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20
외전 170화. 칼자루가 없다 (4)
“표정이 왜 그래?”
도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연거푸 술잔을 비울 뿐.
소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 일이 있긴 있는데, 이거?’
도헌은 솔직한 사내다. 기질적으로 권모술수나 거짓말 따위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신교 밑바닥부터 광마대주가 되기까지 온갖 아수라장을 겪어 본 사내라, 입을 열지 않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정도의 표정 관리는 할 줄 알았다.
그런 도헌이 심란함이라는 심란함은 죄다 끌고 와 얼굴에 칠갑한 채 술만 마시고 있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소공은 궁금했지만, 차분하게 술병을 빼앗고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소공이 따라 준 술을 몇 잔이나 들이켜고서야 도헌은 한숨을 쉬었다.
“쓰군.”
“싸구려 백주니까. 안주도 안 먹고 냅다 갈겨 버리면 입맛도 쓰고 속도 쓰리고 난리도 아니겠지.”
소공이 손으로 채소볶음이 올려진 접시를 쓱 밀었다.
“안주 좀 먹게나. 내공은 만능이 아니야. 그렇게 먹어 버릇하면 나중에 고생한다고.”
“고기반찬은 안 주는구먼.”
“고기는 내가 먹을 거야.”
도헌이 피식 웃었다. 소공의 시답잖은 농담에 기분이 좀 풀어진 것이다.
소공이 자신의 잔을 채우며 물었다.
“뭔 일인데?”
“복잡한 일이 생겼네.”
“그거야 자네 얼굴만 봐도 알아. 내가 묻는 건 그 복잡한 일이 뭐냐는 거지.”
“등용을 제안받았네.”
“등용?”
소공의 눈이 반짝였다.
“어떤 자리이길래 등용이라는 말까지 써?”
“밀마조 부조장.”
“……!!”
그 능글맞던 소공조차 놀라서 얼어 버렸다.
도헌이 한숨을 내쉬었다.
“백뇌각 부각주가 찾아왔네.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밀마조로 들어오라더군.”
“……허어.”
“나중에 조장으로 천거할 것이고, 높은 수준의 마공도 하사하겠다고 했네. 일단 들어오면 부조장 자리부터 시작하라고 하더구먼.”
밀마조는 군사부 휘하 특공대다.
특공대란 곧 해결사 조직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법. 밀마조는 현재 마왕들보다도 위험하고 막강한 권력을 지녔다는 총군사 휘하의 조직이었다.
당연히 밀마조로 들어가는 것은 수많은 마인의 꿈이었다. 실제로 밀마조로 들어와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들이 많았는데, 총군사가 직접 절정의 마공을 전수하여 하나같이 고수가 되었다.
도헌은 육대주 중에서도 상위의 강자. 그런 그에게 더 강한 마공이 주어진다면 조만간 내전 원주급의 무력을 거머쥘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각주가 직접 와서 제안했다고?”
“그렇다네.”
“……악취가 나는데?”
“자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언제 찾아왔나?”
“좀 되었네. 보름은 안 된 것 같군. 정신이 없어서 날짜 계산도 안 되는 것 같구먼.”
소공이 입술을 매만지며 생각에 빠졌다.
‘백뇌각 부각주가 직접 찾아왔다고? 왜?’
괴안 서필은 군사부 실세 중의 실세였다. 머리도 뛰어나고 정보 수집 능력도 탁월했다. 특히나 권모술수에 능해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대국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어지간해서는 수면 위로 나서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도헌을 직접 찾아와서 영입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굳이 도헌을?’
도헌의 재능은 특별하다. 후원자도 없이 홀로 성장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후 내전 육대의 주인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입신양명의 대명사라 할 만하다.
성품은 그 재능보다 더 대단하다. 배신과 뇌물이 판을 치는 천마신교에서 지금까지도 타고난 성품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도헌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그러나.
교내에는 도헌보다 뛰어난 인재들이 없지 않다.
