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12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다음 영화 시작을 기다렸다. 비싼 돈을 주고 보는 건데 집중해서 봐야지.
돈을 잔뜩 바른 게 분명해 보이는 도시의 전경이 이어지고, 스크린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 배우가 잡혔다.
[“나는 혼자서 이 탑의 끝을 볼 것이다.”]아무래도 저 사람이 주인공. ‘전익현’인 모양이다. 생각보다는 고증이 훌륭하군.
“…저게 강사님이라고요?”
“역사왜곡으로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야?”
“이우주. 솔직히 말해. 돈 얼마나 찔러 줬냐?”
야. 영화 시작했잖아. 조용히 하지 못해?
내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고 해서 꽤 기대했는데, 그렇게까지 대단한 영화는 아니었다. 다른 부분은 크게 모나지 않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오는 듀얼로그의 완성도가 너무 저질이었기 때문이다.
‘어이구. 풀무불꽃을 상대하는데 왜 「무덤으로의 초대」를 넣는 건데?’
‘덱 리스트 30장이 다 보였는데 어디서 31장째 카드가 나온 거냐고.’
‘카드 카운팅 좀 똑바로 해! 듀얼하는데 왜 시선이 다른 데 가는 거냐고!’
‘마나 코스트 실수했잖아!’
영화가 끝나갈 때쯤의 나는 질 낮은 듀얼로그로 인해 머릿속에 분노가 가득 차 있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다행인 점은 슬슬 마지막 심장전밖에 남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는 점이다.
[“나는 홀로 네 앞에 왔다. 「심장」. 너와 함께 죽기 위해서.”]개폼 잡는 말을 이제와서 해 봤자 듀얼 로그가 이따위여서는 누구도 공감하지 못한다.
이런 듀얼로그를 보고도 이 영화를 재밌게 본다면 바보거나 멍청이겠지. 아니면 둘 다던가.
“전익현! 가지 마! 가지 마아아!”
“우주야!”
“강사니이임!”
…진심이냐. 그러고 보니 영화관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런 듀얼로그를 보고 이입할 수 있다고? 제정신인가?
“이게 재밌냐? 듀얼로그 개판이잖아. 이건 나에 대한 모독이라고!”
“시끄러! 듀얼고증충! 「심장」같은 놈 같으니! 이걸 보고도 어떻게 듀얼로그를 운운할 수 있어!”
“전익현의 인생에는 영혼이 있어요! 영혼 없이 듀얼만 한 강사님은 모르겠지만요!”
“너같은 듀얼괴물은 전익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영원히!”
돌겠네 진짜.
##외전#4 : 여한설(2)
“오늘의 매출액이 집계되었습니다.”
“그래. 특이한 사항은?”
“여전히 없습니다.”
여한설은 이지후가 화면에 띄운 매출액을 읽어나갔다.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히트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과도한 광고료 지출과 투자금 때문에 영화가 팔리면 팔릴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입니다.”
“알겠어. 손해액이야 메우면 되니까.”
이지후는 여한설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청노두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그녀가 쓸 수 있는 자본은 무한하지 않다. 그녀의 천부적인 운과 사업수완 덕분에 아직까지는 이 무리한 영화사업이 버티고는 있지만 이 상황이 영원히 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사업이 영원히 이어질 필요는 없어. 그냥 이 영화와 후속작들이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만들어지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여한설의 확고한 의지가 깃든 눈을 보면 이지후는 그만하라고 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전익현이라는 인간이 사라지고 나서 몇 주간 영혼 없는 사람처럼 두문불출할 때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그 사람을 기리는 용도라면 영화 한 편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만.”
“기리는 용도가 아니야.”
“그러면요.”
“계속 말했지만. 그 자식이 돌아왔을 때를 위한 거다.”
“…얼토당토없는 소리라고 백 번은 말씀드렸습니다.”
여한설은 자신이 투자한 영화. 「이클립스」의 주인공을 떠올렸다. 가공의 인물인 동시에 실제로 있었던 인물.
‘전익현.’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듀얼리스트. 「심장」을 처치한 듀얼리스트.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난 듀얼리스트.
그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갔다. 전익현은 완전히 이 세상을 떠났다.
여한설은 다른 세계로 돌아간 불치병에 걸린 환자가 불치병을 치료하고, 이 세상으로 돌아올 방법을 찾고, 이내 이 세상에 제대로 돌아올 가능성에 대해서 계산했다.
