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서울 00경찰서.
“오랜만이죠?”
“오덕팔씨가 이곳까지 오실 줄은 몰랐는데?”
김 형사가 경찰서로 직접 찾아온 덕팔을 반겨주었다.
“상의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뵈었어요.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럽시다. 덕팔씨라면 없는 시간이라도 만들어 내야지.”
김 형사가 휘적거리며 덕팔과 함께 지하 구내식당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한구석을 차지하며 캔 커피를 마셨다. 마음이 급한 덕팔이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김 형사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요?”
“심령사진입니다.”
“뭐? 하하, 오덕팔씨 유머가 많이 늘었네.”
“그렇게 추정되는 사진입니다.”
덕팔이 정색을 하며 대답을 하자 김 형사가 몸을 당기며 작게 속삭였다.
“진짜요?”
“네, 대한 그룹에서 입수한 사진입니다.”
“허어.. 미치겠군.”
김 형사가 사진을 넘겨가며 살펴보더니 눈에 이채를 띠었다.
“여기 이 세 사람, 눈에 익은데?”
“살인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들입니다.”
“그럼 이 두 사람은?”
“앞으로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잠정적 가해자들이구요.”
“살인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이오?”
“그건 모르겠습니다. 계획을 하는지,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건지. 하지만 여기 흐릿하게 나온 이 자 또는 이 자들에 의해 무언가 조종을 당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 사건 용의자들이라면 나도 잘 알고 있소. 모두 임 검사님이 사건을 처리하고 있지. 하지만 그들이 지목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었소. 죽었거나 상상 속의 인물들이었지.”
“그래서 김 형사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른 피해자들이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한유리씨 때문이오?”
“네, 배성우씨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으니까요.”
“망상을 핑계 삼아 감형을 노리는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소?”
“그 생각도 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존재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일이라고 하여도 그들이 사람을 죽인 죄가 용서되지는 않겠죠. 하지만 더 이상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야, 그렇긴 한데…”
“뒤를 밟아 주십시오. 그래서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막아주십시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그것입니다.”
“덕팔씨는 다른 계획이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이 심령사진 속 존재에 대해 파악을 해 볼 생각입니다.”
“드라마며 뉴스에 얼굴이 잔뜩 팔려서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지.”
김 형사가 저 멀리서 덕팔의 사진을 찍고 있는 여자 경찰들을 가리키며 웃자 덕팔이 쓴 웃음을 지었다.
“모자를 눌러쓰든, 마스크를 하든 그것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러니 형사님께서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아주십시오.”
“…. 생각해 보리다. 근데 이 사람들 인적사항은 아시오?”
덕팔이 고개를 흔들자 김 형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덕팔을 바라보았다.
“그니까 나보고 이 자들을 찾으라는 말이군? 힌트도 없고? 적어도 어디에서 이 사진이 찍혔는지는 알아야 용의자를 특정할 것 아니오?”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도 나름 조사를 해보지. 사람을 살리는 일인데… 뭐, 미친놈 소리 한번 들을 각오하지. 그나저나 괜찮은 거요?”
“괜찮습니다.”
“겉보기에는 당장 쓰러져도 이상해 보이지 않으니 오늘은 집에 가서 푸욱 쉬시오. 사람을 살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도 덕팔씨가 살아야 가능한 일 아니오?”
“감사합니다.”
덕팔이 김 형사로부터 세 용의자에 대한 수사 경과를 간추려 들은 후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물론 그 뒤로 많은 여경의 배웅을 받으며..
**
“은혜씨, 좀 도와주세요.”
“이 일을 왜 하려는지 그것부터 말해주세요. 한유리씨 때문인가요?”
덕팔이 고개를 저었다. 은혜가 원하는 답변이었다.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씀은 못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주된 이유는 아닙니다.”
은혜가 실망했지만, 덕팔이 그녀로부터 벗어나려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이 되었다.
“좋아요. 도와줄게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덕팔이 고개를 끄덕이자 은혜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훗, 그렇게 쉽게 승낙할 일은 아닐 텐데 말이죠. 뭐 일단 낚시 바늘에 물고기가 물렸으니 급한 건 물고기겠죠? 따라서 조건은 나중에 말할게요. 나중에.. 아주 천천히!!”
덕팔이 움찔했지만 이내 다시 평온한 얼굴이 되었다.
“요즘 법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구속, 처분을 전제로 하는 계약은 모두 무효더군요. 은혜씨가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아 말씀을 드립니다.”
“쳇, 누가 법 공부를 하라고 했다고.. 쓸데없이 똑똑해 진단 말이지. 피곤해, 아주~ 피곤해.”
은혜가 투덜대며 2층으로 올라가 버리자 2층에서 거실의 분위기를 살피던 아영이 덕팔의 눈치를 보며 거실로 내려왔다.
“오빠?”
“응?”
“저…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는데…”
“전에 말한 사건 기록이니?”
덕팔이 손을 내밀며 아영의 손에 들린 기록을 낚아채 가자 아영이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으응..”
덕팔이 기록을 읽고 있는 사이 아영이 부엌으로 들어가 과일과 음료를 가지고 나왔다. 아영이 사과를 깎아 덕팔에게 내밀자 덕팔이 이를 받아먹으면서도 시선은 절대 기록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장까지 모두 완독을 하고서야 덕팔이 고개를 들었다.
“나머지 사건은?”
“나한테는 이 사건만 배당되었어.”
“김형사님 말로는 세건 모두 네가 수사를 하고 있다고 하던데?”
