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6
6화
덕팔이 끓여준 돼지 고추장찌개를 정신없이 퍼먹고 있던 아영이 고개를 들고 덕팔을 뻔히 바라보았다.
“왜?”
“오빠!”
“응?”
“머리 좀 깎아. 면도도 좀 하고.”
덕팔이 자신의 머리를 만져 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생각해보니 미용실에 간 지 2년이 넘은 것 같았다. 스승의 몸이 쇠해지면서 외출을 삼간 후로 지금까지 대충 가위로 머리를 잘라낸 것이 전부였다.
“하하.. 좀 그렇지?”
“못생긴 얼굴이 아닌데 그렇게 수염하고 머리로 가리니까.. 노숙자 같잖아.”
“창피하니?”
“나는 괜찮은데 사람들이 오빠를 이상하게 보니까 그렇지.”
“내일 이발을 할게.”
“그러지 말고 지금 가자.”
“지금?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늦게까지 하는 미용실을 알아.”
아영이 대충 그릇을 치우더니 덕팔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아영과 며칠 생활을 해보니 아영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절대 뒤로 미루는 법이 없었다. 평소에는 느긋하다 못해 게으르다 싶을 정도였는데 한번 결심한 일에 대해서만큼은 그 끝을 볼 때까지 무한 열정으로 투지를 불태우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아영의 손에 끌려 나온 덕팔이 픽업트럭에 아영을 태웠다.
“이 차를 주신 분이 김향숙 변호사님이시라고?”
“응”
“연세가 한참 많으셔서 의심은 하지 않겠지만… 조심해. 지켜보겠어.”
“후후..”
덕팔이 시동을 걸며 위치를 묻자 아영이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해 주었다.
차가 지하주차장을 나와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7월 중순의 도심은 밤에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하루종일 태양의 열기에 녹아내렸던 아스팔트가 제 2의 태양이 되어 그 열기를 뱉어내고 있었다.
아영이 에어콘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더웠지만 바람이 좋았다. 가까이 보이는 북한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좋았다.
“저 산이 좋아. 저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도 좋고..”
아영이 집을 이곳에 얻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명산이지. 기운도 좋고.. 자주 등산을 하면 너에게도 좋은 기운이 쌓일 거야.”
“오빠는 산에서 도를 닦은 건가?”
“내가? 아닌데?”
“보통은 그렇지 않아?”
“하하하.. 내가 도사냐? 도를 닦게?”
“앵? 그럼 뭐야? 보통 그렇게 악귀를 몰아내고 치료를 하는 사람들은 다들 도사님들 아닌가?”
“하하.. 아니야, 나는 그저 타고나길 신안을 가지고 태어난 거고 악귀를 제압하고 다스리는 것은 그저 기술에 해당하는 거야. 굳이 산에서 그 기술을 연마할 필요는 없지.”
“응? 그럼 왜? 그 산에 그렇게 오래 있었던 건데?”
“그거야. 내게 기술을 가르쳐주시는 스승님께서 산에 계시니까 그런 거지?”
“응? 그럼 그 스승님께서는 왜 산에 계셨던 건데?”
“후후.. 그건 오두막 뒤에 있던 소나무 때문이었어.”
“소나무? 그 이상하게 생긴 그 나무?”
“응, 그 소나무가 오래되어 나무귀신이 되었거든. 그때 내가 말한 적이 있지?”
“어.. 귀신이 모인다고..”
“그래, 스승님께서는 그 나무에 잡귀들이 모여 큰 악귀가 될까 봐 그 나무를 지키고 계셨던 거야.”
“그랬던 거구나. 좋은 일을 하고 계셨네.”
“스승님 말고도 그런 일을 하시는 분들이 꽤 계시는 거로 알아. 단지 스승님께서는 그곳에 머물러 계시며 지키셨던 거고, 다른 분들은 그믐 때만 그곳에 들리셔서 악귀들을 몰아내시는 거지.”
