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아랫마을로 내려온 인신은 오진철의 맥을 짚어 보더니, 이장 방으로 들어갔다. 인신이 산을 내려오며 휴대폰 수신이 터지자마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었다. 인신은 아마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아빠, 괜찮으세요?”
“진우야. 미안해. 그리고 고맙구나.”
“아빠, 저는 아들이고 아빠는 제 아버지세요. 우리는 부자 간이라구요. 서로에게 미안할 일이 어디에 있어요.”
“진…우….야”
오진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진우가 오진철을 가만히 안아주었다.
“이제 저랑 행복하게 살아요. 장가도 가시고..”
“녀석…”
오진철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진우도 그 미소에 물들어갔다.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인신의 퉁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자”
덕팔이 오진철을 업고 대문 밖으로 나가 보니 앰뷸런스 한 대와 고급 세단이 대기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나왔는지 의사 가운을 입은 남자 둘이서 이동식 침대를 꺼내고 있었다. 아버지를 침대에 눕힌 덕팔이 앰뷸런스에 올라타려고 하자 인신이 덕팔의 팔을 잡았다.
“네놈과 나는 할 일이 있지?”
덕팔이 고개를 주억였다. 앰뷸런스가 출발하고 덕팔과 인신이 탄 고급 세단이 그 뒤를 따랐다.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던 앰뷸런스가 톨게이트를 빠져 나감에도 고급 세단은 그대로 도로를 질주하였다.
“저기…”
“병원으로 갈 거다. 우리는 서울로 가고..”
“하지만…”
“덕팔아!”
“네, 스승님”
덕팔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스승님이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진우는 스스로 오리가 된 기분이었다. 주입식 교육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네 아비는 체력이 한계점까지 떨어져 있다. 지금은 의사들의 도움이 필요해. 네가 만들 약은 그다음이고. 알고 있지?”
“네, 스승님.”
“만들 줄은 아느냐?”
“스승님의 지도 하에 두 번 만들어 봤고 그 이후에서 세 번 만들어 봤습니다.”
인신이 고개를 돌려 덕팔을 바라보았다. 코를 찡긋거리는 것이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좋다. 네 솜씨를 기대하마.”
덕팔이 고개를 주억이자 인신이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네놈이 몰래 만든 그 어설픈 장갑은 이제 그만 반납하거라.”
덕팔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모를 줄 알았느냐?”
“….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워낙 솜씨가 조잡하여…”
덕팔이 품에 곱게 모셔두고 있던 신투장갑을 꺼내 인신에게 내밀자 인신이 주머니에서 자신의 신투장갑을 덕팔에게 던져 주었다.
“크음.. 네놈 것이 더 쓸만해 보이더구나.”
“….네네, 그러시겠죠.”
다시 만난 인신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처음 만났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몇 살이더냐?”
“그러니까.. 열아홉살이네요.”
“입시는 봤느냐?”
“아마도요?”
“공부는 잘 했느냐?”
인신이 혀를 찼다. 그런 환경이었다면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빴을 터 공부를 잘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쓸데없는 걸 물었구나.”
“전국 2등? 뭐 그랬을 겁니다.”
“오호.. 그랬단 말이지?”
인신의 눈이 살짝 커졌다. 진짜 놀라고 있는 표정이었다.
“머리는 쓸만한 모양이군. 그래, 나랑 연구를 했다는 그 이론들 말이다..”
“네, 스승님.”
“다시 이야기를 해보거라.”
덕팔은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인신의 이론에 대해 인신에게 설명하고 또 설명하였다. 인신이 이해할 때까지.
***
“셋이 살기에 좀 좁은 듯하지만 당분간 여기서 지나자꾸나.”
강남 한복판에 있는 2층 단독주택이었다. 건평 50평에 방만 5개가 있었다.
“남이 내 물건을 손대는 것을 무척 싫어한단다. 너도 알고 있겠지?”
“네, 스승님.”
“그럼 청소를 누가 해야 하는 지도 알겠지?”
“그럼요. 당연히 제가 해야죠.”
“그래그래, 확실히 내 밑에서 10년간 지낸 보람이 있구나.”
