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71
“포졸이라고?”
“예, 사방에 포졸이 깔려 있어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호남상단의 총관은 식은땀을 흘리며 굽실거렸다.
명령을 완수해야 할 놈들이 저잣거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빈둥거리고만 있으니, 그 또한 답답하기 그지없었으나 방법이 없었다.
포졸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호남상단은 엄연히 상인집단인 만큼, 관의 심기를 거슬려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몇몇 간 큰 놈들이 돈을 받기 위해 난동을 부렸다가 그대로 잡혀간 것만 봐도, 악양의 현령이 그리 쉽게 물러날 것 같지도 않았다.
“현령에게 돈을 먹이고 눈감아 달라 하면 어떠냐?”
“불가능합니다. 이미 아이들을 시켜 보내 보았습니다만…… 문전박대당했습니다.”
“허…….”
악양의 현령, 홍원창은 비록 운이 좋아 수많은 공을 세웠을 뿐, 공명정대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기에 막충헌은 인상을 썼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장사의 현령을 움직여 보는 것은?”
총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확실히 좋은 생각이다.
장사의 현령과 호남상단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니, 뇌물을 주고 악양 현령을 압박하면 충분히 가능할 법했다.
만약 그 상대가 홍원창만 아니였다면 말이다.
“비록 홍 대인이 악양의 현령이기는 하지만, 그 영향력은 이미 장사의 현령조차 뛰어넘습니다. 왕부에서도 밀어주고 있는 관리이니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어쩌라는 말인가! 그대로 놔두라고?”
막충헌은 인상을 쓰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대로 금환상단을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해서든 놈들을 무너트려야 하는 상황에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막충헌의 시선이 매섭게 총관을 향했다.
작은 눈동자가 죽일 듯 쏘아봤다.
총관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럴 때 막충헌은 제법 무섭다.
“금환상단주를 죽인다면 단박에 일이 해결되지만…… 듣자 하니 호남단가의 고수가 보통 실력이 아니라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힘으로는 누를 수 없으니…….”
“뭔가?”
“다른 방법을 써야지요.”
“그러니까 그게 무엇이냐고!”
크게 소리를 치자 총관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금환상단은 말입니다…….”
* * *
단우현은 오랜만에 동정호 앞에 앉아 있다.
새로이 만든 낚싯대를 시험하는 것인지, 그것을 호에 드리운 채 물고기가 낚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곁에선 낚시하다 지친 단소미가 단우현의 무릎을 베고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 곁에 놓여 있는 바구니에는 물고기들이 가득했다.
“…….”
단우현은 그것을 가만 바라봤다.
단소미의 바구니에는 상당히 많이 잡혀 있다.
반대로 단우현의 바구니에는 고작해야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똑같은 장소, 고작해야 반 장조차 떨어지지 않은데 어찌 이리 차이가 나는 것일까?
낚시라는 건 정녕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다.
“허허, 입질 한번 없구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남궁천이 보였다. 그 또한 낚시를 하고 있었는지 너털웃음을 지으며 열심히 챔질을 하는 게 보였다.
“도대체 이걸 무슨 재미로 하는 거야?”
한참 동안 낚시를 하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자 화가 난 것인지 사도학이 낚싯대를 내동댕이쳤다.
벌써 두 시진이 넘게 입질 한번 느끼지 못했다.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십여 마리를 잡을 동안 말이다.
어른들의 자존심이 종잇조각처럼 부서졌다.
사도학이 툴툴거리며 단우현을 바라봤다.
도대체 뭐가 재미있어서 계속하는 걸까?
“세월을 낚기에 재미있는 거지.”
“지랄도 풍년이다. 미친놈아, 그냥 멀뚱히 앉아서 시간 버리는 게 세월 낚는 거냐?”
“…….”
“크큼…….”
사도학의 거친 말에 두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
사실 말이 세월을 낚는 것이지, 잡히지 않으면 그저 무념무상(無念無想)을 유지하며 낚싯대만 쳐다보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거 말고! 있잖아, 그런 거! 쓱하고 싹하고! 피 튀고! 그런 걸 해야지!”
“허허허, 베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세. 또 이렇게 느긋한 시간도 종종 가져야 하지 않은가?”
껄껄하며 웃는 남궁천을 보며 사도학이 벅벅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휴식 또한 필요한 것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벌써 며칠째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기만 하니 몸이 지루해 견디지 못했다.
“어차피 추문세가든 호남상단이든 다 뭉개 버리는 거 아니였어? 할 거면 빨리하자고.”
몸이 근질근질하여 견딜 수 없는 듯했다.
이것저것 다 때려 부숴야 이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없앨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놈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다. 그렇기에 답답할 테지.”
이미 이쪽에 고수가 있음을 저들도 깨달았다.
하여 힘으로 밀어 버리는 것은 시도하지 못할 터이고, 그렇다면 자금줄을 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 여의치가 않다.
저잣거리 사방에 포졸들을 풀어놓았고, 홍원창 또한 간간이 그곳에 행차하는 만큼, 관과 적대할 것이 아니라면 결코 함부로 손을 쓰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애가 탈 테지.
결국 은밀하게 무언가 일을 벌일 것이다.
