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3)
“아니지. 고작 열한 명인데 단숨에 끝내고 돌아와야지.”
경추황과 갈진협은 두 사람의 대화를 멍하니 바라봤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단 말인가.
“돌아가면 두 배로 빡세게 돌려.”
천추신의가 그 말에 희희낙락했다.
“공자님의 명, 성심성의껏 따르겠습니다. 허허허허!”
천경완과 유서연이 들었다면 경기를 일으켰을 만한 말이 오갔다.
물론 그걸 지켜보는 경추황과 갈진협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는 대화였을 뿐이지만.
* * *
“후우. 솔직히 반신반의했는데······ 정말이었네요.”
유서연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눈으로 옆에 선 천경완을 바라보며 말했다.
천경완은 유서연과 달리 차분한 모습이었다.
“전 공자님을 믿었습니다.”
그건 진심이었다. 그러니 자신 있게 여기까지 종리세가 무사들을 따라온 것이고.
어젯밤, 벽태산이 천경완과 유서연을 불러서 종리세가를 상대하는 법을 알려줬다.
마치 종리세가의 무공을 속속들이 연구해 해체라도 해본 것처럼 절묘한 약점들이었다.
그걸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놀라긴 했어도 그것이 진짜인지 믿기는 어려웠다.
유서연은 그랬다.
반면, 천경완은 벽태산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럼에도 일말의 불안함이 남아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 불안이 사라진 건, 종리세가 무사들을 만났을 때였다.
그들이 서 있는 자세와 내뿜는 기세, 그리고 움직임을 볼 때마다 벽태산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확신이 들었다. 벽태산은 진짜 천재였다.
그리고 그 믿음의 결과가 눈앞에 있었다.
종리세가 무사 열한 명이 바닥에 널브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죽이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운신이 쉽지 않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단전을 박살 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종리세가에 빌미를 줄 뿐이니까.
“그나저나······ 이제 어쩌죠? 이걸 믿어줄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차라리 경 대협, 갈 대협과 함께 올 걸 그랬어요.”
그랬으면 두 사람이 증인이 되어 주었을 테니까.
유서연이 그런 아쉬움을 담아 천경완을 바라봤다. 그 두 사람이 오지 못하게 말린 것이 바로 천경완이었으니까.
하지만 천경완의 대답은 그녀의 머릿속을 흔들어 버렸다.
“공자님의 지시였습니다.”
“예?”
유서연은 멍하니 천경완을 바라봤다.
“대체 왜······.”
“그 두 사람을 믿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유서연의 표정이 확 굳었다. 벽태산이 괜히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
천경완은 그런 유서연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고작 이런 걸로는 별 일 없을 겁니다.”
유서연은 천경완의 말을 듣고는 바닥에 널브러진 종리세가 무사들을 내려다봤다.
“하긴······ 정말 아무도 안 믿겠네요. 저들도 나름 정예라고 했으니.”
종리세가의 정예무사 열한 명을 고작 둘이서 상대해 저 지경을 만들었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아마 당한 저들도 못 믿고 있을 것이다.
“돌아가시죠. 공자님이 기다리실 겁니다.”
유서연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공자님······ 괜찮으시겠죠?”
“죽이지는 않는다 하셨으니 괜찮을 겁니다.”
그걸 물어본 게 아니었지만, 생각해보니 벽태산을 걱정한다는 것도 왠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그냥 헛웃음만 한 번 짓고 넘어갔다.
* * *
저녁이 되어 연가장의 식당에 모두가 모였다.
천경완과 유서연은 다른 무사들이 있는 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계속 벽태산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까 싸움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벽태산이 한 말 때문이었다.
‘수련이 부족해.’
그 말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함께 있던 천추신의를 바라봤는데, 천추신의의 얼굴에 떠오른 환한 미소가 아직도 지워지질 않았다.
이제 죽었구나 싶은 생각에 요리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두 사람의 앞에 종리세가 무사들이 쭉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요리만 먹어치웠다.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진짜 분위기가 바닥인 곳은 연가장주와 연하린이 있는 자리였다.
그곳에는 연가장의 손님이라 할 수 있는 벽태산과 종리웅, 그리고 천추신의가 함께 있었다.
연하린의 시선은 시종일관 벽태산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것이 불편할 법도 한데, 종리웅은 별다른 반응도 없이 묵묵히 식사에 열중했다.