인신이 흐뭇한 표정으로 옷가지를 대충 벗어 이곳저곳에 집어 던지곤 안방으로 들어갔다. 덕팔이 인신의 뒤를 따르며 옷가지를 집어 들어 농안에 가지런히 걸어 둔 후, 차를 내왔다.
“허어. 아주 좋군. 내가 교육을 확실히 잘 시킨 것 같아 참으로 흐뭇하구나.”
“…네네, 그러시겠죠.”
조건반사라는 말이 있다. 동물이 학습에 의해서 익히는 후천적인 반응 방식을 말하는데 덕팔은 오랜만에 파블로프가 기르는 개가 된 기분이었다.
인신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덕팔에게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탈수와 영양부족 상태인지라 당분간 안정이 필요하다고 하는구나. 정밀검사는 내일 실시한다고 하니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주마.”
“네, 스승님.”
인신이 식탁에 앉자 덕팔이 밥상을 차렸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대충 뚝딱 만들었지만, 인신은 공기밥을 세 그릇이나 비웠다.
“어찌 이리 요리를 잘하느냐?”
“처음부터 잘하지는 않았습니다. 스승님의 지도 편달 덕분이죠.”
“허허, 그러더냐? 시행착오가 많았을 것 같은데 그 과정을 생략하고 달콤한 과실만 따 먹게 되니.. 꿀이로구나, 꿀이야. 허허허”
인신이 만족한 듯 불룩 튀어나온 배를 두드리며 쇼파로 자리를 옮기자 덕팔이 알푸레를 우려왔다.
“허어.. 이걸 마시고 죽지는 않겠지?”
“당연하죠. 제가 스승님을 모신지 10년인데 알프레의 독성조차 제거를 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래?”
인식이 조심스럽게 알푸레차를 한 모금 마셔보더니 환한 얼굴이 되었다. 솔직히 자신이 우리는 알프레보다 맛이 더 좋았다.
“… 어떤 방식으로 독성을 제거했느냐?”
“신력을 이용해 알푸레를 튀기듯 독성을 날렸습니다. 스승님.”
“튀기듯?”
“네, 차 잎을 불이 볶아서 우려내면 고소함이 더해지지 않습니까? 그걸 응용하여 독성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벼락에 튀기듯이 독성을 날려버리고 진한 맛이 나올 수 있도록 약불에 천천히 우려낸 것입니다.”
“청출어람인 것인가?”
“모든 게 다 스승님 덕분이었죠. 스승님께서 떨떠름한 알프레가 싫다고 투정을 하신 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커음..”
인신이 심기가 불편한지 크게 헛기침을 한 후 알프레 차를 음미하였다. 덕팔이 설거지를 마치고 조심스럽게 인신의 맞은 편에 앉았다.
“스승님!”
“어찌 그러느냐?”
“독립하고 싶습니다.”
“독립? 독립의 사전적 의미를 알고 하는 말이더냐?”
“크응…”
독립이란 다른 것에 의존하는 일 없이 홀로 서는 것을 말하는데 인신 입장에서는 덕팔이 자신에게 의존한 적이 없으니 독립은 어불성설인 것이었다.
“나와 더 이상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더나?”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저는 빨리 생기를 모아 천문을 열고 그가 가지고 있는 천문도룡도를 회수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나랑 함께해도 되는 것이 아니더냐.”
“그렇긴 하지만 대학 생활도 제대로 해보고 싶고… 아버지도 돌봐드려야 되고 또… 또…”
“허허허, 설마 내가 너를 데리고 오두막으로 다시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했느냐?”
“…..네”
덕팔이 풀이 죽은 얼굴로 대답을 하자 인신이 크게 웃었다.
“네가 그 녀석에게 쫓겨 왔을 때는 아마도 널 지키기 가장 좋은 곳이 그곳이라고 생각했기에 널 그곳에서 데리고 있었을 것이다. 네놈도 그리 말하지 않았으냐? 몇 년 지난 후에는 내 대신 서울로 출장을 왔었다고?”
“네, 그러셨죠.”
“나야, 여기에 살든, 그 오두막에 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저 번거로운 것이 싫어 홀로 살고 있었을 뿐.. 네가 이곳에서 생활하는데 위험이 없다면 나 역시 이곳에서 살 것이다. 그러니 아무런 걱정하지 말거라.”
