 목 안 말라? 마실 물! 시레나 줄 수 있어!] [필요없어. 비린내 나.]촤악! 뻐어억!
시레나는 친한척이고 뭐고 솟구쳐올라 스핑크스의 몸에 격돌했다.
[죽어! 뭍짐승!]둘의 격렬한 묘쟁어투猫爭魚鬪는 한동안 지속됐다.
전익현이 봤다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제발 시킨 일이나 똑바로 하라고 짜증을 냈을 게 분명한 싸움이었다.
##웨이브는 때려치고 이스터 에그 (5)
카드 게임은 어떠한 룰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카드의 평가가 달라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덱이 재사용되는 리사이클 룰(recycle rule)도 예외는 아니다.
리사이클 룰에서 특별히 강해지는 플레이, 즉 테마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상대의 덱이나 패에 불요패不要牌를 집어넣는 패러사이팅(parasiting), 한방에 상대에게 궤멸적인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OTK(One Turn Kill), 그리고 마지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