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64)
당장 잡아도 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혹시 다른 세작들과 접촉할지도 모르고, 상급자에게 방금 한 일을 보고할지도 모르니까.
나무를 기울이는 것이 아마 진법을 발동시키는 열쇠였을 것이다.
이곳에 설치된 진법은 정신과 혼백에 작용한다고 했다.
그런 위험한 진법의 영향권 내에서 계속 있을 생각은 아닐 테니, 아마 기회를 봐서 동료들과 조용히 빠져나갈 공산이 컸다.
그러니 동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신호를 보낼 것이 거의 확실했다.
장일독의 번득이는 눈빛이 비각 요원, 아니, 무명의 세작을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 신호를 보내는 순간을 잡아냈다.
세작이 어딘가를 향해 손짓을 하는 걸 확인했다. 그 손짓의 방향에 있던 놈도 확인했고.
아마 저런 식으로 연락망이 구축되어 있을 것이다.
장일독은 즉시 신호를 보낸 세작을 제압했다.
조용히 뒤에 붙어 마혈과 아혈을 막았다.
어느새 따라온 하오문도가 능숙하게 그놈을 줄로 묶은 다음 어딘가로 끌고 갔다.
그리고 장일독은 그놈에게 신호를 받은 놈을 다음 목표로 찍고 움직였다.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찾아내 무명의 세작들을 대거 잡아낼 수 있었다.
그런 일이 동시에 세 군데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진법을 발동하는 열쇠가 세 개 있었고, 그 셋을 담당하는 자들이 각각 한 명씩 있었다.
월영단은 그놈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싹 잡아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상당히 많은 세작을 걸러낼 수 있었다.
그 세작들은 전부 비각의 요원들이었다.
끝
천무련주의 개인 연무장에는 아무나 함부로 드나들 수 없었다.
그렇기에 외부에 보이기 곤란한 일을 은밀히 처리하기 좋은 장소였다.
그 연무장에 지금 수십 명의 사내들이 꽁꽁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사마위홍은 그걸 보며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에 무릎 꿇은 자들은 전부 무명의 세작이었다.
게다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비각 소속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쪽으로 그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하오문도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사마위홍은 하오문도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하오문도들이 나서서 무릎 꿇은 비각 요원들의 아혈을 풀어주었다.
“련주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왜 저희를······!”
사마위홍은 그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는 듯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후우.”
사마위홍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하필이면 비각이란 말인가.”
비각 요원들은 그 말을 들으며 사마위홍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자 금세 알 수 있었다. 사마위홍은 의심 때문에 자신들을 여기로 잡아온 것이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했다는 것을.
“비각주도 자네들이 이러는 거 알고 있나?”
다들 입을 꾹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의 표정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질문을 받았는데도 눈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확실히 비각 요원다웠다.
사마위홍은 비각 요원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비각 요원에 대한 인적 정보는 다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전부 외우지는 않았다. 인적정보와 외모를 맞춰보지도 않았고.
그걸 전부 알고 있는 건 비각주밖에 없었다.
그런 사마위홍에게 하오문도 한 명이 다가가 문서를 내밀었다.
하오문도가 내미는 문서를 확인한 사마위홍의 눈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그는 하오문도와 문서를 번갈아 바라봤다.
놀랄 만했다. 이 문서는 이곳에 있는 비각 요원들의 인적정보였으니까.
앉은 순서대로 정보가 나열되어 있었다.
각각의 이름과 출신, 무공수위 정도가 전부였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출신이······ 정말 제각각이로군.”
이걸 보니 비각주를 더더욱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비각의 요원들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비각주가 직접 뽑았다. 천무련에 발을 걸치는 모든 세력을 돌아다니면서 말이다.
한데 그 중에 이렇게나 많은 세작이 있다니.
사마위홍의 시선이 쭉 늘어서 있는 하오문도들에게 닿았다.
새삼 그동안 하오문에 대해 얼마나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오늘 벌어진 일을 보니 개개인의 실력은 어떨지 몰라도 정보 쪽으로는 하오문이 비각보다 한 수, 아니, 몇 수는 위였다.
애초에 비각 아래에 하오문을 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었다.
아무튼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비각을 없애고 하오문, 그러니까 보천각을 중심으로 정보조직을 개편하기로 결심했다.
아마 별다른 반발은 없을 것이다. 비각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사마위홍은 비각 요원들을 슥 둘러보고는 물었다.
“대체 왜 그랬나?”
비각의 요원 하나가 차분히 대답했다.
“저는 련주님께서 저희에게 왜 이러시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오해를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이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사마위홍은 코웃음을 쳤다.
