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79
79화
“은혜씨가 내준 용기에 감사하고 있어요. 힘들었을 텐데.. 그가 심어놓은 두려움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은혜씨에게 전해졌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그럼 그 일로 저 미워하지 않는 거죠?”
“그럴 리가요? 은혜씨는 저에게 늘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럼 우리 결혼은 언제?”
“자.. 먼저 일어나야겠네요. 약속장소가 학교 밖이라 걸어가려면 지금부터 가야 할 것 같아요.”
“쳇, 능구렁이 같으니라구.”
덕팔이 일어나자 은혜도 몸을 일으켜 덕팔을 배웅해 주었다. 덕팔이 나가고 연구실이 다시 텅 비자 은혜가 스케치북을 열었다. 덕팔에게 보여주지 못한 그림 한 장.
은혜가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덕팔의 팔에 팔짱을 낀 채 결혼식을 올리는 그림. 사진 만큼 선명했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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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막골은 술집이다. 이름에서 풍겨지는 것처럼 허름한 선술집이 아닌 최신식 건물 1층에 있는 현대식 호프집이었다. 덕팔이 실망한 얼굴로 피막골 문을 열었다.
“막걸리는 못 마시겠네.”
실내에 들어온 덕팔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온주환이 손을 흔들었다.
“형님, 여기요.”
덕팔이 온주환에게 손을 들어주며 자리로 갔다. 이미 많은 학생이 모여 있었다. 한문을 가르쳤던 민 교수도 상석에 앉아 있었다. 덕팔이 민 교수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곤 온주환 옆에 앉았다.
“자자, 우리 과의 에이스! 떠오르는 슈퍼스타 더 파르~ 형님. 입장하셨습니다.”
온주환의 너스레에 학생들이 웃으며 박수를 쳤다.
“안녕하십니까? 신입생 오덕팔입니다.”
덕팔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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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모임은 늘, 언제나 부어라, 마셔라가 기본이다. 처음 술을 마시는 이들도 있었고 이미 상당한 내공을 쌓은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끝은 한결 같이 꽐라였다.
술은 팽팽했던 이성을 풀어놓는 마법의 약이다. 얼큰하게 취하자 새침을 떠느라, 어색한 분위기 때문에 입을 열지 못했던 20살 꽃 청년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더 파르~ 오빠!”
“윤정아, 내가 왜 더파르야? 덕팔이라니까?”
“오빠는! 오빠 이름이 너~ 무 촌스러워서 팬들이 오빠에게 ‘더 파르’라는 별명을 붙여 준 거잖아요.”
“무슨 뜻인데?”
“호호호.. 무슨 뜻이 있겠어요. 그저 창피함을 벗어나 보겠다는 팬들의 충심이죠. 호호호”
“크응..”
“근데 오빠, 드라마에 계속 나오는 거예요?”
“아마도?”
“그럼 학교는? 설마 오빠 휴학하는 거 아니죠? 나 오빠랑 6년 내내 같이 학교 다니고 싶은뎅..”
“휴학 안 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6년 내내 학교 같이 다니자.”
“형, 나도 나도..”
“너는 군대 가야지.”
소개했으나 금세 이름을 잊어버린 남학생이 끼어들었다가 윤정에게 퇴짜를 맞았다.
“야, 군대는 내가 가야돼. 3수를 해서 강제 입영이야.”
온주환이 울상이 되어 있었다.
“의대는 봐주지 않나?”
“몰라요. 병무청 가서 사정을 해봐야죠.”
“힘내라. 청춘!”
“형은 군대 갔다 왔어요?”
“나? 후훗, 나는 신의 아들이다!! 심지어 민방위도 면제지롱!”
“병역비리닷! 소도 때려잡게 생긴 튼튼한 몸으로… 흐흑… 우리 아버지는 왜 신이 아닌 거야!!”
온주환이 혼자서 연기를 하자 동기들이 좋다며 박장대소를 하였다.
“주환 오빠는 연극영화과를 갔어야 해!”
“그럴까? 군대 갔다 와서 다시 4수 할까? 수능시험이라면 이젠 강사를 할 수 있는 경지야!”