“죽은 인간이 돌아올 확률은 0이나 다름없습니다. 차라리 명계로 갈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서 전익현을 찾으러 가는 게 훨씬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0이나 다름없는 확률이란 건. 0이 아니라는 뜻이지.”
전익현이라는 인간은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인간이라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인간이다.
그러니 전익현은 이 세계에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이 여한설의 판단이었다.
‘─그러니까. 이 세계에 돌아왔을 때. 만날 방법을 만들어놔야 해.’
자신이 만들어놓은 영화 「이클립스」가 세상 모든 곳에 퍼지면, 전익현이 어디에 돌아오던지 반드시 자신을 만나러 올 것이다.
여한설은 자신의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떠올렸다. 하나, 둘, 셋. …머릿속에 전익현을 두고 경쟁할 만한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쓰잘데기 없이 카드만 좋아하는 머저리에게 붙어 있는 여자들이 왜 그렇게도 많은지.
“그래봤자 가장 행동력 있는 건 나겠지만.”
“그야 그렇겠죠. 죽은 사람이 돌아올 걸 생각하고 영화를 온 세계에 뿌리겠다는 발상을 하는 사람은 여한설님 외에는 없을 테니까요.”
“비꼬지 마.”
“욕을 안 한 것에 감사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전익현이 돌아오면 가장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거라는 건. 분명한 사실 아니야?”
“그건 그렇습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전익현이 돌아올 때의 몸은 ‘전익현’의 몸이 아닐 터였다. 그러니 전익현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전익현이 자신을 찾아오도록 만들어놔야만 했다.
여한설이 「이클립스」에 심어놓은 트랩이라면 전익현은 반드시 자신에게 발각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전익현을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여한설 자신일 터였다.
가만히 있어도 인연이 돌고돌아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런 동화 속 이야기같은 일이 벌어질 리가 없으니까.
* * *
“맛있다.”
“맛있네요.”
“으음. 달디단 공물이로고.”
“거지같네 진짜….”
어떻게 이렇게 인생이 꼬일 수 있는 걸까. 나는 카페에서 내 아까운 돈이 당분으로 치환되어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바란 거라고는 그저 신규 카드팩이 하루라도 빨리 발매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뿐이었는데….”
“차원을 넘어오는 걸 왜 그렇게 간단하게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실제로도 별 거 아니야. 게임을 좋아하는 플레이어가 패치가 좀더 빠른 서버로 서버이전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윤하님. 강사님이 있던 세계에서는 저런 게 보통이에요?”
“그럴 리가 없잖아…. 도대체 우리 세상 사람들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무 이유 없이도 듀얼을 수십만판씩 하는 ‘프로’라는 인간들이 수천 명은 있는 세상이라면서요.”
“그거야 맞는 말인데… 맞는 말이긴 한데.”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내가 넘어온 건 다 카드팩 발매 속도 때문이라고. 내가 움직이는 게 싫었으면 카드팩 발매 속도를 맞췄어야지.
차원 간 간섭이 힘들다느니 뭐니 하는 소리는 제작사들이 흔히 하는 변명에 불과하다. 웹소설 작가가 신작 준비를 위해서 하는 휴재만큼이나 설득력 없는 변명 말이다.
나는 카페에서 가장 싼 물을 홀짝이며 휴대폰을 노려봤다. 며칠 전에 휴대폰에 소울 커맨더스 중독방지용 어플리케이션이 깔려 버린 탓에 하루에 12시간밖에 소울 커맨더스를 할 수 없다.
현재 시각은 오후 2시 30분. 12시간의 제한시간이 남아있을리 없는 시간인 것이다.
“이거 좀 풀어주면 안 되냐?”
“안 돼.”
“안 돼요.”
“안 되느니라.”
어떻게 세상에 내 편이 하나도 없는 거지. 나는 입을 삐죽이며 시위의 의미로 인터넷 창을 켰다.
[영화 평가 사이트]할 일이 무궁무진하지만 덱 튜닝이건, 카드 티어 매기기건, 새 콤보 실험이건 세 머리 파수견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오늘 봤던 「이클립스」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평론이나 해야지.
쓸데없이 평점이 높은 영화다. 나는 이 고증이 바닥인 영화에 대한 정확한 평론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전혀 고증이 맞지 않고 덱, 플레이, 구조가 엉망진창인 최악의 망작. 이 영화에서 고증이 맞지 않거나 잘못된 부분을 처음부터 짚어 보자면….]타다다다닥!