서필 입장에서는 자신이 직접 부리는 특공대를 능력 있는 마인들로 구성하고 싶을 것이다. 도헌 역시 뛰어나지만, 군사부로서는 무리하면서까지 영입을 제안할 만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다른 것보다 그 고지식한 성품이 문제다. 유연하지 않은 자는 대개 다루기 어렵다. 서필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이유가 뭘까.’
그때, 도헌이 입을 열었다.
“생각해 봤네. 왜 백뇌각 부각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날 찾아와 영입 제안을 하려 하는지.”
“답은?”
“모른다네. 누가 있어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겠나. 다만, 머리를 비우고 생각해 봤는데…….”
“…….”
“아마도 교란 목적이 아닐까 싶네.”
심란함에 술만 푸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도헌의 눈빛은 매서웠다.
소공은 깨달았다. 도헌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 사태를 분석하고자 함이었음을.
‘당연한가.’
서필이 직접 나섰다. 육대주의 끗발이 상당하다지만, 이건 싸움이 안 되는 판이다. 즉, 해결이 안 되는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 사람의 분석을 통해 이 판에서 패배만은 면할 수 있도록 움직여야 한다.
“교란이라면 어떤?”
“아직 내 생각에 불과하지만…….”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봐.”
“공무외 당주 같네.”
소공의 눈이 반짝였다.
“형법당주를 노리고 자네에게 영입을 제안했다고?”
“그렇다네.”
“자신에게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형법당주는 자네를 누구보다 신뢰하기 시작했어.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자네 말이 맞네. 공 당주는 누구보다도 날 신뢰하고 있네.”
“그렇다면 서필의 영입 제안으로 공 당주가 흔들릴 수는…….”
“있네.”
“왜지?”
“공 당주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하는 사람이야. 그런 자들은 하나같이 스스로가 최고가 되기를 원하지.”
“그거야 뭐.”
“밀마조의 부조장 직위는 형법당 수장의 직위에 모자람이 없네.”
“……!”
“그리고 그런 걸 떠나서라도, 내 사람이라고 못 박은 이를 다른 곳에서 채 가려 하고 있어. 공 당주도 제법 골치 아플 걸세.”
“공무외 당주를 건드려 권력의 한 축을 흔들겠다는 뜻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네. 다만 목표가 공무외 당주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하네.”
“흐음.”
“그리고 나를 향한 신뢰도 완전하지는 않아. 만약 내가 그 자신보다도 높은 곳에 이르면, 공 당주는 나를 내칠 것이네.”
“반쪽짜리 신뢰였단 말이지?”
“직접 마주하면서 깨달은 사실일세. 자네라면 몇 마디 대화만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을 거야.”
소공이 턱을 쓰다듬었다.
“서필이 공 당주를 어째서 노리고 있을까?”
“그건 모르겠네.”
“아니, 모르면 안 되지.”
“……?”
“공무외 당주야 수완도 좋고 끗발도 좋고 다 좋지만, 솔직히 서필과 비빌 만한 양반은 아니야. 그건 자네도 잘 알겠지.”
“그렇게 생각하네.”
“그런데도 공무외를 노린다는 건 두 가지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네.”
“……?”
“첫째, 형법당주라는 직책을 빼앗아 제 사람을 세우기 위함일 수 있네. 둘째, 공무외를 통해 그의 윗사람에게 타격을 가하기 위함일 수 있네.”
“……!!”
도헌의 눈이 흔들렸다.
소공이 착 가라앉은 얼굴로 말했다.
“어쩌면 그 둘 모두를 노린 걸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거야 알 수 없는 일이고, 단순히 가능성만 논하자면 공무외 본인보다는 그 윗사람을 노리는 데에 무게가 실려.”
“백골신마 어르신을?!”
“백골 장로님은 지금껏 마왕들 간의 경쟁에 전면으로 나서지 않으셨어. 하지만 사고를 치셨지.”
“사고라면?”
“우리 쪽 작전과 맞물려 있어서 알게 된 건데……. 전대 호법원주께서 모습을 드러내셨다 하더군.”
도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력신마 어르신이?!”
“그분을 잡으라고 백골 장로님과 자소대마를 파견한 모양이야. 마왕 하나를 잡기 위해 둘을 보냈다면, 천재지변이 나지 않는 이상 당연히 둘이 이기겠지.”
