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402
제 401화
125장. 에필로그 – 4화
자레드의 이동은 계속됐다.
황도 주변을 시찰할 목적으로 나왔지만, 어쩌다 보니 동료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그림이 되었다.
물론 백성들이 사는 모습은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수시로 확인하고 보고받는 만큼.
꼭 오늘만 특별하게 확인하는 날은 아니기도 했다.
그렇게 자레드가 다음 행선지로 향한 곳은 바로 휴가를 내어 바닷가를 여행 중인 세 사람이 있는 장소였다.
바로 레나, 아르케네스, 미아가 있는 곳이었다.
자레드가 도착한 해변에는 일찌감치 셋이서 자리를 만들고 선탠을 즐기고 있었다.
올해로 서른이 된 아르케네스부터 시작해서 이십대 중반인 레나와 초반인 미아까지.
처음 만났을 때의 앳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전부 여성으로서 농염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르겠네. 다들 괜찮으면 비치 타월이라도 좀 걸치지?”
“앗, 폐하! 여기까진 어쩐 일로 오셨어요?”
“그냥. 다들 잘 지내는지 보려고. 요즘 전부 바쁘잖아? 황궁에 없다 보니 보기가 쉽지도 않고.”
“이렇게 폐하를 가까이서 보니 정말 기뻐요!”
가장 먼저 반가움을 표시한 사람은 레나였다.
온몸이 근육질인 건장한 레나는 여성 보디빌더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건강미를 자랑했다.
미아는 순진한 어린아이였던 예전과 달리 가장 노출이 심한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뭐랄까, 예전의 미아가 말괄량이 어린아이 같았다면 지금은 매혹적인 처녀를 보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가장 나이가 많은 아르케네스가 수수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수영복이 영 어색한 모양이다.
이제는 더 이상 남장을 하지 않았지만, 남장을 했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어색한 듯했다.
“뭐 힘든 일이 있거나 어려운 문제는 딱히 없지?”
자레드의 시선이 미아와 레나, 아르케네스의 모습을 차례대로 훑었다.
그러고는 혹시나 잊을세라 세 사람에게 말을 조심스럽게 이어 갔다.
“미아.”
“네, 폐하!”
“알고 있지? 나오미 경의 뒤를 이어, 우리 제국 마법사의 기둥이 될 사람은 바로 너야.”
“항상 명심하고 있어요!”
힘주어 말하는 미아의 목소리에서는 자부심과 자신감이 동시에 묻어났다.
미아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특히 나오미는 미아를 공식적인 후계 마법사로 삼고, 공들여 그녀를 교육하는 중이었다.
“조만간 대련 한번 하자.”
“저야 언제든 환영이에요! 다만 폐하께서 다치지 않으실지…… 그게 걱정인 걸요?”
“좋아, 그 패기. 접수했어!”
자레드가 웃었다.
미아의 장점은 도전 정신이다.
또한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을 볼 때까지 열심히 달린다. 그런 부분은 자레드를 쏙 빼닮았다.
“레나는 요즘 어때? 아그레시오 기사단 운영은 문제없고?”
“네. 엘라 님이 많은 노하우를 전수해 주시고 간 덕분에 오히려 너무 수월해서 걱정이죠.”
레나는 아그레시오 기사단장직을 맡고 있었다.
다만 아그레시오 기사단의 거점이 황도에서 100km 떨어진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멀어졌다.
그런 탓에 최근 자레드는 레나를 자주 못 보고 있었다.
“엘라 경의 소식은?”
“가끔 편지가 기사단으로 와요. 5년 전에 홀연히 떠나신 이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유인이 되어서 사시는 것 같아요.”
레나의 말대로 엘라는 5년 전, 차원 원정을 끝나고 크리비아 제국으로 돌아온 뒤.
클로이의 스승이 되기 전의 자신, 그러니까 자유인이었던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며 사직서를 냈다.
