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71
“···그보다. 쓸 수 있는 덱이 뭐가 있으려나.”
소울 제한을 해제하는 「리미트리스Limitless」룰을 꽤 즐기기는 했지만 리미트리스 룰은 정식 룰이 아니다. 게다가 보통 리미트리스 룰을 하면 「듀얼」이나 「트리오」, 혹은 어떤 제한도 없는 「얼티밋 리미트리스」를 하지, 애매하게 속성 네 개만 골라서 할 수 있게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지.
그래서 무슨 덱을 짜 줄 지에 대해서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어디 보자···「광암」은 애초부터 안 되고···.”
광암과 쌍벽을 이루는 또라이 덱인 「정령룡」은 아쉽게도 발매 전이다.
이렇게 보니 살짝 애매하네.
덱의 방향성을 잡고 성향에 맞춰 튜닝을 해 줘야 하는데, 「특이성」도 아직 개화 전이라 뭐가 맞다고 해 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보통의 듀얼리스트들이 선택의 카드로 특이성을 얻은 뒤 속성 선택을 하는 것과 다르게, 멀티 소울 듀얼리스트들은 선택의 카드를 집는 순간 특이성을 선택하는 대신 멀티 소울이 선택된다. 이 멀티 소울이 일종의 특이성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후에 추가 각성을 하고서야 특이성을 얻게 된다는 말이지.
“이 세계 사람들의 특성상, 덱의 방향성이 잡히면 덱 컨셉을 엇나가게 하는 건 엄청 힘들어질 테고.”
이 세계에서 카드들은 카드를 소유하고 있는 듀얼리스트의 영혼과 깊게 유대되어 있다. 파장이 맞는 카드들을 쓰는 것으로, 듀얼리스트의 영혼이 연마된다. 뭐 대충 그런 말이다.
개풀 뜯어먹는 소리같지만. 실제로 시스템상 구현이 되어 있으니 완전히 개풀 뜯어먹는 소리는 아니다.
나는 품에서 「선택의 카드」를 꺼내 내 각성 수치를 확인했다.
[카드와의 유대감 수치 : 0.01%] [「대칠성」의 각성수치 : 3.00%]여기 온 지도 반년이나 됐는데 없는 거나 다름없는 수치들이다. 앞으로도 신경 쓸 일 없는 수치들이기도 하다.
내가 이런 플레이를 하고 있는 걸 보면, 개발진에서 한바탕 잔소리를 했겠지. 왜 게임 중요 컨텐츠인 특이성을 이 따위로 방치해놓느냐고 하면서.
그러게 누가 「대칠성」같은 쓰레기 특성 주랬나. 대칠성도 한때는 좋은 특성이었다. 아니, 내가 처음 테스팅을 시작할 때의 대칠성은 0티어 특성이었다.
왜냐고? 쿨타임을 0초까지 줄일 수 있었거든.
턴마다 대칠성을 난사하며 일곱 속성을 모조리 다 쓸 수 있는 개사기 특이성이 바로 과거의 대칠성이었다는 말이지.
나는 쿨타임 0초 대칠성을 들고 7속성 혼합덱인「5색정룡 + 광암」덱과 「얼방손님신판마도」 덱을 짠 다음 게임에 있는 거의 모든 컨텐츠를 도살하다시피 하고 다녔다.
하지만 대칠성의 사기적인 효과는 그렇게 오래 가지 못했다. 개인 방송 하면서 대칠성의 사기성을 떠벌린 다음 날, 「대칠성」에 최소 쿨타임 1시간이라는 제약이 생겨 버린 것이다.
빌어먹을 제작진 같으니라고.
아무튼, 그 이유 때문에 대칠성의 각성 수치는 올릴 필요가 없게 됐다. 내가 각성수치를 올릴 일은 앞으로도 없을 거고.
하지만 그건 내 입장이고, 내가 특이성을 빌려와야 하는 인물들의 특이성은 잘 성장할 필요가 있다. 여한설, 신하연, 남연철의 경우 말이지.
전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영혼의 파장과 잘 맞는 덱을 짜 놓지 않으면, 특이성이 성장이 더뎌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제한에 걸리지 않는 카드들은 속성 카드이되 코스트가 높지 않은 카드들과, 효율이 낮은 중립 카드들 뿐.
“···뭐야.”
생각해 보니 간단한 일이었네. 코스트 높지 않은 카드들과 중립 카드로만 덱을 구축해 주면 되는 일이었잖아.
머릿속에 괜찮은 덱 리스트들이 빠르게 떠올랐다. 개중 가장 좋은 덱은···.
“역시, 꽃잎 토큰 덱이겠지.”
이 덱이라면 편입 시험에서 시험관들을 쥐어패 버리기에는 충분할 거다.
나는 휴대폰을 켜고 덱 리스트 작성을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 새 덱을 짜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
“자. 일단 외형은 완성이야.”
완성된 외골격을 본 여한설의 입모양이 오. 하는 모양이 된다.
“어때. 마음에 들지?”
“나쁘지는 않네.”
어정쩡한 대답과는 달리 여한설의 눈은 외골격에 고정되어 있다. 당장이라도 사용해 보고 싶다는 눈이다.
