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75
“뭐? 단순한 도적놈들이었다고?”
호남상단의 총관 가중평은 인상을 찌푸렸다.
틀림없이 호남단가에서 움직일 것이라 예상했다.
실력 있는 고수가 있는 데다 원체 커다란 상행이었고, 자신들이 도둑맞은 물건이 실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했을 거다.
그런데도 손을 대지 않았다?
아니면 손을 대기도 전에 날파리가 꼬인 것일까?
가중평은 후자에 무게를 실었다.
“놈들의 운이 좋았구나.”
으음- 하며 신음을 삼켰다.
이것을 운이라 해야할지 아니면 단순히 일이 복잡하게 꼬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중평의 입장에선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놈들을 단박에 잡을 기회를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당히 곤란했다.
놈들에게 이쪽의 패를 들켜 버렸고, 결과적으로 역습을 받을 수 있는 상황까지 만들어졌다.
가중평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돼지 놈의 뜻을 따르는 게 불만이긴 하지만…….’
호남상단은 실질적으로 가중평의 손에 의해 돌아갔다.
막충헌은 돈을 쓰기에 바빴고, 남은 일은 전부 가중평이 도맡아서 했다.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는 추문세가와의 거래만 막충헌이 맡고 있을 뿐이었기에, 그 밖의 일을 통해 얼마든지 뒷주머니를 찰 수 있었다.
하지만 모자랐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이고, 그것을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었다.
가중평 또한 원하는 것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인물이었다.
지금보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선 반드시 호남단가 놈들을 없애 버려야 했다.
지난번에 두악칠이 은밀히 찾아왔을 당시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가중평이었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막충헌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돌아가며 가중평의 귀에 속삭였다.
-만약 단가를 없애 준다면 우리 가주께서 그대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 하셨소.
두악칠의 말과 그 미소를 보는 순간, 가중평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막충헌은 추문세가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조건 직접 나섰을 정도로 극진하게 정성을 들였다.
솔직히 위치나 세간의 평을 생각해 본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만약 실제로 추문세가가 호남상단보다 우위에 있다면?
그리고 지금의 막충헌을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추문세가라면?
‘내가 호남상단을 손에 넣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
가중평은 피식 웃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두악칠이 그러한 말을 꺼낸 이유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버리려는 것이다.
쓸모가 다한 막충헌을.
그렇기에 그 자리에 자신이 적합한 인물인지 시험을 하려는 것이고.
가중평은 지금 이 시험을 완벽하게 해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호남단가를 무너트려야 했다.
탁탁탁-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기며 깊게 생각에 잠겼다.
하오문의 정보가 막혔다. 개방 또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굳게 문을 닫은 채 열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상인들의 정보만 가지고는 호남단가의 정보를 완벽히 손에 넣을 수가 없었다.
“으음, 어찌할까?”
그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지금은 일단 놈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고 결정해야 할 듯싶었다.
* * *
“뭐야? 결국 아무것도 건진 게 없군?”
사도학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며 애나 보라고 하더니, 아무것도 되찾아 오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와 버렸다. 단우현이라고 뭐든 만능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마치 단우현을 놀리 듯하는 말에 권무진과 남궁소혜는 그의 눈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말을 하지 않고 가만 앉아 있는 단우현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심사가 꼬였음을 짐작했다.
두 사람이 입을 꾹 다문 채 힐끗힐끗 눈치만 살폈다.
“평소에는 머리 좋은 척 혼자 다 처리하더니, 된통 당해 버렸네, 당해 버렸어!”
“시끄럽다.”
“하하하, 네놈도 아직은 인간이라는 거다. 그만한 힘도 있는데, 머리까지 좋으면 그게 어디 사람이냐? 어디 하나 모자란 구석이 있어야 좀 사람 같지.”
끝까지 놀려 먹는 사도학의 한마디에 단우현이 한숨을 쉬었다.
그가 사나운 시선으로 사도학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놈 머리처럼 말이냐?”
“하하, 그래그래, 나처럼 머리라도…… 뭐야!?”
사도학이 발끈하며 소리를 쳤다.
맞는 말도 직설적으로 들으면 기분이 나쁜 법이다.
물론 자신이 먼저 도발했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한껏 인상을 찌푸렸지만 차마 덤빌 생각은 없는 것인지 작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살짝 삐진 것 같았다.
“으음, 하지만 대단한 자로군. 자네를 깜빡 속일 줄이야…….”
남궁천이 신음을 삼켰다.
단우현은 결코 멍청하지 않았다.
힘으로만 일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치밀하게 움직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단우현의 모습은 독사처럼 잔인하고 여우처럼 약삭빨랐다.
눈치는 또 얼마나 빠른지, 함정이라 생각되는 것에는 결코 발을 뻗지 않았다.
그런 단우현이 이번에는 깜빡 속아 넘어갔다.
그만큼 호남상단의 한 수가 절묘했다.
만약 그 도적들이 나타나지 않고 상단을 습격했더라면, 곤란한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다.
“어쩌면 제갈운과 비교할 만한 자일지도 모르겠네.”
“그 정도인가?”
“자네가 넘어갔다면 그만큼은 된다는 뜻 아닌가? 허허.”
남궁천의 말에 단우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를 치켜세우는 말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들어 봐야 그리 기분 좋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
단우현이 곁에 놓인 검갑을 매만졌다.
