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06)
그렇게 노골적으로 일을 벌였는데 몰랐을 거라고 여겼겠는가. 알더라도 대처할 시간이 없을 거라 믿은 것이지.
한데 지금 벌어진 상황은 그저 농락일 뿐이었다.
노인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여전히 그들의 혈령은 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폭발할 거다.”
그 말에 노인들이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잠깐 내 힘으로 쥐고 있을 뿐이야. 손을 놓으면 바로 터진다.”
혈령이 폭발하면 이 노인들의 육체와 혼백이 모조리 소멸되어 버릴 것이다.
그 여파도 엄청날 테고.
아마 아무 대비 없이 여기서 터지면 현천장 자체가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그냥 터졌으면 상관없는데, 벽태산이 강제로 폭발을 막는 바람에 위력이 더 커졌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위력이 점점 더 쌓일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벽태산이 억누르지 못할 정도로 힘이 커질 테고.
물론 그러려면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더러 뭘 어쩌란 말이냐.”
이제 자살도 소용없다. 한 번 끓기 시작한 혈령은 끝을 보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는다.
벽태산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노인들이 둥실 떠오르더니 벽태산을 따라갔다.
벽태산은 노인들이 밖으로 나오자, 하늘을 올려다봤다.
노인들이 벽태산의 시선을 따라 하늘로 쭉쭉 올라갔다. 제법 빠른 속도였다.
그제야 벽태산의 속셈을 알아차린 노인들이 악을 썼다.
한데 아무리 악을 써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니, 소리는 분명히 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지 않았다.
노인들은 한참 동안 소리치고 나서야 그걸 알아차리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벽태산을 보니 두려움이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벽태산이 소리를 차단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하늘 높이 올라간 여섯 노인은 갑자기 혈령이 들끓어 오르는 걸 느끼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한데 그렇게 큰 폭발이 일어났는데도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폭발이 일어났는지조차 몰랐다.
벽태산은 하늘에서 여섯 노인이 완벽하게 소멸하는 걸 확인하고는 고개를 내렸다.
심각한 표정이었다.
“이놈들을 어떻게 찾아내지?”
흰수염 노인의 혼백을 태워 정보를 뽑아냈을 때, 그의 정신과 혼백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의 혼백은 온전치 않았다.
정신이 이상하다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혼백의 일부가 사라져 있었다.
그 사라진 혼백의 일부에 담겨 있던 정보가 바로 무명의 위치인 듯했다.
설마 이 정도로 철저하게 위치를 감출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무명에서도 자신들의 정보가 너무 많이 까발려져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혼백의 일부를 제거하다니, 그러면서도 멀쩡한 정신을 유지해야 하니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아마 무한으로 온 여덟 명의 노인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지극히 짧았을 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아무튼 그로 인해 무명의 위치를 파악하겠다는 계획은 물 건너 가버렸다.
이제 정말 발품을 팔아 천하를 다 뒤져야 할 수도 있었다.
“분명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벽태산은 왠지 그 방법이 조만간 떠오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차피 할 수 없는 것은 얼른 털어내는 게 낫다.
벽태산은 무명의 위치에 대한 건 머릿속에서 일단 치웠다.
그러자 아까 노인들이 하던 짓이 떠올랐다.
혈령을 자극해 터트리는 일 말이다.
벽태산이 그것을 굳이 지켜본 이유는 뭔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자그마한 것 하나를 얻어냈다.
혈령을 자극하고 그것이 끓어 넘치는 과정을 보며 혈령의 약점을 알아낸 것이다.
물론 혈령마공을 익힌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번쯤 해볼 만한 구멍이었다.
“이걸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문제로군.”
벽태산은 굳이 약점 따위 몰라도 상관없다. 그냥 힘으로 찍어 눌러버리면 되니까.
그러니 약점이 필요한 건 벽태산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이 약점을 이용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방법은 하나다.
될 때까지 굴리면 된다.
벽태산은 그것을 익힐 사람이 누가 있을지 생각하며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끝
무림맹주는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로 두 명의 호위무사, 그리고 맹주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파사검 유진학이 따라가고 있었다.
유진학은 시종일관 표정이 굳어 있었다.
“허허. 표정 좀 풀게. 누가 보면 전쟁이라도 하러 가는 줄 알겠어.”