애초에 정치라든가 교육과 같은 주류의 세계를 마뜩찮게 생각했던 그녀의 성격다운 결정이었다.
그 이후, 단계적으로 레나가 기사단장 자리를 승계하도록 했는데 그것이 지금이었다.
“그래. 먼저 연락하지는 말도록 하고.”
“네, 폐하. 걱정 마세요.”
방긋 웃는 레나의 모습은 언제 봐도 보는 이로 하여금 기분을 좋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통곡의 벽, 레나.
그녀의 이름은 이제 제국의 전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실제로 아그레시오 기사단은 나스 대륙 전역에 위치한 껄끄러운 던전 공략에 나서고 있었다.
특히 나스 대미궁의 몬스터들이 한 차례 강화되는 ‘대격변’이 일어나면서 더 바빠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레나가 있으면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 하나가 수십, 수백의 적을 막아 낼 수 있는 거대한 요새와도 같았기에.
레나 역시 자레드가 성공적으로 미래를 바꾼 최고의 인연인 셈이었다.
에서 마왕군의 선봉장이었던 그녀는 이제 신성 크리비아 제국에 없어서는 안 될 기사단장의 자리에 있었다.
“아키, 상단은 어때? 아, 그것보다 최근에 추진하고 있는 택배 사업은 할 만해?”
“네, 폐하! 택배의 개념이 생소하긴 했지만 폐하께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고…….”
“그랬지.”
자레드는 현대식 택배를 나스 대륙에 정착시키기 위해서 지구에 갈 때마다 많은 공부를 해 왔다.
그리고 나스 대륙의 강점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마법, 마법진이 존재한다는 것!
대륙 전역 어디든 ‘장거리 텔레포트 마법진’만 있으면 몇 초 만에 갈 수 있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래서 지난 5년간, 대륙 곳곳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연결하는 일을 핵심 과제로 삼아 왔다.
많은 진전이 있었고, 이렇게 구축된 ‘텔레포트 인프라’를 바탕으로 상단의 택배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비용 절감을 위한 무수한 노력이 있었고, 이제 충분한 사업성이 확보된 상태였다.
“다음 달부터 황도를 포함한 황도 인근의 다섯 대영지에 첫 번째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에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네.”
흡족한 표정이 절로 지어졌다.
아르케네스 상단은 비단 상업적 부분만 아니라 문화, 예술, 스포츠에도 영향력을 넓혀 갔다.
하나의 거대한 기업이 된 셈.
독점 논란도 있었지만, 아르케네스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운영을 했기에 큰 문제는 안 됐다.
“다음 사업으로는 애완동물에 관련된 부분을 생각하고 있어요. 최근 유행이잖아요. 애완동물 기르기가.”
“그렇지. 맞아.”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보고서를 정리해서 폐하께 제출해 올릴 게요.”
“그래. 고생이 많네. 여행지까지 와서 내가 참 제대로 진상을 떨었군. 다들 푹 쉬어. 잘 지내는 걸 봤으니 됐다.”
“폐…… 아앗!”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레드는 텔레포트로 자리를 떴다.
불현듯 지금 이 모습이 마치 휴가를 즐기는 직원에게 업무 보고를 받는 상사처럼 느껴져서다.
순간 식겁했던 탓인지 자레드는 흔히 하는 손 인사조차 하지 않고 자리를 훌쩍 떠나 버렸다.
어차피 이심전심이었다.
세 사람은 자레드가 자신들을 배려하기 위해서 서둘러 떠났음을 당연히 이해하고 있었다.
“레나 언니, 오일 좀 더 발라 줄 수 있어요?”
“더 태우게?”
“올해는 구릿빛 피부로 좀 살아 보려고요. 너무 피부가 하얘서 콤플렉스거든요!”
이윽고 미아가 다시 수영복 등 쪽 끈을 풀며, 레나에게 오일을 내밀었다.
그녀들의 휴가는 이제부터다.
* * *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도 복이라던가?
