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RAW novel - Chapter (433)
〈 433화 〉 후회의 호수.(3)
우우웅.
나히의 몸에서 진동이 울린다.
금제의 고리가 제대로 엮였다는 증거였다.
그제야 짚고 있던 손을 떼고서 몸을 일으켰다.
“커헉….”
나히가 거친 숨을 터트린다.
갈비뼈에 금이 간 것은 물론이고, 금제를 시도하며 내기를 거칠게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단한 금제를 걸지는 않았다.
그럴 만한 내기도 없을 뿐더러 구태여 그렇게까지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흐으…흐으….”
힘들다는 듯 연신 흐느끼던 나히는 눈물 맺힌 눈으로 날 쳐다본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뭡니까…?”
그 질문에 픽 웃었다. 너무 자주 듣는 질문이라 질릴 지경이다.
“알아서 뭐 하게.”
이런 질문에 항상 뱉던 대답도 똑같아서 아주 진물이 날 지경이었다.
“…오라버니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그분이 당신을 따르는 거죠?”
“궁금해?”
사박.
한 걸음 다가가니 나히가 움찔하며 몸을 떤다.
딱히 때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직전의 공격이 몸에 남은 모양이었다.
무릎을 숙이고 나히와 시선을 맞췄다.
“좀 참고 있어, 어차피 너도 똑같이 되어야 하니까.”
“…나는 오라버니와 달라요.”
그래, 다르겠지.
“그건 너 알아서 하시구요.”
아마 나히는 갑자기 나타난 당덕에게 여러 번 접근해서 말을 걸었을 것이다.
어쩌면 전음을 보내거나 했을지 모르지만.
어차피 당덕은 대답하지 않았겠지. 아니, ‘못’ 했겠지.
손을 툭툭 털었다.
금제라 해봐야 서로의 일을 눈감아 준다. 라는 것뿐이다만.
일이 잘 풀렸을 경우, 어차피 이 금제 또한 풀어버릴 예정이었다.
‘죽이면 편하긴 하겠는데….’
당덕의 사람인 만큼 질 좋은 인간일 리 없었고.
당문의 암객으로 있다는 것 자체가 손에 피를 많이 묻힌 인물인 만큼, 거리낌은 없다.
하나.
‘나도 눈과 귀가 있으면 편할 테니까.’
당문의 현황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거기에 알맞은 첩자가 있다는 건 나로서도 좋은 일이었다.
만일 들켰을 때 나한테 피해가 없는 상황만 만들면 말이지.
그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나름 자신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말이다.
게다가, 나히는 당덕이 모를 정보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대로 죽이는 건 상당히 아까운 인물이었다.
죽이더라도.
‘아는 건 다 뱉게 만들고 죽여야지.’
그렇게 정리하고 몸을 일으켰다.
“잘 지키고 있어. 어디 갈 생각은 말고.”
“…”
“아, 튈 거면 튀어도 돼.”
어차피 금방 잡힐 것이고.
그 뒤에 벌어질 일이 두렵지 않다면 말이야.
뒷말은 속으로만 했다.
입 밖으로 안 꺼내도 어차피 나히는 알아들은 느낌이지만.
뒤를 돌아 호수로 다가갔다. 거리를 좁힐수록 점차 독기가 느껴진다.
‘음.’
멀다 싶을 때는 잘 안 느껴지던 기운이거늘.
조금 가까워졌다고 이 정도인가.
“…호수에는 왜 들어갈 생각인 거죠?”
“질문할 수 있다고 한 적 없는데.”
“거기에 뭐라도 있는 건가요?”
쓸데없이 자꾸 말을 거는 통에 신경이 쓰인다.
귀찮은 감정을 한껏 담아 살짝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한마디 더 하면, 혀를 뽑아 버릴 거야.”
“…”
이건 진심이었다.
사소한 살기를 담아 건네니 나히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린다.
할 말 있으면 해보라는 듯 걸음을 멈추고 기다려줬는데.
나히는 이후 아무런 말도 뱉지 않았다.
그걸 보고는 다시 발을 떼었다.
찰박.
치이이이익-!
호수 위로 발바닥이 닿으니 뭔가 익는 것 같은 소리가 퍼진다.
독기가 육체를 집어삼키려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음.’
그걸 보며 생각했다.
나왔을 때 입을 새 옷은 준비해 놨던가.
“…”
아, 준비 안 해놨네.
순간, 나히를 보고 옷도 준비해두라고 말할까 싶다가 그건 참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치이이익….
독기가 담긴 연기를 지나 호수의 중심으로 향했다. 중심으로 향할수록 느껴지는 독기는 더 지독해진다.
‘호수 밖이 이 정도면. 안쪽은 더 심할 텐데.’
계산을 바꿨다.
반의 반 각이라 판단했던 것을 그보다 두 배 짧게 잡았다.