지금 상황만 놓고 봤을 때 당장 달려가 호남상단 전체를 몰살시켜 버리는 것이 간단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단우현은 정말 그런 짓을 할 만큼 바보가 아니었다.
사도학과 남궁천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 하지 않은가?”
“그렇지. 해서 상행을 털려 했던 것이고…….”
“그것을 짐작했다면 만만한 자는 아닐 터…… 내 오랜 강호 경험에 비춰 봤을 때, 이럴 땐 누군에게 기대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네.”
“기댄다고?”
단우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태어나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유아독존으로 살아온 그였다.
천하의 무신이, 단우현이, 다른 이에게 기댄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
“혼자 쳐들어가서 다 때려 부술 게 아니라면 말일세.”
“으흠…….”
단우현은 미간을 들썩였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단우현 또한 오랫동안 강호 생활을 하면서 많은 일을 겪었고, 또한 많은 위험에서 헤쳐 나왔다.
하여, 계획을 세우는 것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완벽하게 치밀하진 못했기에 결국 힘으로 풀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가 많았다.
지금은 그래서는 안 된다.
단소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힘에는 힘으로, 머리에는 머리로.
지금까지 장원에서 벌어졌던 일들에는 그럴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였으나, 이번만큼은 반드시 머리로 상대를 박살내고 말 것이다.
이것은 일종에 자존심이다.
“그런데 그럴 만한 사람으로 누가 있지?”
머릿속에 당장 떠오르는 이가 없었다.
단우현이 자리에 남아 있는 이들을 한번 훑어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더니 길게 한숨을 쉬었다.
“자네 뭔가 지금?!”
“상당히 기분 나쁜 눈빛이었는데요? 단 공자! 제가 생각하는 그런 뜻은 아니겠죠? 그렇죠?”
“…….”
“크흠!”
곳곳에서 들려오는 불편한 목소리와 시선에 단우현은 피식 웃어 버렸다.
“제갈운이 있지 않은가.”
남궁천이 입을 열었다.
그의 눈빛에는 아직도 제갈운에 대한 신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무림맹주에 올라 십여 년 동안 곁을 보필하며 살신성인(殺身成仁)했던 이였으니까.
또한 아직까지 남궁천을 그리워하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지난번 본 그자 말인가?”
“그렇다네.”
“음…… 그자를 신뢰하나?”
“허허, 그만큼 믿을 수 있는 이도 없네.”
단우현은 생각에 빠졌다.
제갈세가는 지자의 가문으로 유명했다.
머리로는 중원에 따를 자가 없다는 것이다.
타인의 머리를 빌린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으나, 그 정도 인물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싫다면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자네가 더 이상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두뇌가 되어 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 법이네.”
“그건 맞아! 차라리 제갈운 말고 동방구 녀석을…….”
“그자는 아직 은퇴조차 하지 않았잖나!”
남궁천의 격렬한 반대에 사도학이 움찔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고 보니 동방구는 사도학의 뒤처리 때문에 제대로 연락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를 불러냈다가는 마교가 풍비박산 나 버릴 것이다.
‘그래도 뭐…… 별 상관은 없다만…….’
이미 마교보단 이쪽이 더 즐거웠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시선을 단우현에게 보냈다.
“그런데 제갈세가는 좀 멀지 않나?”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제갈운일세. 그토록 찾고 있던 자네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이네. 어쩌면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을지도…….”
“그렇군…….”
“찾기로 마음먹는다면 내 찾아보지.”
남궁천은 확신을 갖고 있었다.
제갈운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성격이었다.
오래전, 남궁천에게 인간적으로 반했다는 이유만으로 일 년이 넘도록 쫓아다닌 적도 있었다.
집에도 돌아가지 않고 남궁천의 주위를 맴돌았다.
가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기도 했지만 그만큼 뛰어난 인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갈 가주님의 입장이…….”
“그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다.”
아마 천도회와 무림맹에서도 제갈운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제갈운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며, 그의 지력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제갈운이 세가로 돌아가지 않고 근처에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러한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때, 단우현이 입을 열었다.
남궁천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제법 매서웠다.
마치 칼날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에 남궁천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또한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단박에 깨달았다.
“짐승보다 못한 것이 사람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럴 테지…… 나 역시 지금은 같은 생각일지도 모르겠네.”
남궁천은 씁쓸하게 웃음을 지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가장 친한 친우의 손에 배신을 당했다. 잘려 나간 팔이 욱신거릴 때마다, 그 가증스런 얼굴이 떠올라 미칠 것 같았다.
차라리 직접 베었으면 그나마 화라도 가라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지를 깨달았고, 지금 또한 같은 상황이 된다면 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죽은 이들의 얼굴이 아른거렸지만, 이미 모든 것을 잃은 이를 향해 검을 휘두를 만큼 남궁천은 냉정하지 못했다.
그것이 남궁천이 지닌 단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갈운은 믿을 수 있는 자네. 만약 그가 배신한다면…… 나를 베도 좋네.”
그 한마디에 주변을 압박하던 분위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식은땀을 흘리던 이들의 입에서 숨이 터져 나왔다.
단우현이 운을 뗐다.
“불러와라, 제갈운이란 자를.”
호남단가를 반석 위로 올려놓을 두뇌, 제갈운의 이름이 단우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