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81)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무한에 있는 정보원들이 무사하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젠장. 뭐 이런 곳이 다 있어?’
무한 같은 도시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정보원을 갈아치우다니.
이건 말 그대로 정보원을 찾아오는 놈들을 위한 함정 아닌가.
순간, 혁련국은 소름이 오싹 돋았다.
‘그럼 그동안 무한에서 온 정보들 중에 허위정보가 끼어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판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한다.
계단을 내려가는 혁련국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 * *
사마위홍의 눈에서 번쩍 하고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의 앞에는 군사인 우장번이 있었다.
“정말인가? 돌아간다고 했다는 것이?”
우장번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지금 짐을 싸고 있습니다.”
사실 우장번은 지금 상황이 좀 마음에 안 들었다.
벽태산 일행이 떠난다는 사실을 아직도 천무련주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는가.
가기 전에 미리 얘기를 해줘야 할 것 아닌가.
한데 벽태산 일행은 일말의 언질도 없이 그저 짐부터 싸기 시작했다.
별채에서 일하는 일꾼과 시비들이 얼른 달려와 알려주지 않았다면 아마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몰랐을지 모른다.
우장번은 사마위홍을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한데 사마위홍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뭐라고 딱히 표현할 수는 없는데, 굉장히 복잡해 보였다.
“련주님, 괜찮으십니까?”
“응? 괜찮네. 당연히 괜찮지. 안 괜찮을 게 뭐 있겠나.”
“그럼 다행이지만······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혹여 건강이 상하신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최근 많이 무리하지 않으셨습니까.”
사마위홍은 그 말에 최근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이 머릿속을 쫙 스쳐 지나갔다.
아침부터 이어지는 격무, 거기에 수하들과 함께 하는 무공수련, 밤늦은 시각 찾아오는 벽태산에게 괴롭힘 당하는 시간까지.
매일이 고통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고통이 자신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간다는 말이지.”
사마위홍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아도 되니 기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과연 무명이 또 쳐들어왔을 때, 자신이 그들을 막아낼 수 있을까?
죽을 정도로 노력했지만, 만일 그때 나타났던 그 노인 같은 고수가 두 명 이상 나타난다면, 아마 자신은 죽은 목숨이리라.
무명의 공격을 막아낸다고 해도 문제다.
아마 천무련은 무명의 공세를 한 번만 막아내도 전력이 넝마처럼 변해버릴 것이다.
그 뒤는 어찌 하겠는가.
사마위홍이 속으로 탄식을 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 열렸는데도 마음 놓고 기뻐하지도 못하다니. 내 신세가 이리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럴 줄 알았다면 하후세가주에게 련주 자리를 양보할 걸 그랬다.
물론 그 생각은 찰나의 순간 잠깐 들어왔다가 후다닥 나가 버렸다.
어떻게 얻은 자리인데 이걸 남에게 줄 생각을 한단 말인가. 절대 놓지 않으리라.
“아무튼 떠난다니 가서 얼굴을 비춰야겠군.”
사마위홍의 말에 우장번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예? 련주님께서 직접 가신단 말씀이십니까?”
“그럼 누가 가나?”
“아니, 제 말은······ 그쪽에서 련주님께 인사를 드리러 와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사마위홍은 초인적인 인내로 표정 관리를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기겁을 했다.
‘이 미친놈이 누구 죽는 꼴을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사마위홍은 담담하면서도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짐을 싸기도 바쁠 텐데 굳이 사람을 오라 가라 해서 뭐 하겠는가. 산책 삼아 내가 직접 다녀오는 편이 낫지.”
우장번의 눈빛이 대번에 존경과 감격으로 물들었다.
“역시 련주님이십니다.”
사마위홍은 우장번의 이런 점이 좋았다. 하지만 좋은 걸 겉으로 드러내선 안 된다.
“크흠. 그럼 나중에 또 보세.”
사마위홍은 얼른 별채 쪽으로 향했다.
벽태산이 가는 건 좋지만,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것도 없이 무작정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줄 수는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 사마위홍의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졌다.
끝
사마위홍이 별채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벽태산 일행이 떠날 준비를 끝낸 뒤였다.
‘다행히 아직 안 떠났구나.’
아마 자신이 오지 않았다면 보지도 않고 그냥 가버렸을 것이다.
별채에 들어와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대충 짐작이 갔다.
사마위홍은 고개를 휙휙 돌려 벽태산부터 찾았다.