사실 그동안 종리웅이 연가장에 며칠 머물면서 워낙 개차반 같은 모습을 많이 보여줬는지라 지금 모습은 좀 놀라웠다.
그래서 그런지 근처에 자리 잡고 식사 중인 연가장의 주요 인물들이 계속 종리웅과 벽태산을 살펴봤다.
“오늘 두 사람이 따로 만났다고 들었네만······.”
연가장주의 말에 연하린이 깜짝 놀랐다.
“그게 정말인가요? 괜찮으세요?”
연하린이 눈을 크게 뜨고 벽태산을 바라보며 물었다.
벽태산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지금 나한테 물어본 거야?”
연하린이 걱정스런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누구한테 물어보겠어요?”
벽태산이 피식 웃고는 종리웅 쪽을 보며 말했다.
“진지한 얘기를 좀 나눴지. 대화에 혼을 담았다고 할까?”
“예? 무슨 얘기를 하셨기에······.”
연하린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벽태산이 종리웅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 기대됐다.
왠지 알 것도 같았다. 그녀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벽태산을 빤히 바라봤다.
벽태산이 종리웅에게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 얘기를 좀 나눴지. 안 그래?”
벽태산의 물음에 종리웅이 몸을 움찔 떨었다. 그리고 조용히 대답했다.
“그랬습니다.”
“대화를 나누는데, 눈을 보고 얘기하는 게 예의 아닌가?”
종리웅이 또 한 차례 몸을 움찔 떨더니 천천히 시선을 들어 벽태산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순간, 종리웅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마치 혼백이 뒤틀리는 충격이 찾아왔다.
그리고 갑자기 지독한 냄새가 쫙 풍겼다.
종리웅이 똥오줌을 지린 것이다.
그 처참한 광경을 그곳에 있던 모두가 확인했다.
“이, 이게 무슨······!”
연하린이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후다닥 거리를 뒀다.
안 그래도 종리웅과 가까이 있었는데, 냄새가 어찌나 지독한지 그 자리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경악한 눈으로 종리웅을 쳐다봤다.
딱 한 명, 벽태산을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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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나만
종리세가의 가주 종리천은 분노 가득한 눈으로 서탁을 내리쳤다.
꽝!
서탁이 쪼개지다 못해 아예 박살이 나 버렸다.
“대체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앞에 앉은 중년인이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이래서야 내가 어찌 믿고 맡기겠나!”
종리천의 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중년인, 원문광이 고개를 조아렸다.
일단 지금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었다.
“후우. 그래서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끝났나?”
“일부만 확인했습니다.”
“그거라도 보고해.”
“먼저 세가의 무사들이 전원 부상을 입었는데, 그들 말로는 천경완과 유서연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합니다.”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그게 말이 되나?”
“천경완과 유서연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고수라고 합니다.”
“고작 둘이서 우리 애들 열한 명을 압도할 정도로?”
“예. 이건 직접 겪은 자들의 보고입니다.”
“다른 수작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은? 예를 들어 연가장에서 미량의 독을 먹였다거나.”
“그 부분도 확인해봤습니다만, 아직까지는 의심할 만한 사항이 없습니다.”
“분명히 뭔가 있어. 계속 조사해. 막내가 당한 것도 석연치 않고.”
“예. 저도 그것이 이상해서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생각하기에 종리웅이 벽태산에게 당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한데 종리웅에게는 아무리 물어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않으니 그 주변을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종리웅이 벽태산과 단둘이 만났다는 점이었다.
둘이 만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아낼 수가 없었다.
“막내 상태는 좀 어떻던가?”
종리천의 물음에 원문광이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의기소침합니다. 말도 잘 안 하고 밖에 나가지도 않습니다.”
“그놈 좋아하는 거라도 해보지 그랬어?”
종리웅은 여자를 굉장히 좋아했다. 종리천도 아들들이 여색을 밝히는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여색을 밝히든 기벽이 있든 자기 할 일만 확실히 하면 문제 삼지 않았다.
종리웅은 여색을 밝히고, 가끔 나쁜 짓을 몰래 하지만, 무공수련이나 공부를 소홀히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기루에 데려갔습니다만······ 술만 잔뜩 마시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종리천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놈이 기루에 가서 술만 먹고 왔다고? 애 하나 잡고 온 게 아니라?”
종리웅이 일으키는 문제의 절반 정도가 기루에서 기녀를 너무 함부로 대해서 벌어졌다.