“지금부터 쓸 수 있는 건가?”
“아쉽지만 그렇지는 않아.”
“난 아쉽지 않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
대놓고 시무룩한 눈매가 되는 여한설을 바라보며 김태양은 외골격을 매만졌다.
“외골격에 들어갈 재료의 충격흡수능력의 검증이 안 끝났어.”
“듀얼에서 일어나는 충격을 제대로 흡수할 수 있을지 확인해야 한다는 이야기군.”
“바로 맞췄어.”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환경을 만들 수 있나?”
듀얼에서 받는 데미지의 종류는 엄청나게 다양하다. 기본적인 속성만 해도 일곱 가지에, 거기서 파생되는 공격 방식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어간다.
보통의 충격 실험에서는 일곱 속성의 듀얼리스트들이 제각각 듀얼을 하며 외골격의 강도를 시험한다.
하지만 불법적으로 외골격을 만드는 김태양이 그렇게 많은 듀얼리스트들을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모든 공격을 다 재현할 수는 없지만, 대충 절반 정도는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
“맞아. 한 명이야. 네 속성을 다 쓸 수 있는 애가 있거든. 비밀이 새나갈 가능성도, 인건비도 1/4로 줄어드는 셈이지.”
쿼드러플 소울이라. 아카데미에서도 쿼드러플 소울은 본 적 없는데.
“···강한가?”
“꽤. 최소한 아카데미 2학년생보다는 강할걸?”
“흐음.”
여한설의 눈에 흥미가 돌았다. 하지만 흥미는 오래 가지 못했다. 정말로 강하다면 빠르든 늦든 만나게 될 테니까. 약하다면 만날 일 없으니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테고.
어느 쪽이건 눈 앞에 있는 외골격보다 흥미로운 일은 아니다. 그, 혹은 그녀가 제대로 충격 완화 실험만 해 주면 족할 뿐.
그녀가 뭔가 다른 데에 관심을 가지기에는 눈 앞에 있는 외골격이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것도 한 몫을 했다.
하지만 뭔가 살짝 부족하다. 마음에 들지만, 2%정도 부족한 느낌이랄까.
“뭔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가씨.”
“마음에 안 든다기보다는 살짝. 뭔가 부족한 느낌이야.”
디자인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여한설은 마침내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녀는 이지후가 들고 있던 가방을 뒤져 스카프 한 장을 꺼내들었다. 이클립스에게서 받았던 스카프다.
“···그거. 디자인 엄청 구리네.”
“맞아.”
“현대미술이나. 뭐 그런 건가?”
“나도 잘 몰라.”
“묻어 있는 피라도 빨지 그랬어?”
“그러기 싫어서.”
이지후는 스카프를 볼 때마다 병균 덩어리라며 빨리 빨아야 된다고 난리를 쳐대지만, 아마도 앞으로도 빨 일은 없을 것이다.
여한설은 스카프를 눈 앞에 있는 외골격의 오른팔에 묶었다.
“···이제. 마음에 들어.”
김태양의 얼굴에 ‘내 예술작품에 저딴 똥덩어리같은 디자인의 스카프가 묻다니. 더럽혀졌어···.’ 같은 표정이 스쳐지나갔지만.
여한설은 그러거나 말거나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끝
더 이상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는 자유인이 된 나는 바다를 만끽하며 해변의 미녀들과 신나는 여름 휴가를 만끽···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놀 수 있는 컨텐츠는 도처에 널려 있다. 난이도가 낮은 상태였다면 나도 널널하게 인생을 즐기면서 부가 컨텐츠들 같은 거 만끽하면서 소커에 세계관을 관광하고 다녔을 테고.
하지만 여러 번 경험했듯 이 세계의 난이도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본래라면 2학년 1학기쯤에 나와야 하는 컨텐츠가 벌써부터 태동하며 발광하고 있는, 사기맵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난이도로 따지자면 하드나 베리 하드 다음의 난이도인 ‘지옥불 모드’ 정도는 된다는 점.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남는 시간동안 놀고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시간을 최대한 알뜰하게 써야 한다는 말이지.”
4드론을 시도하는 프로게이머의 손놀림처럼 극도로 효율적인 동선과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이유 때문에, 나는 지금 해변에서 인적이 드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인적이 드문 골목골목에서 서로 뜨거운 청춘을 즐기고 있는 연인들과 계속 마주친다. ‘저 사람, 혼자 여기 왔나 봐.’ 같은 시선을 다섯 번째 마주치자, 이 세상이 그냥 끝나 버리도록 놔 두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이 세상을 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슈퍼히어로의 인간적 고뇌를 이겨낸 나는 인적이라고는 거의 없는 바다의 만灣의 입구에 도착했다.
저 안에 오늘의 목적지가 있다. 나는 만의 입구 주변을 뒤져서 듀얼 보트 대여소를 찾아냈다.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듀얼 보트 대여소에는, 곧 부서지기 직전의 듀얼 보트 한 대가 서 있었다.
저거. 가라앉는 건 아니겠지?