“오해라······. 뻔뻔하기 짝이 없군. 그나저나 자네들은 진법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놓은 건가?”
“무슨 진법을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지하 깊은 곳에 마련해 놓은, 정신과 혼백을 건드리는 진법 말일세.”
그 말에 비각 요원들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원래의 눈빛을 되찾았다.
하지만 사마위홍은 그 변화를 분명히 확인했다.
그런 사마위홍에게 하오문도 한 명이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사마위홍이 빙긋 웃으며 비각 요원들을 바라봤다.
“비각주가 이리로 오고 있다는군.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겠어. 자네들은 그 전에 뭔가 할 말이 없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억울한 표정으로 사마위홍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내 비각주가 도착했다.
그는 한껏 굳은 표정으로 연무장에 들어와 꽁꽁 묶인 채 무릎 꿇은 비각 요원들을 바라봤다.
비각주의 눈에 섬뜩한 빛이 맺혔다.
“련주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설마······ 보천각주를 제 위에 올리려고 판을 짜신 겁니까?”
사마위홍은 담담한 눈으로 비각주를 바라봤다.
“비각의 모든 요원들은 비각주가 뽑지 않았소?”
“예, 맞습니다. 제가 가리고 가려서 뽑은 인재들입니다.”
사마위홍이 비각 요원들을 쳐다봤다.
“가리고 가린 것이 저자들이오?”
“말씀이 너무 심하십니다.”
사마위홍이 곁에 있던 하오문도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하오문도가 나서서 비각 요원 중 한 명을 가리켰다.
“이자가 내원에 있던 나무 하나를 힘으로 기울였습니다. 제가 그걸 봤습니다.”
비각주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나무 하나 기울였다고 이 난리를 피운 겁니까?”
하오문도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곳을 조사했습니다. 진법을 발동시키는 장치더군요.”
비각주의 표정이 확 굳었다. 설마 그곳을 그렇게까지 깊이 조사할 줄은 몰랐다. 아니, 조사하더라도 그걸 이렇게 명확히 진법과 연결시킬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하오문도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비각 요원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들의 눈에 놀라움이 어렸다. 그리고 차츰 체념이 스며들었다.
모든 설명이 끝나자, 사마위홍은 비각주를 바라봤다.
“비각주, 만일 당신이 나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겠소?”
비각주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사마위홍을 바라봤다.
“련주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라도 의심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믿어 주십시오. 전 결백합니다.”
“허, 당황하는 연기가 제법 그럴듯하오.”
비각주의 표정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련주께서는 답을 정해놓고 거기에 날 끼워 맞추시려는 것 같습니다. 이거 굉장히 실망스럽군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 세력의 수장은 절대 그래선 안 됩니다.”
사마위홍이 빙긋 웃었다.
“그래서 내가 틀렸소?”
비각주가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닙니다. 련주님이 제대로 맞추셨습니다. 이거 시작도 못해보고 일이 이렇게 되어서 솔직히 좀 많이 당황스럽습니다.”
비각주가 너무나 당당히 자신의 정체를 밝히자, 사마위홍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설마······ 내가 생각하는 게 맞소?”
“아마 맞을 겁니다.”
“날 살인멸구 하겠다고? 비각주 혼자서 말이오?”
비각주가 빙긋 웃었다.
“제가 왜 혼자입니까.”
그 말이 끝난 순간, 꽁꽁 묶여 있던 비각 요원들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온몸에 힘을 꽉 주었다.
투두두둑!
놀랍게도 몸을 묶고 있던 줄이 전부 가닥가닥 끊어져 바닥에 후두둑 쏟아졌다.
그들의 몸에서 음습한 기운이 뭉클뭉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무거운 기세가 쫙 뻗어 나왔다.
사마위홍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비각의 요원들이 갑자기 몇 배나 강해졌다.
뿜어내는 기세나 기운이 급격히 올라갔다. 저들 중에서 다섯만 자신에게 덤벼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혈이 제압되어 있는데도 다들 저렇게 움직이는 걸 보면 무언가의 이유로 막힌 혈도도 뚫렸다는 뜻이다.
“원래 살인멸구가 가장 간단한 해법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다행입니다. 아직 개파대전 도중이니 새 련주를 선출하기도 편할 테니 말입니다.”
이곳은 련주의 연무장, 웬만한 소란이 벌어지더라도 함부로 들어올 사람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 들어와 있던 하오문도들이었는데, 어느새 새로 등장한 자들이 연무장을 빙 둘러 서 있었다.
그들 역시 비각의 요원들이었다.
“아예 비각이 통째로 무명이었군.”
비각주가 빙긋 웃었다.
“다섯 명을 제외하면 그렇습니다. 가끔 희생할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 들인 자들이지요. 실력은 제법 괜찮습니다.”