“…….”
“한데 백골 장로님이 전대 호법원주님을 그냥 보내 주셨다고 하더군.”
도헌의 주먹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군사부는 교주전과 하나야. 아마 교주전에서 뭔가 언질을 받았겠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일이었군.”
“확신은 아니야.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그렇다면, 밀마조 부조장 영입도 허상이군. 이쪽의 신뢰를 흔들기 위해서 던진 미끼라면…….”
“그래. 모든 일이 해결되면 자네를 축출하겠지. 당연하게도…… 살아남긴 힘들 걸세.”
그 순간 두 사람의 머리에 떠올린 단어는 하나였다. 외통수.
싸움이 성립되지 않는 상대가 작정하고 몰아붙이기 시작하면, 이쪽에서는 방법이 없다.
“심지어 거기서 끝이 아닐 거야.”
“무슨 말인가.”
“근래 이천상 녀석에 관한 얘기를 들었나?”
“못 들었네. 집무실에 칩거하고 있었거든. 게다가, 괜히 쓸데없이 움직였다가 군사부의 눈에 걸리면 안 될 것 같아서.”
“그건 잘했네. 역시 감이 좋군.”
“한데 이천상 녀석이 왜?”
“백골신마 어르신은 물론 환희원주께서도 녀석을 불러 대면한 모양이야.”
“……!!”
“공무외는 이천상을 자네만큼 믿지 않아. 쓰기 좋은 칼 한 자루 정도로 여기겠지. 한데 그 칼이 공무외 자신보다 훨씬 더 내전의 주목을 받는 상황이라면?”
놀라서 굳어 버린 도헌.
소공이 인상을 찡그렸다.
“군사부에서 움직일 거야. 공무외 하나가 아니라, 공무외의 윗선을 노린다면 이천상에게도 접근할 가능성이 커.”
* * *
허필과 홍산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것은 강제였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트릴 권력자가 그리 명령했으니, 두 사람으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산했지만 그래도 밥자리를 하던 마인들까지 몽땅 쫓겨났다. 군사부의 힘이었다.
그렇게 이천상은 군사부 최고 실세와 함께 자미루 최상층에 올랐다.
“음, 역시.”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의 냄새를 맡는 서필의 얼굴에 흡족함이 어렸다.
“군사부 숙수들의 실력도 보통은 아니지만, 자미루의 숙수들도 장난이 아니구먼.”
“…….”
“배는 다 차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천상 특유의 무심한 목소리는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서필의 얼굴에 작은 흥미가 떠올랐다. 이천상에 대해서는 그 역시 이런저런 보고를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대면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기묘한 녀석이었다.
“술 한 잔 받으시지요.”
“괜찮습니다.”
서필이 피식 웃었다.
“상급자가 주는 술을 마다하다니요. 용기입니까, 오만입니까?”
“불신입니다.”
“오호?”
반응이 이렇게까지 신선할 줄이야.
서필이 미소를 지었다.
“백골 어르신은 정정하십니까?”
느닷없는 공격이었다.
이천상은 당황하지 않았다.
“모르겠습니다.”
“무슨 대답이 그렇습니까? 자주 뵈었을 텐데.”
“제가 보지 못하는 경지에 오른 분의 건강 상태를 알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건 그렇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정정해 보이셨습니다.”
“하하, 다행이군요.”
“왜입니까?”
“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생생한 먹잇감을 사냥하고 싶어서 다행이라고 하는 겁니까, 아니면 그분에게 뭔가 뽑아 먹을 게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는 겁니까?”
서필의 눈이 반짝였다.
이천상이 말을 이었다.
“궁금해서 던진 말입니다. 크게 신경 쓰지 마십시오.”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는 발언이로군요.”
“그렇습니까?”
군사부의 실세와 마주하면서 조금도 주눅 드는 기색이 없다.
아니, 아예 감정이 없는 것 같다. 천하의 서필도 이천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기가 어려웠다.
‘이거 재밌겠군.’
오늘 이 자리,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