게임 속에서야 가라앉거나 말거나 언제든지 탈 수 있는 듀얼 보트였는데 목숨 걸고 탈 생각을 하니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듀얼 보트에 다가가 전원을 올렸다.
깨진 문자들이 줄줄히 나온 다음 [자격증 확인 : 허가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튀어나온다. 노후화 만세다.
나는 듀얼 보트를 타기 전 미리 챙겨온 구명조끼와 구명부표를 몸에 찼다. 여기에도 구명조끼는 있지만 상태가 영 좋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라면 안전을 더욱 챙기는 법.
탈탈탈.
나는 보트를 타고 만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만 안은 수없이 많은 장애물들이 마치 레이싱 트랙처럼 들어서 있었다.
실제로도 레이싱 트랙이 맞기는 하다. 만의 가장 깊숙히 들어가자, 내 앞에서 해류가 급격히 빨라지기 시작했다.
해류에 휩쓸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해안의 레이싱 트랙」이벤트가 발생합니다.] [「머메이드 퀸」이 나타납니다.]급격해진 해류가 뒤집어지며 물방울들이 튀겨올랐다. 물방울들은 모이고 모여 인어人魚의 형체로 탈바꿈했다.
“흐음. 이곳에 온 인간은 참으로 오랜만! 이 몸! 이름, 시레나!”
머메이드 퀸, 시레나는 이 레이싱 트랙을 만든 존재인 동시에 물 속성의「수호자」이기도 하다.
본래 수호자는 아카데미의 성역을 지켜야 하지만, 방학 동안에는 성역에 찾아오는 인간도 거의 없기에, 수호자들도 나름대로 쉴 시간을 얻는다.
“당신. 이곳, 경주 원해?”
“그래.”
“좋아! 아주 좋아!”
시레나가 기분이 좋은 듯 물장구를 참방참방 친다. 오랜만의 손님이어서 그런 걸지도.
“코스는 뭘 원해? 쉬운거? 어려운거? 아주 어려운 거?”
[「시레나」가 어떤 경주를 바라는지 묻습니다.] [이지 모드, 노멀 모드, 하드 모드]내가 여기에 온 것은 셋 중 어떤 모드를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고개를 가로지었다.
“셋 다 아니야. 최고의 상대로.”
“아주 어려운 상대?”
“아니. 최고의 상대.”
“진짜? 진짜? 괜찮아?”
시레나의 귀에 달린 물고기 지느러미가 흥분으로 말미암아 쫑긋쫑긋 움직인다.
“그래.”
[히든 모드인 ‘임파서블 모드’가 선택되었습니다.]부그르르르! 바닥에서 소용돌이가 치솟아 오른다. 물바다에서 범고래를 탄 어인들 다섯 마리가 튀어나온다.
백전연마百戰錬磨그 자체인 것처럼 보이는 상처자국 투성이의 어인 레이서들.
“바퀴 수는? 바퀴 수는 얼마나 해?”
“스무 바퀴.”
바퀴 수가 짧아서는 저 레이서들을 결코 이길 수 없다. 나는 최대의 바퀴수를 선택했다.
“스무 바퀴! 좋아!”
[라이딩 레이스에서 카드들을 모으고, 효과를 사용해 최고를 쟁취하세요! 승리할 경우 최고의 보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저 레이서들의 레이싱 속도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인코스에 들어가면 가지고 있는 창과 아이템 카드들을 통해 방해하고, 아웃코스로 가면 제 속도에 맞출 수 없다.
한 명의 레이서가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분 가량. 스무 바퀴라면 20분. 말 그대로 불가능에 가까운 경주실력을 가져야만 이길 수 있는 레이싱이다.
깨지 마라고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레이싱.
[레이스가 곧 시작됩니다.] [5, 4, 3, 2, 1]“시자악!”
혀짧은 소리를 내는 시레나의 출발 소리를 듣자마자 레이서들이 엄청난 속도로 물길을 가르고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뭐 해? 경주 시작했어!”
탈탈탈! 나는 시레나가 뭐라고 하던지 말던지 뒤를 향해 듀얼 보트를 돌렸다.
“그 방향 반대방향. 방향 잘못됐어!”
뭐래. 이 방향이 맞다. 나는 듀얼 보트에서 균형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며 뒤로 보트를 움직여 나갔다. 몇 초를 움직이자 레이싱 트랙에서 가장 좁은 길목. 그러니까 한 레이서 정도만 지나갈 수 있는 위치에 당도했다.
나는 처음 이 ‘임파서블 모드’를 깨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이 게임 모드는 깨는 게 불가능한 모드였다. 거의 10시간을 도전했지만 클리어는 커녕 클리어 근처에도 가 보지 못했다.
도전 시간이 20시간을 넘어갔을 때. 그러니까 다 때려쳐 버릴까 싶은 마음이 들려는 순간에.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이 게임의 이름은 「소울 커맨더스 아카데미」다.
어쩌면, ‘레이싱’이라는 틀에 박혀 있는 내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제작진이 의도한 뜻을 그 순간에야 깨달았다. 다음 시도에서 나는 이 임파서블 모드를 클리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