물론 종리세가의 위세에 눌려 기루에서도 쉬쉬하면서 넘어가기 일쑤였고.
종리세가에서 한 일은 그로인해 소문이 퍼지는 걸 막는 정도였다.
“술에 취해서 뭔가 얘기를 하지는 않던가?”
원문광이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더 말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또 무슨 문제가 있나?”
“아무래도 무공 쪽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뭐? 무공에 문제가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제가 간 김에 수련을 좀 봐줬는데······ 초식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내공의 흐름도 좀 이상했습니다.”
종리천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몸에 이상이 있어서 그런 건가?”
“아무래도······ 정신적 문제 같습니다. 아예 초식 자체를 잊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문제입니다.”
“허! 똥을 지린 것도 모자라 그걸 극복하지 못하고 머저리가 되었다?”
종리천이 이를 갈며 원문광을 노려봤다.
“분명히 누군가 개입했어. 그놈을 찾아내. 무슨 수를 써서든.”
“예.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원문광이 결연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단서가 없는데 어떻게 범인을 찾아낸단 말인가.
‘할 수 없지. 연가장 주변을 낱낱이 파헤치는 수밖에.’
연가장이 이번 일에 개입되었다고 가정하고 탐문을 해볼 계획이었다.
“그건 그렇고······ 금벽상단 쪽 일은 잘 되어가나?”
“생각보다 천금련의 역량이 제법입니다.”
“그래? 잘 됐군. 천금련 뒤에 아무도 없는 것 확인했지?”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좋아. 잘 협조해서 이번 기회에 우리도 숨통을 좀 틔워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빡빡하게 살 수는 없잖아. 안 그런가?”
“잘 될 겁니다. 너무 심려 마십시오.”
종리천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우. 그 미친 천마 때문에 이 무슨 고생인지, 원······.”
원문광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요즘 마교 쪽 소식을 살펴보면 그 천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합니다. 그동안 그렇게 설쳤으니 천벌을 받는 거 아니겠습니까?”
종리천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천마를 그렇게 단순하게 여기면 안 돼. 그놈은 상식 밖에 있어. 그냥 피하는 게 상책이야. 후우. 아버지 때문에 이 무슨······.”
종리천은 예전 천마가 종리세가에 쳐들어왔을 때,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잠깐 지켜봤었다.
당시의 가주는 종리천의 아버지였고, 천마를 기습하는 데 발을 걸친 것도 아버지의 결정이었다.
종리천은 지금도 그런 결정을 내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당시 천마가 보여주었던 그 가공할 신위가 여전히 뇌리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그건 항거할 수 없는 지독한 공포였다.
“아무튼 잘 살펴서 이번 일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돼. 그래야 예전의 성세를 되찾을 수 있어.”
그리고 다시 과거의 찬란함을 되찾아야 그동안 종리세가를 무시하던 놈들에게 한 방 제대로 먹여줄 수 있다.
종리천의 눈빛이 음험하게 번득였다.
* * *
“공자님, 종리세가에서 새로운 자들이 왔습니다.”
천경완의 보고에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되는 법이지. 그래서, 맞은 거 복수하고 싶대?”
물론 맞은 사람은 종리세가 무사들이다.
종리웅에게는 누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상당한 고수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고수?”
“예. 제가 감히 엄두도 내기 어려울 정도의 고수가 두 명 있었습니다.”
“그런 것도 알아보고 제법인데?”
“일부러 자신을 드러내고 있어서 알아보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벽태산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예전에 천마신교에도 그런 놈들이 종종 있었다. 알아서 기라고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놈들이 천마인 자신에게 걸리면 반쯤 죽다 살아나곤 했다.
실력은 실전에서 과시해야지 평소에 그러고 다니면 등 뒤에서 칼 맞는 법이다.
실제로 그놈들을 응징할 때 등 뒤에서 기습해서 일단 쓰러뜨리고 잘못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때까지 쥐어 팼다.
“차라리 잘 됐어. 얼른 정리하고 돌아가야지. 해보고 싶은 것도 있고.”
벽태산은 이번에 종리웅을 응징할 때 썼던 방법을 떠올렸다.
혼백을 반쯤 뽑아서 살살 태우니 겉에 붙은 부스러기들만 빨아들일 수 있었다.
종리웅의 원래 혼백이 아예 안 섞인 건 아니었지만, 예전에 향화루에서 잡아온 놈의 혼백을 태울 때보다 훨씬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