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403
제 402화
125장. 에필로그 – 5화
“요리장, 정말 고생이 많구려.”
“호호. 제국을 위해 헌신하는 병사들을 위해서라면 이런 고생은 고생도 아니랍니다.”
“요리장의 요리가 널리 소문이 퍼진 덕에 라키스 경의 혹독한 훈련을 모두가 받고 싶어 한다지?”
“하하, 하하하. 그게 참…… 아이러니합니다만, 그렇습니다.”
메리와 라키스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한편으로는 또 웃었다.
말 그대로였다.
메리의 훌륭한 요리는 예전부터 제국 내에 익히 알려진 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대외적으로 음식을 판다거나 한 적이 없었기에.
메리의 요리를 먹기 위해선 황가의 일원이 되거나 혹은 그녀가 직접 요리를 담당하는 훈련장에 있어야 했다.
한데 메리가 담당하는 훈련장이 바로 라키스가 혹독한 훈련을 실시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이름하여 ‘크리비아 훈련.’
제국의 이름을 대놓고 갖다 붙인 패기에 걸맞게 훈련의 내용이 매우 알찼다.
물론 ‘알차다’는 평가는 어디까지나 라키스의 주관적인 견해였고, 병사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죽기 직전까지 굴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훈련에 병사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단 하나!
훈련 중간중간에 먹는 특식들이 세상의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도 맛있다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메리의 실력 발휘 덕분에 라키스는 느긋하게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훈련 프로그램을 온종일 돌려야 했다.
사서 고생을 한 셈이 됐지만.
라키스는 오히려 더 뿌듯한 마음으로 훈련에 임했다.
자기는 고단하고 힘들지 몰라도 병사들이 성장하고 강해진다면!
크리비아 제국의 부국강병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라키스는 혹독하게 훈련을 할지언정, 병사들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모든 병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참된 군인이었다.
때로는 끈이 풀어진 신병의 군화를 무릎을 꿇고 정성스럽게 묶어 주기도 하고.
병사들 앞에서 연설과 함께 황제인 자레드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작은 흠결이라든가 문제가 될 만한 일을 절대 하지 않았으며, 모두에게 청렴결백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그러니 병사들이 라키스를 존경하고 진심으로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런 라키스가 존경하는 황제 또한 우러러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얼마 후.
메리가 요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돌려보낸 다음.
자레드는 라키스와 함께 연병장 외곽을 따라 걸었다.
“하아! 허어! 후아!”
“크리비아! 크리비아!”
“황제 폐하 만세! 만세!”
교관들의 지휘 아래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힘찬 기합과 외침이 들려왔다.
자레드가 자신은 신경 쓰지 말고 훈련에 매진하라고 말한 덕분인지, 그 어떤 병사도 자레드를 향해 시선을 돌리거나 하진 않았다.
“라키스 경, 정말 고생이 많소.”
“크리비아 강군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한시도 쉴 수 없습니다, 폐하. 아울러 불안정한 던전들도 공략해야 하지요.”
“경 덕분에 내 할 일이 너무 줄어든 것 같아서 면목이 없을 따름이군.”
“하하하, 그것이 신의 소임 아니겠습니까. 폐하께서 믿고 맡겨 주셨으니 반드시 기대에 부응하겠나이다.”
“이제 경의 나이도 쉰이 넘었는데…… 적당히 쉬엄쉬엄하는 게 낫지 않겠소? 여차하면 레나에게 맡기는 것도 괜찮을 텐데.”
“괜찮습니다! 신 라키스, 얼굴에 주름은 좀 생겼을지 모르겠사오나 몸은 여전히 청춘입니다!”
라키스의 말대로 옷을 따라 드러나는 그의 실루엣은 온통 근육질이었다.
허언이 아니었다.
몸만 놓고 본다면 20대 초반의 장정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라키스의 몸은 완벽했다.
“하지만 그래도 건강에는 꼭 신경을 쓰도록 하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다만 폐하의 앞에서는 영원한 청춘이고 싶은 것이 신의 욕심이옵니다.”
“참…… 경은 늘 한결같소.”
자레드가 라키스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진심을 담아 그를 뜨겁게 격려했다.
지난 시간을 되짚어 봐도 라키스는 항상 자신에게 있어 흔들리지 않는 충(忠)의 상징이었다.
고마운 사람!
자레드가 늘 라키스를 생각하면 떠올랐던 생각이었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사람 말이다.
“라키스 경.”
“예, 폐하!”
“내게 있어 황후 다음으로 그대를 만난 것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소.”
“폐하…….”
자레드의 말을 듣자마자, 라키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라키스에게 자레드는 항상 태양과 같은 존재였고, 또한 존경하는 주군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을 만난 것이 인생 최고의 행운이라고 말해 주니 가슴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훗날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그때는 내가 경의 충직한 신하가 될 테니 그대가 내 주군이 되어 주시오.”
“폐하…….”
말을 잇지 못하는 라키스의 두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무인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는 백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한다.
라키스의 마음이 딱 그랬다.
백번?
아니, 하늘이 허락만 한다면 수십, 수백만 번도 죽을 수 있었다. 주군을 위해서라면!
“라키스 경과의 우정, 영원히 변치 않겠소. 경은 내게 충신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이니까.”
“신 라키스, 뼈가 부서지고 살이 흩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제국과 폐하를 위해 헌신하겠나이다!”
“고맙소.”
“크리비아 제국 만세! 황제 폐하 만세!”
“정말 고맙소.”
“폐하께서 계시는 한, 크리비아 제국은 영원할 것입니다. 신 라키스, 천년 제국의 초석을 닦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를 것입니다.”
“나 역시도 경이 꿈꾸는 제국을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해 노력할 것이오.”
자레드가 라키스와 깊은 포옹을 나누었다.