유진학은 흠칫 놀라 맹주를 바라봤다. 어느새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는 맹주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설마 맹주가 돌아볼 줄은 몰랐다.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군.”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건방지게 감히 맹주님을 오라 가라 하다니. 확실히 본때를 보이지 않으면 향후 맹주님께 누가 될 것입니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누가 되고 말고 할 것도 없네. 그냥 가서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오면 되는 일이야. 자네의 안목이 제법 뛰어나니 자네도 사심을 걷고 잘 살펴보게.”
유진학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맹주님께 비하면 제 안목이 제대로 된 안목이겠습니까. 하지만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말과는 달리 유진학은 안목 하나만큼은 천하에서 자신과 견줄 사람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진면목을 감추고 있다고 해도 단숨에 꿰뚫어볼 자신이 있었다.
“일부러 여유 있게 나왔으니 너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면서 가는 게 어떻겠나? 세상 돌아가는 일이 심상치 않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유를 잃으면 오히려 서두르니만 못한 법일세.”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유진학의 대답에 무림맹주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길을 나선 김에 천무련에 들렀다가 무한으로 갈까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아······ 좋은 생각이십니다.”
사실 무림맹이 있는 정주에서 천무련이 있는 낙양에 들렀다가 무한으로 가면 길을 제법 돌아가는 셈이었다.
하지만 유진학은 차마 그러면 일정이 지체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보아하니 그러려고 일부러 이렇게 일찍 출발한 모양이었다.
맹주가 그러고 싶다는데 자신이 어찌 말리겠는가.
게다가 유진학은, 사마위홍이 천무련주가 된 이후, 그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사마위홍이 무림맹에 있을 때는 가끔 만나 술잔도 나누고 했었다. 그러니 오랜만에 사마위홍과 술도 마시고 그간 쌓였던 얘기도 좀 하면 괜찮을 듯했다.
“그럼 그렇게 결정했으니 조금만 서두르세.”
낙양에 들렀다 가려면 지금까지처럼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더구나 거기에서 며칠은 묵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훨씬 더 걸음을 빨리 해야 한다.
무림맹주가 먼저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걷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경공을 펼친 것이다.
맹주의 호위무사들이 즉시 따라서 속도를 높였고, 유진학도 부랴부랴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네 사람은 빠르게 낙양을 향해 달려갔다.
* * *
“수상한 자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보천각주의 보고에 사마위홍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았다.
“수상한 자들?”
“예. 아직 낙양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낙양 인근에 자리를 잡고 대기 중입니다.”
“자리를 잡았다고? 거기서 뭘 하는데 그러나?”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자리만 잡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합니다.”
“또 무명 놈들인가?”
“그런 걸로 추측은 되는데, 뭔가 좀 이상합니다. 너무 대놓고 움직였습니다.”
마치 들키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이. 아니, 오히려 들키기를 바라는 듯이 움직였다.
“함정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셔야 할 듯합니다.”
“보천각에서 확인 가능한 것은 어디까지인가?”
“그들의 위치와 인원 정도입니다.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큽니다.”
너무 대놓고 있어서 은밀히 다가갈 만한 지형지물이 없었다.
그래서 함정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었다.
“함정이라면 어떤 식의 함정일 것 같나?”
“독이나 진법이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진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마위홍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독이나 진법을 이용한 함정이라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었다.
한데 과연 그 짧은 시간에 함정으로 쓸 만한 진법을 설치할 수 있었을까?
‘독은 아니야. 이쪽에는 의선이 있으니까.’
의선이 마음먹고 나서면 독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오만방자하던 독마도 의선이 근처에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부리나케 도망치곤 하지 않았던가.
“가만, 독마?”
사마위홍의 중얼거림에 보천각주가 그를 바라봤다.
“독마는 없을 겁니다. 이쪽에는 의선 어르신이 있으니까요.”
“그렇지. 독마는 없겠지. 그럼 진법이라는 건데······.”
독마가 무명과 손을 잡았다는 증거는 아직 거의 없었다. 무명이 독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보천각주는 조용히 사마위홍의 결정을 기다렸다.
정보는 다 알려줬다. 이제 그걸 토대로 사마위홍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인원을 많이 준비해서 큰 포위망을 구축하도록 하지. 그리고 싸움터를 그쪽에 두지 말고 유인해서 우리가 더 유리한 쪽에서 싸우면 좋겠군.”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인원을 얼마나 동원할까요?”
“저들의 수는 얼마나 되나?”
“정확히 백오십 명입니다.”
“많이도 왔군.”