온주환이 끝내 동기들에게 다구리를 맞으며 긴 의자에 몸을 뉘였다.
동기들이 하나둘씩 떠났다. 남아 있는 용자는 5명. 그중에 민 교수도 끼어 있었다.
“오덕팔군.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아, 네”
덕팔이 민 교수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3월이지만 밤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민 교수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담배를 권했다.
“피우지 않습니다.”
“여전하군.”
민 교수가 담뱃불을 붙이며 덕팔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지냈냐?”
“네?”
민 교수의 물음은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에게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너, 날 기억 못 하는구나.”
“저어기…”
“오진우. 한울고등학교 28기. 전교 1등. 한국대 법대 수석입학 후 3년 차 미등록 재적. 아니냐?”
“…..”
덕팔이 민 교수를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눈에 이채가 돌았다.
“2반 경환이구나.”
“그래 2반 경환이다.”
민 교수가 담배를 깁게 빨아들이더니 크게 내뱉었다.
“한 가지만 묻자.”
“응”
“왜 대학을 포기한 거냐?”
“집안 사정이 있었어.”
“한국대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등록금 면제에 생활비까지 주겠다는 제안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에 못 갈 이유가 없었다.”
덕팔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등학교 동기를 교수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 얘기하고 싶지 않은데..”
“나는… 너 때문에 늘 2등이었다. 하루에 2시간씩 자며 공부를 했는데 늘 2등이었어. 네가 한국대에 간다고 해서 네가 없는 대학을 선택했다. 그런데… 네가 대학진학을 포기했다는 얘기를 들었지.”
“그런 일이 있었냐? 몰랐다.”
“그러니 말해봐. 왜 대학을 포기했는지.”
“…. 후우.. 아버지가 아프셨어. 내가 수발을 하지 않으면 당장 굶어 죽어야 하는 아버지를 두고 대학에 갈 수 없었다.”
“겨우 그거냐?”
“겨우? 대소변도 혼자 가리지 못하셔서 아르바이트도 2시간이 넘는 건 하질 못했어. 공부? 그런 건 나한테 관심사가 아니었다. 대학? 그게 뭐? 때가 되면, 여건이 허락하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거잖아? 하지만 아버지는 나에겐 시련이고 축복이었다. 어떻게 그런 분을 포기하고 나 살겠다고 대학을 갈 수 있겠냐?”
“웃기는군. 너에게 따지려고 널 찾아갔다. 그런데, 너희 집 주인이 그러더군. 네 아버지는 실종. 너는 가출!”
“그랬냐? 그러고 보니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나왔네.”
덕팔이 쓰게 웃었다.
“교수님, 이제 들어가시죠.”
덕팔이 뒤를 돌자 민 교수가 차갑게 말을 뱉어냈다.
“법대에 네 기록이 있다. 2년 장학생으로 입학을 했기 때문에 네가 등록을 했던 안 했던 2년간 네가 재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재입학 신청을 하면 3학년부터 다닐 수 있을 거다. 물론 2년간 수업에 나오지 않아 졸업하는데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네 머리라면 굳이 이 긴 한의대보다 법대가 나을 수도 있겠지. 고등학교 동창으로서 처음이자 마지막 충고야.”
“싫다면?”
“이중 입학을 문제 삼아 널 재적 처분하겠다.”
민 교수가 덕팔을 지나쳐 피막골 안으로 들어갔다. 덕팔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씨! 내가 지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
다음 날, 통합의대 긴급 교수회의
“하여, 오덕팔 군은 이중 입학자로 교칙에 의해 후 입학을 취소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그럼 오덕팔 군을 법대로 보내자는 거요? 민 교수.”
“아쉽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듯싶습니다.”
“아니, 애초에 이중 입학을 걸러내지 못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소?”
나이가 지긋한 교수가 덕팔의 학생부기록을 들추며 따져 물었다.
“오덕팔군이 개명을 했기 때문에 발생된 오류 같습니다.”