“참말이시죠?”
“허허허.. 당연하지 않느냐? 하루 세끼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손자가 있는데 내가 어디로 간단 말이더냐? 허허허”
“하루 세끼요?”
“…. 두 끼만 하자꾸나.”
“한 끼!”
“허어.. 이놈!”
“저녁 식사 시간은 좀 늦을지도 모르는데…”
“7시를 넘겨서는 아니 될 것이야.”
“혹시라도 저녁 식사를 못 챙겨드리게 되면?”
“늙으니 야식이 생각나는 밤이 많더구나.”
“딜!”
“콜!”
스승과 제자가 평온한 협의를 마쳤다.
***
아침 일찍 인신의 식사를 챙겨 준 덕팔이 휘파람을 불며 등교를 하였다. 수능이 끝난 뒤라 학교에서는 수업 대신 영화를 보여주거나 강사들을 불러 특강을 하곤 하였다.
덕팔이 12년 만에 교실문을 활짝 열고 들어갔다.
“야, 오진우. 교무실로 오래.”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친구놈이 아침 인사 대신 수류탄을 던져 놓았다.
“교무실이라… 허허”
덕팔이 조심스럽게 교무실 문을 열고 담임선생의 자리로 걸어가고 있을 때, 덕팔의 머리를 두들기는 막대기가 있었다.
“오진우!!”
“….헉!”
“엎드려.”
덕팔이 그 자리에서 바로 엎드리자 매타작이 시작되었다.
퍽..퍽..퍽..퍽..퍽!
다섯 대를 끝으로 무거운 소리가 들렸다.
“따라와.”
덕팔이 그의 뒤를 졸졸졸 따라갔다.
진로상담실에 덕팔과 그가 앉아 있었다.
“너, 이사 간 거냐?”
“교무주임 선생님께서 그걸 어떻게?”
“학교에는 왜 안나와? 수능 끝났으니까 고등학교 같은 건 이제 시시해?”
덕팔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 일본에서 돌어 오던 중, 공항에서 만났던 노 선생. 바로 그였다.
“아뇨. 선생님.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느라구요. 죄송해요.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많이 아프시냐? 병원비는?”
교무주임 선생이 많이 놀란 듯 덕팔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많이 호전 되셔서 병원에 모셨어요.”
“병원비가 많이 나올 텐데…”
교무주임 선생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덕팔의 손을 잡았다.
“힘들면 선생님한테 말해. 한두 번은 내가 어떻게 해주마.”
덕팔의 고개가 들려지지 못 했다.
뚝 뚝
눈물이 덕팔의 바지를 적셨다. 껍데기는 19살이지만 알맹이는 32살인 남자다. 그런 덕팔이 선생의 거친 호의에 감동하고 있었다.
‘원래 저런 분이셨지. 이젠 나 때문에 학교를 그만 두시는 일은 없겠구나.’
“선생님, 저 한국대 갈 거예요. 선생님께서 절 설득하셨다고 해주세요.”
“뭐? 아버지는 어떻게 하려고?”
“도움을 주신다는 분이 계세요.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절 설득해서.. 한국대에 간다고 교감선생님께 말씀해 주세요. 저도 그렇게 말할 거니까…”
“… 내가 왜? 상황이 좋아졌으면 당연히…”
“그렇게 해주세요. 선생님.”
덕팔이 눈물을 흘리며 교무주임을 바라보자 교무주임의 손이 올라오더니 덕팔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남자는 그렇게 쉽게 우는 게 아니야.”
교무주임이 어색한 표정으로 화장지를 건네주며 커피를 타왔다.
“진우, 네가 심지가 굳은 효자라는 거 잘 안다. 그래도 너에겐 너의 인생이 있는 거다. 아버지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야. 모든 걸 아버지에게 걸지 말라는 말이다. 힘들면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도 좋은 거다. 알았냐?”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교무주임이 덕팔의 어깨를 툭 쳐주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시간만 졸다가 교실로 들어가. 얼굴이 퀭하다.”
덕팔이 웃었다. 선생의 뒷모습이 너무 멋졌다.
“저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