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72
촤악! 촤악! 맞은 편에서 엄청난 기세로 질주해 오는 레이서들이 보인다.
그 중 가장 앞에 있는 레이서의 눈에, 이채가 떠오른다.
놈의 이채가 가라앉기도 전에, 나는 입을 열고 외쳤다.
“듀얼!”
키리리릭! 듀얼 보트에서 듀얼 디스크가 튀어나온다. 동시에 어인 레이서의 손에서도 듀얼 디스트가 생겨난다.
필드가 만들어지는 동시에 레이서들이 빠져나갈만한 자리가 만들어진다. 촤아악! 네 명의 레이서들이 빠르게 나를 지나쳐나간다.
“내 턴! 드로우! 엘프 궁수의 효과로 본체를 타격! 턴 엔드!”
파아악! 내 「700RPM 명치돌냥」이 레이서의 명치를 후려갈긴다.
+
【레이싱】
【자신의 속도를 올립니다.】
+
레이서의 의미 없는 특이성이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당신의 턴입니다.]제작진의 의도는 레이싱을 하라는 게 아니었다.
이 게임의 진정한 의도는, 레이싱이 아니라 「20분 타임어택 스피드 듀얼」이었던 것이다.
레이싱 트랙의 퀄리티가 좋고, 아이템이 다양하고, 난이도도 잘 만들어 놔서 진짜 레이싱으로 승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빠지게 만들다니.
소울 개발팀도 꽤 괜찮은 함정을 팔 때가 있는 것이다.
“내턴드로우!엘프궁수로직접공격엘프궁수소환효과로본체타격!역겨운노움소환턴엔드!”
나는 시간에 쫓기듯이 레이서의 명치를 후려갈겼다. 40체력의 연약한 레이서의 몸이 찢겨지는 데에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승리!]레이서의 몸이 거품으로 화해 사라졌다. 죽은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레이서들은 시레나의 심복. 그녀가 바란다면 다시 세계에 불러올 수 있는 정령과도 같은 존재이니까.
“1분 3초라. 느려졌네.”
시레나의 볼이 불만으로 복어처럼 부풀어오른다.
“아니야! 이거 듀얼 아냐! 경주! 경주 해야 돼!”
“제작진도 그거랑 비슷한 말 하더라고. 듀얼!”
나는 한 바퀴를 돌고 돌아온 두 번째 레이서를 향해 듀얼을 외쳤다.
모든 레이서가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데에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
탈탈탈! 내 듀얼 보트가 속도위반 없는 모범안전운행을 마치며 결승선에 들어왔다.
[#1] [최초로 경주를 완료하셨습니다!] [완주 시간 : 01 : 03 : 07 : 064]“오. 1시간 3분?”
내 종래의 베스트 타임보다 무려 5분이나 빨라진 기록이다. 나의 성장이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완벽한 레이싱이었다. 나를 지느러미로 후려갈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시레나만 제외하면.
“1등 했으니까 보상 줘.”
“싫어!”
시레나가 질색팔색하며 고개를 가로짓는다.
“보상 내놔! 내가 1등했잖아!”
“시-러-어!”
듀얼로 보상을 강탈해버리고 싶지만, 아쉽게도 시레나를 쥐어팰 전용덱을 짜 오지 않은 상태다. 너는 나중에 아카데미에서 보자.
[보상을 선택하세요.]그러거나 말거나 보상을 선택하라는 창이 떠올랐다. 그래. 정직하게 1등을 했으면 정직하게 보상을 받는 게 인생의 순리 아니던가.
여기에서 받을 보상은 단 하나뿐이다.
“소울 스톤을 보상으로 선택.”
보상을 선택하자 소울 스톤이 떠올라 내 손 위로 안착한다. 구태여 스핑크스에게 감정을 받을 필요는 없다. 이 레이싱에서 얻을 수 있는 소울 스톤의 효과는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울 스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물거품」이라고 칭해지는 효과다.
+
【물거품】
랜덤 효과가 있는 물 속성 카드를 발동했을 때, 그 효과를 다시 사용할 수 있다.
+
이를테면 랜덤으로 거지같은 효과가 나왔을 때 다시 효과를 재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충 1티어에서 2티어 사이쯤에 있는 소울 스톤이지.’
물 속성이 가지고 있는 극도의 불안정성을 보정해 주는 정말 좋은 소울 스톤이다. 이걸 스피드 듀얼 여섯 번으로 얻을 수 있다니. 개이득중의 개이득이 아닐 수 없다.
“우으으.”