“하지만 정작 실력이 뛰어난 자는 많지 않은 듯합니다. 스물 정도를 제외하면 어중이떠중이입니다.”
“그놈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함정 외에는 답이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진을 치고 시간을 보내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우리는 오백 명을 준비하지. 수준은 딱히 높을 필요 없으니 하급 무사들을 추려서 보내고, 유인하는 사람만 좀 신경 써서 뽑게.”
“예.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뻔히 무명에서 와서 자리를 잡고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걸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사실 함정이라는 것이 확실하다면 내버려두고 이쪽에서 그걸 받아칠 준비를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방치한 채 시간이 흐르면 천무련의 평판이 떨어진다.
결과가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평판도 중요했다.
특히 천무련처럼 다수의 문파가 모여서 만들어진 세력은 더더욱 그러했다.
평판이 바닥을 치는 순간부터 천무련주의 입지가 사정없이 흔들릴 테니까.
그러니 저 정도가 최선이었다.
사마위홍은 밖으로 나가는 보천각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퍼뜩 떠오르는 게 있어 얼른 말했다.
“그리고 의선 어르신께도 알려드리게.”
보천각주가 멈칫 하고는 돌아서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바로 전해드리겠습니다.”
사마위홍은 그제야 좀 마음이 놓였다. 상황이 어떻든 의선이 나서준다면 대부분 해결이 될 테니까.
그럼에도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출렁거렸다.
사마위홍은 한참동안 보천각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서탁에 쌓인 문서 뭉치를 펼쳤다.
* * *
무림맹주 일행은 워낙 빠른 속도로 달렸기에 출발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낙양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로 천무련으로 가려던 무림맹주는 왠지 요상한 분위기가 느껴져 속도를 줄였다.
“좀 이상하지 않나?”
무림맹주의 질문에 유진학이 주위를 둘러봤다.
“잘 모르겠습니다.”
무림맹주가 한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쪽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 꼭 무언가가 있는 것 같군.”
“저쪽 말입니까? 그럼 가보시겠습니까?”
“아무래도 확인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네. 느낌이 좋지 않으니 다들 각별히 조심하게.”
“예. 알겠습니다.”
“내가 앞장서겠네. 다들 좀 떨어져서 따라오게.”
무림맹주는 그렇게 말하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냥 막무가내로 이동하는 것 같지만 사실 굉장히 섬세하게 확인하면서 걷는 중이었다.
무림맹주의 기감이 거미줄처럼 사방을 장악해 나갔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데 가는 방향으로 제법 먼 곳에 상당히 많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뭔가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이군.”
기감에 걸려드는 자들에게서 제법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무림맹이나 흑련에서 자주 겪었던 기운이었다.
아마 천무련 무사들이 근처에 있는 모양이었다.
“수가 제법 많은데?”
수백 명은 있는 듯했다. 저렇게 많은 무사가 동원되었다는 것은, 그게 걸맞은 일이 있다는 뜻이다.
무림맹주는 조금 더 걸음을 서둘렀다.
이내 천무련 무사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군요.”
유진학이 다가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포위망의 바깥쪽에 있던 천무련 무사들이 무림맹주 일행을 발견하고는 달려왔다,
“잠시 멈춰 주십시오.”
천무련 무사는 이곳은 위험하니 멀리 돌아서 지나가라는 말을 하려고 했다.
한데 그 말을 하려고 보니 자신이 아는 얼굴이 거기 있었다.
“어? 매, 맹주님?”
그는 무림맹 출신 무사였다.
“다행히 날 아는 모양이군. 천무련에 볼일이 있어서 이 근처를 지나다가 무사들이 모여 있기에 와 봤네. 무슨 일인가?”
무사는 즉시 대답했다. 누구 질문이라고 머뭇거리겠는가.
“저 안쪽에 무명에서 나온 자들이 있습니다. 이 근처에 자리를 잡고 뭔가를 하는 것 같아 포위망을 구성하고 상황을 살피는 중입니다.”
“아마 유인해서 밖으로 끌어내려는 모양이군.”
“예. 그렇게 할 예정입니다.”
무림맹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포위망 안쪽 방향을 바라봤다.
“느낌이 정말 안 좋은데······.”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저 안쪽으로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마음 같아서는 포위망을 풀고 다들 물러가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들은 무림맹이 아니라 천무련이다.
이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천무련주나 천무련 내에 있는 이들의 상급자다.
“맹주님, 왜 그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