그때, 다급하게 누군가 뛰어 오는 소리가 들렸다.
장원 쪽은 아니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돌아갔다. 수풀을 가르며 빠르게 뛰어오는 인영의 모습이 점차 가까워지자, 단우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가 이 시간에 찾아오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헉, 헉……!”
“무슨 일이냐?”
금은학이 크게 숨을 헐떡이며 단우현 앞에 멈춰 섰다.
떨리는 시선으로 마른침을 꼴깍 넘기는 모습을 보니, 말을 해야 하기는 하는데,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난감해 하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냐 물었다.”
단우현의 날카로운 한마디가 천둥처럼 귓전을 울렸다. 크게 언성을 높인 것은 아니나 금은학이 깜짝 놀라 다리에서 힘이 풀릴 정도였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도…… 도둑이.”
“도둑?”
“상단에 도둑이 들어서 술과 비단을 모조리 들고가 버렸습니다!”
순간, 사도학과 남궁천이 휘둥그레 눈을 떴다.
그 많은 술과 비단을 들고 갔다는 것은 결코 한 사람의 짓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상당한 양이었고, 물건들을 옮기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테니까.
“지금 홍 대인이 오셔서 직접 조사하고 계십니다만…… 남은 흔적이 전혀 없다 합니다.”
“그래?”
금은학은 좌절하며 주저앉았다.
기껏 모든 것들을 다시 쌓아 올릴 기회를 잡았다고 여겼거늘, 그것을 자신의 실책으로 인하여 빼앗겨 버렸다.
누가 어떻게 그 많은 것들을 옮겼는지 조금도 알 수가 없었다.
부들부들-
금은학이 몸을 떨며 단우현 앞에 무릎을 꿇더니, 땅에 머리를 박고 크게 소리쳤다.
“주…… 죽여 주십시오!”
“똑바로 앉아라.”
“가주님! 죽여 주십시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맡기신 일을…….”
“앉으라 했다.”
자책감이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 울먹이며 머리를 박고 있던 금은학은, 단호한 목소리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단우현과 똑바로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이 보였다.
“크게 신경 쓰지 마라. 제대로 된 경비를 세웠던 것도 아니었으니 도둑이 들 법도 했지.”
“푸하하하! 맞네! 그리 귀한 술과 비단들이 있는데, 그걸 지키는 호위 하나 없었으니까. 지금까지 멀쩡했던 게 더 신기할 정도다.”
크게 웃는 사도학의 목소리에 금은학은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상단을 지키는 호위들은 고용했다.
하나, 그 실력이 뛰어나지 않고, 지금까지 상단을 운영하면서 도둑이 든 적이 없었기에, 수도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해이해진 자들이 제대로 경비를 서지 않는 순간을 제대로 노린 것이다.
“저……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사실 이것은 완벽한 금은학의 실책이었다.
막대한 손해를 생각하면 이 자리에서 목이 달아나도 이상치 않았다.
“남은 자금은?”
“……없습니다.”
“망했네.”
“허허, 망했구먼.”
“으윽…….”
두 노인이 웃음을 터트리며 금은학의 어깨를 두들겼다.
상단으로서 재기를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도둑에게 홀라당 털려 망한단 말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는 일이다.
“실패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나 또한 그렇게 성장을 해 왔으니…… 하지만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되겠지.”
“예…… 감사합니다.”
부드럽게 위로하는 단우현의 말에 금은학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솔직히 죽을 수도 있다고 각오하며 찾아온 것이다.
도망칠까 아니면 자결할까 몇 번이나 고민했다.
그만큼 두려움이 컸다.
하나, 단우현은 정말로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였고, 그 표정 또한 어디 한 군데 화가 난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군.”
단우현이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털린 것은 털린 거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운운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도둑을 그냥 내버려 둘 생각 또한 없었다.
‘감히 누구의 것을 털어?’
전문적인 도둑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호남상단주를 만나고 난 며칠 뒤에 벌어진 일.
아무리 머리가 나쁜 이라 할지라도 대충 누구의 짓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호남상단주인 막충헌의 얼굴을 떠올리며 단우현은 눈을 좁혔다.
둔해 보이는 녀석인 데다 지금까지 돈만 보고 살아왔으니, 성질을 긁으면 돈과 힘으로 찍어 누를 것이라고만 여겼다.
한데, 이런 방법은 상당히 의외였다.
아무래도 머리가 제법 잘 돌아가는 놈이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단우현은 슥 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남궁천과 사도학, 그리고 금은학이 보였다.
또한 장원에는 술밖에 모르는 호연지, 무공밖에 모르는 권무진과 남궁소혜가 있다.
지금은 나가 있는 장삼태와 마장강을 포함하더라도, 머리를 쓸 수 있는 이는 단우현 하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단우현은 고민하듯 미간을 짚었다.
“권무진과 남궁소혜를 불러와라.”
“예, 알겠습니다.”
단우현의 말에 금은학이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후다닥 달려가 몇 마디를 나누니, 두 사람이 부리나케 단우현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죠?”
왕부에 갔다 온 뒤로 이렇다 할 일이 없었던 남궁소혜는 기대에 찬 얼굴로 단우현을 바라보며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지루하고 힘든 부엌데기에서 벗어날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단우현을 향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