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줄다리기-5
무적함대의 가세와 새로이 도입된 전술안에 힘입어 로치 전선은 간신히 제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밀리지 않게 되었다 뿐이지, 도로 밀고 올라가기엔 애로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현재 로치 전선을 복싱 경기로 비유하자면, 상대방은 여러 명이라는 불리한 상태에서, 처음부터 어퍼컷을 맞아 골이 울리고 있는 상황에, 쉴 새 없이 잽은 날아오지, 뭔가 지도를 해줘야 할 감독들은 서로 투닥거리고 있다.
말 그대로 내우외환.
세 군구의 우두머리들이 싸우지 않는다 해도 상황은 비슷하긴 했을 것이다. 수적 열세가 너무 심했으니까.
한 손이 열 손 못 막는다고, 드로칸 전선처럼 비대칭 전력이 있는 것도 아닌 로치 전선은 틈새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 틈으로 적이 새어 들어와 후방과 측면을 타격해대고, 그걸 막기 위해 후방에서 기껏 증원된 함선을 할애하느라 최전방의 전력은 그만큼 더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그나마 마음씨 넓은 진이 페넬로페 말고도 다른 군구에도 무적함대를 보내 생체함대를 후퇴시키는 억지력을 제공해줘서 버티는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세 군구의 모든 행성의 하늘은 플라이어로 뒤덮였을 것이다.
전선은 그대로 고착화되었다.
지난 4백년 간 그래왔듯 말이다.
***
행성 방어선 붕괴, 안드로이드 부대 3개 사단 괴멸, 방어선 복구 와중 기습으로 사상자 발생, 행성 하나 함락…….
진은 전선 각지에서 AI들이 보내온 보고를 읽어 내려가면서 로치와의 전쟁은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
당장은 그리 깊게 들어가지 않고 있지만 잘못 발을 디디는 순간 쑥 들어가 돌이킬 수 없을 그런 늪에 들어간 것만 같았다.
그만큼 전선은 아슬아슬했다.
‘황제 폐하의 지원군은 언제 오려나. 빨리 지원이 와야 내가 원정을 가는데.’
진은 페넬로페 군구의 수비가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가면 로치의 중심부를 향해 과감히 원정을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틈이 나질 않았다.
‘더럽게 많아.’
생체함대를 겁주려 순찰을 도는 주기는 더 빡빡해졌다. 방어선을 넘은 로치 함대가 곳곳을 쑤셔대 그걸 막느라 그만큼 공백지가 넓어졌기 때문이었다.
운동이랍시고 직접 내려가서 지상 전선을 도와주던 것도, 운동이란 이름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혼신의 힘으로 적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날뛰어야 할 수준이 되었다.
엔터프라이즈 호가 직접 내려가 전장을 깔아뭉개 벌레로 이뤄진 지층을 만드는 횟수도 세 자리가 넘어갔다.
‘아니 어떻게 병력 보충 속도가 기존 기록들을 매번 갱신하냐고?’
드로칸이 로치에게 제공해준 약물의 효과 중 하나인 산란 및 성장 속도의 증대 때문이었지만 그걸 알 길은 없었다.
어쨌건 예상 외로 쉽사리 전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자, 진은 현재 증원되는 병력으로는 역부족이라며 황제에게 추가적인 도움을 요청했다.
얼마 뒤, 드로칸 말고도 로치의 위험이 인류의 목젖까지 닿았느니 하면서 공포심을 제대로 자극하는 연설이 송출되었다.
그걸 기반으로 황제는 드로칸 전선에서 복귀한 뒤 정비를 끝낸 함대와 추가적인 모집 병력을 로치 전선으로 보내겠다는 희소식을 보내왔다.
그 대규모 지원군이 도착한다면 무적함대가 빠져도 군구는 능히 버틸 수 있으리라.
‘근데 원정이 해답일까?’
그런데 정작 원정의 주체가 원정에 다소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뭔가 부족해.’
은하 1/3을 차지하는 로치가 단순히 중심지를 습격한다고 순순히 물러갈까? 공격 외에 뭔가 로치의 위협을 확실하게 줄일 방도는 없을까?
