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1)
“당연하지요. 솔직히 저와 저기 갈 대협이 왜 금벽상단의 제안을 받아들였겠습니까?”
“글쎄요.”
“다른 사람들은 전부 돈 때문이라고 말할 겁니다.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저희는 신의를 보고 온 겁니다.”
천추신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를요?”
물론 놀란 척을 해준 것뿐이다. 경추황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의원 생활을 십 년 넘게 해왔으니까.
“신의께 잘 보여 놓으면 나중에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지요.”
그러니 종리세가도 천추신의 때문에 함부로 칼을 뽑지는 않을 거라는 얘기였다.
천추신의가 빙긋 웃었다.
“뭐, 두 분처럼 인성이 훌륭한 분들이라면 언제든 도와드려야지요. 물론 그 전에 우리 공자님의 허락이 있어야 하지만 말입니다.”
그 말에 경추황과 갈진협의 눈이 커다래졌다.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벽태산과 천추신의를 번갈아 바라봤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만······.”
천추신의의 말에 두 사람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그만······ 그나저나 방금 하신 말씀 진심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죽을 때까지 공자님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허어. 정말 놀랍군요. 어찌······.”
두 사람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벽태산을 힐끔힐끔 곁눈질했다.
저 어리고 비리비리한 공자의 어떤 점이 천추신의라는 대단한 의원의 마음을 움직였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나저나 종리세가가 아무리 평판이 별로여도 명분에 신경을 상당히 쓰는 편인데 왜 이런 무리한 일을 벌이는 건지 모르겠군요.”
경추황은 슬그머니 천추신의 옆으로 다가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번 기회에 천추신의와 친분을 다져놓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쪽 가주의 막내아들이 연가장 여식에게 단단히 반한 것 같더군요. 어찌나 막무가내인지 가주가 몇 번이나 불호령을 내렸는데도 계속 고집을 부린다고 합니다.”
“허어. 그런 일이······ 종리세가도 골치깨나 아프겠습니다.”
“고민이나 하겠습니까? 잘 걸렸다 싶겠지요. 솔직히 금벽상단 정도면 종리세가가 군침을 흘릴 만하지 않습니까.”
“신의께서는 종리세가가 이번 일을 기회로 금벽상단을 도모할 거라고 보시는 겁니까?”
“뭐······ 짐작일 뿐입니다.”
사실 그저 짐작만은 아니었다. 많은 조사를 통해 이끌어낸 추측이었다.
벽태산의 명령으로 금벽상단을 중심으로 주변 정보를 싹 훑었고, 그 와중에 종리세가의 움직임 몇 가지가 걸려든 것이다.
처음은 종리세가의 막내인 종리웅이 연하린에게 반하면서 시작한 일이 맞다.
하지만 그 이후에 종리세가의 교활함이 개입되었다.
오늘 일을 계획한 놈들이 바로 종리세가였다.
벽태산은 그걸 모두 알고도 연가장으로 가는 중이었다.
경추황과 천추신의의 대화가 흥미로웠는지 갈진협도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아무리 종리세가라 해도 신의가 계신데 함부로 칼을 뽑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 그들은 신의께서 벽 공자를 따르기로 했다는 것도 모를 테니 굉장히 혼란스러울 겁니다. 이따 제법 볼 만하겠군요.”
그 뒤로도 경추황과 갈진협은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이어갔다.
주로 종리세가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딱히 영양가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일행은 어느새 연가장에 도착했다.
* * *
벽태산은 연가장주의 방에서 단둘이 마주앉아 있었다.
연가장주는 벽태산을 유심히 살폈다.
지금 방문 바깥쪽은 천경완과 유서연, 그리고 경추황과 갈진협이 지키고 서 있었다.
그들은 한껏 긴장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종리세가 무사들이 포진해 있었다.
언제 달려들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였는데, 그래서 네 사람은 잠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그 상황을 뻔히 알고 있기에 연가장주는 이런 압박 속에서 벽태산이 어쩌나 확인하는 중이었다.
‘놀랍군. 정말 이 아이가 그때 그 아이란 말인가?’
연가장주는 당연히 벽태산을 만난 적이 있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어릴 때는 자주 보던 사이였다.
벽태산의 병이 겉으로 드러나면서 왕래가 줄어들었고, 그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원래는 굉장히 친밀한 관계였다.
한데 연가장주의 기억에 있는 벽태산은 지금의 벽태산과는 전혀 달랐다.
지금의 벽태산은 예전과 달리 여유가 넘쳤다. 또한 자신을 앞에 두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벽태산을 앞에 둔 자신이 약간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어쨌든 자신이 불렀으니 먼저 말을 꺼내야 한다.
“예전에 자네가 날 찾아와서 했던 말 기억나나?”
벽태산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런 게 있는 줄 어찌 알겠는가.
일단 모를 때는 입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안 되더군. 하린이 그 녀석, 누굴 닮아 그리 고집이 센지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네.”