시레나의 지느러미들이 불만족스럽게 꿈지럭댄다. 내가 보상을 따 간 것이 심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너! 싫어!”
어쩌라고. 나는 시레나를 내버려둔 채 보트를 뒤로 돌렸다. 얻을 아이템 다 얻었으니 이제 집에 가면 된다.
“난 간다.”
“기다려!”
푸콰앙! 거대한 물줄기가 내 앞에서 터져오른다. 듀얼 보트의 앞쪽이 물줄기에 박살나며 흩어져내렸다.
내가 보트를 조금만 더 빨리 몰았어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래서 교통법규를 준수하는 운전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사이코패스같은 물고기 같으니라고. 전용 덱 없어서 내가 지금만 참는다.
“뭐 하는 짓이야!”
“···너. 소울 스톤, 강화하고 싶어?”
“그게 무슨 말이지?”
“소울 스톤. 내가 바라는 일 해 주면. 강화해 줄 수 있어.”
호의를 내비추는 것과 같은 말과 달리, 눈빛에는 ‘하겠다고 해. 쫄딱 망하게.’ 라고 적혀 있다.
“퀘스트야?”
“맞아.”
“무슨 퀘스트인데?”
흐음. 시레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빠진다. 생각에 빠진 척 하는 것과 달리 눈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내게 줄 퀘스트가 이미 고정되어 있는 모양이다.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면서, 가능하면 내가 죽을 가능성도 충분한 퀘스트.
시레나는 음모를 꾸미는 바다마녀의 얼굴이 된 채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되도 않는 퀘스트를 줄 것이 확실해 보인다. 나는 입 안에 ‘안 해’라는 말을 장전시켜둔 채 시레나의 말을 들었다.
“여기에 있는 「해신」을 처치···.”
“하겠어.”
[「해신」처치 퀘스트가 수락되었습니다.] [보상 : 소울 스톤「물거품」의 강화.] [잔여 시간 : 7일]어차피 할 일이었는데. 개이득.
끝
“멀미약은 충분히 먹었나?”
용인 아재가 마지막 박스를 배에 가져다 놓으며 물었다. 내가 온 힘을 써야 들 수 있는 박스인데 한 손으로 두세 개씩 들어올린다.
패배감이 머리를 잠식하기 전에 이곳이 소울 커맨더스가 중요한 세계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렸다.
으음. 좀 낫군.
멀미약은 충분히 먹어 놨다. 귀밑에 멀미약도 붙여 놨고. 공략을 위한 덱들도 충분히 준비해 놨다. 이제 공략만 하면 끝이다.
“용인 아재. ‘기암괴석’까지 가 주는 거 맞죠?”
“그럼! 내가 약속도 안 지킬 사람으로 보이나?”
용인 아재가 등을 후려갈기기 전에 날렵하게 피해냈다. 사냥 나가기도 전에 체력이 달았다가는 몸이 못 버텨준다.
“비실비실해서 어디 써먹나 싶었는데. 기암괴석까지 간다고 하는 게. 마음에 들었어!”
기암괴석은 바다 지역에서 손꼽히는 고난도의 사냥터다. 거기에 내가 간다고 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거겠지.
물론 용인 아재는 내가 「해신」사냥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다. 앞으로도 알릴 일 없다. 해신을 사냥하고 나면 커다란 게이트가 닫히긴 하지만, 남아 있는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터다.
용인 아재의 딸내미를 볼 필요는 없다는 뜻이지.
“어이. 형씨! 드디어 출발하는군!”
퍼억! 커다란 충격에 뒤를 돌아보자 용인 아재 Mk.2가 있다.
“그보다. 두 분은 무슨 관계인 겁니까?”
“아. 소개를 안 했나? 내 아들일세.”
“아들이라고요.”
솔직히 쌍둥이를 생각했는데. 대체 부인의 유전자가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다. 아들이 아니라 복제양 돌리같은 거 아닌가?
아들이 이 모양이면 딸쪽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다. 보통 이런 털복숭이 산적 아재의 딸이면 예뻐야 한다는 암묵의 룰이 있지만. 이 세계의 법칙이란 게 애초부터 뒤틀려 있는지라. 방심할 수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딸 쪽의 얼굴을 나중에 확인이라도 해 두자.
“맞아. 아들일세. 쌍둥이 쪽의 오빠지.”
“쌍둥이입니까.”
“맞아. 쌍둥이가 둘이 얼굴이 쏙 닮았지! 동네 사람들도 딸인지 나인지 못 알아볼 정도라네! 크하하!”
OK. 안 봐도 될 것 같다. 사냥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집으로 가자.