사마위홍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일단 닥친 일부터 해결해야 한다.
작정하고 도망치면 좀 다치기야 하겠지만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벽태산과의 대련을 통해 실력이 급격히 올라갔기에 한 번 해볼 만했다.
“설마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신 겁니까? 절 너무 무르게 봤군요.”
비각주는 그동안 감추고 있던 기세를 마음껏 뿜어냈다.
콰아아아아!
거친 기운이 연무장 전체를 감싸고 몇 차례 회오리쳤다.
사마위홍이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비각주가 이렇게나 힘을 감추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저 정도면 지금의 자신도 장담할 수 없는 고수 아닌가.
비각주는 사마위홍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의 수하들을 바라봤다.
“후우. 인력을 보충하려면 당분간 골치 좀 썩겠군.”
저들이 갑자기 강해진 것은 증혼단을 먹었기 때문이다.
어금니를 뽑은 뒤, 그 자리에 어금니와 똑같이 생긴 가짜 이를 박았다. 그 가짜 이 안에 증혼단이 들어 있었다.
그러니 누군가 입 안을 조사한다 해도 결코 들킬 염려가 없었다.
아혈이 풀린 이상, 비각 요원들이 증혼단을 먹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아무튼 증혼단은 일단 쓰면 되돌릴 수 없다.
저들의 수명은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그러니 대체할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
어쨌든 그건 나중에 처리할 문제다.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은가.
비각주는 사마위홍을 노려봤다.
“자, 이제 슬슬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흔적도 꾸며야 하고 버림패도 만들어야 하고,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모자라 오래 어울려드리지 못하는 점, 미리 사과드리겠습니다.”
비각주는 사마위홍을 죽이는 일을 여반장처럼 여겼다.
사마위홍이 생각하기에도 충분히 그럴 만했다. 하지만 자신도 호락호락 당해주지는 않으리라.
천천히 검을 뽑았다.
그리고 비각주를 향해 검을 겨눴다.
비각주의 뒤쪽으로 하오문도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 저들은 오늘 다 죽을 것이다.
‘응?’
한데 하오문도들의 표정이 좀 묘했다. 너무 담담했다.
죽음을 초월해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이 정도는 위기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적어도 사마위홍이 보기에는 그랬다.
그걸 보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 들끓던 감정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뭐가 어떻게 되든 죽진 않을 거란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사마위홍은 오히려 자신이 먼저 달려들었다.
쩌저저저저정!
비각주가 놀란 눈으로 사마위홍을 바라보며 정신없이 검을 막았다.
“놀랍습니다!”
비각주는 그렇게 외쳤다. 정말로 놀라웠다. 사마위홍의 실력이 자신이 알던 것과는 전혀 달랐으니까.
최소한 자신이 알던 사마위홍보다 한 수는 위였다.
처음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해 정신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봐야 자신에게는 안 된다.
비각주는 하나하나 잘못 꿰어진 상황을 되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세 사마위홍이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이제 몇 수면 사마위홍의 목을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무언가가 연무장 안으로 휙휙 날아오기 시작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시커먼 구슬이었다.
“화탄?”
비각주가 그걸 보며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쉬쉬쉬쉬쉭!
수십 가닥의 검기가 허공으로 날아가 정체불명의 검은 구슬들을 쩍쩍 갈라 버렸다.
검은 구슬은 반으로 쪼개지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최소한 화탄은 아니었다.
하지만 떨어진 이후,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바닥에 쫙 깔렸다.
검은 구슬이 떨어진 위치는 절묘하게도 비각 요원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러자 비각 요원들의 몸에 혈관이 굵게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그들은 괴성을 질렀다.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기운이 몇 배나 더 커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비각주의 표정이 확 굳었다.
담장 위에서 늙수그레하면서도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캬, 성능 좋고. 형님, 봤소? 약효 퍼지는 거랑 연기 퍼지는 속도 빨라진 거. 내가 저걸 개량하느라 며칠 밤을 샜다는 거 아니오.”
“그래, 네 똥 굵다. 그나저나 아직 남은 놈들이 제법 있는데? 우리 애들 다치기 전에 얼른얼른 정리하자. 공자님 오셨는데 저놈들 저렇게 서 있으면 큰일 아니냐.”
일침괴의 말에 천추신의가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두 사람은 장내로 훌쩍 뛰어들어 남은 비각 요원들, 그러니까 증혼단을 먹지 않은 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비각 요원들은 고작 두 명의 노인 때문에 도망갈 생각이 없었다.
양 측이 거세게 충돌했다.
꽈과과광!
비각주는 그 광경을 보면서 입을 쩍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