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89
89화
한유리가 덕팔의 잡은 손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이젠 갈래요. 좀 무서워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역시 아저씨의 응원을 받으니까 힘이 나요. 후후]한유리가 덕팔의 바라보며 덕팔의 두 다리 위에 앉으며 말했다.
[남자친구가 생기면 꼭 이렇게 앉아서 안아주고 싶었어요.]한유리가 덕팔을 꼬옥 안아주더니 몸을 떼곤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입술이 덕팔의 입술에 닿았을 때 따뜻함이 느껴졌다. 차가운 영혼에게서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이 덕팔의 심장을 파고 들었다.
[늘 당신 곁에 있을게요. 사랑해요. 덕팔씨.]그녀가 조금씩 희미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덕팔의 눈이 감기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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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리 피살 사건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배성우가 왜 한유리를 죽였는지에 대해 세간의 의견이 분분하였다. 그중 하나가 덕팔과 한유리, 배성우 간의 삼각 관계설이었다. 배정환은 물론, 김진철 감독까지도 그 루머를 부인하였지만 한유리 사망 이후 덕팔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의혹을 더욱 부추겼다.
장례 마지막 날 새벽, 덕팔이 장례식을 찾았다. 잠을 자지 못했는지 눈이 퀭하였고 면도를 하지 않아 지저분한 그 모습 그대로 장례식장에 나타난 덕팔은 차분히 조문하고 끝까지 장례식장을 지켜준 스텝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마음고생이 심하다는 거 알고 있어. 그런데 앞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일도 만만치 않으니 마음 단단히 먹어.”
“감사합니다. 감독님.”
“덕팔아. 우리가 응원할 거다. 알지?”
무술감독인 박 감독도 한마디 보테 주었다. 덕팔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박 감독이 덕팔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우리 드라마 대박 났다. 시청률이 54%야. 모래시계 이후 처음이라지? 후우.. 그런데 전혀 기쁘지가 않더라. 유리씨한테 미안하기만 하고… 차라리 시청률 쪽박 차더라도 유리씨가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어휴… 몇 달을 같이 지내면서 정도 많이 들었는데…”
박 감독이 한숨을 내쉬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빈소에서 큰소리가 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유리가 뭘 해? 기부? 이런 미친년이!!!”
한유리의 할머니와 삼촌들이 변호사로부터 상속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펄펄 날뛰고 있었다. 아무래도 한유리가 유언으로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도록 한 모양이었다.
스텝들이 그런 꼴을 더 이상 못 보겠는지 덕팔을 끌고 장례식장을 나섰다. 기자들이 밖으로 나오는 덕팔을 잡고 늘어졌다.
“한유리, 배성우씨와의 삼각관계가 맞습니까?”
“배성우씨가 오덕팔씨와 한유리씨와의 관계를 시기하여 그런 일을 벌였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연인관계였던 배성우씨와 한유리씨 사이를 오덕팔씨가 갈라놓았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덕팔이 말없이 기자들 사이를 헤치고 지나가다가 마지막 질문에 발걸음을 멈췄다.
“한유리씨와 배성우씨는 어떤 관계도 아니었습니다. 고인을 모독하지 마십시오.”
“그럼 오덕팔씨와 한유리씨의 관계는 어땠습니까?”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좋은 친구 사이였습니다.”
“한집에 같이 거주하셨는데 동거를 하신 건 아닙니까?”
“아니에요. 오덕팔씨는 저와 연인관계예요.”
기자들에게 둘러쌓인 덕팔을 향해 기자들을 뚫고 들어간 은혜가 덕팔의 팔을 잡고 빠져 나오며 대답을 하였다.
“누구시죠?”
“대한 그룹 최진학 회장님이 제 부친이세요. 그러니 기사를 잘 쓰셔야 할 거예요.”
기자들이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못했다. 대한 그룹 로얄패밀리가 관련된 것이라면 연예부 기자가 가십으로 기사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은혜가 덕팔을 자신의 차에 태우곤 화를 냈다,
“바보같이 기자들의 질문에 왜 대답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그 사람들이…”
“배신인 건 알죠? 그 마음.. 용납할 수 없어요. 아영씨도 아니고 한유리씨라니요.”