그렇게 머리를 굴리던 와중, AI들을 통해 대공들의 수작질이 또 보고되었다.
보급함대에 거짓 전보를 보내 페넬로페 대신 다른 군구에 먼저 내려달라는, 지긋지긋하게 본 수법이었다.
보급함대 입장에서는 무려 대공이 시키는 일이라 의도를 알아도 거부할 수가 없다. 후방 보급함대의 소속이 100퍼센트 공기관이 아니라 일부는 약소귀족들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보내질 보급함대는 황제가 신경을 써 대공의 말을 무시하고 원칙대로만 행동할 수 있는 것들로 채워지겠지만 아직은 아니라 이런 보고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놈의 정치질 진짜. 전술안 빼가서 살만해진다 싶으니까 금세 또 이러는 거 봐.”
하여튼 이런 수작질 부리는 건 인간만의 특징일 거야.
……아니지.
‘인간만의 것은 아니지. 당장 드로칸도 내부 다툼 때문에 차도살인을 하려 했잖아?’
로치는 지적 생명체치고 수준이 낮긴 하지만 드로칸과 로치가 손을 잡은 사례가 있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면 로치하고도 대화가 통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정상적인’ 대화가 이루어질지는 의문이지만, 전체적으로 로치의 지능이 상승한 지금 시도할 가치가 충분히 있어보였다.
“앤젤라.”
[네 함장님.]“로치와 대화를 할 여지가 있을까?”
[그게 간단할까요?]될까요가 아니라 간단할까요다.
“일단 로치와 대화할 순 있다 판단했지?”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로치 총사령관이 죽었다 부활한 다음에 도발을 한 것만 봐도 그렇죠.]앤젤라는 정보부 내부 자료를 띄웠다.
‘정보부_굴욕_top_3’라는 제목을 가진 영상이었다.
-난 살아있. 다! 난 살아있다고. 네다리. 시부럴. 것들. 아!
한 관측 드론 앞에서, 새까만 몸에 유광 페인트칠을 한 것처럼 번들거리는 로치 하나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일갈하는 영상이었다.
“허. 인간 욕은 또 어디서 배웠대?”
[전선에 나온 걸 포착해 함대 하나를 바쳐가면서 겨우 죽였는데 복구회사로 부활해서는 저렇게 도발을 했다 하더라고요.]한 번 죽었음에도 다시 나와 저 난리를 피운다는 건, 적어도 도발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할 줄 아는 지능을 갖고 있단 얘기다.
‘유전자가 업그레이드된 지금은 더 똑똑해졌겠지.’
진은 곰곰이 생각한 뒤 앤젤라에게 말했다.
“로치 지상군이 침공 하고 있는 데로 가자. 할 일이 있어.”
***
얼마 뒤.
로치가 침공한 전방 요새 행성.
“날. 풀어라. 네 다리.”
“시끄러워.”
쿵!
엔터프라이즈 호의 격납고에 사람만한 바퀴벌레 하나가 내동댕이쳐졌다.
음성을 통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지능이 높은, 일선 로치 지휘관이었다.
전체적인 로치 지능이 높아진 지금은 기껏해야 대대장 정도 되는 녀석이지만 일단 대화가 통한다는 게 중요하다.
단단히 묶은 녀석을 내려다본 진이 말했다.
“우리 대화 좀 하자.”
“대화?”
“싫으면 죽이고 딴 놈 데려오고.”
“……말해라.”
“너희는 왜 쳐들어오는 거냐?”
“우리는 강자이기. 때문. 이다.”
저번에 전장에서 짤막하게 대화를 나눈 로치와 똑같은 말이었다.
“그래서?”
“여섯 다리. 제일 강하다. 네 다리. 약하다. 그래서 우리가. 먹고 지배한다.”
“만약 그게 아니면 어쩔 건데?”
“아니면…… 아니면……”
거기까지 생각할 지능은 없는지 고개를 까딱거리며 괜히 더듬이만 청소하는 로치.
“너하고는 얘기가 힘들 거 같다.”
“아니다. 이해했다. 생각났다.”
로치는 목숨의 위기가 닥치자 지능이 높아지며 다급하게 살려달라 피력했다.