“…전익현의 휴대폰 타자 속도는 언제 봐도 경이롭구나.”
“몸이 거의 안 움직일 때에도 분당 900타로 메일을 보내던 인간이니까. 몸이 아예 안 움직여서 눈으로 키보드 누를 때도 600타는 됐어.”
“그렇게 빠른 타자속도로 무슨 메일을 보낸 거에요?”
“게임이 거지같은 점을 욕하는 메일이나, 자기가 진 판이 오류가 있다면서 징징거리는 메일이나, 앞으로 나올 카드팩 가르쳐달라는 메일이나, 자신이 만든 오리지날 카드 만들어달라는 메일이나… 죄다 그런 식이었지.”
“그냥 스팸 처리하면 안 돼요?”
“100통에 한 통 꼴로 치명적인 버그 리포트가 있었거든. 그래서 스팸처리도 못 하는 악질중의 악질이었지.”
끄덕끄덕.
서윤하의 대답에 스핑크스와 신하연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동시에 끄덕거린다.
너희가 뭐라고 평가하든 나에 대한 온당한 평가는 시대가 할 것이다.
“시대가 네놈을 평가하게 하면 평가가 더 낮아질 텐데 괜찮은가?”
“그보다 도대체 무슨 글을 쓰는 거에요? 아앗! 강사님이 「이클립스」에 대한 악플을 쓰고 있어요!”
“뭐라고! 어떻게 그런 짓을!”
“별점을 0.5개 줬어요!”
“잔혹무도한 놈! 너에게는 심장도 없는 거냐!”
“시끄러! 듀얼로그 오류 하나당 0.05점씩 깎은 거면 정말 많이 봐 준 거라고!”
[댓글작성 완료]나는 내 온당한 평가가 적힌 휴대폰이 빼앗기기 전에 재빨리 댓글작성 버튼을 눌렀다.
* * *
[부산 진구에서 게이트 발생]여한설은 듀얼 강화 외골격을 갖춰입었다. 「탑」이 사라진 이후 탑 안의 차원과 지구간의 경계는 뚜렷해졌다. 그 덕분에 게이트의 발생빈도는 크게 줄어들었고, 게이트로 인한 사상자의 발생확률은 극히 낮아진 상태였다.
물론 발생확률이 낮아졌다고 해서 그 위험도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게이트에서 나온 마수들을 듀얼로 처리해야 하는 상황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도 출격하시는군요. 그러다 정체가 발각되면….”
“발각될 일 없어.”
억만장자인 자신이 정체를 숨긴 채 몬스터나 테러리스트를 퇴치하는 자경단 역할을 한다고 의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정체를 들킬 가능성은 한없이 작은 것이다.
[출격 준비 완료.] [출격합니다.]여한설의 집에서 공중을 향해 캡슐 하나가 투사되었다. 서울에서 지구의 반까지도 이동할 수 있는 이 캡슐 미사일 발사 능력은 한국 국방부의 작품이었다.
캡슐 속에서 여한설은 이지후의 브리핑 화면을 띄웠다.
[도착 시간까지 3분 남았습니다.]“이번에 나온 마수는?”
[에어 샤크입니다.]에어 샤크라. 아틀란티스의 몬스터겠군.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은 몬스터다.
“꺄아악! 몬스터다!”
“수비대! 수비대는 어디 있어!”
다소간의 아수라장. 게이트의 발생빈도가 줄어든 만큼 몬스터를 퇴치하기 위한 예산이나 지원도 줄어들었다.
가만히 놔 두면 게이트 하나당 위험에 처하는 시민의 수는 더욱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있는 거고.”
쿠콰앙!
바닥에 캡슐이 착지하며 흙먼지를 띄워올렸다. 여한설은 바닥에서 뛰쳐올랐다.
“이클립스다!”
자신의 복장을 알아보는 수많은 시민들. ‘이클립스’라는 이름이 이 세상에 있는 몬스터 퇴치 자경단의 이름이 되어버린 지는 꽤 됐다.
‘그래도. 이 옷을 알아봐줬으니 팬서비스정도는 해 줄까.’
따악!
기기기긱!
여한설이 손가락을 튕기자 캡슐에서 바이크가 튀어올랐다.
여한설은 바이크를 타고 바이저 안에 떠오른 에어 샤크의 방향으로 질주를 시작했다.
[게이트에서 나온 에어 샤크의 숫자는 셋입니다!]“그 정도면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