은혜가 시동을 걸고 거칠게 차를 몰아 대로로 나왔다.
“학교는 어떻게 하고…”
“덕팔씨는 요? 학교 안 다닐 거예요? 오두막으로 들어가서 한유리씨 3년 상이라도 치러줄 건가요? 한유리씨가 참 좋아하겠네요. 그쵸?”
“그러지 말아요.”
“바보 같기는… 몽달 아저씨한테 들었어요. 연민? 동정? 그분은 그렇게 말을 하던데요.”
“모르겠습니다. 연민인지.. 제 인생의 반추였는지.. 하지만 그렇게 젊은 생명이 사그라진 게 아쉬울 뿐입니다.”
“그런 얘기 자존심 상하는 거 알죠? 제가 먼저 만났고 인연도 더 깊다고 생각했는데 한유리씨에게 빼앗겼다는 패배감이 들어요. 죽은 사람한테 그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되지만 한유리씨가 얄밉구요. 어떻게 덕팔씨를 홀렸는지 약도 올라요. 알아요? 저도 처음이에요.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거.. 그러니까… 더 비참하게 하지 말아요.”
은혜와 덕팔이 말없이 서로 다른 세상을 보는 사이 차가 한국대학교 주차장에 세워졌다. 덕팔이 말없이 차에서 내려 교수연구관 A동을 향해 걸었다. 은혜가 덕팔을 잡으려는 듯 손을 들었다가 이내 포기를 하였다. 덕팔의 멀어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은혜가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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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들게.”
“감사합니다. 교수님.”
“최 교수가 자네에게 힘든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해주더군. 뭐, 최 교수가 아니었어도 대한민국이 떠들썩해서 모를 수 없었겠지만 말이야.”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그날, 선 듯 도움을 주시겠다고 하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늙은 선생이 학생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응당 해줘야 하는 거지. 자네의 의술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나로서는 아쉬운 마음이라네. 그 어린 처자 입장에서도 아쉬운 일이고 말이야.”
“향이 참 좋습니다. 교수님.”
“자네가 준 차에 내가 가지고 있던 차를 조금 섞어 보았네. 향이 진해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차였는데 제 짝을 만나니 아주 훌륭한 차가 되었어. 잘 어울리는 짝을 찾는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일세.”
“네, 교수님.”
“슬퍼하지 말게. 그리움으로 새로운 인연을 망치지도 말고.. 단지 기억해 주게. 잊혀 지지 않도록.. 그럼 되는 것일세.”
“명심하겠습니다. 교수님.”
김정학 교수와의 무덤덤한 대담이었지만 덕팔에게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다. 덕팔이 4일 만에 수업에 나타나자 학생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덕팔 곁으로 다가왔다. 머리감을 시간도 없다는 한의대생이었지만 한유리의 죽음과 덕팔에 대한 기사는 본 모양이었다.
“오빠, 괜찮아요?”
“응, 고마워.”
“형님, 힘내십시오!”
남학생의 힘찬 응원과 함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하필 민경환 교수의 수업이었다.
민경환 교수는 수업 내내 덕팔을 힐끔 거렸다. 덕팔이 창 너머 밖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달리 지적을 하지는 않았다.
한 시간이 하루 같은 수업이 모두 끝나고, 강의실을 빠져나가려는 덕팔의 눈에 은혜가 들어왔다.
“도망갈까 봐!”
은혜가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덕팔과 함께 걸었다.
“고마워요. 신경 써 줘서…”
“그 말… 되게 서운한 거 알아요?”
“그런가요?”
“네, 서운해요. 마치 남에게 하는 형식적인 인사 같아서…”
은혜가 승용차 운전석에 앉으며 덕팔에게 물었다.
“참, 아빠가 저녁에 잠깐 볼 수 있냐고 물으셨어요. 전에 말씀하셨던 이야기를 하셔야 할 것 같다고…”
“어디로 찾아뵈면 될지…”
“함께 오래요.”
덕팔이 고개를 끄덕이자 은혜가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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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그룹 사옥. 회장실.
덕팔과 은혜가 나타나자 비서실이 웅성거렸다. 덕팔을 알아본 비서가 회장실에 들어가 덕팔과 은혜가 도착하였음을 알렸다.
