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RAW novel - Chapter (49)
EP.49 이번엔 화산으로. (3)
이번엔 화산으로 (3)
충격적인 말에 내가 천보따리를 들고 멍하게 서 있었다.
이장로는 우리 반응이 멋쩍은지 평소 호탕하던 목소리와 다르게 조금 작은 목소리로 사정을 설명했다.
“…아니, 옛날에 술내기로 받은 건데, 술 깨고 돌려준다는 게 깜빡 해가지고…”
“….본인 문파의 4대 귀물을 내기 물품으로 걸었다고요?”
이게 진짜 무슨 뭣 같은 말이야?
훔쳐왔다 해도 믿을까 말까인데, 이런 걸 지금 믿으라는 말인가? 대체 어떤 미친 장문인이 본인 문파 보물을 그런 말도 안 되는 내기에 걸어!?
그러자 이장로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덧붙였다.
“…노부도 그와 맞게 수준이 맞는 물품을 걸었던 것이니 너무 서운해하지 말거라.”
“…서운이요? 뭘 서운해합니까…?”
“응? 저쪽은 4대 귀물을 걸었는데 노부는 뭔가 안 건 것 같아서 서운했던 것 아니냐?”
“진짜 그게 무슨 미친 말씀이세요…”
와중에 4대 귀물이랑 비슷한 걸 걸었었다고? 이장로한테 그런 게 있었나…?
이 정도쯤 되니까 날 놀리기 위해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진짜 4대 귀물이겠어?’
이장로의 농임을 확신한 내가 픽 웃었다.
“에이, 아무리 제가 모자라 보여도, 이런 농을 치시다니요. 너무하시네요.”
이런거에 속지 않는다며,이장로가 건네준 물건의 천을 확 풀어버리니…
그 즉시 온 사방에 매화향이 퍼져 나간다.
향긋하면서 보드라운 향이다.
들고 있던 손에는 듣도보도 못한 기운이 일렁이기에 시선을 내려보니 동그란 돌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거기까지 보고 곧바로 천을 덮었다.
‘…좆됐다. 이건 아무리 봐도 진짠데?’
세상에 빛을 뿜고 향기가 나는 돌이 귀물이 아니면 뭐라고 해야 할까.
“귀물을 지금 이런 싸구려 천에 싸서 주면 어떻게 합니까!”
“어허! 장문인이 줄 때도 그렇게 줬는데 왜 노부한테 성질을 내느냐!”
“아니, 무슨 이딴 천에 귀물을 싸들고 다니신대…?”
돌아버리겠네 진짜로.
이걸 어떻게 감당해야 하지…? 졸지에 귀물을 마차에 싣고 화산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화산의 귀물이 구가에서 튀어나올 줄 진짜 죽어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이런 걸 왜 저한테 맡기십니까, 차라리 안전하게 표국에다 연락을 취하시지.”
“세상에 지금보다 안전한 곳은 없을 터이니 걱정 말고 다녀오거라.”
안전하다고?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잠시 생각을 해보는데…
금방 뒤에서 말을 쓰다듬고 있는 검존이 떠올랐다.
만일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장로 또한 검존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이런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근데 왜 나한테 맡기시냐구요.’
보자마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귀물을 잡고 있으니 이장로가 웃으며 말한다.
“아, 가주와는 이미 얘기가 되어 있으니 걱정말고 그냥 다녀오면 될 것이다.”
“저 빼고 이미 얘기가 다 되셨군요…”
왜 항상 나는 빠지고 얘기가 되는 걸까.
하나뿐인 아들 취급이 심히 별로인듯싶었다.
애초에 별로긴 했지만….
이미 여기까지 얘기가 되었다 하면, 더 거절할 수는 없었다.
조심스럽게 돌을 챙겨 품에 넣었다. 대뜸 검존에게 다가가 이것 좀 들어주세요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다행히 크기가 작은 편이라 티가 나진 않는 듯했다.
주제 넘치는 귀물까지 챙기니 무연이 다가와 말한다.
“도련님, 출발 준비가 다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갈게.”
마차 쪽으로 가려 하니 이장로 날 잠시 붙잡았다.
“저번에 사천을 갈 때와 같이…”
“예, 사고 안 치고 잘 돌아오겠습니다.”
“그런 것치곤 저번에도 가서 뇌룡을 작살내고 왔다 하지 않았더냐…?”
“…..”
크흠.
“그나저나, 누님은 안 보이네요?”
아까 옆에 있던 구희비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걸 물으니 이장로가 껄껄 호탕하게 웃는다.
“차마 못 보겠으니 어디 가서 또 울고 있겠지.”
“예?”
“어디 또 멀리 나간다고 하니 가슴아파서, 나무 뒤에 숨어 울고 있을 것이다. 신경 쓰지 말고 가기나 하거라.”
이장로에 말에 내가 어이가 없어 웃었다.
그 작은 돌덩이가 화산4대 귀물이라고 한 것보다 더 못 미더운 말이었다.
그 불같은 사람이 걱정돼서 울고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차라리 멀리 떠난다고 앞에서 한참을 놀리고 있으면 모를까.
나도 모르게 구희비가 눈물을 훔치는 상상이 들어 조금 웃음이 나왔다.
너무 안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예, 아무튼 다녀오겠습니다.”
우선 출발해야 하니 이장로에게 예를 취하고 마차에 몸을 실었다.
“그려, 잘 다녀오거라.”
“예, 건강하십시오.”
푸히히힝!
반쯤 눕듯이 자세를 잡자마자 힘찬 말 소리가 울려퍼지고, 마차가 금방 화산을 향해 출발했다.
구양천이 떠난 뒤, 이장로가 구양천의 처소로 들어가니 저 구석에서 무언가 흐느끼는 게 보였다.