멀리서 살피던 기준과 달리, 중심에 오니 더 확실했다. 이 호수는….
‘독기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고 있어,’
이만한 독기라면 직경 일 리만큼의 거리는 잠식시키고도 남았을 터인데.
밖에서 전혀 모를 수준이라면, 무언가가 독기를 잡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이대로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간 얼마 지나지 않아 기막이 풀릴 것이다.
그리되면 뼈도 남지 않고 다 녹아버리겠지.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생각이지만.
이상하리만큼 머리는 차가웠다.
덤덤한 눈동자로 주변을 살핀다.
‘어디였지.’
우습게도 그렇다고 한들,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떠올리지 않고 있었다.
십 년 안에 혈겁을 막아내려면 목숨을 소중히 여겨야 하거늘.
어찌 이리 막무가낸가 싶지만.
호수 위에 서 있으니 어째서인지 느낌이 왔다.
나는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 느낌이 가슴에 사무치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감각을 느끼며 입꼬리를 들어 올린다.
그렇구나.
‘날 부르는 거군.’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이런 느낌이 들 수 없었다.
실상 몇 번이고 느꼈던 감각이다.
과거엔 확신이 없었고 그저 미세한 질감일 뿐이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선 어느 정도 체감하고 있었다.
‘무언가가 날 부르고 있다.’
내가 겪었던 기연들은 대부분 이랬다.
본능적으로 따랐기에 우연이라 생각했을 뿐.
어째서인지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경지가 화경에 닿았기에?
혹은, 몸에 담긴 기운이 많아졌기에?
그도 아니라면.
‘마인이 되었기에 일까.’
무엇이 되었든 확실한 건 없다.
이 감각 또한 거짓일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나는 가야 했다.
안전함만을 추구해선 이뤄야 할 것을 이루지 못할 상황이다.
망설임은 사치였다.
스으으으으-!
기운을 끌어올려 온몸을 덮어씌웠다.
그리고는.
풍덩-!
독으로 범벅이 되어있는 호수에 몸을 담궜다.
부르르르.
물속에 들어와 살며시 눈을 뜬다.
보기에는 평범한 물속과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치이이이이익-!
몸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절대 물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처음에 버틸 수 있는 시간으로 반의반 각이라 했지만.
‘개소리였군.’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 시간의 반을 더 접어도 아슬아슬했다.
기감을 넓힌다.
그리고 내기를 이용해 호수의 바닥까지 내려왔다.
‘깊다.’
호수는 보기보다 훨씬 깊었다.
주변은 별반 다를 것 없는 흙바닥이지만, 이곳 어딘가에 분명 입구가 있을 터.
‘시간은.’
끽해봐야 이제 1분 정도.
기막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다.
육체로 물길이 그대로 파고들면 그대로 즉사였다.
‘어디냐.’
날 부르는 곳은 어디인가.
분명히 날 끌어당기고 있는 걸 알고 있거늘.
‘할 거면 확실하게 부르라고.’
시간은 흐른다.
이대로 가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다.
지금이라도 우선 호수 밖으로 나가 정비를 다시 해야 하나 싶을 때.
품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
샤아아아-!
놀란 눈으로 쳐다보니 정체는 바로 적수사였다.
‘저 놈…?’
그러고 보니 품속에 있었구나.
깜빡하고 있었다.
대뜸 품에서 적수사가 튀어나온 것도 놀라울 일인데.
저놈은 이 와중에.
‘헤엄을 치네?’
이 독기가 가득한 물속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래도 꼴에 적등급 마물이다 이건가…?’
그게 아니라면, 적수사가 체내에 독을 품은 마물이라 그럴 수도 있었다.
뭐가 되었든, 지금은 적수사고 나발이고 일단 냅다 호수 밖으로 나가는 게 우선이던 찰나.
샤아-!
적수사가 꼬리로 내 팔을 감싸 어디론가 당기기 시작했다.
힘이 워낙 약한 나머지 당기는 시늉이 될 뿐이었으나.
‘뭐야?’
녀석이 갑자기 날 당긴다는 게 중요했다.
끙끙거리며 날 계속해서 끌고 가려는 적수사가 보인다.
뭔가 의도가 있는 모양인데.
‘지금은 호수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진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거늘.
웃기게도 머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몸은 이미 적수사가 당기는 방향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말이다.
‘좆 된 거 같은데.’
그걸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바닥은 다 똑같이 생겨 차이가 없었고.
기껏 해봐야 돌멩이가 있고 없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내기가 떨어져 기막이 무너질 때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이십 초.
정말 생과 사의 경계다.
샤아아-!
녀석이 다급히 어딘가를 가리킨다.
이 짧은 행동으로 십 초가 사라졌다.
가리킨 곳은 평범한 바닥이었다.
기감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나, 나는 거길 향해 손을 뻗었다.
뚜두둑.