“아… 이거 참, 21세기를 살아가는 20대가 그런 말에 공감해야 한다는 게 슬프다.”
“후후.. 너는 특별한 사람이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네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달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여기야. 내 단골!”
아영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 덕팔이 아영의 뒤를 따라 미용실 안으로 들어갔다. 2층으로 된 미용실은 꽤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발하러 강남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여기 연예인들도 많이 온다?”
아영이 속삭이자 덕팔이 덩달아 같이 속삭였다.
“진짜?”
“어.. 근데 오빠는 왜 속삭이는데?”
“네가 속삭이니까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호호호호.. 오빠! 안 보는 사이에 많이 능글거려졌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그러냐? 후후”
미용실 입구에 들어서니 잘 꾸며진 카운터에 젊은 여직원이 아영을 반겨주었다.
“어머, 임 검사님. 오랜만에 뵈요.”
“네, 현정씨. 잘 지냈죠?”
“그럼요.. 전에 소개팅하신다고…”
아영이 눈에 힘을 주며 고개를 살짝 흔들자 여직원이 덕팔을 힐끗거리며 급히 입을 다물었다.
“이 오빠, 머리 좀 하려고 하는데…”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실장님께서 다른 분 머리 손질을 하고 계셔서…”
여직원이 아영과 덕팔을 쇼파로 안내하였다. 잠시 후, 눈에 확 띠는 여자가 아영 겉으로 다가왔다.
“언니?”
“어? 유리씨?”
“언니 진짜 오랜만이다. 그때 그 소개..”
아영이 번개처럼 일어나 유리의 입을 막았다.
“퉷퉤, 언니 나 방금 풀메하고 왔어요. 화장에 자국 생기겠다.”
유리가 손거울을 꺼내 자신의 화장을 살펴보다가 생긋 웃었다.
“누구?”
“아, 아는 오빠야.”
“어머, 안녕하세요. 배우 한유리에요.”
“아, 네”
유리가 손을 내밀었음에도 덕팔이 고개만 까딱이며 인사를 받아 주자 유리가 묘한 눈이 되었다. 보통 여배우를 만나는 일반 남자의 반응은 여배우의 내민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허리를 굽신거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아니 자신을 아예 모른다는 듯. 그저 귀찮다는 듯 형식적으로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저 모르세요?”
“네”
이제 당황은 유리의 몫이었다. 유리가 아영을 바라보자 아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유리의 귀에 뭐라 작게 속삭였다. 그제야 유리의 표정이 밝아지며 환하게 웃었다.
“서울에 사시면 앞으로 제 얼굴 볼일이 많으실 거예요. 뭐, TV나 광고판이겠지만요. 호호, 언니 나중에 봐요.”
유리가 도도한 걸음걸이로 미용실을 떠났다. 아영은 덕팔이 눈에 띄는 아름다움을 가진 여배우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겉으로는 당황하는 척하였지만, 속으로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거지? 후후, 좋아쓰’
아영이 잠시 딴생각에 잠겨 있을 때, 실장이라는 사람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김 실장님, 저분 머리 좀 잘 부탁해요.”
“남자친구?”
“호호호.. 뭐, 비슷한..”
“가만있어 보자, 이분은… 일단 면도부터 하실까요?”
구렛나루까지 지저분하게 나 있는 수염에 면도 크림이 듬뿍 발라졌다. 면도는 실장이 하지 않는지 다른 직원이 달라붙어 꼼꼼하게 칼질을 하였다.
“면도만 해도 환해졌네요. 기본적으로 잘생긴 얼굴이라.. 흐음”
실장이 본격적으로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긴 머리를 유지하면서 조금씩 다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띠리리링..
아영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검사님, 양 계장입니다.]“예, 계장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오늘 아침에 말씀 나눴던 그 상해 사건 있잖습니까?]“죽은 부인이 자신을 찔렀다는 그 사건요?”