하아-
이장로는 성격과 어울리지 않게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도 슬프더냐.”
이장로의 부름에 웅크리고 있던 것이 움찔 몸을 떨었다.
“양천이가 세 살 먹은 애도 아니고, 뭐 이런 걸로 울고 있느냐.”
“애가..몸이 얼마나 약한데 그러십니까…! 요즘 안 그래도 수련한답시고 끼니도 거른다는데…”
울적한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구희비였다.
“너무 양천이만 챙기면, 연서가 서운해할 것이다.”
“연서는 알아서 잘하지만, 양천이는 어디 가면 꼭 하나씩 사고치고 오잖습니까.”
구희비의 말에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실제로 이번 사천행에서도 남궁놈 아들 팔을 박살 냈다고 하지 않았던가.
실상 사정을 들었을 때는 다리도 박살 냈음 좋았겠다 싶었으나, 장로 된 입장에선 참아야 했을 말이었다.
“…얼굴도 많이 못 봤는데…”
이장로는 훌쩍거리는 구희비에게서 애써 눈을 돌렸다.
…나이를 먹고 검봉이라 불리는 구희비지만, 이장로의 눈에는 여전히 철없는 손녀 같은 모습이었다.
이장로는 가만히 지켜보다 조용히 나와 문을 닫아줬다.
그렇게 칠 주야가 지났을 무렵.
누군가 터덜터덜 걸어와 구가의 문을 두드렸다.
******************
구희비가 앞으로 임무를 떠나기 삼일 남은 시점, 그 탓에 구희비의 기분이 상당히 나쁜 상태였다.
하물며 눈앞에 있는 인물 탓에 더 그랬으리라.
“니가 누구라고?”
자연스럽게 하대가 튀어나왔다.
상대가 자신보다 어리든 많든, 명문가끼리면 예를 취하는 게 맞았으나.
구희비는 철없어 보여도 도저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사나운 말을 들은 상대는 아무런 피해도 없는지 그저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할 뿐이었다.
“남궁비아 라고 해요.”
더럽게 예쁘네.
구희비가 마주한 남궁비아의 첫인상이었다.
예전에 동생 놈이 데리고 다니던 묘한 시종도 말도 안 되게 예뻤으나, 이 남궁계집 또한 그 못지않았다.
안휘 제일미라더니….그 이름값을 하는 듯 했다.
짜증 나게 말이다.
“그래, 그건 알겠는데, 왜 찾아왔어?”
이유는 모르겠으나, 남궁비아가 입고 있는 무복에 나뭇잎부터 별의별 먼지는 다 붙어있었다.
어디 험한 길이라도 지나왔나? 아니면 마물이랑 한참을 싸우다 오기라도 한 것인지, 자세히 보면 마물의 피도 묻어있었다.
남궁비아는 구희비의 말에 단호하게 답했다.
“약혼자를 보러 왔어요.”
“약혼…”
맞는 말인데 심하게 거슬렸다.
“아직 정식 약혼은 아니라고 하는 것 같은데.”
“아…”
그런가? 그랬었나? 뭐 대충 그런 표정인듯 싶었다.
동생의 약혼녀는 차갑게 생긴 것과 다르게 뭔가 맹 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구희비에게는 남궁비아에게 기분 좋게 해줄 말이 있었다.
물론 며칠 전까진 자신에게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흥.
구희비가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어쩌지? 우리 동생은, 지금 세가에 없는데.”
“…동생?”
“그래, 동생. 내가 걔 누나야.”
“…아!”
어쩐지…
남궁비아가 납득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안녕하세요.”
그러더니 다소곳하게 고개 숙여 예를 취했다.
이 모습에 되려 구희비가 당황을 해버렸다.
뭐야 얘는 대체? 구희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 그래…반가워.”
“그럼..어디로 갔나요…?”
“화산으로 갔어, 멀지? 아쉽겠지만, 그냥 너도 집으로 돌아…”
“화산…!”
구희비가 텃세를 부리려다 멈칫했다.
남궁비아가 구양천이 어디 있는지 듣자마자 활짝 미소 지었기 때문이다.
자존심 상하지만, 그 모습은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곧바로 등을 돌리려던 남궁비아가 잠깐 주춤하더니 구희비에게 묻는다.
무척 쌩뚱맞은 질문이었다.
“검수 신가요?”
“…맞아, 네 동생에게 못 들어봤어?”
남궁비아는 구희비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생에게? 잘 모르겠다.
천준이는 자신보다 강한 이에 대해 얘기 하지 않는다.
눈앞에 여인은 천준이 보다 훨씬 강했다.
그러니 제대로 듣지 못했을 것이다.
엄청 강하다.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마 자신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
터질듯하지만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는 기운이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의 약혼자와 닮았으나, 더 짙고 거친 기운이었다.
설렌다.
꼭 붙어보고 싶었다.
심지어 검수? 눈앞에 여인은 남궁비아가 가장 원하는 무인이었다.
며칠이라도 옆에 붙어 한 번만 싸워달라 빌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쉽지만, 지금은 아니야.”
“뭐라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궁비아가 한 번 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응.”
구희비는 이런 반응에 정신이 멍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다시 쏘아대듯 말을 꺼냈다.
“다시 말하지만, 동생은 세가에 없으니…그런 줄 알고 돌아…뭐야?”
말을 열심히 꺼내려 들었지만, 우습게도 앞에 있던 남궁비아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뭐야, 얘 어디 갔어…?”
구희비는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느낌에 혼자 멍하니 한참을 서있었다.
그렇게 다음 날.
남궁세가에서 남궁비아를 보게 되면 어디 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어달라는 청이 왔었다는 걸 듣게 되었다.
이미 때는 늦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