내기가 점차 떨어진다. 이에 따라 몸에 감긴 기막이 점차 허물어져 내리려던 찰나.
툭.
손끝이 지면에 맞닿고.
콰아아-!
내 시선이 그대로 반전했다.
퉁…!
“컥….”
몸이 어딘가로 떨어지며 바닥을 굴러야 했다.
한참을 굴러가다 겨우 몸을 멈추고는 한참 숨을 토해 낸다.
“허억…헉….”
참았던 숨을 연신 몰아쉬고서야 주변을 살폈다.
“여긴….”
물속이 아니었다.
방금까지 보고 있던 검게 그을린 흙바닥은 어디 가고. 나는 잘 갈아서 만든 돌바닥 위에 있었다.
하물며 방금까지 물속에 있다 왔거늘, 몸은 그런 적이 없었다는 듯 물기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독기가 남아있었다면 큰일이었을 텐데.
나름 다행인 부분인가.
고개를 들었다.
일렬로 나열된 긴 기둥들.
기둥에 박혀 은은히 빛을 내는 무언가.
그걸 보며 눈을 키웠다.
“저거…설마 야명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사방에서 빛을 내는 것들은 분명 야명주였다.
빛을 내는 값비싼 물건.
예전 금천연가의 비고로 향했을 당시에 봤던 그 야명주다.
야명주를 보며 한껏 놀라움을 표하고 있는 사이.
샤아아아….
적수사가 나타나 내 몸을 타고 올랐다.
이놈도 잘살아서 들어온 모양이다.
지친 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놈을 보며 내가 흘리듯 말했다.
“…고맙다.”
샤아-?
이놈 덕분에 살아남은 것이니, 우선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물었다.
“대체 어떻게 안 거냐?”
샤아?
내 물음에 녀석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그걸 보며 혀를 짧게 차고 주변을 살폈다. 우연이라 하기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만, 당장은 먼저 물건을 찾는 게 먼저였다.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진법을 뚫고 비고로 들어오는 데 성공한 모양인데.
물속에서 어찌 이런 비고로 갑자기 환경이 뒤바뀌나 싶지만, 이제 이런 건 놀랍지도 않다.
하도 당해본 기억이 많았으니까.
“비고는 맞는 것 같은데….”
전생에 왔었던 비고와는 느낌이 좀 다르다.
심지어 그때는 야명주도 없었다.
이 말인즉슨.
‘나 외에 누군가가 먼저 왔었다는 말인가….’
그렇다는 것은.
‘백마석을 그대로 두고 야명주만 챙겼다는 거야?’
이해가 가지는 않으나,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마석이란 게 애당초 보통 사람에겐 쓸모 있는 것도 아니고.
야명주만 날름 챙겨서 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
‘뭐든 상관없지.’
어차피 내 목적은 백마석이다.
야명주는 기껏 해봐야 겸사겸사 가져갈 뿐이었다.
안 가져간다는 건 아니다. 저거 더럽게 비싼 건데 이번에야말로 챙겨야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당장은 백마석부터 챙겨야 했다.
‘분명 여기 어딘가에….’
샤아아아.
백마석을 찾고자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려는데.
어깨에 있는 적수사가 문득 어딘가를 보며 경계하듯 이를 드러낸다.
“넌 또 왜 그….”
적수사가 울부짖는 방향으로 고개를 움직였을 때.
“…!”
야명주의 빛이 닿지 않는 어둠.
그 너머로 무언가가 느껴졌다.
스으으으으….
침묵만이 고요하게 퍼지는 비고 속.
나 말고 누군가가 있다.
확인하자마자 내기를 끌어올리려 하지만.
지끈-!
“…끅!”
텅텅 빈 단전은 내게 반항하듯 고통만을 선사한다.
‘제기랄.’
고통이 얼마나 강한지, 찰나였지만 정신을 잃을 뻔했다.
“후우….”
고통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어둠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철이 아니군요. 당신은 누구죠?]“…!”
익숙한 이름에 눈을 부릅떴다.
신 노야를 찾는 말투.
공간을 이동하는 진법.
어딘가 상당히 익숙한 방식에 어둠 너머에 있는 인물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설마….
저 인물에 대한 정체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실례지만 혹시.”
내 말에 반응하듯, 앞에서 반투명한 인영이 다가오는 게 보인다.
이런 상황이면 대부분 겪었던 일이 있었다.
특히 신 노야를 언급하면 백이면 백 그랬다.
게다가 하필이면 이곳이 당문인 것으로 볼 때.
모든 조각이 맞춰지듯 나는 곧바로 그의 정체를 떠올릴 수 있었다.
“당제문 선배님 되십…응?”
[그래요.]다만. 내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부분이 하나 있다면.
[내가 당제문이에요.]“…”
[당신은 누구죠?]당제문은 ‘그’가 아니라 ‘그녀’ 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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