“흐음.. 학칙이 그러하다면 그리 처분을 해야겠지만, 오덕팔군의 입장도 매우 중요할 것 같은데… 민 교수! 오덕팔군은 만나 봤나?”
한의학 개론을 가르치던 노 교수가 민 교수에게 물었다.
“어제 상황은 전달했습니다.”
“그래서? 법대에 재입학 신청을 하겠다고 하던가?”
“아직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
노 교수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오덕팔 군은 내가 만나보겠네. 그러니 민 교수는 법대 학장하고 얘기를 좀 해보게. 오덕팔군은 학교를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네. 우리 학교가 일방적으로 장학생을 선정하고 임의로 등록을 시킨 것뿐이야. 재학의 의사가 없던 학생을 학교의 시스템에 의해 이중 입학자로 몰아가는 것도 보기 좋지 않은 것이니 법대 학장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그쪽에서 학생부를 정리 할 수 있는지 상의를 해보게.”
“하지만, 교수님.”
“10년 만에 대학에 들어온 아일세. 나이 서른에 입시 공부를 하여 우리 학교에 들어왔다면 그만큼 큰 뜻을 가지고 있을 것인데 선생이라는 사람들이 학생의 뜻을 이런 식으로 꺾어야 하겠나?”
“…. 알겠습니다.”
민 교수가 한발 물러서자 노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교수 연구관 A동 102호
똑똑
[들어오세요]덕팔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게, 오덕팔군!”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한의학 개론 시간에 본 기억이 나는군. 자리에 앉게.”
노 교수가 자리를 권하자 덕팔이 앉았다. 노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를 준비하려고 하자 덕팔이 얼른 일어나며 보온병을 꺼냈다.
“평소 즐겨 마시는 차가 있습니다. 함께 드시겠습니까?”
“그래? 나는 커피를 즐기지 않네.”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차입니다.”
덕팔이 얼른 종이컵 두 개를 들고 와 보온병을 열고 차를 따랐다. 노 교수가 차향을 음미하더니 눈이 살짝 커졌다.
“이건… 알푸레 차군. 맞나?”
“네, 약재로도 쓰이는 야생촙니다.”
“알푸레를 알고 차를 만들어 마신다라… 자넨 어느 집안의 자제인가?”
“함평 오씨 24대손이긴 합니다.”
“응? 허허허”
덕팔의 엉뚱한 대답에 노교수가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집안이 의원이 아닌가?”
“아닙니다.”
“그럼 이런 건 어디서 배웠나?”
“그게…”
덕팔이 말을 못 하고 망설이자 노 교수가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에 자네에 대한 입학을 취소해야 한다는 주제로 긴급 교수회의가 열렸네. 알고 있나?”
“어제 민 교수님께 들었습니다.”
“10년 전에 법대에 합격했었다지?”
“네,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왜 학교에 다니지 않았나?”
“그게…”
덕팔이 입이 다시 막히자 노교수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덕팔군은 비밀이 많은 친구인 모양이군. 내 나이가 64살일세. 내년에는 안식년이 될 터이니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날은 올해뿐이야. 벌써 시간이 흘러 퇴직을 해야 할 때가 되었지만 나도 한때는 자네와 같은 학생인 적이 있었지. 내 스승은.. 스승이라고 하면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일세. 허허, 인신 선생님이셨네. 아마도 내가 그분의 가르침을 받은 마지막 세대일 거야.”
덕팔의 눈이 살짝 커지자 노 교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알푸레는 독초라네. 우리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네. 그런데 그 알푸레를 차로 마시는 분은 이 세상에 인신 선생님뿐이셨어.”
“… 그렇습니까? 거기까지는 몰랐습니다.”
“동물이 알푸레를 섭취하면 몸에 열이 나고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네. 참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 그런데 반면에 제대로 가공을 하지 못하면 몸에 독이 쌓여 죽게 되네. 내가 알기로 알푸레를 가공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인신선생님 뿐이셨어. 소싯적에 몇 번 얻어먹은 적이 있지.”
노 교수가 알푸레 차가 든 종이컵을 좌우로 흔들어 보더니 덕팔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