그 이후로도 나는 부지런히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금 만나며 그들의 안부를 챙겼다.
특히 내가 ‘강제’로 휴가를 보낸 네 가신의 상태를 점검했더니 이게 웬걸?
휴가지에서 서류를 잔뜩 펼쳐 놓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범인은 바로 율리안과 오브렌, 아빌라와 발데스였다.
워낙 자주 있는 일이라 이제는 잔소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황명이라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네 사람.
하지만 ‘쉴 때만큼은 제발 일하지 말라’는 간절한 황명에 대해서는 매번 불복종이었다.
가서 잔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그냥 조용히 뒤에서 지켜만 봤다.
네 사람은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모습으로 쌓인 서류를 바라보며 일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시원한 날씨에 맞게 반팔을 챙겨 입은 오브렌의 양팔은 젊은이의 그것보다 훨씬 두꺼웠다.
누가 그를 팔순을 넘긴 노인으로 생각할까?
노익장(老益壯)이라는 말은 전적으로 오브렌의 것이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다.’
나는 네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할 장소에서 그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존경이 담긴 인사였다.
행정의 율리안, 농경의 오브렌, 상업의 아빌라, 선전과 문화의 발데스.
이 네 사람이 없었다면 크리비아 ‘제국’은 결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정에 있어 네 사람에게 정말 큰 빚을 졌다. 앞으로 내가 평생 감사하며 갚아야 할 빚이었다.
나는 네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는 대신, 은밀히 수행원들을 만나 넉넉하게 돈을 챙겨 줬다.
오늘 밤만큼은 온갖 산해진미와 함께 와인의 풍미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네 사람의 고생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보상이지만, 그 이상 챙겨 주면 또 부담스러워할 것이 분명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크리비아 제국이 비단 나 혼자만이 만들어 낸 제국이겠는가? 절대 아니다.
네 사람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개국공신으로서 남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 제국의 역사가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언제나 말이다.
그다음으로 나오미를 만났다.
말수가 적은 그녀와의 대화는 주로 당부를 전달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이루어졌다.
나오미는 하나를 말하면 열 이상을 알아듣는 사람이기에 굳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우선 크리비아 아카데미의 운영에 대해 다시 한번 전권을 위임할 것을 주지시켜 주었고.
아울러 베르하드에게 지금보다 좀 더 격의 없이 조언을 구할 수 있도록 다가가 보라고 했다.
툴툴거리는 노인네이기는 하지만, 성격이 더러운 ‘척’만 할 뿐 사실은 이것저것 다 알려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오미는 부족한 자신에게 많은 소임을 맡겨 주어 감사하다며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다짐했다.
나와 나오미와의 인연도 깊다면 참 깊은 인연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나와 생사전을 벌인 경험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와 마법 난타전을 주고받으며 싸웠던 기억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생생하다.
나오미는 유능한 여자다.
그녀 아래에서 크리비아 아카데미는 무한한 번영과 확장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힘 있게 교육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많은 전권을 부여할 생각이다.
물론 베르하드를 어떻게든 교단(敎壇)에 최대한 오래 세울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우리 크리비아 제국의 마법사들에게는 베르하드가 가진 전문적인 마법 지식이 꼭 필요했다.
이것만큼은 나오미도 가르칠 수 없는 매우 귀중한 자산이자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후아……. 정신없는 하루였군.”
이제 황도로 돌아오는 길.
밖에서 만날 사람은 다 만났다.
아슈르가 나스 대미궁 공략 중이라 만날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던 것을 빼면 말이다. 물론 그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다.
황궁으로 돌아와서 만날 사람은 라키스와 메리 그리고 이자벨이었다.
헤이즈야 매일 마주 보고, 같이 자고 일어나는 사이니까 새삼 본다는 표현을 쓸 필요는 없었다.
“라키스…….”
이름만 되뇌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라키스.
내게 충신이라는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 있게 해 준 참된 무인이자 성실함의 표본.
이제 그를 만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