일단 벽태산과 만나 얘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았다.
‘저기 있군.’
벽태산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에 있었다.
그곳에는 천추신의와 일침괴도 있었고, 초서란도 있었다. 그리고 의선의 제자라던 자도 있었다.
벽태산 휘하 의원들을 모두 모아둔 듯한 광경이었다.
한데 그 중 못 보던 사람이 한 명 보였다. 늙은 노인이었는데, 다들 그를 어려워했다. 마치 굉장히 높은 사람을 대하듯 했다.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
척 보기에도 나이가 제법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벽태산은 변함이 없었다. 노인이 몇 살이건, 그가 누구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원래 하던 대로 하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저 노인이 벽태산을 더 어려워하는 것 같지 않은가.
‘뭐, 그게 당연하긴 하지.’
사마위홍은 어느새 벽태산을 윗사람으로 여기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워졌다.
그는 벽태산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한데 다가가면서 보니 저 노인 어딘가 낯이 익었다.
사마위홍의 걸음이 조금씩 늦춰졌다. 자신도 모르게 그리 된 것이다.
“어······ 설마, 의선?”
자신의 기억 속 얼굴과는 좀 달랐지만, 의선임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는 의선의 제자도 있었다. 하면 제자를 만나러 여기까지 온 것인가?
사마위홍은 호기심과 궁금증을 억누르며 다시 걸음을 빨리했다.
어느새 그들 앞에 도착한 사마위홍은 일단 벽태산에게 먼저 말했다.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가야지.”
여기 와서 얻을 것도 다 얻었고, 할 일도 다 했다. 그러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아쉽습니다.”
사마위홍의 말에 벽태산이 그를 보며 말했다.
“그래? 그럼 가지 말까?”
사마위홍은 그대로 몸이 굳었다. 즉시 그러시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 말이 목구멍에 걸려서 더 이상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마치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사마위홍은 내공을 돌려 굳은 몸을 부드럽게 풀었다.
그리고 벽태산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공자님께서 그래 주신다면 정말로 든든할 것 같습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러도록 하마. 어려운 일도 아니고.”
사마위홍은 금이 쩍쩍 갈 것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이 그런 사마위홍을 보며 씨익 웃었다.
“농담이다.”
사마위홍은 막혔던 숨이 팍 터져 나오는 듯했다.
“아······ 그렇군요. 하하하. 재, 재미있었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몇 번 해보지 않았지만, 농담에 대한 내 재능이 제법 괜찮은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벽태산은 그렇게 물으며 기습적으로 천추신의와 일침괴 쪽을 쳐다봤다.
두 의원은 더없이 자연스러운 미소와 함께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누구도 따라 하기 어려운 방식의 농담을 하시니까요.”
천추신의의 말에 일침괴가 진심이 담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두 사람이 정말 저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도 진심이었다.
벽태산의 농담에는 죽음을 코앞에 둔 듯한 살벌함과 처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런 농담을 벽태산이 아니면 감히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사마위홍은 그걸 보며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얘기를 더 하고 있으면 말려들어 사고를 칠 것 같은 두려운 예감이 들어서였다.
“의선 어르신,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마위홍이 의선을 보며 정중히 인사했다.
의선은 고개를 끄덕여 대충 인사를 받아줬다.
“낯익군. 무림맹 출신인가?”
“예. 무림맹에서 총군사를 맡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과분하게도 천무련을 이끄는 중입니다.”
“보아하니 경지가 제법이군. 이대로 정진하면 무림맹주를 넘어서는 것도 머지않아 가능하겠어.”
“과찬이십니다.”
사마위홍은 의선의 말에 정말 기뻤다. 의선도 보통 인물은 아니지 않은가.
그가 그렇다고 했으면 정말 그런 것이다.
사마위홍은 의선을 유심히 살폈다. 왠지 제자 때문에 여기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보아하니 제자인 소청명쪽으로는 거의 관심도 주지 않고 있었다. 의선의 관심은 온통 벽태산 쪽에 몰려 있었다.
‘하, 이젠 하다하다 의선까지 끌어들인 건가? 한데 이게 말이 되나?’
사마위홍이 보기에 의선과 벽태산의 관계가 결코 대등하지 않았다.
모양새는 분명 의선이 벽태산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 분명했다.
한데 벽태산은 천마 아닌가.
세상에 의선이 천마 아래로 들어가다니. 이게 정말 말이 되는 건가?