[네, 그 피해자가 또 상해를 입었습니다. 이번에는 처남이 공격한 거로 되어 있는데 이번에도 피해자는 죽은 처가 공격을 했다고 합니다.]“그 피해자, 정신병원으로 보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담당형사가 현장으로 검사님이 오실 수 없는지 물어왔습니다.]“언제요?”
[지금 현장에 있다고 합니다.]“지금은….”
아영이 덕팔을 힐끗거렸다. 덕팔이 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자 뒷말을 이었다.
“지금 강남이거든요? 30분 이내로 출발할게요.”
“아뇨. 계장님은 쉬세요. 그러나 언니한테 소박당한다니까요?”
[검사님이 현장에 가시는데 수사계장이 동행을 안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오늘은 다른 사람 데리고 갈게요. 그러니까 오늘은 쉬시고 내일 출근하시면서 병원에 들리셔서 피해자 진술 확인하시고 오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담당 형사 전화번호 좀 문자로 넣어주세요.”
전화가 끊어졌다. 그 사이 덕팔의 머리도 다 정리가 되었다. 긴 머리는 그대로 유지 되었지만, 전보다 머리가 많이 가벼워졌다.
“우리 오빠 멋지네?”
“하하.. 쑥스럽다.”
“아니에요.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잘생겼네요.”
실장이 한마디를 덧붙이자 덕팔이 얼굴을 붉혔다.
“가야 하는 거 아냐?”
“아, 참 내 정신 좀 봐.”
아영이 급히 계산하고 미용실을 나섰다. 덕팔이 운전석에 오르며 위치를 묻자 아영이 수사계장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20분이면 가겠네. 벨트 해.”
덕팔의 자주색 픽업트럭이 현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사건 현장 인근에 차를 세운 덕팔과 아영이 사건 현장 주변을 돌아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와! 완전 대박인데?”
덕팔이 3층짜리 주택 앞에서 입을 떡 벌렸다.
“이 동네가 부촌이라 이런 집들이 많아.”
“아니, 그거 말고 이 집 주변으로 악귀들이 바글바글해”
“안 보인다며?”
“안 보여, 그런데 기운이 느껴져. 천각필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느껴질 정도면 엄청 쎈 기운이야.”
덕팔이 주택 입구에서 걸음을 멈췄다.
“너도 나도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다.”
“하지만 나는 검산데?”
“그와 동시에 신기이기도 하지.”
“부적 같은 거 없어?”
“있긴 한데 내 부적으로 이 악귀들의 파티에서 무사할지 모르겠다.”
덕팔이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부적 한 장을 내밀었다. 아영이 덕팔의 지갑을 힐끔 바라보곤 덕팔의 지갑을 통째로 뺏어버렸다.
“한 장으로 불안해서 안 되겠어. 다 내놔! 오빠는 여기 있고.”
아영이 덕팔을 뒤로 밀치고 폴리스 라인 안으로 들어갔다. 덕팔은 아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트럭이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어서 오십시오. 검사님”
“절 아시나 봐요.”
“그럼요. 우리 유명한 임아영 검사님을 모르면 어떻게 강력계 형사를 해 먹겠습니까? 00경찰서 강력계 형사 김상훈입니다.”
“반가워요. 김 형사님.”
아영이 손을 내밀어 김 형사와 악수를 한 후 현장을 돌아보았다.
“현장에서 특이할 만한 게 나왔나요?”
“별로 없었습니다. 피해자를 찌른 칼은 확보하여 국과수에 지금 감식 의뢰를 해 놨고, 출입구 CCTV도 확보해서 과학수사대로 보냈습니다. 용의자도 현장에서 체포해서 일단 저희 서로 보냈습니다.”
“깔끔하네요. 그런데 절 현장으로 오라고 하셨다고 하던데?”
“그게.. 이걸 좀 들어보셔야겠습니다.”
김 형사가 만년필처럼 생긴 녹음기를 내밀었다. 아영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 플레이 버튼을 눌러보니…
지지지직…
[그년과 함께 살아서 좋아?]목소리는 틀림없이 남자 목소리였다. 하지만 왠지 한에 서린 여자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