그리고 내가 해신을 처치했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나가는 순간까지 비밀로 하자.
나는 굳은 의지를 다잡았다.
“따님분은 지금 어디 있나요?”
“딸을 보고 싶은가? 아쉽지만 딸내미는 김태양 놈의 집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네. 편입 준비를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엄청 바빠 보여. 그러니 자네와 앞으로 만날 일은 딱히 없을 것 같군.”
김태양. 이름만 들어도 뭔 놈인지 감이 오는 이름이다. 딱 봐도 다른 사람 카드 훔쳐다 쓰는 인성 막돼먹은 빛 속성 덱을 굴리는 양아치같은 놈이겠지.
게임을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 빡치라고 하는 플레이스타일을 가졌을 게 훤하다.
아무튼. 김태양이라는 사람. 세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름이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다행이다.
되도록 용인아재 Mk.3를 마주치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자.
“빨리 출발하죠.”
“출항일세!”
커다란 뱃소리가 울려퍼지고,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거친 해류를 조그마한 배가 날렵하게 요리조리 피해 나가고 있었다. 몬스터를 몇 번 만날 만도 하건만 용인 아재의 조타 실력은 내 상상 이상이었다.
솔직히 두세 번쯤은 몬스터와 듀얼을 하고 나서야 기암괴석 에어리어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소용돌이에 몇 번 휩쓸리는 것도 각오한 터라 멀미약까지 먹고 왔는데. 죄다 쓸모없는 준비였다.
“조타실력 한 번 죽여 주시네요.”
“내 조타실력도 조타실력이지만. 오늘은 기묘할 정도로 해수海獸들이 안 보이는군. 배에 딸려 있는 뭔가를 보고 피해 가기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야.”
그 ‘뭔가’가 뭔지. 조금은 감이 오는데. 나는 선체의 앞으로 가서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퐁당. 선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꼬리지느러미가 바다 안으로 사라진다. 시레나의 꼬리지느러미다.
쫓아왔구나. 하긴. 나를 싫어하는 만큼 내가 망하는 꼬라지도 보고 싶겠지.
“운이 좋았나 보죠.”
“그래. 뱃일이라는 게 그런 거지. 좋은 날이 있다면 좋지 않은 날도 있는 걸세.”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 모양이군요.”
“그래. 어쩌면 자네한테도 운이 좋을 지 모르지. 좋은 카드라도 먹을 수 있을지도. 운이 좋으니 세이렌은 만나지도 않을 테고!”
세이렌. 「기암괴석」에어리어의 중간 보스이자, 「해신」으로 향하는 숏컷을 막고 있는 존재.
그러니까 내가 오늘 반드시 만나야만 하는 몬스터다. 세이렌을 못 만나면 정면으로 모든 몬스터들을 뚫고 가야 돼서 심각하게 앞으로의 일정이 험난해진다.
“그래도 세이렌 정도는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내 오랜 뱃사람의 감으로 단언하건데. 오늘 자네는 세이렌의 뒤꽁무니도 보지 못할 걸세!”
덕담을 가장한 악담을 애매하게 웃어넘긴 나는 덱들이 들어 있는 박스를 듀얼 보트에 실었다.
“그보다. 덱이 그렇게나 많이 필요한 건가? 보통 듀얼리스트들은 덱 하나정도만 가지고 다니는데.”
“카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내가 가지고 온 덱의 갯수는 대략 100개. 카드 총 매수로 따지면 3000장 정도다. 아무래도 한 사람이 들고 다니기에는 심하게 많은 카드다. 내 「소울 커맨더스」온라인 버전의 본 아이디에 있는 덱의 갯수가 대충 100여개 내외 정도니, 심하게 덱이 많다고 해야겠지.
하지만 이 대부분의 덱들은 덱이 아니다. 오히려 덱보다는 카드뭉치에 가깝다.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리를 채우는 덱들. 아주 기초적인 튜닝 정도만 했으니 덱 파워는 기대할 수도 없는 덱들이 대다수다.
뭐. 애초에 「더미」역할이니 크게 중요한 덱들이 아니기는 하지만.
이 덱들은 「해신」을 상대하기 위한 것들이다. 물론 설명할 이유는 없기에. 나는 가볍게 얼버무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몸 조심하게!”
나는 손을 흔들어대는 쌍둥이 부자에게 손을 흔들어보인 다음 듀얼 보트에 타고 기암괴석 지역으로 보트를 몰아나갔다.
보트를 몰고 코너를 돌자마자 물에서 인어 한 마리가 폴짝 뛰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