“내가 관련 사건이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부장님이 실적에 눈이 먼 다른 선배들에게 사건을 찢어서 분배하는 바람에 나한테는 이거 한 건만 남게 된 거야.”
“사본이라도 그 사건 기록을 입수할 수 있을까?”
“가능할 거야. 근데.. 도와주려고?”
“응, 내가 도와야지.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사건을 해결하겠니?”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덕팔은 아영을 피해 다니며 사건 검토를 미적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니 아영으로서는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왜 이러는데?”
“뭐가?”
“왜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였냐고?”
“그냥, 그러고 싶어서..”
덕팔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
대한 그룹으로부터 의뢰를 받은 용역집단에서 사진에 대한 추가 정보를 제공 받은 지 이틀 만에 김 형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네, 김 형사님 오덕팔입니다.”
[그 두 사람 인적사항 확인했소.]“그러십니까? 제가 경찰서로 찾아뵐까요?”
[아니오, 저녁에 술이나 한잔합시다. 전에 말했던 꼬막무침 잘하는 곳에서..]김 형사의 전화가 끊어졌다. 이 사람도 통화는 ‘용건만 간단히’ 하는 세대인 모양이었다. 덕팔이 시계를 힐끔거렸다.
오후 2시 40분
마지막 강의가 남아 있었다. 덕팔이 강의실을 찾아 교정을 거닐고 있을 때, 민경환이 반대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자리를 피할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해 먼저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
민경환이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고 덕팔을 지나쳐갔다.
“경환아…”
민경환의 걸음이 그대로 멈춰 섰다.
“네가 왜 나를 싫어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에게 감정이 없다. 우린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3년간 한 학교에서 동거동락한 사이잖아? 오해가 있다면 풀었으면 좋겠다.”
덕팔의 말에 민경환이 몸을 돌려 덕팔을 노려보았다.
“여전히 네 잘못을 모르는 거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통합의학과에 들어온 게 그렇게 거슬리니?”
“아니, 내 눈앞에서 어슬렁거리는 게 거슬린다. 그러니 그냥 사라지면 돼. 그럼 너와 나는 다시 볼 일이 없는 사이가 될 거다. 훗날, 동창회에서 만난다면 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가 될 수도 있겠지.”
“4년만 참아주면 안 되겠어? 지금 상태로 다른 학교로 편입을 한다고 해도 부족한 학점을 채울 수 없다는 건 네가 더 잘 알잖아. 그 이후에는 네 눈앞에서 사라져 줄게.”
“네가 한의사가 되면 어떻게든 다시 부딪치겠지. 그리고…”
민경환이 말을 잇지 못하고 덕팔을 한동안 노려보다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후우….”
덕팔이 그런 민경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덕팔은 민경환이 왜 자신을 적대적으로 대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동기가 제자로 들어왔다면 분명 껄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한의대는 30대에 신입생으로 입학하는 경우도 상당하기에 자신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다른 동기들과 사제지간으로 만날 수 있었다.
민경환의 반응은 한때 동기였던 이를 제자로 만났을 때 오는 거부감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증오가 보였다. 덕팔은 불안했다. 김정학 교수와 통합의대를 쥐락펴락하는 정교수들이 필요에 의해 자신의 뒷배가 되어 주고 있으니 전임강사에 불과한 민경환이 자신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민경환이 자신에게 내비치는 증오 어린 시선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덕팔이 강의실로 향하며 12년 전, 대입원서를 작성했던 때로 기억을 되돌렸다.
**
“오진우, 대학을 안 간다고?”
“못 갈 것 같습니다.”
전교 1등이 문제가 아니라 모의고사 성적으로 전국 5등 아래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오진우가 대학 포기선언을 하였다. 교무실이 술렁였다. 담임선생은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진우가 한국대학교에 입학원서를 내면 어떤 과든 100% 합격임이 틀림없는 데 이런 우수 인재의 학력을 고졸로 마감시켜야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오진우의 가정형편이야 듣기도 했고, 직접 보기도 했으니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아까웠다. 교감의 눈치도 보였다. 진학률이 명문고등학교의 기준이 되는 시대에서 한국대 상위학과로 진학시킬 수 있는 오진우는 꽃놀이패였다. 그런데 그 패를 써먹을 수 없다고 생각해보라.
학교 입장에서는 속이 뒤집어질 일이었다. 담임선생이 숨을 고르고 오진우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진우야, 혹시 등록금 때문에 그러니? 너 정도 성적이면 장학금은 문제도 아냐. 학교에서 장학재단 몇 군데와 이야기 중이니까 아마도 네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 생활비까지 지원받을 수 있을 거야.”
“선생님,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솔직히 학교에 있는 지금 이 시간도 불안해요. 거동을 못 하셔서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시고, 제가 없으면 하루 종일 굶고 계셔야 하는 아버지를 두고 대학을 간다는 건 무리인 것 같아요.”
“요양 병원에 모셔도 되잖아. 응? 오히려 비전문가인 네가 간병을 하는 것보다 전문가들이 아버지를 돌봐드리는 게 나을 거야. 선생님이 그것도 알아봐 줄게.”
오진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알아봤는데.. 자격이 안 된대요. 병명이 명확치 않아서 등급이 나오질 않아 요양시설 입소가 불가능하다고 해요.”
담임선생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오진우라고 대학에 가고 싶지 않겠는가? 아버지를 좀 더 편한 곳에 모시고 싶지 않겠는가? 자신이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기 중에 미리 알아보고 손을 썼다면 오진우를 설득하기 쉬웠을 것인데 워낙 내색하지 않는 녀석이라 잘 견디고 있다고만 생각했던 것이 오늘의 문제를 만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