“어서 오게. 덕팔군. 어서 오너라, 내 용감한 딸!”
“안녕하셨습니까? 아버님.”
“오랜만이에요. 아빠.”
“하하, 그래 그 아버님 소리가 이제 사위에게 듣는 것 같아 아주 기분이 좋군. 은혜야, 내가 너를 참 잘 가르친 것 같아 흐뭇하구나. 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였으니 돌아가는 대로 엄마에게 들려보렴.”
“왜요?”
“왜긴? 네가 오늘 기자들에게 폭탄 발언을 했다며? 사실 확인을 위해서 기자들이 회사로 연락을 해왔더구나. 덕분에 네 엄마도 알았지 뭐니? 우리 용감한 딸의 폭탄 발언을? 하하하.”
최진학이 웃으며 은혜를 민망하게 하였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결국 언젠간 그런 기사가 나가게 될 건데요. 뭐.. 그냥 기사 내라고 하세요. 호호호”
“허어.. 시집갈 때가 되니 아주 얼굴에 철판을 깔았구나. 우리 사위 보기 민망해서.. 원”
최진학이 딸과의 만담을 마치고 덕팔을 돌아보았다.
“자네는 괜찮은 건가?”
“네, 괜찮습니다. 아버님.”
“친분이 두터웠다고 들었네. 마음이 많이 쓰이겠지만 그 일과 관련해서 자네가 알아야 할 일이 있을 거 같아 불렀어.”
최진학이 서류 봉투를 덕팔에게 내밀었다. 덕팔이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살펴보니, 흐릿한 심령사진 같은 사진 몇 장이 들어가 있었다.
“이게 뭡니까?”
“얼마 전부터 누군가의 지시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피의자들이 생겨났네.”
아영에게 들은 기억이 났다.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한유리씨를 살해한 배성우라는 친구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
“그럼 이 사진 속의 인물이 그들을 조종했다는 겁니까?”
“그건 모르네. 이 사진은 그들과 관련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네. 사실…”
최진학이 조근 조근 그간의 경과를 설명해 주었다.
“그를 추적하셨다구요?”
덕팔이 놀란 눈이 되자 최진학이 웃었다.
“내 사위를 못살게 구는 놈인데 얼굴이라도 봐야 하지 않겠나?”
“위험합니다. 아버님”
“자네가 그를 물리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맞나?”
“네, 운이 좋아서..”
“그래서 더 열심히 조사해보았네. 처음 은혜가 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울고불고 난리를 칠 때는 사실 두려운 마음이 있었네, 그런데 자네가 그를 유인하여 그를 물리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실체를 좀 더 명확히 파악한다면 그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았네. 이름 석 자도 알아내지 못했어. 하지만 그가 부리는 조직에 대해서는 조금 알 수 있었네. 그런데 그가 부리는 이들 모두 호락호락한 인물들이 아니었네. 그리고… 자네가 그를 낭패케 한 그날 이후,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네.”
“그럼 이 사진은…?”
“맞네, 그들이 움직이면서 곳곳에서 발생된 수상한 일들을 촬영한 것들이네. 분명 인간의 모습으로 접근을 하였지만 잘 보게. 인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이상하지 않는가?”
대부분 두 사람이 찍혀 있는 사진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선명하게 찍힌 반면 곁에 있는 다른 이는 매우 흐릿하게 찍혀 있었다. 마치 심령사진처럼..
“여기 흐릿한 사진 속 인물들이 수상하다는 말씀인가요?”
“맞네. 그리고 여기 선명하게 찍힌 사람 중 세 명이 살인을 저질렀네. 아직 두 명에게는 그런 낌새가 없지만, 이들 역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어 자네를 불렀네.”
“경찰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경찰이 내 말을 믿으려고 할까? 날 정신병원에 가두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아무렴 대한 그룹 회장님께 그런 무례를 저지르겠습니까?”
“하하, 미치는 데 지위 고하가 무슨 상관이 있겠나?”
“그 말씀을 믿어줄 형사를 한 명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연락을 해보죠.”
덕팔의 눈에 조금씩 생기가 돌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