영원한 동반자.
그 말 하나로 라키스에 대한 믿음과 관계를 모두 표현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런 신하를 얻은 자신은 분명 행운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꾸욱.
자레드가 라키스의 손을 꽉 맞잡았다. 퍽퍽한 굳은살이 느껴졌지만, 그 촉감이 세상 무엇보다도 좋았다.
충심의 흔적.
자레드는 라키스의 손에서 느껴지는 이 투박한 촉감을 영원히 잊지 않겠노라고 깊이 맹세했다.
* * *
한편 라키스와 헤어진 뒤, 바로 드레자 주술단을 찾아온 자레드는 이자벨의 빈자리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자벨이 허락을 받고 떠난 긴 여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올해로 2년째.
이자벨은 제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살아남은 주술사들의 후계와 그 흔적들을 좇고 있었다.
공공연하게 ‘나는 주술과 결혼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던 이자벨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행보였다.
‘주술사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주술사의 명가를 만드는 것이 제 꿈이에요.
물론 가문의 모든 후예는 대대손손 폐하를 위해서 충성할 것입니다.
한낱 악령에 불과했던 제게 지금과 미래를 만들어 주신 것은 폐하이십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그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어요.’
2년 전에 들었던 말이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에 자레드는 이자벨의 책상을 아쉬운 듯 어루만졌다.
하지만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이자벨을 위해선 말없는 응원이 가장 옳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알아서 잘할 것이다.
적절한 때가 되면 드레자 주술단으로 다시 돌아와 본래의 일에 매진할 테고.
“고마워, 이자벨.”
자레드는 왠지 온기가 남아 있는 듯한 이자벨의 의자에 고개를 숙이며 나름의 예를 갖췄다.
그녀와 맺었던 인연의 무게 역시 결코 가볍지 않았기에 진심을 담아 건네는 인사였다.
“이제…… 내 사랑을 보러 갈 차례군.”
뒤돌아서는 자레드의 입가에는 벌써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
그 사랑과 마주할 시간이다.
* * *
-자레드! 자레드!
나를 보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든 것은 헤이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데리였다.
단숨에 내 품에 안긴 데리가 열심히 여기저기 털을 비벼 댔고, 덕분에 머리카락이 정전기 때문에 솟아올랐다.
하여간 유난스러울 정도로 깊은 데리의 스킨십은 최근 들어서 더 심해졌다.
헤이즈의 사랑을 듬뿍 받기 시작하더니, 도도한 고양이의 성격은 사라지고 사랑을 갈구하는 개의 애정 표현만이 남았다.
이래서야 개냥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을 정도다.
“폐하!”
이어서 헤이즈가 한달음에 달려와 나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입술을 맞대고 가벼운 키스를 나눴고, 우리는 한참 동안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눈이 마주치면 입을 맞추고.
가까이 있으면 꼭 안아 주며.
조금 떨어질 것 같으면 손을 맞잡는 우리의 스킨십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 깊어졌고, 횟수도 잦아졌다.
사랑은 여전히 진행형이었고, 동시에 무한히 뻗어 나가고 있는 확장형이기도 했다.
“내 사랑은?”
“네……?”
“내 사랑이 안 보이잖아?”
“호호, 폐하의 ‘사랑’이 부끄러운가 봐요. 하이네! 이리 와야지? 아바마마가 찾으시잖니!”
바로 그때.
헤이즈가 내 ‘사랑’을 불렀다.
나스식 이름, 하이네.
지구식 이름, 신혜지.
바로 4년 전 우리가 낳은, 눈에 넣어도 절대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내 딸이었다!
“헤에! 아빠아아아!”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다가 배시시 웃으며 달려오는 하이네의 모습을 보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예전에는 딸바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와 닿지 않았는데, 요즘은 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하이네만 보고 있으면 그 어떤 힘든 역경도 척척 넘을 수 있을 것 같고, 힘들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뿐일까?
하이네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강한 용기와 의지가 생긴다.
“이리 온! 읏차!”
내 품에 안긴 하이네가 열심히 볼에 뽀뽀 공세를 퍼부으며, 애정을 마음껏 표현했다.
우리를 닮아서인지 감정을 표현하는 데 능숙하고, 항상 잘 웃으며 매우 밝았다.
게다가 엄마의 예쁜 부분만 쏙 빼닮은 덕분인지 벌써부터 미모를 열심히 뽐내는 중이다.
특히 에메랄드 빛깔의 머리카락은 영락없이 엄마를 쏙 빼닮은 부분이기도 하다.
“헤이즈, 항상 고마워. 내 부인으로서 또 한 아이의 엄마로서 늘 헌신해 줘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그 무엇이든 두렵지 않은 걸요. 폐하가 있기에 제가 있어요.”
“사랑해. 앞으로도 영원히 헤이즈와 하이네의 곁에서 좋은 남편으로, 아빠로 함께할게.”
“저도요, 폐하. 아울러서 소중한 폐하의 이 제국이 천년만년 영원하길…… 기도할 거예요, 폐하.”
왼손으로 헤이즈의 손을 꼭 맞잡았다.
오른 어깨 위로는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은 하이네가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고.
-나는 여기당.
데리는 내 머리카락 위를 잽싸게 헝클어 놓고는 그 위에 몸을 둘둘 말고 앉아, 안락함을 즐겼다.
저 멀리 보이는 붉은 노을이 오늘따라 유독 더 따뜻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보였다.
우리 모두가 함께할 미래도 그렇기를 바랐다.
부디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의 시간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를.
나는 진심으로 빌었다.
또한.
반드시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훗날 오랜 시간이 흘러가도 나, 자레드 폰 유칼레스의 이름을 잊지 않도록 해내고 말 것이다!
또한 나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힘차게 미래를 향해 흘러갈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