사마위홍은 그런 의문을 품은 채 의선과 벽태산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런 사마위홍에게 벽태산이 말했다.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느냐.”
“예?”
사마위홍이 화들짝 놀라 벽태산을 바라봤다. 자신이 대체 어떤 눈으로 봤기에 벽태산이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시선이 불순해.”
사마위홍이 기겁하며 손사래를 쳤다.
“절대 아닙니다. 제가 그럴 리 없잖습니까.”
벽태산은 그런 사마위홍을 가만히 보다가 툭 말했다.
“남을 거다.”
“예?”
사마위홍의 눈이 커다래졌다. 어차피 농담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장단을 맞춰줘야 한다.
“놀란 척 하지 마라. 내가 남는다는 얘기가 아니니까.”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의선을 쳐다봤다.
의선이 벽태산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화들짝 놀랐다.
“나? 나 말인가? 나보고 지금 여기 남으라는 건가?”
벽태산은 더 말하지 않았다.
천무련은 향후 무명과 가장 치열하게 싸울 조직이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겉으로 보이는 싸움만으로도 천무련은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물론 벽태산이 걱정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천무련과 무명의 싸움에서 천무련이 너덜너덜해지는 건, 무명이 바라는 상황일 것이다.
그게 싫었다.
뭐가 되었건 무명이 원하는 대로는 절대 해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게 싸움에 임하는 사람의 자세다.
내가 좋은 건 하고, 남이 좋은 건 막는다. 그리고 내가 싫은 건 막고, 남이 싫은 건 무슨 수를 써서든 해야 한다.
그게 벽태산의 싸움이다.
의선이 천무련에 머물러 준다면, 천무련의 전력은 몇 배나 향상되는 효과를 얻는다.
일단 의선의 의술이 더해진 것만으로 천군만마를 얻은 거나 다름없다.
의선의 의술은 말이 의술이지 실제로는 의술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저 손을 대는 것만으로 내상이건 외상이건 단숨에 치료해 버릴 수 있으니까.
물론 그렇게 하다가는 몇 명 치료하지도 못하고 영력이 바닥 날 것이다.
하지만 영력을 살짝 가미하고 의술을 써서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면 하루에 수백 명도 치료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벽태산이 의선을 여기 남기려는 건 치료 때문이 아니었다.
치료야 천무련이 모은 의원들만으로도 사실 충분하다.
의선이 필요한 진짜 이유는 혈령마공을 익힌 무명의 진짜배기 고수들 때문이었다.
벽태산 일행이 없는 상황에서 그 고수들이 여럿 등장한다면, 그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의선뿐일 테니까.
의선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자신이 원하는 건 벽태산과 함께 있으면서 그때 봤던 그것, 그러니까 자신의 영력을 반발 없이 관통한 수법을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한데 자신이 천무련에 남아 벽태산과 헤어지게 되면, 굳이 벽태산에게 합류한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런 의선에게 벽태산이 무언가를 휙 던졌다.
의선은 반사적으로 그것을 받아 확인했다.
“응? 이건 뭔가?”
의선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커다란 옥구슬이었다.
어른 주먹만 한 옥구슬과 벽태산을 번갈아 바라보던 의선의 눈빛에 어느새 경악이 담겼다.
“이, 이건!”
옥에는 영력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 벽태산이 자신의 영력을 담아서 준 것이다.
당연히 보통 영력이 아니었다.
“대체, 대체 이건······!”
의선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이건 그의 상식 안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현상이었다.
옥이 담고 있는 영력의 성질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있었다.
벽태산이 가진 영력과 자신이 가진 영력 사이를 끊임없이 오갔다.
의선은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리고 벽태산은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담담히 말했다.
“그거면 당분간 심심할 일은 없을 거다.”
의선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 한동안 이걸 들여다보느라 밥 먹고 잠자는 것도 잊을 테니까.
“자, 이제 다 해결됐으니 가자.”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 먼저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나머지 일행이 우르르 따라갔다.
사마위홍은 굳이 더 따라갈 생각이 없었기에 얼른 인사를 했다.
“그럼 살펴서 돌아가시길.”
그렇게 하고도 한동안 벽태산의 눈치를 살폈다. 벽태산이 돌아보고 눈이라도 번득이는 순간 얼른 따라붙을 작정이었다.
한데 벽태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별채에서 나가 버렸다. 굳이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을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