연가장주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잠시 벽태산을 살피다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굉장히 미안했네. 한데······ 지금 보니 꼭 미안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
벽태산은 연가장주의 말을 통해 예전에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대충 유추했다.
‘하, 이 병신 같은 놈이 자기 죽을 날 얼마 안 남았으니까 연하린이 자길 포기하게 만들라고 한 모양이군.’
자신도 차갑게 대하고 연가장주도 함께 압박을 넣으면 자연스럽게 그리 될 거라 예상한 것이다.
그들이 예상치 못한 건 연하린이 이 정도로 절실하게 버텨낼 줄 몰랐다는 것이고.
“천추신의가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야. 자네 몸이 제법 많이 나아진 모양이군. 맞나?”
“뭐······ 아직 멀었지만 결국 완치될 겁니다.”
벽태산의 담담한 말에 연가장주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동안 자네를 너무 오랫동안 못 본 모양이야. 자네가 꼭 다른 사람 같군.”
벽태산은 이번에도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하긴, 사람은 작은 계기만 있어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법이지. 나도 그랬고.”
연가장주는 복잡한 눈빛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아무튼 이번에는 일이 좀 어렵게 되었네.”
연가장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종리세가에서 아무래도 작정을 한 모양이야.”
연가장주는 차분히 상황을 설명했다.
종리세가에서는 연하린과 벽태산이 정혼한 사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연하린이 고집을 부려봐야 소용이 없었다.
어차피 혼례는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니 가주가 결정하면 연하린은 거기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었다.
“아무래도 자네를 끌어들여서 수작을 부리려는 것 같네. 하린이 앞에서 망신을 준다거나······.”
그렇게 나쁜 감정을 이끌어내서 일을 살살 키워가려는 것이 분명했다.
설명을 모두 들은 벽태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겠습니다.”
딱 거기까지만 말했다.
역시 종리세가는 종리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마 그게 전부가 아닐 것이다.
종리세가가 움직이는데 고작 감정을 긁어서 일을 키워가는 어설픈 방법을 쓸 리 없지 않은가.
‘금벽상단만 노리는 것 같지가 않은데?’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 * *
연가장주의 방 앞에는 여전히 종리세가 무사들과 천경완을 비롯한 벽태산 측 무사들의 대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방문이 열리고 벽태산이 등장하자, 한 순간 긴장감이 훨씬 높아졌다.
종리세가 무사들이 벽태산을 향해 은밀히 기세를 뿜어냈다.
내공을 직접적으로 발휘한 건 아니지만, 강한 무사의 거친 기세를 보통 사람이 받아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몸이 정상이 아닌 벽태산이라면 더더욱 힘들 것이 당연했다.
물론 그건 종리세가 무사들의 생각이었고, 당연히 벽태산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진짜 내공을 써서 본격적으로 기세를 뿜어내도 안 될 일을 내공도 없이 하는데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게다가 벽태산이 종리세가를 밥이라고 표현한 건 정확한 이유가 있었다.
예전 세가 연합이 함정을 파서 천마를 기습했을 때, 종리세가만 유일하게 도망쳤다.
하지만 천마가 그런 종리세가를 그냥 둘 리 없지 않은가.
벽태산이 자기 입으로 말했듯이 천마는 자신의 것을 노리는 놈을 살려둔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건 종리세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마는 당시 종리세가에서 습격에 가담했던 놈들을 모조리 찾아가 박살 냈다.
어떻게 했느냐고? 종리세가로 쳐들어갔다.
습격에서 살아남은 호천대만을 이끌고서.
사실 천마가 노린다는 정보를 입수했지만, 설마 천마가 종리세가까지 호천대만 데리고 올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아무리 천마라도 종리세가와 싸우려면 최소한 천마신교의 주력 무사대 다섯 정도는 대동해야 할 거라 판단했으니까.
그래서 소규모로 움직이는 천마와 호천대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종리세가는 불시에 들이닥친 천마에 의해 박살이 났다.
종리세가가 멸문하지 않은 건, 오직 생존만을 염두에 두고 도망쳤기 때문이다.
천마는 그 과정에서 종리세가의 비고를 찾아냈다.
종리세가의 핵심 무공이 담긴 비급과 값어치가 높은 보물을 모아놓은 비고였다.
그렇게 탈취한 종리세가의 비급을 통해 그들의 무공을 속속들이 파헤쳤다.
당연히 직접 한 게 아니라 몇몇 장로급 부하들에게 맡겼다. 천마는 그저 결과만 받았을 뿐이다.
어쨌든 그러니 지금 저기서 기세를 피워 올리는 종리세가 무사들이 얼마나 가소롭겠는가.
벽태산이 이놈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종리세가 무사들 사이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네가 벽태산이냐?”
앞으로 나선 사내, 종리웅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벽태산을 노려봤다.
벽태산은 이건 또 웬 병신 같은 놈이야, 하는 시선으로 종리웅을 쳐다봤다.