“아니면 어쩔 건데?”
“……반항하지 않는다. 그게 사는 거다.”
“그래? 너를 잡아온 우리 무력을 생각하면 항복할 마음이 드나?”
“너는 강하다. 하지만 네 다리 전체. 여섯 다리가. 지배할. 수 있다.”
“어째서?”
“우리. 단단한 껍데기 안다. 네 다리의 껍데기 중. 아주아주 단단한 거 안다.”
무적함대를 의미하는 거였다.
“그런 강한 것들. 적다. 나머지는 우리가. 잡아먹는다. 그러니까. 여섯 다리가 더. 강하다.”
“그럼 네 생각을 바꿔주지. 앤젤라. 이놈 독방에 가둬놔.”
[네 함장님.]검은 갑옷들이 저벅저벅 다가와 로치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그럼 이제 계획했던 대로 해볼까.”
엔터프라이즈 호는 아직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지상을 떠나 우주로 날아올랐다.
대기권 밖에서는 상어를 피하려는 물고기 떼처럼 생체함대가 허겁지겁 후퇴하고 있었다.
그 꽁무니를 쫓아가며 함포를 쏴대는 무적함대를 바라보며, 진은 우주 지도를 펼쳤다. 드로칸이 기록한 로치 영역에 대한 정보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지도였다.
저 멀리 후방에 여러 로치 부족의 중심지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제부터 이 배는 바퀴벌레 집의 중심부로 가게 됩니다. 내리실 분은 내리시고 응원할 분은 응원하시기 바랍니다.”
진은 비행기 기장처럼 통신 채널을 통해 모두에게 전했다.
[잘 다녀오세요 함장님!] [다녀어 오세요오.] [또 벌레 잡으러 가는구나.] [으으, 벌레 싫어……] [후후. 함장님이 이룩하실 업적을 함께해 영광입니다.]로치 중심부로 향하는 원정을 위해 여태껏 페넬로페 군구의 방어를 든든히 해줬다. 진은 팀이 돌아오기 전까지 부디 이변이 벌어지지 않길 바랐다.
떠나기 전에 해놓을 준비는 다 마쳤으니 남은 건 보고뿐이었다.
“공작님. 갔다 오겠습니다.”
[벌써 때가 그렇게 되었나. 알겠네.]“무적함대를 고려해 구축한 순찰과 방어 계획을 슬슬 바꿔야 된다고 각 지역 사령관에게도 주지시켜 주십시오.”
[그래야지. 무적함대처럼 보이는 기만용 소형함도 여럿 만들었으니 얼마 동안은 수월하게 버틸 걸세. 원정 기간은 얼마 정도 걸릴 거라 보는가?]“워프 지도가 없으니 오가는 데만 꽤 걸릴 거라 생각합니다. 최소한 몇 주? 상황에 따라 줄 수도 늘 수도 있습니다만. 물자는 넉넉히 남기고 가니까 잘 대처해주셨으면 합니다.”
[걱정 말게. 황제 폐하께서 내려주신 증원군도 조만간 도착할 테니 밀릴 일은 없을 거야.]적어도 뭔가 부족해서 괴멸하는 일은 없으리라.
[좋은 결과를 얻길 바라겠네.]공작은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는 무적함대를 향해 행운을 빌어 주었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겠군.’
진과의 통신이 종료된 공작은 즉시 다른 이와 통신을 했다.
화면이 떠오르며 누군가의 얼굴이 나타났다. 즉위한 지 1년도 안 된 젊은 황제였다.
[연락을 하는 걸 보니 진 테일러는 출발했는가.]“예. 방금 출발했습니다.”
“알겠습니다. 3대에 걸친 악연을 드디어 청산할 때가 온 모양입니다.”
공작의 눈에서 평소와는 다른 매우 섬뜩한 눈빛이 줄기줄기 튀어나왔다.
[지금까지야 외부 위협이 있으니 온갖 난리를 쳐도 참아줬지만, 그 위협이 사라진다면 더 이상 그들이 존재할 이유는 없지.]지금껏 최전선을 지켰다는 명분으로 오만 갑질을 행해왔던 이들에게 철퇴가 내려질 때도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