종리웅은 벽태산이 얼른 대답하지 않자 눈살을 찌푸렸다.
“내 말이 안 들려? 아니면 감히 내 말을 무시하는 건가?”
그 말을 신호로 종리세가 무사들이 조금씩 움직여 벽태산 일행을 넓게 포위하듯 둘러쌌다.
그리고 당장에라도 검을 뽑을 것처럼 기세를 날카롭게 벼렸다.
그 노골적인 태도에 벽태산 일행의 표정이 확 굳었다.
담담함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벽태산뿐이었다.
하지만 종리웅은 벽태산의 담담함을 얼어붙은 거라고 판단했다.
종리웅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어때? 나랑 둘이서 얘기 좀 할까?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단둘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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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만
종리웅은 은은한 투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는 확신했다. 벽태산이 자신에게 겁먹었다고.
벽태산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둘이서만 가는 거지? 아무도 안 따라오고?”
종리웅이 씨익 웃었다.
“왜? 혼자 가려니까 무서워? 정 무서우면 다 같이 가도 되고.”
벽태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람 많으면 번거롭기나 하지.”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빙긋 웃으며 종리웅을 쳐다봤다.
그동안 벽태산을 겪어 본 천경완과 유서연은 저 미소에 담긴 무서움을 알기에 한껏 긴장해서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경추황과 갈진협이 보기에는 벽태산이 용기를 쥐어짜서 억지로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이 상황을 중재하려고 막 나서려는 찰나, 천경완이 벽태산의 귓가에 조용히 말했다.
“공자님, 죽이시면 안 됩니다.”
아주 조용히 소리 죽여 말했지만, 근처에 있던 경추황과 갈진협은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놀랍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잠시 멍하니 천경완을 바라봤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종리세가 무사들 쪽을 바라봤다.
방금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종리웅 외에 없는 모양이었다.
종리웅만 어이없는 표정으로 천경완을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야, 내가 바보 병신으로 보여?”
“아닙니다.”
천경완은 그렇게 대답하며 슬쩍 물러났다. 안심한 표정이었다.
경추황과 갈진협은 혼란스러운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정말 저 작은 공자한테 뭔가 있는 건가? 농담이라기에는 너무 진지한데?’
천추신의가 몸을 의탁했다는 것도 그렇고 지금 상황도 그렇고 왠지 좀 이상했다.
경추황과 갈진협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벽태산이 종리웅에게 턱짓을 했다.
“먼저 가지?”
“하, 이 버릇없는 새끼를 이 형님이 좀 교육시켜 줘야겠구나. 따라와라. 조용한 곳이 있으니까.”
종리웅은 마치 연가장이 자기 집이라도 되는 양 성큼성큼 걸어갔다.
벽태산은 그 뒤를 따라가려다가 천경완과 유서연을 쳐다봤다.
“혹시 시비라도 걸면 괜히 머뭇거리다 당하지 말고 확실하게 박살을 내.”
벽태산의 말에 좌중의 분위기가 확 끓어올랐다.
특히 종리세가 무사들의 반응이 볼 만했다. 그들은 모욕을 당했다고 여겼는지 거칠기 짝이 없는 투기를 마구 쏟아냈다.
천경완은 황당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왜 굳이 그런 말을 해서 분위기를 이 지경으로 만든단 말인가.
유서연 역시 황당한 건 마찬가지였다.
“공자님. 설마 일부러 싸움 붙이시려는 건 아니죠?”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죽이지는 마. 나도 노력할 테니까.”
그 말을 남기고 휘적휘적 떠나가는 벽태산의 뒷모습을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봤다.
종리세가 무사들은 죽일 듯 노려봤고, 천경완과 유서연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으며, 경추황과 갈진협은 혼란이 가득한 눈빛을 했다.
그리고 천추신의는 근처에 있는 적당한 돌에 걸터앉았다.
“무슨 일이 있든 날 건드리지는 않을 거라 믿겠소이다.”
다들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관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굳이 천하에서 손꼽히는 의원과 벌써부터 척을 질 이유가 없었으니까.
경추황은 천경완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그의 표정은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대체 벽 공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소. 이건······ 거의 싸우라고 떠미는 꼴인데······.”
어느새 다가온 갈진협도 심각하게 말했다.
“보아하니 종리세가에서도 정예로 골라 보냈소. 경 대협과 내가 각각 두 명 이상 맡기가 어렵소.”
종리세가 무사는 총 열한 명이었다.
그 중 넷을 경추황과 갈진협이 맡아준다고 하면 천경완과 유서연이 나머지 일곱 명을 상대해야 한다.
경추황도 갈진협도 그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두 분께서는 너무 싸울 생각부터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냥 조용히 있으면 저들이 괜히 시비를 걸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천경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종리세가 쪽 무사들의 기세가 훨씬 더 노골적으로 변한 것이다.
“하아.”
유서연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천경완이 그런 유서연을 난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경추황과 갈진협은 두 사람의 태도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